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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안정과 위안에는 예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밀리그램 인테리어 디자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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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게 있겠어?’ - 이 말 안에는 ‘그러니까 원래대로, 있는 대로, 하던 대로 그냥 하자’는 속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의 사고력을 비장애의 잣대로 판단하고 단정 지으면 안 된다. 발달장애당사자들의 눈높이는 비장애인들(심지어 부모님들)보다 낮은 게 절대 아닌, 훨씬 높은 제3의 지점에 존재함 또한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영역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성이 생겨난다. 과학적인 실험과 연구 및 분석을 기반으로, 발달장애당사자들에게 특화된 실내 인테리어 설계와 시공을 개발하는 이들이 있다. 단순한 색감과 알록달록한 무늬가 답이 아니라는 그들의 성과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알만한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디자인 전문기업 밀리그램 인테리어 디자인을 만나본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이유

“밀리그램(milligram, mg)은 아주 작은 단위의 대명사잖아요. ‘작은 공간이라도, 아주 작은 것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자. 구석구석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쏟자’는 의미로 밀리그램이란 용어를 쓰게 됐어요. 이런 취지를 듣게 된 분들은 어서 빨리 성장해서 킬로그램(kg)으로 바꾸라며(웃음) 다들 덕담을 건네주시곤 하죠.”

밀리그램 인테리어 디자인(아래 밀리그램)의 탄생과정은 아주 독특하다. 그리고 그 ‘독특함’은 전업주부와 같았다던 첼로 전공 음악인이 건축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나오고, 다시 사회복지대학원까지 다녔다는 보기 드문 인생여정으로 풀이가 된다. 전혀 다른 분야의 영역인데, 더군다나 예술에 특화됐을 음악 전공인의 사고체계가 어떻게 공학의 복잡한 이론을 파고들게 된 걸까? 조명민 대표가 밀리그램까지 오게 된 첫 시작점은 아들이었다고 한다.

“자폐가 아주 얌전한 자폐가 있고, 엄청나게 부산한 자폐가 있잖아요. 저의 아이가 정말 극심하게 부산스러운 경우였어요.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일반 아이들이 습득하는 걸, 얘는 어느 것 하나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거든요. 정말 케어(관리, 양육)하기 힘들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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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그램 인테리어 디자인 조명민 대표

그러던 아들이 어느 시점부터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단다. 굳이 별도의 사교육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엄마는 방 하나의 공간을 마음껏 그리며 즐기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아이한테는 말 그대로 ‘엉덩이를 붙이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습성이 생겨났단다. 그 변화를 주시하던 엄마가 벽에 시선을 멈추게 된 게 밀리그램이 잉태되는 첫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조명민 대표는 아이를 이해하게 된 과정을 밀도 있게 설명했다.

“아이는 전혀 표현을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엄마는 아예 몰랐던 거죠. 그러던 중 감각통합교육을 받을 때, 선생님께서 아이를 잘 관찰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귀에 남았어요.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 전에 분명히 전조와 같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씀이셨거든요. 그때부터 아이를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관찰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 아이를 포함한 자폐아이들의 오감(五感)이 부모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체계 자체가 다르다는 걸 체험으로 확인하게 된 거예요.”

조 대표는 그때부터 엄마의 입장이 아닌, 아이의 입장으로 생활과 주변을 세세하게 관찰하게 됐단다. 그러면서 아이가 왜 특정한 소리를 싫어하는지, 거부반응을 보이는 게 무엇인지 등의 습성들에 조금씩 감을 잡게 됐다고 한다. 나름의 큰 성과도 있었단다. 아이가 귀를 막고 정지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 이유가 뭔지를 밝혀낸 점이라고 했다. 공항과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지나갈 때가 아닌 어느 시점마다 아이가 귀를 꽉 틀어막는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계속 확인해 보니, 그 시점은 비행기가 나타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엄마의 귀엔 전혀 들리지 않는데, 아이한테 들리는 데시벨(dB, 소리의 상대적 크기)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찾아낸건 아이를 이해하는 데 큰 전환점이 됐다며, 조 대표는 관찰의 힘을 강조했다.

“가지고 태어난 장애는 극복되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나아지는 게 아니라면, 기존의 환경을 조금씩이라도 바꿔줌으로써 이 아이들한테 훨씬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됐어요. 세상 전체를 자폐친화적으로 바꿀 순 없으니까 생활하는 공간, 학교와 집과 치료실 같은 특정한 장소들부터 환경을 바꾸면, 치료와 일상생활에도 가시적인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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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린 게 건축학을 공부하자는 결론이었단다. 이미 음대를 졸업한 입장이었지만, 야간대 공대를 들어가 2년반 동안 기초를 닦은 뒤 대학원에 가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기초과학분야와 응용과학의 관계처럼 같은 이공계열 내에서의 이동은 충분히 긍정할 만하지만, 첼리스트가 건축학에 도전했다는 건 제3자의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단임이 분명했다.

“운명이었는지 사명이었는지 그런 건 모르겠는데, 그렇게 하도록 계속 연결이 되더라고요. 뭔가 보이지 않는, 저를 이끄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까지 판을 벌릴 생각은 전혀 없었거든요. 새로운 환경을 연구하고 주변에 전파하며 공유해야겠다는 게 공부의 목적이었는데, 졸업 이후에도 논문을 쓰고 칼럼을 쓰다 보니까 제가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설계시공을 맡기고 싶다는 복지관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주문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다른 사람 회사의 명의를 빌려 몇 차례 설계시공을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불법이잖아요. 이런 작업 요청이 계속 들어오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업자등록을 하게 된 셈이기도 하죠.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가장 확실한 도움이 되기를 바라던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밀리그램까지 오게 된 힘이 됐던 거 같아요.”

 

찾고 또 찾아가며 얻게 된 결론

건축학을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다녔지만, 문제는 발달장애를 위한 건축의 이론적 기초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단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중심으로 나와있는 자료들은 여럿 있었지만, 목적의식을 갖고 전공까지 도전한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너무 막연한 내용들이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글로 하는 어려운 얘기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아파트단지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죠? 당연히 놀이터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인접한 A단지, B단지, C단지 어디를 가 봐도 놀이터의 모습은 다들 비슷비슷해요. 똑같은 재질, 엇비슷한 구성으로 차별성이 없다는 거죠. 누구든 사전에 충분히 제시할 수 있잖아요. ‘이 놀이터에선 물이 나오면 좋겠어요’, ‘이 놀이터엔 이런 구조의 놀이기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해야 하는데, 막상 시공에 들어가면 별 차이도 없는 놀이터가 똑같이 또 하나 생기는 걸로 끝나요. 인테리어의 설계와 시공도 마찬가지거든요. 아무리 세세하게 설계를 한다 해도, 시공을 맡긴 뒤 마감을 한 걸 보면 ‘이 정도까지’, ‘이 정도 맞추면 됐지’ 수준에 머물고 말죠. 밀리그램이 시공까지 맡아 직접 책임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건축학으로 논문까지 썼지만, 끝까지 아쉬웠던 건 ‘아, 이건 아니다’ 하는 ‘무언가의 부족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사회복지까지 다시 전공하며 대학원을 다녔다고 하니, 조 대표는 한 우물을 누구보다 더 깊게 파들어간 셈이다. 거기엔 ‘융합의 부재(不在)’가 결정적이었단다. 전공은 달라도 하나의 주제에 서로가 녹아들어야 하는데, 회의와 토론을 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자기 전공의 입장만 강조했지, 융합의 대상을 고려하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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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면서, 저를 가장 휘어잡은 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절대명제였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내내, 저는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반성의 시간을 뼈저리게 가졌던 것 같아요. 저의 아이한테 진심으로 미안하더라고요. ‘왜 나는 아이한테 직접 물어볼 생각을 안 했을까?’ 자폐를 가진 애들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시선을 회피하잖아요. 그걸 특유의 행동이라고만 치부해 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본인들이 살아가고 싶어서,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하소연이자 절규였다는 거죠. 그걸 부모 같은 어른들은 돌발행동이나 문제행동이라고만 바라봤던 거예요.”

조명민 대표가 ‘반성’이라고 표현했던 그 결론에 이르게 되자, 그때까지의 연구는 모두 쓰레기로 접어버리고 조 대표 스스로 판단하는 ‘융합’을 찾게 됐단다. 두드리는 자한테만 문이 열리듯 새로운 방법론으로 ‘뇌공학’이 눈에 들어왔고, 탐구를 거듭하다 보니 건축물이 인간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을 발견하게 됐단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주축이 된 신경건축학연구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제가 어떤 연구를 해왔고 어떤 해답을 원하며 지금까지 진행해 왔는지를 말씀드리니까, 교수님께서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시면서 뇌파분석을 제안하셨어요. 단순한 설문으로 발달장애의 특성을 헤아리는 게 아니라, 뇌과학의 뇌파분석을 통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결론을 도출하자는 의견이셨죠.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라서 처음엔 실패를 거듭했지만, 수많은 피실험자들의 도움으로 공식적인 답을 얻게 됐습니다. 발달장애당사자들이, 자폐성장애를 가진 이들이 무엇에, 왜, 어떻게 반응하는지의 과학적 근거가 새롭게 마련된 거예요.”

 

완성은 가장 작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조명민 대표가 찾아낸 결론이 ‘무조건 100%’의 정답은 아니지만,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확보됐기 때문에 합리적 논증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실험이 ‘노란색에 대한 반응’이다. 노란색은 힘이라는 에너지를 상징하는 색채이기에 그 색이 과해지면 예민해지고, 특히 발달장애당사자들한테는 참지 못할 자극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전체가 노란색으로 돼 있을 경우엔 위험해요. 감정적으로 흥분되기 쉽다는 거죠. 노란색은 주의를 이끄는 핵심요소에 특화된 색상입니다. 그래서 기업의 로고(CI)에 노란색이 많이 들어가는 거죠. 눈에 확 띄니까요. 저희도 시공을 할 때 노란색은 기둥이나 바닥의 안내선, 각 층을 나타내는 숫자 같은 일부분에 주로 사용합니다. 과하면 안 되는 색이 바로 노란색이라는 건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밀리그램이 연구와 설계뿐 아니라 직접 시공을 하는 이유는, 발달장애당사자들만의 특성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집중되고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건 ‘정리정돈’이다. 순서가 정확히 맞아야 하고, 조금의 틈이나 오차라도 눈에 띄면 그 지점에만 계속 집중한다. 그건 정리정돈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리정돈될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밀리그램은 그 부분까지 확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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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참지 못하는 거예요. 자신들의 규칙성에 정확히 맞아야만 안심을 하고 인정을 하거든요. 단적인 예로 꽃무늬로 된 벽지를 벽에 바른다면, 왼쪽 벽지와 오른쪽 벽지의 이어짐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돼요. 그게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는 걸 확인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당사자들은 그 어긋남을 견디지 못하는 거죠. ‘세모-네모-세모-네모-세모-네모’의 순서라면 그게 일정해야 돼요. 그런데 중간 어딘가에 ‘세모-네모-세모-네모-네모-세모’가 돼 있다면 그 지점만 집중적으로 눈에 보이는 거죠. 이런 아주 작은 부분을 세세하게 일치시켜야만 놀이치료가 되고 언어치료가 되지, 선생님이 아무리 ‘우리 이제 기차를 타요!’라고 말을 해도, 아이의 눈은 벽지 한 지점에 머문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되는 겁니다.”

2017년 5월부터 시작된 밀리그램의 인터리어 공사는 지금까지 진행된 것만 230여 건에 이른다. 올해는 특히 ‘심리안정실’이라고 부르는 ‘스누젤렌(Snoezelen)실’ 시설설비의 국산화에 매진하고 있다. 다양한 감각자극을 통해 편안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스누젤렌 시스템의 효과는 이미 높이 인정받고 있지만, 작은 장치 하나에도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수입품 일색이고, 가장 큰 문제는 사후관리(A/S)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스누젤렌실의 효능은 분명하지만, 사후관리가 안 되고 있어서 아이들한테는 심리안정실이 아니라 고문실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느 한 부분이 뜯어지거나 삐걱 하는 소리라도 나면, 아이들은 그 부분에만 몰두하지 심리안정은 아예 불가능해지거든요. 그 한 부분이 벌레라고 생각된다면, 아이들한테 벌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라는 셈이 되니까요. 그래서 유럽의 문화가 아닌, 한국의 문화에 맞는 설비와 색상으로 스누젤렌 시설의 국산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심리안정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발달장애당사자들과 치매환자들뿐만 아니라 육체노동, 정신노동, 감정노동자들, 특히 지난 봄 고성과 속초 산불 때 확인했듯이 소방공무원들의 심리안정은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이죠.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없는 심리안정과 치유를 위해, 밀리그램은 더 깊게 연구하고 더 완성도 높은 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노력한 결과를 누리시는 게 바로 모든 독자 여러분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작성자채지민 대담전문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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