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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노동권 인정, 올바른 의료의 출발점입니다

[함께사는세상]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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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한 회원이 서울아산병원 앞 성내천 다리에 故 박선옥 간호사 추모 의미가 담긴 보라색 리본을 매달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5월 제11차 국제질병표준기준에 직업 관련 증상으로 공식 포함시킨 내용인데, ‘능력과 필요 이상의 노력을 집중하다(강요당하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모든 게 불에 타 사라지듯 극도의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피로로 삶 자체가 피폐화되는 현대인들의 심리적 부작용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의 정신분석의사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소진(消盡, burn out)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일반화가 됐는데,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건 그의 연구대상이 바로 간호사들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가 그러한데, 선진국 전체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모자란 인력으로 운영된다는 한국의 간호사들은 어떤 상황에 몰려 있을까? 이번 만남의 의미를 그 지점부터 파헤치기로 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문을 두드렸다.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위험한 공감대

글의 시작점이기에 소개하는 내용부터 풀어가는 게 마땅하겠지만, 이 만남의 결론부터 언급해야 훨씬 빠른 의미전달이 될 것 같다. ‘김용균’과 ‘구의역 김군’으로 대변되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접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대안과 대책 찾기에 몰두하며 들끓곤 했다. 물론 ‘잠시뿐’이다. 연이은 집배원들의 과로사 소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생사를 넘나드는 소방관들의 막다른 현실 앞에서는 1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회(입법부)를 향한 분노부터 떠올려야 했다. 그런데 더하면 더했지, 덜한 건 하나도 없는 직종 하나를 더 마주하게 됐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이라는 ‘백의(白衣)의 천사’ 환상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할 시점이 됐다는 뜻이 된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아래 ‘행간’)는 2018년 3월에 공식 출범했다. 간호사들을 위한 이익단체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나의 관련 협회가 오래 전부터 운영되기는 했지만,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희미한 존재감으로 인해 현장의 간호사들한테는 외면 받아온 지 오래됐다고 한다. ‘행간’의 활동 소개는 ‘행간’의 실무를 담당하며 간사 역할을 전담하는 이민화 씨가 맡았다. 그런데 간호사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투쟁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공인되는 의료연대본부 현정희 본부장이 때마침 같은 사무실 공간 안에 있었다. 현 본부장이 이 취재에 동참함으로써, 더욱 깊이 있는 대화가 진행됐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현 본부장 “1987년 민주화투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병원에도 노동조합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87년 8월 1일 서울대병원에 노동조합이 생기고 그 다음날 울산대병원에 노조가 발족했던 것처럼, 자고나면 전국각지의 병원에서 노동조합들이 생겨났죠. 오랜 군부독재를 종식하게 됐다는 기대감을 모두가 갖게 되자,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사회 전체에서 타오르게 됐던 거예요. 가장 잘 알려진 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탄생하면서 ‘참교육’을 부르짖게 된 게 대표적이죠. 그와 마찬가지로 저희 간호사들도 진정한 환자 간호를 위한 간호사들의 권익과 권리를 요구하게 됐어요. 그래서 참다운 간호를 지향한다는 의미로 ‘참간호’를 앞세우며, 전국간호사위원회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던 거죠.”

그런데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월간 소식지 형태의 <참간호>를 발행하며 활동을 지속했던 간호사들의 권리운동은, 불가피한 내부 사정에 따라 단일대오를 벗어나게 됐다고 한다. 이후 각 지역 병원 차원의 노동조합으로 흩어져 지내야 했는데, ‘참간호’의 그 기치를 되살리며 다시 뭉칠 수밖에 없는 사건과 사고가 연이어졌다고 했다. 간호사들의 자살이 잇따른 것이다.

이 간사 “물론 간호사들의 자살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 발생했어요. 단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정말 많은 간호사들이 반복적으로 해왔던 독백 하나가 여전히 공유되고 있어요. ‘아침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다’는 거죠. 이게 농담 삼아서 하는 말 같지만, 진심으로 되씹다가 진짜 실행에 옮긴 간호사들이 적지 않다는 거예요. 자동차에 실제 치이는 게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끝내는 막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출근할 때마다 그런 마음으로 병원을 향해 걸어간다는 걸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다는 거, 그게 2019년 현재의 대한민국 간호사들의 공통된 심정이라는 걸 먼저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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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다’는 표현, 그건 아주 거칠게 가슴속을 난도질하며 스쳐간다. 게임개발업계에 종사하다가 자살한 몇몇 젊은이들의 유언(장) 속에 비슷한 의미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일 중에 쉬운 게 뭐가 있느냐?’는 기성사회의 반문과 조롱은 여전히 뒤따른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무덤덤하게 출퇴근을 하고, 누군가는 출근과 퇴근의 거리 위에서 ‘막다른 길’을 떠올리며 걷게 된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간사 “병원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발길을 옮길 수 없어, 그 자리에서 돌아서며 그만두는 걸 간호사들은 ‘응급사직’이라고 해요. 사직서도 없이 말도 안 하고 퇴사하는 거죠. 그건 ‘짜증나서 회사 안 가고 말래’ 수준이 아니에요. 병원으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갈등이고 쏟아지는 눈물인 거예요. 이런 갈등 속에 ‘내가 오늘 정말 누구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해롭게 하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누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에,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자체가 무거워지는 거죠. 자신의 직장인 병원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자살충동과 연결이 돼요.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응급사직을 결심하는 간호사들이 많이 있다는 게 실제 현실입니다.”

 

환자는 돈벌이의 수단일 뿐, 인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는, 우리가 연상하던 친절하고 전문지식을 가진 간호사들의 이미지는 어떻게 된 걸까? 전체 간호사 모두가 응급사직을 떠올리며,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는 의미는 아니어야 할 일 아닌가?

현 본부장 “최신 자료를 찾아보면 우리나라 간호사의 수가 십팔만 오천 명이라고 나오는데, 그건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만 가리킬 거예요. 면허 받은 간호사는 총 사십만 명이 넘거든요. 간호학과를 나와 간호사 면허를 받고도, 현장에서 일을 안 하는 간호사가 절반을 넘는다는 겁니다.”

이 간사 “간호대학을 너무 많이 늘리고 있어요. 이십 년도 안 돼 두 배 넘게 늘어났거든요. 그런데 제대로 된 현장실습을 받을 길이 없어요. 학생들이 너무 많아지니까, 학기 중에 받지 못하고 방학 때 실습을 나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문제는 학생들을 전담해서 교육할 간호사들이 없다는 거예요. 근무인원은 절대적으로 모자라는데 업무는 폭주하고,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자신의 환자가 잘못되거나 심지어 사망할 수도 있는데, 일손을 놓고 편하게 학생들을 맡아 세세하게 가르쳐 줄 환경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고 간호사들한테 교육비가 별도로 책정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상태인데, 학생들의 현장실습 교육까지 담당해라? 불가능하죠. 결국 학생들은 눈치껏 어깨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생명을 다루는 일인데도, ‘어깨너머’가 유일한 실습이자 현장체험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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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대학 출신 학생들은 면허를 받고, 거의 대부분 병원 간호사가 된다. 취업률이 아주 높고, 취업이 가능할 병원의 자리는 충분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입사 2년차 이내의 간호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하는 게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정말 소수만 남아서 경력 간호사가 되고, 간호사의 일 자체를 떠나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그 빈자리는 새로 졸업하는 신규 간호사들로 채워진다. 실제 현장에 투입이 가능할 제대로 된 실무교육도 없이,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병실로 곧장 들어가야 한다.

이 간사 “그래서 일회용품이라고 다들 스스로를 얘기해요. 간호사는 소모품이 아닌 나름의 전문가들인데, 현장에서는 누가 퇴사를 한다 해도 아쉬울 게 없다는 분위기예요. 흔한 표현처럼 싼값(?)에 신규 간호사를 채용하면 그만이니까요. 외국에서는 신규 간호사들의 현장 교육기간이 최소 일 년이에요. 중환자실 같은 특화된 업무는 추가로 전문교육을 따로 받아야 비로소 투입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두 달, 길어야 세 달이면 환자들의 생명을 직접 담당해야 돼요. 신규 간호사들을 처음부터 중환자실로 투입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현 본부장 “제가 일할 때(서울대병원 1989년 입사)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덜 심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구조적으로 환자들의 중증도가 훨씬 떨어졌거든요. 무슨 의미냐 하면, 당시에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대학병원의 경우도 한 환자의 입원기간이 길게는 보름 가까이 가능했으니까요. 그런데 수익성을 높이는 게 모든 병원들의 당면과제가 되면서부터, 평균 입원기간을 압축적으로 줄이기 시작했어요. 흔히 ‘병상돌리기’라고 하는 병상회전율이 최근에는 일주일도 채 안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실에는 중증환자만 남게 되죠.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아지면, 간호사 인력은 두 배에서 세 배가 더 필요하게 돼요. 그런데 인력은 동결된 상태 아니면 오히려 줄여가면서 중증도는 몇 배로 늘어나니까, 간호사들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강도는 엄청나게 되고 직무 스트레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현 본부장은 우리나라 병원들, 특히 대형병원들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인력 부족의 문제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 또 하나는 민주적이지 못한 조직문화, 다시 말해 인권 자체가 존중이 안 되는 병영식(군대식) 문화가 합쳐져서 최악의 의료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 본부장 “대학병원 같은 종합병원들은 값비싼 장비들한테는 수십억 수백억을 투자하지만, 정작 사람한테는 투자를 하지 않아요. 병원에 아무리 고가의 장비가 들어와도, 그것을 해석하고 분석하며 운영할 주체는 결국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의사가 부족하고 간호사도 부족하고, 방사선사와 행정요원들과 청소하시는 분들까지 모든 인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개개인의 환자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세세하게 치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런 환경에서 메르스와 같은 국가적 재앙 차원의 전염병이 돌게 되면, 말 그대로 모든 병원 구성원들이 ‘멘붕(정신상태의 붕괴)’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 간사 “환자 하나하나를 볼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또한 부족하다는 이유부터 앞세우면서 일단 고가의 장비들로 검사부터 시작하죠. 의사의 직접 진료가 우선되는 게 아닌 검사를 통해 나온 걸 보고 판단하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요즘은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하게 됐어요. 그 검사 결과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요.”

현 본부장 “왜냐하면 병원 검사를 할 때마다, 그게 다 수익으로 들어오거든요. 각종 검사의 횟수에 따라서 의사들한테 성과급이 지급됩니다. 불필요하더라도 검사를 많이 하는 의사들한테 성과급 수입이 돌아가게끔 돈벌이 구조를 만들어놓으니까, 아무리 양심적이던 의사라 해도 이 자본주의 사회의 병원 구조 안에서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환자를 취급하게끔 내몰릴 수밖에 없게 돼요. 그 돈벌이의 구조를 지탱하는 모든 뒷감당은 수적으로도 부족한 간호사들이 도맡아야 하는 게 지금의 병원 시스템입니다. 환자의 인권은 찾기 어렵다는 거예요.”

 

‘태움’이라는 말, 이제는 쓰지 말자

2018년 2월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한 명의 간호사 이름이 언론에 등장했다. 서울의료원에 근무하던 서지윤 간호사이다. 거의 모든 언론은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기만 했던 ‘태움’이라는 단어를 전 국민이 익숙해질 만큼 끄집어내고 또 확대시켜갔다. 문제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살필 생각은 아예 없이, 간호사 ‘그들만의 문제’로 낙인을 찍는 데만 몰두했던 것이다.

이 간사 “사실대로 말씀드린다면, 저희 ‘행간’은 편가르기에만 집중하는 일부 기득권 언론의 취재를 반기지 않습니다. 간호사들의 세계 전반에 관한 질문은 없고, 오로지 ‘태움’ 하나에만 집중하니까요. 저희가 어떤 내용으로 답변을 해도, 언론에서는 그 답변을 어떻게든 ‘태움’과 연결시켜 내보내는 게 반복됐거든요. 그래서 ‘행간’ 내부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후배 간호사를 향한 선배 간호사들의 ‘끊임없는 괴롭힘’이 ‘태움’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용어는 병원 내에서 힘든 상황이 될 때마다 사용하는 간호사들만의 표현법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환자를 하루 종일 관리해야 했을 때는 ‘오늘 환자 때문에 탔다’, 항의하는 가족들 앞에 감정노동 수준의 대응을 해야 했을 때는 ‘환자 가족 때문에 탔다’, 업무가 너무 많아 힘겨운 날에는 ‘오늘 완전히 탔다’는 식으로, 그때그때의 심정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이 간사 “언론과 접촉하기 전에 사전 질문지를 받아도, 여전히 ‘태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식으로, 성격이 좀 이상한 끼리끼리의 문제라는 식으로, 어느 사회나 다 똑같은데 여자들만 모인 곳은 더 심하다는 식의 일그러진 관점으로 기사의 내용을 채워버리죠. 그건 분명히 아닌데도, ‘태움’을 흥밋거리 정도로만 바라본다는 증거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죽었고 또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렇다는 거죠. 진상파악의 핵심은 간호사들이 병원의 모든 업무에서 ‘왜 타고 있는가?’에 맞춰져야 하고, 언론의 질문도 그 지점을 파고들어가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병원의 하루 일과에서 간호사들이 ‘타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업무의 양 때문이고, 업무의 양이 과중하다는 건 인력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타들어가는’ 모든 원인은 인력의 절대부족입니다. 그래서 ‘행간’이 출범을 했고 이렇게 존재하는 이유 또한 ‘간호사도 인간이고, 정당한 노동권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데 최고의 방점을 찍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인 노동자입니다

‘행간’이 발행하는 카드뉴스 안에는 오래 전 선배들이 월간지 형태로 발간했던 ‘참간호’ 지면의 기사를 옮겨놓는 꼭지가 있다. 멀게는 30년 전의 간호사들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색다른 시도인데 그 내용을 살펴본 간호사들, 특히 ‘행간’의 회원들은 모두가 같은 감상을 얘기한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이다. 심지어 ‘그때가 차라리 낫다’는 게 매번 모여드는 의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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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간호사의 날인 2018년 5월에 간호사 처우개선을 위해 열린 집회 <간호사, 침묵을 깨다>

이 간사 “간호사들은 다들 너무 지쳐서, 쉬는 날에는 집에서 잠만 자요. 그래서 다른 병원의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고, 근무표가 서로 안 맞으니까 일상의 친목을 다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다음 달의 근무표가 전 달의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제야 다음 달의 개인 일정을 잡을 수가 있게 된다는 거죠. ‘데이(day)-이브닝(evening)-나이트(night)’ 이렇게 삼교대로 돌아가는데, 교대할 때마다 생활리듬이 깨지는 것 때문에 다들 너무 힘들어 해요. 말 그대로 ‘지쳐서 떨어져나간다’는 거죠. 그래서 ‘야간전담제’라고 심야근무 전담자를 따로 뽑거나 정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저희들의 판단으론 그것 역시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해요. 결론은 결국 인원 자체를 늘려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에 대한 투자 없는 일방적인 비용절감은 결국 또 하나의 ‘박선욱’과 ‘서지윤’이 생겨나게 만들 뿐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스스로 세상을 떠나간 간호사가 故 박선욱 간호사와 故 서지윤 간호사 두 명밖에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간호사의 자살은 늘 발생했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상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단 두 명의 이름만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반인륜적 선정주의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 어떤 인격침해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양산하는 데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태움’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신조어인 양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 된 셈이다. 게다가 간호사, 즉 ‘여자’들이라는 대상이 표적이 된다. 자신의 누이, 자신의 연인, 자신의 딸이 간호사라 해도 그와 같은 기사들을 쏟아낼 수 있는지를 되묻고 싶은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 간사 “다른 무엇보다도 ‘행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또한 나아가야 할 목표는 ‘간호사도 한 명의 노동자다!’라는 개개인의 절규를, ‘행간’의 조직화된 힘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에요. ‘간호사는 희생과 봉사가 의무’이고 ‘백의의 천사’라는 정도로만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바로 그 관점이 이미 오래 전부터 허상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병원의 수익창출을 위해 환자들의 인권은 철저히 수익대상으로 무시되는, 이렇게까지 공고화된 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 올바른 의료는 불가능하다는 걸 독자 여러분도 깊게 인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간호를 위해선 간호사 개개인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하나의 노동자로, 소중한 생존권의 주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인정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병상에 누운 환자가 여러분의 가족이듯, 저희들 또한 여러분이 잘 아는 누군가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작성자채지민 대담전문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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