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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활동지원도 못해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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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종합평가 점수표 조사를 받았다. 그전에, 이번에 개편된 종합평가 점수표에 의한 조사를 받지 않으면 앞으로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저들의 위협이 있었다. 방문자의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하는데, 기억해보니 예전에 받았던 인정조사표에 따른 조사 때와 질문과 답이 거의 똑같았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종합평가 점수표를 도입했다더니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사를 받는 동안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속으로 떨어야 했다.

조사를 받고 난 후 생각해 보니, ‘장애인들 일생은 그게 장애등급 하락이 됐던 뭐가 됐던 이렇게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건가?’라는 자조감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은 개선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인 중에 심한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이 있었다. 그는 일상에서 활동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장애등급 하락 우려 때문에 수년째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을 하지 못했다. 장애등급이 하락하면 수급자에서도 탈락하는 거 아니냐고 벌벌 떨면서 말이다. 수급자에게 주는 생계비에 기대 겨우 사는 그로서는 당연한 두려움이었다.

결국 장애인 일생은 어떤 복지서비스를 받던 간에, 모두가 일단 신청한 뒤 결정되기 때문에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다. 소득이 없는 장애인이 기초생활수급과 장애인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활동지원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보장구를 마련할 때도 신청을 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아무도 장애인 사정을 고려해서 챙겨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청·심사·신청·심사, 그 과정에서 가져야 하는 ‘혹시나 탈락’에 대한 두려움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게 가난한 장애인 일생이다.

현재 장애계 이슈인 65세 활동지원 요구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통계대로 장애인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구나, 그래서 사회에서 은퇴하는 장애인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구나, 이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장애인들 얼굴이 보이지 않는구나.

장애인 은퇴는 비장애인 노인들의 은퇴와는 다르다. 장애인 은퇴는 ‘새들도 세상을 떠나는 구나’라는 시구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아니면 겨우 벗어났던 골방으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고령 장애인들은 특성상 비장애인 노인처럼 혼자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골방에서의 삶도 누군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장애인 실정이 이런데, 정부는 노인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65세 이상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가 안 된다고 한다.

돌아보면 장애인 일생은 골방을 벗어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의 여정이었다. 가족은 창피하다며 장애인을 골방에 가뒀고, 형편이 힘들어지자 장애인을 수용시설 골방에 보내버렸다. 때로는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골방에 유폐시키기도 했다. 그랬던 장애인이 골방에서 벗어난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인권과 권리의 운동을 몸소 실천해왔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거리에서의 치열한 싸움이 있어서 겨우 골방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해졌다.

어떤 말로 포장해도, 정부가 65세 이상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은 노년 장애인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 통계를 보면 장애인 중에서도 고령 장애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장애인들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데, 정부가 자체 통계에 나타난 노년 장애인 문제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은 장애인 복지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 없다.

거리에서 65세 이상 활동지원 보장 요구 시위에 나선 한 중증장애인은 “정부는 차라리 나를 안락사 시켜 달라”고 절규했다. 정부는 언제까지 장애인들 절규에 귀를 막고 있을 것인가. 약자인 장애인들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도 아닌, 일생을 힘들게 살아 온 장애인 노년도 책임져 주지 못하는 정부가 무슨 염치로 장애인 복지를 말하는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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