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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열어야, 세상이 내게 다가옵니다[사람사는 이야기] 지체장애 1급 대학생 김찬기
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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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09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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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얘기는 아니더라도, 신앙 차원의 절대자가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분명 모든 인간들에겐 개개인의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을 것이다. ‘사랑’과 ‘자비’ 모두 인간 그 자체를 위한 절대적 의미이기에, 어느 하나 덜 소중한 인간 없고 어느 하나 우월함만 타고 난 이 없음 또한 당연하다. 인종과 피부색과 성별, 빈부와 학력격차 및 거주지역 따위는 거대한 틀로 넓혀 본다면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편견과 아집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인간은 소중하다. 그리고 인간 모두는 고유의 능력을 내재한 삶을 살고 있다. 단지 그 능력을 발휘하거나 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직 찾지 못하는 채로 머물고 있다는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다.

 
   
 

무슨 ‘선언문’의 첫머리 같은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만큼의 편견과 아집으로 뒤범벅된 이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안~돼~!”라는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가 있다던데, 어쩌면 그 유행어를 이미 오래 전부터 가슴에 품으며 살아왔던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부하고 싶은데도 “안~돼~!”, 새로운 이웃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도 “안~돼~!”, 자립생활을 하고 싶은데도 “안~돼~!”, 스스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싶은데도 “안~돼~!”, 뭐든 “안~돼~!”,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등등, 그동안 지내온 우리 삶의 실제 모습이란 게 바로 이런 시행착오가 아니었을까?

“안~돼~!”가 제3자와 같은 눈앞의 타인들이 내지르는 목소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서 남몰래 억누르던 목소리였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안 되는 원인과 이유를 스스로에게 세뇌 아닌 세뇌로 반복시킨 결과만 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뒤집으면 끝이다. “왜 안 돼?”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해버리면 모든 게 ‘뻥’ 뚫린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건데?”라며 반발하고 도전하면 해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안 되는 게 아니라,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 됐던 것이라는 사실만 직시하면 원하던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 - 인생의 정답은 늘 바로 앞에 존재하면서, 그걸 볼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선택만 남아 있었던 셈이다.

 

척수성 근육위축증이라는, 하지만…

   
 
그동안 ‘사람사는 이야기’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 중 최연소의 얼굴이 등장하는 게 아닐까 싶다. 대학 11학번이고 올해 2학년이 된단다. 그렇다면 국민의 기본권리인 선거권을 최근에 얻었다는 의미가 될 텐데…, 하지만 나이는 분명 ‘숫자’에 불과하다. 연령대가 높다 해서 무조건 인생의 해답이 줄줄 나오고,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연소자 취급을 받을 필요는 절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장애등급 1급인 선천적 장애의 몸인데, 그 어렵다던 외국어고등학교(外高) 출신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생으로 살아간다면, 분명 그에게 들어야 할 언어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게 됐다. 왜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초중고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의 언어를 들을 이런 자리의 필요성은 이미 충분하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유난히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2월 어느 날,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모처로 그를 만나러 갔다. 조금 늦게 도착한 점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한 뒤, 이번 취재의 의미부터 설명했다. 그런데 김찬기 씨는 자신이 이런 월간지의 주요 면에 등장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며, 한참 동안 손사래를 내저었다. 게다가 기존에 소개됐던 분들처럼 8면, 10면 분량을 차지할 인생 얘기도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기 10여 분, 그는 이미 소개됐던 분들이 어떤 말씀을 어떻게 하셨는지 먼저 읽어봐도 되겠냐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오케이! 편하게 읽는 동안 잠시 주변을 둘러보겠다며 건물 밖으로 나섰다. 사진 촬영이 가능할 만한 주변 풍경이 있는지 여부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기에, 어떤 면에서는 서로에게 필요한 ‘윈-윈(win-win)’의 시간이 확보된 셈이기도 했다.

또 다른 10여 분이 흐른 뒤, 그의 앞에 다시 앉았다. 그는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화라는 건 그 자체를 거창하게 생각할수록 시작하기가 어려운 게 아닌가. 가장 단순한, 가장 일상적인, 무엇보다 잘 아는 내용부터 풀어가는 게 해답을 얻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본적인 얘기부터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그의 장애증상이 뭔지를 먼저 물었다. 지체장애 1급인데, 척수성 근육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척수신경에서 다른 신경들은 다 괜찮은데, 운동신경의 전달신호가 아주 미약한 증상이란다. 아예 안 통하는 게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흐르기 때문에 어깨를 못 쓰고 목도 제대로 못 가누지만, 팔은 가벼운 건 들 수가 있다면서 앞에 놓여 있던 <함께걸음>을 손에 들었다. 대학의 교재는 두툼한 하드커버에 수백 면 분량이 대부분일 텐데 원론서는 어떻게 보느냐고 물으니까, 교재는 일단 얇게 여러 권으로 분철(分綴)한 뒤 공부한다고 했다.

“척수성 근육위축증 발생률이 우리나라에서는 2만명 당 1명이라고 하는데, 이건 세 단계 증상으로 나눠진대요. 1단계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폐가 약해 호흡력이 악화되면서, 그래서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2,3년 지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인데, 미숙아의 경우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고요. 2단계는 저와 같은 증상이고, 3단계는 비장애와 거의 비슷하게 생활하며 보행까지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요.”

찬기 씨는 외아들이란다. 그렇다면 이미 해답이 보이는 질문과 답변이 되겠지만, 그의 증상을 알게 된 이후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그걸 말씀해 주신 적 있는지를 물었다. 얼마 전 모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찬기 씨도 그 방송 촬영 때 부모님의 마음을 생전 처음 듣게 됐단다. 평생 그런 말씀을 안 하셨는데, 마침 같은 질문이 던져져서 어머님이 최초로 속내를 털어놓으셨다는 것이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당신께서 자신을 그렇게 낳으셔서….

 

몸이 불편해서? - 그 편견을 뒤집어 보기

   
 
스스로의 의지로는 전혀 이동이 안 되는 중증장애였기에, 자신의 기억 속 아주 오래 전부터 찬기 씨에겐 늘 부모님이 바로 곁에 계셨단다. 그런데 인복(人福)이 있는 사람은 뭔가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이웃들이 자신을 무척이나 예뻐해 줬다는 것이다.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게 전부였던 아이한테, 아파트에 함께 살던 이웃들이 언제나 따뜻한 도움을 전했다고 한다. 우유를 먹이고 자리를 옮겨주는 등의 수발을 항상 들어주셨다는 건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성격을 갖게 됐을까?

“저는 스스로 정말 밝은 성격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 고마운 분들과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제 친구들도 저한테는 편견을 갖지 않고 함께했어요. 예를 들어 저는 비비탄 같은 총싸움도 자주 했거든요. 제가 직접 쏘지 못하니까, 제가 총을 잡고 조준하고 있으면 친구들이 옆에서 대신 방아쇠를 당겨주는 그런 식이었죠.”

어린 시절에 쌓은 인성(人性)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부정적인 면만 가득했다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환경이 전부였다면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찬기 씨의 어린 시절이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아 했다니까, 교우관계 역시 원활했음이 분명하다. 모든 성적이 다 좋았다는데, 그렇다면 체육시간은 어떻게 보냈을까?

“체육시간이 되면 일단 최대한 나가요. 교실 안에 있지 않고, 구경이라도 하려고 운동장에 나갔다는 거죠. 나가면… 하하, 그때는 어떻게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모르겠는데요. 축구 같은 걸 하면 제가 골키퍼를 하겠다고 골대 앞에 가 있었어요. 그러면 상대편 친구들이 오히려 슛을 잘 못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팀 친구들이 무지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상대방이 슛을 아예 못했으니까요. 하하!”

이 얘기를 직접 듣고 있던 동안,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연상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이 떠올랐다는 건데, 휠체어에 앉은 친구가 골키퍼를 자청하고 있으니 상대팀 친구들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이 대목에서는 장애 비장애 구분을 떠나, 장애를 가진 친구와 모든 걸 같이 했다던 그 많은 동기들한테 고맙다는 마음이 대신 들었다. 실제로 그런 교우관계를 갖게 된다는 건 쉽지 않다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찬기 씨 스스로 먼저 다가섰기에 모든 게 가능했다는 건 전제조건과 같은 사실일 것이다.

공부는 아주 잘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초등학교 당시엔 국어를 특히 좋아했는데, 글을 읽는 게 너무 좋았다고 한다. 책을 정말 많이 봤는데, 책 읽는 습관을 부모님께서 잘 길들여주신 것 같다는 한마디가 뒤를 이었다. 이 한마디는 묵직한 무게감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왜냐, 책읽기가 중요하다는 건 모든 부모들이 강조하는 사항이지만, 실제로 책을 가까이하는 법까지 알려주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책읽기가 강요가 되어, 오히려 책 자체를 멀리하는 버릇을 낳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저한테 집중력이 있게 된 이유는, 제가 몸이 불편해서 그런 것도 같아요. 못 돌아다니니까 산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책읽기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블록 쌓기 놀이도 참 좋아했어요. 손놀림으로 하는 그 정도는 됐거든요. 앉아서 뭔가를 만드는 걸 정말 많이 했고 좋아했던 것 같아요.”

 

최초로 마주서게 된 벽 하나

   
 
초등학교 다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으로 성장하며 생활의 반경이 넓어지는데, 찬기 씨는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 세상이란 걸 바라보게 됐을까? 그는 중학교 당시 친구들과의 생활을 얘기하다가, 그 친구들이 이제 군대를 가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군대에 간다는 건 진짜 성인의 나이로 산다는 의미가 되고, 어린 시절 친구들이 아직까지도 찬기 씨 곁에서 굳건한 벗으로 존재한다는 뜻도 된다.

당시에도 자신은 먼저 마음을 열고 먼저 얘기했단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도 똑같이 대해주셨고, 본인 스스로도 똑같이 대한다는 게 좋다는 점을 확신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앞선 대목에서 ‘인복(人福)’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는데, 가족은 물론 이웃과 친구와 선생님까지 모두 다 ‘인복’으로 존재한다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다. 그 누가 보더라도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일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찬기 씨의 삶에서 ‘벽’이라고 느껴지는 최초의 균열과 숨 막힘은 언제 등장했던 걸까? 바로 고교 진학 직후였단다.

“저는 OO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했어요. 각 도(道)마다 하나씩 있고 시험을 본 뒤 입학 자격이 생기는 특화된 고교니까 뭐…, 정말 똑똑한 애들이 많고 다들 스스로 ‘걸러졌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뭐라고 할까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할까요? 그런데도 저한테는 일단 제가 말을 건네면 저를 도와줄 의사가 있고, 다 함께 친구로 지내자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굉장히 고마운 친구들이 계속 존재했던 거죠. 그런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와, <데미안>의 크로머 같은 존재가 비로소 그의 인생 앞에 등장했다는 의미가 된다. 찬기 씨는 전혀 알지 못하던 상황 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반의 한 급우가 찬기 씨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한테 자괴감이 들 만한 언어로 계속 방해를 놓았고, 결국 친하던 그 친구들이 서서히 멀어지며 찬기 씨를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량한 척 다가와선 필요 이상 집적거리고 신경 거슬릴 표정과 미소로 곁에서 머물렀다는 것, 그건 전형적인 ‘삐뚤어진 아이’의 인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될 일이다.

“그게 저한테는 인생 최초의 벽이었어요. 세상이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해야 할까? 제 성격은 원래 두루뭉술했었는데, 그 이후론 덜 두루뭉술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이제 잘해야겠다, 너무 착하지도 않게 화도 내야 할 때는 내면서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거죠. 원래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드물지 않게 묘사되는 공통적인 내용이 있다. 아주 맑은 영혼의 샘이었는데, 거기에 먹물과 같은 흙탕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는…. 해맑은 파란 하늘이 마냥 반사될 줄 알았던 투명한 호수 표면에, 얼룩과 같은 탁한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더라는 그런 내용이 떠오를 만한 대목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 ‘1인’의 방해는 계속됐다고 한다.

찬기 씨가 한숨과 함께 털어놓은 사연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글쎄, 그런 내용까지 이 지면에 적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만큼 일면 ‘치졸’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정도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나 천사들이 함께하듯이, 똑같은 무게감의 ‘악마’들도 존재하는 법이다.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그러그러한 인간’은 정말 똑같이 등장한다. 그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기도 하다. ‘A’가 너무 싫어 피하면 똑같은 성격의 ‘B’가 나타나고, 그 ‘B’가 쳐다보기도 싫어 돌아서면 더욱 더 심한 ‘C’가 눈앞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 걸까? ‘그것이 바로 인생(C’EST LA VIE : 세라비)’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목표를 갖는다는 것

“그냥 편견 없이 대해준다는 게 가장 고마웠어요. 그 ‘편견 없다’는 건 고등학교 때 그 일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됐거든요.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 제 곁에 존재한다는 거…. 사실 그 전까지는 친구니까 당연히 함께하며 지내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실제 저와 가깝게 지낸 그 친구들이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매 순간마다 반복하게 됐어요. 그 친구들이 저 때문에 불편한 점들은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그 이전까지는 ‘친구라면 당연히’ 같은 생각 속에 제가 머물러 있었던 거죠.”

대학 캠퍼스는 광활한 벌판 아닌가. 그냥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면 될 것을, 친구들은 찬기 씨와 함께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며 곁에 함께한다고 한다. 학교 밖의 식당이나 주점을 방문할 때 역시, 걷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애매한 거리인데도, 친구들은 찬기 씨와 함께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면서 같이 이동해 준단다. 참 고마운 벗들이 존재한다는 건 진정 소중한 일이지만, 그 모든 게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 또한 분명하다. 찬기 씨 나름의 노력도 없이 무조건 주어진 환경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대화의 순서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됐기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질문 몇 가지를 뒤늦게 꺼내야 했다. 왜 경제학이라는 전공을 택했을까? 2008년 고1 때 큰 상 하나를 받게 됐단다.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의 영예를 얻은 건데, 그때 자기소개서라는 걸 적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개서 내용 중에 장래희망을 쓰는 공간이 있었는데, 자세히 적어야 한다기에 구체적으로 적고 설계하다 보니 그 내용 자체가 자신의 인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단다. 물론 그 이전에도 경제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렇다면 외고 진학은 본인의 뜻이었을까? 그렇단다. 그렇다면 영어를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학교 수업뿐 아니라, 방문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공부를 같이 하다 보니까 영어에 재미를 많이 느꼈단다. 그럼 그 이전 어린 시절에는 어떤 장래희망을 품고 있었을까? 어딘가에 이렇게 적어놓았던 게 기억난단다. ‘비행기 조종사.’ 성격이 활달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느 그림책에서 조종석 같은 걸 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에는 하늘을 날고 싶어서 그렇게 적었던 것 같단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는 것….

다시 최근 시간으로 건너뛰어서, 학교가 바뀌더라도 전공 자체는 확신을 가지고 지원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는 다른 데를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라,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생각 하나로 처음부터 현재의 대학을 목표로 시작했다는 건데, 자신에게는 배수의 진을 쳐야 뭔가가 된다는 신념 같은 게 있단다. 뭔가 절실함이 있어야 모든 걸 이루게 된다고 믿는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그럼 졸업 후의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외고에 입학했을 때, 당시 선생님들은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를 테면 ‘고위공무원’ 같은 방향으로 구체화를 시켰다는 건데, 지금 현재로는 개인적인 목표 또한 간직하고 있지만 우선 ‘고시’에 도전할 마음부터 가지고 있단다. 그럼 언제까지 최종합격을 이루겠다는 계획이 있느냐 물으니까, 찬기 씨는 웃으면서 ‘가능한 한 빨리’라고 짧게 답했다. 그래서 이 지면에 공식적으로 그 목표를 밝혀놓으면 신선한 자극이 되지 않겠냐고 되물으니까, 미소 짓는 얼굴로 잠시 어딘가를 응시하더니 그는 ‘졸업 전’이라고 못을 박았다.

 
   
 

‘나’를 먼저 열고 ‘나’를 개발하겠다는 노력

무엇이 성공이고 어디까지가 완성인지의 여부는 개인별로 다 다르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기에,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 또한 편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김찬기 씨한테 꼭 듣고 싶었던 내용은, 장애를 가진 환경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고 어떤 마음자세를 준비하는 게 좋은지를 알고 싶다는 점이었다. 장애 1급의 몸으로 외고를 나와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다는 강의실에 당당히 들어선 그에겐, 장애를 가진 전국의 초중고교 후배들이 경청해야 할 ‘무언가’가 제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 질문을 꺼내니까 그는 “잠시만요, 생각 좀 해볼게요.”라는 한마디를 끝으로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만 이어갔다. ‘한참’이라는 의미는 1시간이 짧을 수 있고 10초도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심정적 분량이지만, 그에게는 대화 중 가장 긴 시간을 요구한 순간이기도 했다. 녹음기의 녹음기록을 보니까 대략 3분 정도? 하지만 그에게는 그만큼 신중한 판단을 필요로 한 시간이었던 듯했다. 긴 생각이 정리됐는지, “네, 말씀드릴게요.”라면서 찬기 씨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입니다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중고교 후배들한테는 일단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면 스스로 주눅이 들 수가 있기 때문에, 미리 먼저부터 자신의 경계선을 칠 이유는 없거든요. 자기를 자기 안에 가둘 필요가 없어요. 남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똑같이 어울리면, 다른 아이들이 다가오기가 쉽고 자신도 다가서기 쉬워지죠. 다른 사람들 앞에 나를 그냥 풀어놓는 거예요. 내가 이러이러한 불편함이 있다는 걸 확실하게 얘기해야만 내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제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죠.”

이건 함께 살아가는 방법론을 먼저 얘기한 거란다. 그렇다면 공부방법은 어떻게 제시가 될까? 거창한 방법이랄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입장에선 꼭 지키고 명심해야 할 게 분명히 있단다.

“일단 자신한테 재미있는 걸 먼저 해야 돼요. 뭘 하고 싶다면 그걸 열심히 하는 거죠. 과목별 공부법이란 건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스스로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손이 느리니까 전자사전을 이용해서 메모를 하며 노트를 해요. 이런 식으로 저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죠. 지체든 시각이든 청각이든 장애가 있다면, 그 나름대로의 방식을 자신이 개발하는 게 중요해요. 그 개발은 노력이 없어서 개발을 못하는 거지, 진정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개개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맞는 방식을 찾아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무조건 붙잡고 해보세요. 훨씬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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