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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걸 배우며 살고 있어요[사람 사는 이야기]사회적 기업 근로자 장민원
대담 이애리 기자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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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3.02.19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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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히지만, 이번 만남의 주인공은 지적장애를 가진 1인이다. 처음부터 단번에 그의 발음을 알아듣기는 힘든 편이다. 아마도 길을 가다 제3자의 입장에서 무심결에 들었다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의 발음인지를 독자 여러분은 에둘러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그런데 평소 눈인사를 나누며 지내던 사이였기에, 그의 발음은 나름 또렷하게 들린다. ‘단번에 알아듣기 힘든 발음’과 ‘또렷이 들리는 발음’이라는, 의미 자체가 전혀 다른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답은 ‘진지한 관심’이라고 내리게 됐다. 대화 나눌 상대한테 발음의 장애가 있든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든 뭐든 간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그때마다 되묻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분들, 특히 중증의 뇌병변장애를 가진 분들과 서로의 웃음을 섞으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진지한 관심’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혼자서 되새겨 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안 듣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 - 그게 우리 사회의 솔직한 실제 현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는 거다.

이번 만남의 ‘1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질문에 관한 대답이 전혀 다른 두세 가지로 나올 때가 있었고, 갑자기 시공을 초월한 시간적 이동이 반복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언급과 표현은 가급적 ‘들었던 그대로’ 이 지면에 옮기고자 한다. 그게 훨씬 더 살아있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사회 안에서 직장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그 1인’을 함께 만나 보기로 하자. 장민원 씨가 이번 호 주인공이다.

 
   
 

얌전히 듣고만 있던 아이

“지적장애 3급이고요. 뇌가 이상한 것 같다고 해서 병원에…, 그러니까 애가 가만히 있으니까, 울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너무 배고플 때만 울었지 너무 심하게 울었던 적도 없다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병원에 갔다는데, 병원에서 지적장애로 판정을 했대요. 세 살쯤인가? 그때 판정을 받았대요.”

장민원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자신의 첫 출발점을 그렇게 표현했다. 얌전히 있었단다.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때까지 그랬다고 했다. 오래 전 당시의 시대상으로 본다면 유치원은 정말 고급의 교육시설이었을 게 분명하기에, 넌지시 되물으니까 유치원이 정말 맞다 하며 두세 번이나 강조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언니와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4남매의 가족으로 자랐단다. 남동생과 자신만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부연설명이 덧붙었다.

“첫눈에 반한 남자는… 딱 한번 교회 안에서 있었는데, 나랑 같은 동갑이고 멋진 친구였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6년 전의 일인데 언제 온다는 말은 없었고…, 오래됐네요. 참 보고 싶은데요.”

민원 씨는 교회 활동 과정을 설명하다가, 묻지 않았던 내용의 그 ‘1인’에 대한 언급을 반복했다. 보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많이 만나며 지냈으면 좋겠단다. 언제 온다는 말도 없이 갔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눈앞에 보이면 ‘어, 오랜만이다!’ 하며 자주 보며 지내고 싶다 했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내내 쾌활했던 민원 씨였는데 잠시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는 걸 보니…, 정말로 보고 싶어졌는가 보다.

 

내가 즐기는 것엔 기죽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물었다. 서울 상도동 언덕배기에 살았는데, 남동생의 친구들이 동네에 많이 살았단다. 게다가 동네 친구들이나 동네 언니 오빠들도 있어서, 함께 모여 갖가지 놀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무슨 놀이를 했을까? 팽이치기와 딱지치기가 첫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엔? 야구를 했단다. 조금 넓은 마당이 있어서, 거기에 모여 야구를 즐겨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놀이를 할 때 이외의 시간은 거의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던 건지, 아니면 ‘대인관계가 어려워서 그랬다’는 건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대답은 그제야 나왔다.

“잘 몰라서요. 듣기는 들었는데… 잘 이해를 못했어요.”

   
 
그럼 대화를 나눈 친구가 아예 없었다는 건가? 그건 아니란다. 아침마다 집 앞으로 와서 “학교 같이 가자!” 하며 부르던 친구들이 있었단다. 같은 나이의 쌍둥이 자매였는데, 나이 어린 장민원을 세상으로 불러내는 목소리는 나름 존재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럼 언제부터 본격적인 세상과의 대화를 시작했다는 걸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란다.

“일반 초등학교를 3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4학년 때 전학을 갔어요. 다른 학교로 가서 4학년 5학년 6학년 때는 제가 1학년 2학년 3학년 때 배우지 못한 걸 다시 배웠어요. 4학년 때 1학년 것을, 5학년 때 2학년 것을, 6학년 때 3학년 것을 말이에요. 전학 간 학교도 일반학교였는데, 거기에 특수반이 있었거든요. 두 반이 있었어요.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그렇다면 누구나 꿈을 꿀 것 같은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을 물었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될 터이다!’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운동을 하고 싶었단다. 무슨 운동?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곧장 돌아왔다. ‘힘이 좋았나 보다’ 하며 웃자는 식으로 물으니까, 민원 씨는 정말 한참 깔깔 웃더니 그게 아니라 운동을 할 때가 참 좋았다고 한다. 발야구나 야구, 배드민턴 같은 게 중학교 시절엔 정말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라는 전제를 달며 다시 물었다. 보통 딸이 많은 집안에선 여러 명 중 어느 한 명이 아들처럼 행동하며 자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매들 중에서 장난이 더 심하거나, 유독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인물이 존재하는 걸 흔히 접하게 되지 않는가. 그게 맞는 것 같다며, 민원 씨는 또다시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정말로 그랬던 것 같단다.

“제가 딱 그랬어요. 그러니까 행동은 남자처럼 하는데, 말은 여자처럼 조심스럽게 하는 거요. 말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우리 팽이치기나 딱지치기 할래?’ 하고선, 실제로 팽이치기나 딱지치기는 (더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남자애들보다 더 신나게 하는 거였어요. 하하하!”

 

움츠리지 않고 밖으로, 세상 속으로

“교회 청년부 활동을 할 때 발야구 체육대회를 했었는데, 제가 공을 찰 때마다 홈런을 쳤어요. 그래서 교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한테 ‘홈런왕’이라고 했어요. 계속 그렇게 불렀거든요. 지금 회사에서도 탁구대회를 했는데 제가 2등을 했어요.”

교회 활동이 나름 개인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의 모든 활동 중에서 어떤 분야가 가장 좋았는지를 물었다. 자신은 (교회)임원이 아니었다는 대답이 몇 차례 이어졌다. 그래서 임원으로 활동했는지 여부를 묻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여러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야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했다. 자원봉사를 잘 하지 못했다는 대답이 작은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제가 못하는 게 몇 가지 있지만…, 저 혼자서는 봉사활동을 잘 못하잖아요. 제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제 친구가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먼저 하는 법을 보여줬어요. 그렇게 보여주면 제가 따라하면서 활동을 했었어요.”

개인적인 취미로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바깥에 나가서 탁구 연습을 즐겨한단다. 혼자서 탁구 연습?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니, 벽에 대고 탁구공을 직접 치며 연습하는 거라 한다. 농구공이 있으면, 집 뒤의 공원에 가서 농구 연습도 한단다.

장민원 씨는 A4지와 같은 복사용지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에 7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사이즈별로 재단한 용지들을 포장박스에 넣기 전까지의 분류 및 정리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7년 동안 근무했다면 짧지 않은 기간인데, 지금의 직장이 첫 번째 사회경험일까?

   
 
그 이전에 모(某)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4년 근무도 했단다. 서울 강남의 어느 지하철역 인근에 있던 매장이었는데,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청소를 담당했다고 한다. 장애인복지협회의 주선으로 일을 하게 됐다는데, 같은 매장에서 4년의 근무 또한 적지 않은 시간임은 분명하다. 거기에 출퇴근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많이 경험했겠다고 물으니 그렇단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많이 보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곳에 일하면서 참 좋았던 일과, 정말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각각 한 가지씩만 얘기해 달라고 했다.

“좋았던 거는 손님이 막 들어와서 인사를 할 때 굉장히 좋았었고요. 그리고 기분이 정말 나빴을 때는 직원들이 함부로 말할 때였어요. 나이가 훨씬 어린 고등학생 알바(아르바이트생) 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갑자기 저한테 화를 내고 그럴 때 정말 기분 나빴어요. 저는 그런 애기를 들을 일을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장민원 씨는 그 말 뒤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덧붙였다. “철없는 아이들….” 마주보며 대화할 때는 듣지 못했는데 취재용 녹음기 안에는 선명하게 기록된 그 음성, 그건 그의 판단과 인생의 무게가 담긴 한마디임이 분명했다.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럼 직업적인 사회생활은 그 패스트푸드점이 처음이었을까? 아니란다. 그 전에 당시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진행한 직업훈련도 받았다고 한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또한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일정한 과정을 10여 명과 함께 교육 받았었단다. 무슨 일을 하든 그는 계속해서 사회 속을 움직였다는 건데, 멈춰 있지 않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며 살아왔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럼 생활의 중심이 되는 집과 직장과 교회 이외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거나 별도로 활동하는 분야가 따로 있을까? 있단다. 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소 소장님한테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직접 배우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배우는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부족한 면도 있지만, 자랑할 거리도 많이 있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예를 든다면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우리도 살 수 있는데 못 사게 한다든지, ‘너는 이런 거 잘 못해!’ 하며 무시해 버리는 거 같은 게 있잖아요. 그게 가족이든 마트 직원이든 간에, 우리도 충분히 물건을 고를 수 있는데 못할 거라고 하는 건 잘못됐다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그런 권리를 배우고 있어요.”

자신이 배우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걸 보니, 민원 씨는 능동적인 자세로 꼭 필요한 교육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면도 있지만 자랑할 거리도 많이 있다’ 했는데,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스스로 자랑할 면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거요.”라는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나왔다. 깜짝 놀라게 한다니 어떻게? 무섭게? 그건 아니고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건데, 사람을 안고 싶어서 안아주는 걸 좋아한단다.

“사람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네, 그런 마음이 있어요. 제가 ‘오랜만이다’ 하며 안아주면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하거든요. 깜짝 놀랄 때도 있지만, 저는 그럴 때 행복해요.”

사람을 안을 때 행복하다면, 그렇다면 앞에 ‘첫눈에 반한 사람’ 언급도 있었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가지고 있을까? 그럴 생각은 아직 없단다. 아니, 왜? “아직은 요리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요리를 못해서 결혼 생각이 없다? 그럼 배우면 될 게 아니냐고 되물으니까,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가르쳐 주는 게 다 제각각 틀리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라면 끓이는 건 남자동생한테 방법을 배웠어요. 그런데 엄마가 밥 하는 걸 여러 번 가르쳐 주셨는데도, 너무 어려워서 못 따라가겠어요.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계란프라이는 잘 해요. 어렵지 않아요. 계란을 깨서 넣고 (손동작을 하며) 이렇게 이렇게 뒤집는 거 어렵지 않아요.”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으니까, “저는 음식을 제가 싫어하는 것 이외에는 다 먹어요.”란다. 싫어하는 것 이외에 다 먹는다는 건 누구나 다 똑같지 않느냐 하니, 민원 씨는 자신의 표현이 웃겼는지 큰 소리로 웃음 지었다. 생선과 마늘과 빨간 고추를 제일 싫어한단다. 특히 마늘과 고추를 모르고 먹으면 이만큼 맵다며, 그는 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동작을 실감나는 표정으로 연기했다. 표현력이 참 풍부하다고 했더니, 자신의 표현법이 원래 그렇다며 다양한 표현방식을 잠시 연출해냈다. 이 대화의 자리가 그에게는 부담 없이 편안한 환경인 모양이다. 긴장하거나 낯선 감정을 지녔다면, 절대로 행하지 않았을 동작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긍정의 생각, 능동적인 삶

지금 직장과 관계없이, ‘앞으로 이런 일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는지를 물었다. 서점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나면 시내의 여러 대형서점들을 둘러볼 때가 많이 있다고 한다. 주로 종교 분야와 좋아하는 음악 관련 책들을 살펴보는 게 즐거운 일상이라는데, 이 대목에서 조금 민감할지 모를 질문을 건넸다. ‘장애’라는 전제를 둔다면,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좋은지 부담스러운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편하게 나왔다. 좋단다. 사람들끼리 나누다 보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풀어야 할 자신의 단점 같은 걸 풀어낼 수 있도록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는 것이다.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직업적인 얘기 말고,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다는 큰 계획 같은 게 있는지를 물었다. 장민원 씨는 아주 편안한 자세와 표정으로 답했다. 자신에게는 꿈이 있단다. 일을 계속하면서 해외로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건데, 꼭 가고 싶은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 그리고 미얀마라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과 함께 미얀마가 포함된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미얀마어(語) 예배가 있어서, 그 나라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란다.

“여행을 가서 그 나라 말을 하지 못하면 몸짓으로도 다 할 수가 있어요. 영어회화 책 같은 걸 가지고 가면, 제가 말해야 할 내용을 펼쳐서 보여 주면 되거든요. 그러면 다 알아듣고, 자기가 할 말을 찾아 저한테 보여 줘요. 100%예요. 저도 해봤어요. 지난번에 회사에서 중국 출장을 갈 때 같이 갔는데, 중국어회화 책으로 시도해 봤는데 효과가 100%였어요. 책에 없는 건 행동으로 보여 주면 되거든요. 말을 못해도 다 알아들어요.”

대화를 나눌수록 느껴지는 건, 지금 마주앉은 ‘이 사람’이 참으로 긍정적인 생각과 능동적인 삶을 살며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장애를 인생의 짐이나 부담으로 끌어안으며 힘겨워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한 상태에서 모든 걸 긍정적인 일상의 도전으로 이끈다는 건 사실 간단한 몇 마디로 표현될 무게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재용 녹음기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그의 한마디가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고 언제나 밝은 오늘과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그의 나날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좋은 삶이 함께하리라 믿는다.

“결혼한 친구들, 아이들과 가족이 된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죠. 저의 이상형은 마음씨가 착하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또 마음을 열어 주는 사람, 그러니까 제가 너무 부족할 때 저를 받아 주고 마음을 열게끔 해주는 사람이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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