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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늘’이 아니라, 긴 미래의 ‘첫날’입니다[사람사는 이야기] <나를 외치다>의 저자 신호빈
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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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3.08.13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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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작용을 풀어내는 데 종종 등장하는 비유가 있다. 절반 정도 물이 담긴 잔을 보며, ‘물이 반밖에 없네?’와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반응하는 게 그것이다. 지갑 안에 1만원이나 있는지 1만원밖에 없는지, 무슨 일을 할 때 5시간이나 있고 5시간밖에 없다는 것의 차이점은 뭘까? 똑같은 현상과 상황 안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그 이후의 결론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드러내는 비유적 묘사라는 것이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의사의 선언, 그건 한 인간의 인생이 마지막 벽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2011년 어느 날, ‘두세 달’이라는 구체적 기간을 선고 받은 이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생의 의욕을 더욱 더 불태우며, 오늘도 그 시한부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며 세상 속에 뛰어들고 있었다. 이미 여러 언론매체에 등장한 바 있지만, 우리는 <함께걸음>의 관점과 문법으로 ‘그’와 만나 기나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신호빈 씨가 이번 호 주인공이고, 대한민국 최고의 ‘딸바보(곁에서 보기에도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빠를 일컫는 요즘의 용어)’인 호빈 씨의 ‘아부지’ 신태균 씨가 함께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그’를 소개합니다

신호빈 씨와의 만남을 정리하며 이 원고를 적는 과정에서, 본문을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적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왜 이렇게 글이 자꾸 뒤엉키는 걸까?’ 적을 내용은 분명히 준비되어 있는데도, 의미전달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가 뭔지 개인적으로도 의아했다. 글 중간마다 부연설명을 덧붙이다 보니, 글 전체의 문맥이 매번 끊기는 거라 결론 내리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인공의 ‘아픔’을 간략하게 먼저 소개하는 방식을 택하고자 한다. 한 인생의 굴곡과 상처를 너무나 간단히 도식화시킨다는 건 아주 큰 결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모를 수 있는 독자 여러분께 최소한의 기본 정보를 제시한 뒤 대화를 진행하는 게 훨씬 나은 의미전달이 되리라 믿어졌기에,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리며 아래의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한 인물이 있었다. → 건강하게 잘 살아가던 그가, 대학생 시절에 다리가 갑자기 굳어지는 증상을 얻게 됐다. → 그 증상의 병명은 ‘전신성 경화증’이라 했다. → 휴학을 하고 치료하면 나을 줄 알았던 그 병은 그의 몸 속 내장들까지 굳어지게 하며 팔다리를 썩게 만들었고,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을 죽음 하나만 바라보며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만의 절규의 삶을 이어왔다. → 2011년에 그는 의사로부터 최종적인 시한부 ‘두세 달’을 선고 받게 됐다. → 참을 길 없었던 고통의 끝이 언제인지를 확인하게 되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 순간부터 그는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시작했다. →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면서 세상과 다시 만나게 됐고, 그는 주치의의 선고를 무색케 만드는 삶을 지금도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 그 모든 삶의 과정은 그의 저서 <나를 외치다(2013년 3월 출간)> 안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요약이 선행된다면, 우리가 마주대할 ‘누군가’의 현재가 어떤 상황인지를 어느 정도나마 미리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한다. 본문의 대화는 문답형의 문장으로 정리했다. 신호빈 씨의 좌절과 절망의 기나긴 세월 내내 항상 곁에서 함께한 ‘아부지’ 신태균 씨의 음성은 (아)라는 표기로, 호빈 씨는
‘(빈)’이라는 표기를 넣어 구분했음을 미리 말씀 드린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계속…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신호빈 씨의 집을 찾아갔다. 주차를 마친 뒤 ‘집 앞에 도착했고, 이제 곧 찾아뵙겠다.’는 전화를 드렸는데, 아파트 건물 출입구 앞에 이미 나와 계신 건 ‘아부지’였다. 신태균 씨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단번에 눈에 들어온 건, 저기 앞 거실에 앉아 있던 호빈 씨의 옆모습이었다. 컴퓨터 모니터라는 좁은 틀 안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해야 했던 ‘신호빈’이라는 인물은 뭔가 침체되고 어두운 인상을 남기는 이미지들밖에 없었기에, 마주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나름 고민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렇게 반짝거리는 눈빛은 정말 그 어디서도 마주대하기 힘들다는 게 분명했다. 이번 글의 제목을 ‘초롱초롱’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싶을 만치의 해맑은 눈빛이었다는 거다. 이렇게 맑게 빛나는 눈빛이 ‘시한부 인생’이라고? <함께걸음>이 만남을 제안하게 된 이유와 오늘 나눌 대화의 주제를 설명하고 있었는데, 호빈 씨는 잘 들리지 않으니까 크게 말해달라고 했다. 아부지가 거들었다. 얘가 말을 잘 듣지 못한다고. 아픈 동안 모르핀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서, 청각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말이다.

- 블로그를 봤다. 글은 어떻게 쓰는 건가.
“(빈) 이 스마트 폰으로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을 다듬으면서 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하다 보니까, 글이 아직은 매끄럽지가 않아요.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지금 들이고 있어요. 즉흥적이 아닌 정리된 글을 적고 싶다는 거죠. 어떤 전문성을 띠는 게 아니라, 제 진솔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혼자 공부하고 있어요. 책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거죠.”

- 장애를 얻게 된 과정을 먼저 설명해 주면 좋겠다.
“(빈) 전신성 경화증인데, 대학교 때 발병을 했어요. 2학년 마치고 3학년 올라가려 할 때, 그때 대중교통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버스 문 아래 있는 계단에 못 오르는 거예요. 다리가 굳어져가지고요. 그래서 그때는 휴학을 하고 곧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죠. 솔직히 병으로 인한 좌절은 안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불치병 이런 생각을 아예 안 했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더 굳어가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그렇게 혼자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까, 거기서 오는 좌절감이라는 게 너무 커져서 그때부터 은둔생활을 제가 시작하게 된 거예요.”

- 전신성 경화증이 희귀성 난치병이라 알고 있는데, 그 병 증상을 짧게 설명해 달라.
“(빈) 면역체계에 이상이 있는 거예요. 백혈병이라 하면 백혈구의 수치가 많은 거잖아요. 저는 적혈구의 수치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점점 굳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십 대 전부를 그렇게…, 그때 마음은 정말로 10년 넘게 오로지 죽기 위해서 살았어요. 약을 먹으면서도 ‘나는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까’ 정말 죽을 생각만 하고 살았었죠.”

- 그렇다면 이 증상이 심해졌다가 완화됐다가 하는 과정이 있던 건가. 아니면….
“(빈) 아니오. 처음부터 계속….”
“(아) 처음 걸릴 때부터 그냥 내리막길로 계속 떨어진 거죠. 저희도 이런 병이 있는지, 병 이름도 전혀 몰랐죠. 일반 사람들도 이런 병을 몰라요.”

- 그렇다면 이 희귀병에 걸린 이들 중에서, 호빈 씨의 증상은 어느 정도인가.
“(아) 이 병에 걸린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호빈이는 특수한 경우이죠. 그 중에서 더 안 좋은 경우, 아주 나쁜 경우예요.”
“(빈) 정말 크게 아프면 죽어요. 왜냐하면 내부 장기가 다 굳어서 심장까지 진행된대요. 그런데 저는 특이하게 손과 발쪽으로 심하게 와서 다 잘라내게 된 거죠. 소화기능도 거의 다 굳어서 제대로 먹지를 못해요.”

   
 

시한부 선고, 그 반대말은 ‘생의 의지’

초롱초롱했던 호빈 씨 눈망울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바로 곁에 앉은 아부지는 더 떨어질 길 없는, 더 떨어질 데도 없는 눈빛으로 딸의 눈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되살리는 게 힘겹다면, 화제를 바꾸겠다 했더니 그건 괜찮단다. 이 병을 경험하는 이들은 다 똑같은 마음일 테니까, 이렇게 얘기라도 해야 한다며 계속 말을 이었다.

- 그럼 휴학을 한 뒤 바로 입원 생활을 시작한 건가.
“(빈) 큰 대학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사실 치료라는 건 없었고 약을 계속 바꾸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았어요. 몸이 급격하게 나빠지는데, 그 많은 약을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거든요.”

- 호빈 씨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곁에서 바라봐야 하는 부모님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 같다.
“(아) 저희는 말도 못했죠. 10년 동안 좋다는 큰 병원은 다 다녀봤어요. 침도 맞아 보고 별 거 다 했어요. 그랬는데도 안 됐어요. 워낙 나빠져 버리니까….”
 “(빈) 크게 아프고 점점 나빠지니까,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니까 항상 마음 상태가 ‘나는 절대 낫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죽을 사람이다.’ 항상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한 번도 긍정적인 적이 없었거든요.”
“(아) 실질적으로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게 가장 나빴다니까. 그런 생각만 한 게.”

- 아까 모르핀 주사를 언급하셨는데, 그 주사가 상당히 고통스럽다고 다들 말씀하셨다.
“(아) 그때는 얘가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냥 죽는 걸로 얘기하며 병원에서도 내놓았으니까, 그냥 연명하다시피 한 거죠. 의사들도 얘는 희망을 가질 상황이 아니라는 말만 했으니까, 그냥 하루하루를 유지하는 정도였죠.”
“(빈) 다리를 절단할 때는 제가 살 거라는 생각을 아예 못했거든요.”

- 절단한 신체부위가 어땠다는 건가.
“(아) 괴사(壞死, 몸 어느 부분의 조직이 생활력을 잃고 죽은 상태)된 거죠. 다리가 다 썩어가지고 시커멓게… 그게 너무 심한 거예요. 그 고통이….”

- 그럼 그 괴사는 멈춘 상태인가?
“(빈) 그 부위를 다 잘라내니까, 오히려 고통은 없어진 거죠.”
“(아) 그때 자를 때도 어디까지 잘라야 하는지, 의사들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아 좀 문제가 있었어요.”

- 그럼 발병 이후 언제 절단을 하신 건가.
“(아) 작년에 했어요. 그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였어요.”
“(빈) 그런데 제가 이 팔다리 말고도 몸 상태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너는 살 가능성이 없다. 두세 달 정도 남았다.’ 서른을 바로 앞둔 스물아홉 때 일이었죠. 그런데 그때부터 마음이 너무 기쁜 거예요. 정말 살아난다는 생각은 아예 안 했거든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곧 죽는다고 하니까 너무 기쁘고 마음이 가벼웠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었는데, 이 고통의 끝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는 거예요.”

- 아,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그 고통의 끝이 보인다는 게 오히려 홀가분해졌다는 뜻인가?
“(빈) 네, 그때부터는 너무나 용기가 나는 거예요. 제가 그동안 못해 왔던 거 다 하고 싶었고, 더 큰 건 바라지도 않았어요. 너무 많이 외로웠거든요. 그 긴 기간을 혼자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편지도 많이 써 보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입했던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부끄러워서 댓글 한 번 못 달았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로 제 얼굴을 딱 공개했어요. ‘나는 시한부로 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나에게 꿈을 달라. 힘을 달라.’ 그때부터 답장이 많이 오더라고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편지가 오고 많은 응원을 받게 되니까, 그때 너무나 행복했어요. 정말로 처음으로 저 같은 인간한테 희망의 격려가 쏟아진 거예요.”

   
 

아부지, 이젠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무척 고분고분한 아이였고, 고등학교까지 반장을 도맡으면서 정말 모범적이었다는 아이, 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서 법대로 진학했고, 교수의 꿈을 간직하며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는 젊은 시절의 호빈 씨. 지금은 세상과 단절됐던 11년의 기간을 치유 받고 딛고 일어서기 위해, 세상 속으로 모든 관심의 눈을 돌리고 있다 한다.

“(빈) 저는 사회활동에 너무 관심이 많아요. 저로 인해서 사람들이 서로를 돌아볼 수 있고, 서로 아픈 처지이다 보니까 공감할 게 많거든요. 서로 위로해 줄 수 있을 때 아주 큰 힘을 얻게 돼요.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계속하고 있어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저도 직접 말하는 건 처음이니까요.”
“(아) 만나면 배우잖아요. 그래서 대화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빈) 지금 저는 제가 아픈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아예 의식을 안 하고 다른 데 몰두하면서, 새로운 다른 것에 매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거죠. 이런 일이 없다면 정말 잠도 못 자고 또 울고 있을 것만 같거든요. 저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뭐라도 다른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야 돼요.”
“(아) 열심히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그런 일을 계속 많이 생각하다 보니까, 얘가 굉장히 많이 좋아진 거예요. 실질적으로 제가 봤을 때는 기적이 일어난 거죠.”

- 그 기적이 언제 처음 일어난 것 같은가.
“(아) 작년부터예요. 자기한테 이렇게 위로를 주는 분들이 많다는 거,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정말 큰 힘을 얻은 거예요. 그래서 용기를 크게 갖는 거죠. 죽는 날까지는 열심히 쓰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게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좋은 글 쓰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했는데, 정말 좋은 원고가 완성되면 <함께걸음> 지면에 수록될 수도 있다 하니까, 그날 봤던 눈빛 중에서 가장 초롱초롱 반짝거리는 호빈 씨의 눈빛이 실내에 가득 퍼져나갔다. 기쁜 심정을 표현할 때마다 두 팔을 가슴에 X자 모양으로 모으곤 했는데, 이번엔 그 두 팔이 풀어질 줄 모르며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감탄사만 연이었다.

- 희귀병이라서 그 숫자는 많지 않겠지만, 전국에서 호빈 씨를 지면으로 만나게 될 같은 증상의 여러 분들에게 호빈 씨의 마음을 남겨주면 좋겠다.
“(빈) 그 어떤 약이나 음식 이런 것보다도, 정말 마음 하나예요. 제가 병이 낫고 아니고를 떠나서, 정말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거죠.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마음을 편하게 갖고, 그 어떤 경우든 이겨내시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길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요. 어차피 이 병은 안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이게 내 길이다.’ 그 현실과 새로운 희망을 확고하게 간직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런 자기 주관과 소신을 갖게 되기까지는 많이 힘들었지만, 제가 살아있다는 힘이 그게 아니었나 생각해요.”
“(아) 그 모든 게 아픔이었지만, 이젠 자기를 드러내고 싶다는 거죠. 그래서 책 제목도 ‘나를 외치다’라고 한 거예요. 이젠 세상에 외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겁니다.”

-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하겠다. 이렇게 스스로를 외치는 삶을 살겠다 했는데, 지난 11년간의 은둔과 절망이 후회되지는 않는가.
“(빈) 아니오.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저의 삶을 되찾게 된 거잖아요.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제가 성숙할 수 있었고, 어떤 아픔이 다가온다고 해도 저는 담담하게 지나갈 거예요.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이나, 이젠 이런 게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덧붙임

지난 2013년 2월 블로그 안에서 서로 나눴던 부녀(父女)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저서에도 수록됐지만, 아버지와 딸의 가슴 속 진심을 가장 잘 표현한 내용 같아서 오른쪽 면에 그 사연을 옮깁니다.

 

(아부지가 딸에게 보낸 글)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기만 한 너의 꿈
 아무것도 누리지 못한 너의 삶
 이 세상 온갖 음식도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너의 생활
 아무도 모르는 사람으로 와서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우리 인생이지만
 너는 아부지에게 소중한 아이였어
 아부지의 예쁜 딸로 태어나 기쁨을 주었고
 또 많은 슬픔도 주었어
 그러나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너는 그저 아부지의 사랑하는 딸이니까 기쁨이고 슬픔이다

 하루하루 흐르는 너의 눈물 앞에서
 아부지의 존재가 너무도 초라하여 마음만 아려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나 다행인가

 신이 너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니
 주어진 운명의 고통이 크고 힘들지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의 위로에 감사하고
 사는 날까지 그렇게 하자

 너는 저 하늘의 아름다운 별처럼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영원한 그리움과 함께.

 (딸이 아부지께 보낸 글)

 아부지,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해요
 더 이상 눈물 흘리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닿아야 할 인연이라면
 내 눈과 심장을 줄 수 있을 때만 다시 만나요.  

 
   
 

대담 이승현 기자 | 정리·사진 채지민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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