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시설 내 아동인권을 생각해 보셨나요?[여준민의 탈시설 이야기]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  dung727@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2.20  11:13:5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지난 2012년 12월 장애아동인권학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시설 내 장애아동 학대 및 장애아동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었습니다. 학계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시설 내 장애아동의 인권문제에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사대상이 거주인, 즉 아이들이 아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그 조사대상 자체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지체장애나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시설로 보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중복장애에 한해서는 여전하지만요. 최근 장애아동시설에는 주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은데, 질문하고 답하는 것에 어려움을 예상했는지 질문의 주체는 당사자가 아닌 직원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직원들이 응답한 내용만으로 토론해야 했기 때문에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저희도 늘 시설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할 때마다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방식들이 하루빨리 개발돼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직접적인 질문이나 그림 등의 정해진 틀만 고민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면 발달장애인은 환경과 관계에 따라 반응이 달라서 일종의 패턴을 읽을 수 있지요. 이 때문에 오랜 시간 함께 다양한 활동들을 경험해야 하고, 또 관찰이 동반된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늘 예산과 준비된 전문가(?) 타령만 하면서 연구와 접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학회와 단체의 시도도 좋지만 인력과 예산의 한계상 국가가 정책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시설 내 장애아동의 인권침해 조사방식이 아닙니다. 서설이 길었는데, 시설 내 장애아동의 인권침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최근 시설 이용자 인권상황과 관련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임과 방치, 학대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하고 있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는 지난 2011년 영화 ‘도가니’ 열풍(?)에 대한 반성 혹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새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지요.

아시다시피 도가니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영향은 많습니다. 시민들이 시설 내 아동 인권침해에 분노했고, 그래서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됐고, 아동 성폭력 가해자 처벌이 실질화 되면서 피해자 중심의 정책들이 하나둘씩 생겨난 것이지요. 또 인화학교를 운영했던 사회복지법인 우석에 대해 지자체인 광주시가 법인설립 허가 취소를 한국 역사상 최초로 제기했고 민사소송으로 다투기 마련인 사안을 법인 측은 여론에 밀려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비리와 폭력의 소굴이었던 우석법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법인의 재산은 국가로 귀속됐지요.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사회 안에서 시설에 거주하는 이용자들의 인권문제에 감수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더 비참하고 무서운 폭력이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영화를 통해 너무나 자극적인 상황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보다 못한 상황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보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극악한 학대 상황의 인권유린 사건만이 사회의 관심을 끌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지요.

도가니 이후 기자들은 “더 비참하고 사람들이 놀랄만한 사건이 있느냐?”라며 노골적으로 질문하기 일쑤고, 웬만한 상황을 보면서 “도가니보다는 덜 하네”라며 “그나마 다행이고 그래도 괜찮지 않으냐?”라는 무감각하고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1월에 대두한 ‘오순절평화의마을’의 ‘천사들의 집’ 사건은, ‘가벼운 학대’로 일컬어지는 시설 내 ‘방치’가 얼마나 무섭고 가장 심각한, 눈에 보이지 않는 학대며 인권유린인지 여실히 드러났었지요. 오순절평화의마을에는 일상적인 폭력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거주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말과 태도는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보편화 돼 있었고, 가해자였던 직원들은 오히려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었습니다.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설장에게 이야기하고 법인에 보고했지만, 돌아온 답은 “그럴 수도 있지” “한 대 때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시끄럽게 하지 마라” 등등의 이야기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수방관 무책임으로 일관했고, 상황을 무마하려 애쓴 나머지, 직원과 직원 사이의 개인적 갈등과 왜곡된 직원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시설 같은 폐쇄적인 곳에서 무언의 압력과 통제, 욕설, 체벌이 난무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폭력이란 점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위계와 권력관계가 명확한 공간 안에서 늘 감시와 통제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거주인들에게 그 자체의 분위기가 곧바로 ‘할 수 없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그것은 바로 일상의 무력감이고 삶의 존재 이유,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상실한 가장 근본적인 인권침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고, 무엇이 학대고 인권침해인지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지 않은 상황이라 쉽지 않습니다. 시설이란 곳의 특성상 폐쇄적 구조 속에서 늘 같은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공간일 수밖에 없어서 방임과 무관심, 냉대, 존중하지 않는 말과 태도 등은 아동기에 심각한 정서적 학대며, 이후 인격 형성과 장애가 사회화되는 과정을 저해하는 매우 큰 걸림 요소입니다.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지요.

또한, 시설 내에서 직원들이 이용자들에게 행해야 하는 돌봄의 의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전체 아동들에게 방임과 유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환경과 직원의 태도(하대하지 않을 의무) 탓인 방임의 문제는 중차대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형법에서는 유기와 학대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방임을 ‘범죄’ 행위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 중 하나입니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50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개똥이 삼촌 18화
2
정신장애라는 신호
3
일본 천황가와 장애인복지
4
신화와 실천 사이에서 길을 묻다
5
발달장애인들이 맞아 숨졌다
6
심리안정과 위안에는 예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7
글이 아닌 몸을 보다
8
해고는 살인이다. 직접고용 즉각 이행하라!
9
장애는 불편하고 질병은 힘들어요
10
왜 장애인 학대 사건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가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제호: 디지털 함께걸음  |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김성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