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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일자 눈썹 ‘순악질 여사’, 개그우먼 김미화“발달장애 자녀가 행복한 세상 꿈꿔요”
글 이애리 기자 사진 이용태  |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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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4.03.11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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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매 기죽어 음매 기 살아!” 80년대 세기의(?) 유행어를 기억하시는가. 일자 눈썹에 방망이를 휘두르며 남편을 들었다 놨다 했던 ‘깡’의 여인, 순악질 여사를 기억하시는가. 8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 중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최고 인기를 끌었던 코너 ‘쓰리랑 부부’. 이 코너의 일등공신은 단연 순악질 여사, 개그우먼 김미화 씨가 아닐까 싶다. 경기도 용인에서 예술과 농업이 공존하는 까페 <호미>를 운영하고 있는 김미화 씨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Q_ 요즘 방송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다. 어떻게 지내시나

라디오를 10년 동안 진행하고 있고, 방송을 그만둔 건 7~8개월 정도 됐다. 6개월 전에 시골 논밭 한가운데 까페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Q_ 까페에 오는 손님마다 일일이 인사하며 반갑게 응대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까페에서 많은 분을 직접 만나니까 참 좋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화면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많은 분을 만나왔는데, 아날로그식으로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반갑다’ ‘보고 싶었다’ 또는 ‘위로한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그럴 때마다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Q_ 까페가 빈티지하면서 전원적인 느낌도 든다. 어떤 컨셉인가

이 까페는 논밭 한가운데에 흙을 쌓아서 컨테이너 4개를 붙여 만들었다. 까페 안에는 동네 소농들을 위해서 ‘샵인샵’(Shop-In-Shop) 개념으로 농산물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진열장도 마련했다. 도시에서 오신 분들이 차를 마시면서 휴식도 취하고 좋은 시골 공기도 마시고, 농산물도 사갈 수 있도록 했다.

 

   
 

Q_ 까페에 농산물을 진열한다는 게 매우 이색적이다

용인에 내려와서 산 지 10년이 됐고, 이곳이 도시에 접근성이 나쁜 곳이 아니어서 방송국에 매일 왔다 갔다 했다. 농사를 직접 짓는 것은 아니지만, 흙이 많아서 아무 데나 씨 뿌리면 농작물 나오고 하니까 조금씩 채소도 키워서 먹곤 했다. 그러면서 농부들의 생활을 봤다. 얼마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수고하는지, 땡볕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농작물이 안 됐을 때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도심에서 회사 생활하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농사가 몇 배가 더 어렵다. 그래서 농부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농부가 갑이 되는 세상, 농부들이 자기가 일궈낸 생산품을 가지고 도시민들에게 찾아다니면서 “팔아주세요”하는 처지가 아닌, 도시민들이 농부들이 일구는 좋은 것들을 먹기 위해서는 농부들 곁으로 오라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흙을 구경하기 어려운데, 농사짓는 곳으로 와서 같이 일궈보고 흙도 구경하고, 직접 감자나 고구마, 배추 등을 심어보고 재배하는 것을 보면서 농부들의 수고를 눈으로 보면서 먹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여기는 시골이라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어려운 곳인데, 많은 분이 찾아와주셔서 손해는 안 나고 있다. 농부들도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서 농산물을 사가니까 기뻐하시고 한적한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대니 동네 분들도 깜짝 놀라신다.

Q_‘샵인샵’ 개념이라고 하셨는데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농작물을 전시해 팔려면 까페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건가

따로 받는 것은 없고, 농산품을 팔 수 있도록 무료로 장소를 협조해주고 있다. 정식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협동조합의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가격은 ‘농부가’다. 농부가 수고한 만큼 스스로 가격을 매긴다. 요즘은 소문나서 멀리서 오시는 농부들도 있다. 
남편은 문화에 관심이 많고, 저는 농업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예농문화’라고 예술과 농업을 접목해 봤다. 문화예술로 사람을 불러모으고 그렇게 온 사람들이 농산물을 사가면서 농촌경제가 살아나면 좋겠다.

Q_‘예농문화’라는 말이 굉장히 신선하다. 문화예술이라면 주로 어떤 장르를 볼 수 있나

정해진 장르는 없고, 지난해 8월~12월까지 공연을 했는데 조항조, 홍서범 등 유명한 대중예술인부터 팝페라 가수 임형주 등 클래식하는 분들이 참여해 주셨다. 또 유명한 학자나 농부들이 오셔서 토크콘서트나 클래식 공연도 하고, 방송을 녹화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소소한 재미들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도심에서 내려오는 분들뿐만 아니라 농사짓는 분들도 문화 욕구가 많으셔서, 동네 어르신들도 저녁에 행사를 보러 오시기도 한다.

Q_ 도시에서 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촌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인 건가

우리 까페가 전시회, 동호회 모임, 초등학교 학예회 등을 할 수 있는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곳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그렇게 가고 있다. 특히 여름에는 여기서 농사짓는 분들이 밀짚모자 쓰고 흙 묻은 장화 신은 채 수건 한 장 걸치고 까페에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드시러 오는 희한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돈 주고도 그런 풍경들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은, ‘함께걸음’이라는 잡지 이름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

Q_ 원래 농촌생활에 관심이 많았나

친정아버지 고향이 경기도 신갈이다. 그래서 이 다음에 나이 들면 아버지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늘 생각했다. 어릴 때 수유리에도 살았는데 거기도 다 논밭이어서 주로 논밭을 뛰어다니면서 놀았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다. 냉이 캐고 상추 뜯어먹고 산과 들로 뛰어다니면서 지냈다. 흙 만지고 식물 심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 원 없이 하고 있다.

 

   
 

Q_ 농촌에서 지내면서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겠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가 혼자서 힘들게 장사하셨기 때문에 저와 제 동생을 거의 방목했다. 엄마가 신경 써주지를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살았던 것 같다. 늘 자연에서 산으로 들로 가고, 돌 만지고 이끼 만지고 나무들 보면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도 풀 바라보고, 물 바라보면서 온종일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다.

Q_ 어릴 적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학교에서 기초생활수급대장자였지만 그게 창피한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엄마가 고생하시는 거고, 그래서 나중에 성공해서 엄마를 잘 모시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밀가루, 라면을 정부 지원으로 먹었고 거의 매일 굶다시피 했었다. 무허가 동네에 살았는데 부모님은 물론이고 이웃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컸기 때문에 나중에 성공하면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리고 더불어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Q_‘블랙리스트 밝혀 달라’는 말에 KBS에 고소당하고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방통위 주의 처분을 받는 등 힘든 일이 많았다. 어린 시절도 그렇고 살면서 절망할 법한 상황도 많았는데

그렇게 절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저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다. 집안이 어렵다고 해서 절망한 적은 없다. 어렸을 때 가난했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에 나온 것이 저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단지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이 대학가는 게 약간 부러웠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고, 성공한 뒤에는 못다 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실천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오래도록 깊이 생각하지만, 실천을 안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힘든 순간은 하고 싶은 코미디를 못하고 있는 지금인 것 같다. 제가 여태까지 잘못 살아온 것은 없다고 자신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사람들이 좌우 이념으로 편 가르기를 해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을 잘한 것이 이념 한가운데 끼게 됐다. 저는 어떤 한쪽의 이념을 따르는 사람도 아니고, 어디를 편드는 사람도 아니다. 사회복지 공부를 했으니까 어려운 사람한테 마음이 가는 것이 사실이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을 돕고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사회적인 약자한테 손을 내밀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적인 발언을 한 것이 나쁜 사람인 건지. 그렇게 편 가름을 당하면서 재단 받는 것, 올바른 재단도 아니고 자신들의 색깔에 맞춰서 재단해버리는 것, 목소리를 냈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이냐 생각했을 때 슬프긴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를 잃는다거나 좌절한 적은 없었다. 물론 어떻게 한 번에 이렇게 몰아세울 수 있는지, 몰랐던 세상이라고 놀라긴 했다.

Q_ 그래도 조금은 억울했을 것 같은데

물론 억울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저만 억울했겠나. 제가 이럴 정도면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분들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반면교사로 삼게 됐다. 그런걸 보면 사람 인생이 너무 평탄하게 가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다. 좋은 경험만 경험이 아니고, 진흙탕에도 빠져봐야 ‘뻘밭은 이렇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제 옆에서 남편이 지금도 제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을 때 겪을 일이라면 지금 겪는 게 낫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더 큰 힘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Q_ 남편분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니 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

남편과는 늘 편안하고 친구처럼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저를 응원해주고 남편이 힘든 일 있을 때 제가 남편을 지지해준다. 여러 면에서 코드도 잘 맞고 마음이 잘 맞는다. 늘 무슨 일이든 상의 할 수 있고, 대화를 많이 한다. 온종일 붙어 있어도 싸움은 거의 안 한다. 가벼운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죽이고 싶도록 밉거나 패고 싶다든지 한 적은 없었다. 대신 하루에 다섯 번 못 웃기면 맞는다.(웃음) 우리는 웃기는 것에 대해 서로 냉정하다. 저는 30년 웃겨왔으니 베테랑이라 못 웃긴 적은 없는데 남편은 지적을 많이 받는다. (웃음) 저는 잘 때조차도 웃으면서 잠들고 싶다.

Q_ 지난해 <땡큐>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발달장애인 아들이 있다고 밝혔다

제 아들이 지금 서른 살이고 기계나 음악에 굉장히 재능이 많다. 드럼을 잘 치는데 연주할 때 외워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필(feel)대로 연주한다. 음악 하는 분들이 재능 있다고 평가하셨다. 피아노도 잘 치고, 드럼 잘 치고, 교회에서 봉사활동으로 반주도 하고 있다. 또 컴퓨터, 카메라, 동영상 편집, 전화 등 기계를 잘 다룬다. 그래서 예쁜 여자 있으면 전화번호도 순식간에 자기 전화기로 옮기기도 한다.(웃음)

Q_ 서른 살이면 현재 직업이 있나

지금 우리 아들은 한국에 없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남편이 유학할 때 낳은 아이라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고, 계속 한국에서 같이 살려고 했는데 장애인도 군대 때문에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당연히 한국 국적을 선택하려 했는데, 미국은 법이 엄격해서 자의로 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은 부모도 포기 못 시킨다더라. 그래서 지금은 미국에서 그룹홈에 살면서 나라 보조금을 받고 월마트에서 일하면서 월급도 받고 있다.

Q_ 미국에서 혼자 지낸다니 걱정이 많겠다. 연락은 자주 하는지

요즘 세상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인터넷도 되고 전화도 쉽게 할 수 있지 않나. 자주 연락하고 지낸다. 아들이 의사소통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지만, 본인이 살아가기 위해서 배워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본 생활영어는 저보다 잘한다.(웃음)

 

   
 

Q_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로서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15~16세까지는 학교며 다닐 곳이 있지만 컸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선 오히려 설 자리가 없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부모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한 집에 모여 살게 한다거나 돈이 있는 부모들은 직접 직업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발달장애인들도 결혼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행복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는데 그들을 위해 사회가 도와줄 수 있는 방향과 정책이 있느냐 했을 때 전혀 대비가 없는 상태다. 또 제가 아들을 장가보내고 싶다고 하면 비장애인들이 ‘멀쩡한 사람도 시집 장가를 못 가는데 욕심 아니냐’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잘 모르고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발전 가능성이나 행복의 가능성을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우리 아들이 장애를 가졌지만 따뜻함도 있고, 항상 음식을 먹으면서 감사의 마음도 있고 음악, 컴퓨터 등 무언가 한 가지 일에 열정을 갖고 빠질 수 있는 재능도 있기 때문에 시원찮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처럼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발달장애인에게 생활비를 대주고 일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다. 미국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교육제도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다. 결혼을 원하면 결혼에 대한 교육도 해주고, 한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나라 장애인 관련법을 보면 얼마나 화려한가. 하지만 말이나 글로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다.

Q_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대학원에서는 광고 홍보를 전공하고 동양철학 박사 과정 중이라고 알고 있다. 전공이 일관적이지 않은데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인가

별다른 이유는 없고, 사회복지는 제가 방송활동을 못 하는 나이가 된 시점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공부하게 됐다.
석사과정 할 때가 개그 콘서트를 하고 있을 때인데, 광고 기법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부해서 개그 아이디어에 보탬이 되고자 했고, 최근에는 방송을 안 하고 있어서 시간이 많이 남아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예술철학을 공부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혹시라도 토크쇼 같은 것을 진행하게 될 때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박사과정은 현재 논문 제출만 남았다.

Q_ 철학을 전공하고 계신데, 김미화 씨의 인생철학, 삶의 모토가 궁금하다

철학이 뭐가 필요하겠느냐만, ‘하루하루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Q_ 억울한 상황도 많이 겪으셨는데, 우리 사회에서 김미화 씨처럼 힘겨운 삶을 견뎌내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제가 위로할 게 뭐 있겠나. 암만 어려웠어도 제가 다 누린 사람인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어려움만 할까…. 그런데 도리어 저 스스로 느끼기에도 제가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좌절감이 더 크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최근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1등 하다가 5등 했다고, 꾸중 들었다고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들이 있는데 매우 안타깝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 경험들, 나쁜 경험들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해야 한다.

Q_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시사프로그램이다 보니까 10년 정도 하면 재미있는 정치코미디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정리해놨는데, 정치코미디를 하려면 시기를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고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정치적으로도 서로 싸움만 하는 것 같아서 시기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정치코미디도 그렇고 새로운 코미디를 할 시기가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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