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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희아, 이젠 ‘통일소녀’예요사람 사는 이야기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모녀]
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aery727@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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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4.05.14  1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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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아’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라는 소개와 ‘소녀’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했었다. 여전히 소녀일 거라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은 10년을 훌쩍 넘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 ‘이희아’가 눈앞에 나타났다. 소녀에서 성인이자 한 여인으로 변신한 그녀였지만, 10년 만의 재회 앞에서는 여전히 반가움에 손뼉 치며 활짝 웃는 ‘소녀 희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선천성 사지(四肢)기형 1급의 두 손으로 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모습에,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그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진도 앞바다 참극이 났던 바로 다음날 만났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정부 차원의 호언장담이 당연히 이뤄지리라 기대했던 시간이었기에, 수많은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우리의 대화는 반가움과 웃음꽃 가득한 시간으로 채워졌었다. ‘국민행복’의 언약은 ‘국민절망’과 ‘절대분노’로 결론 났지만, 일단 이 지면에는 당시의 대화 분위기 그대로 원고를 정리하겠다는 점을 미리 양해의 말씀으로 드려야겠다.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함께걸음>에는 10여 년 만에 다시 인사를 올리는 이희아 씨가 이번 호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안 된다 해도 가능성을 찾기

마지막 만났을 때가 대학에 입학한다고 기대감에 들떠 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더니, “아, 기억나는 것같아요.” 하며 희아 씨의 표정이 더 환해졌다. 전공은 멀티미디어작곡과였는데, 전공 수업은 거의 못하고 교수님과 피아노 공부만 정말 열심히 했단다. 자리에 함께 앉으신 어머니 우갑선 님은 딸 희아가 공부를 너무 못해서 점수는 당연히 안 나왔다고 했다. 그런 ‘극비사항’까지는 말씀 안 하셔도 된다 했더니, 두 모녀의 박장대소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처음 피아노를 쳤던 건 여섯 살 때였는데 손가락에 힘이 너무 없어서, 그 힘을 기르려는 목적으로 치기 시작했어요. 제가 이렇게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희아 씨는 한 손에 손가락이 두 개밖에 없고, 그래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가 됐다. ‘열 손가락으로도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 분야인데, 어떻게 네 개의 손가락만으로 그 모든 연주가 가능하다는 건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신다면, 그의 연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인터넷 등의 자료들을 둘러보시면 된다. 답은 그 즉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머님께 먼저 질문을 드렸다. 태어난 이후 어릴 때부터 따님과 함께했던 당시 심정이 어떠셨는지, 또한 지금은 어떤 심정으로 따님을 바라보고 계신지를 ‘어머니’ 입장에서 말씀해달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걸 희아한테 다 전해서, 희아가 제대로 홀로서기가 가능해지는 데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항상 불안정했죠. 몸만 불안정한 게 아니라 희아는 지능도 낮았고, 그래서 객관적인 상황판단이 잘 안 되는 아이였어요. 학습지능장애도 심각했기 때문에, 희아를 피아노학원에 보냈을 때도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힘들었거든요.”

학습지능장애라…. 따님한테 그런 증상이 있었다는 건지를 물었더니, 바로 옆에 앉은 희아 씨가 태연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지금도 4 나누기 4가 안 돼요.” 하며 웃는다. 장애나 단점이 아니라, 그 모든 걸 초월한 사람인 듯이 말이다.

“네, 나누기는 지금도 안 돼요. 선생님이 이론을 설명하며 전하면, 그걸 어떻게든 노력해서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희아는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계속 신경을 써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해를 못하는 사람한테 그 자체를 외우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용이 안 되고 이해를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외우게 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외우게 하는 건 희아가 가능하더라고요. 희아한테 해답은 클래식 음악이었어요. 클래식 음악은 악보 그대로 딱 정형화 되어 있잖아요. 다른 사람의 생각 같은 걸 악보 안에 집어넣으면 안 되는…. 희아한테는 클래식 음악이 정답이었어요.”

 

능력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가능성이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무언가의 계기나 남다른 도전이 있었을 게 분명한데, 희아 씨의 입장에서 그건 무엇이었을까? 어머님의 말씀이 뒤따랐다. 희아의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피아노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 생겼단다. 그런 와중에 당시 최고의 흥행작이라던 영화 ‘타

   
 

이타닉’을 함께 보러 갔었는데, 딸 희아가 그 영화를 보며 정말 굉장히 진한 무언가의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란다. 희아 씨는 어머님의 진지한 말씀이 이어지는 와중에, 옆에서 또 한마디를 거들었다. “내가 디카프리오를 진짜 좋아했잖아!”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이타닉 그 배가 부서질 때의 웅장한 음악이 막 울려 퍼지는 거예요. 저는 잠을 자던 중이었으니까, 순간 ‘내가 영화관에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희아가 그 음(音)을 피아노 앞에 앉아 그대로 옮기고 있더라고요. 영화관에서 들었던 그 선율 모두를 그대로 기억했는가 봐요. 얘가 그대로 옮기며 혼자 연주를 했던 거예요.”

희아 씨는 가수들과 협연을 할 때도, 악보를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그 가수 곡의 시작이 되는 음만 알면 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 너무 감사하단다. 그를 가르쳤던 여러 선생님들이 가장 놀라는 점이 바로 그 대목이라 한다. 음악적 이론이 아닌, 직감 하나로 모든 곡의 연주와 반주가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것!

   
 

“원래 클래식은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건 죽으나 사나 악보 자체를 외워서 익혀야 하잖아요. 그런데 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은 즉시즉시 변형이 가능해요. 어떤 노래든지 듣자마자 연주를 할 수 있어요. 지능이 낮아 악보 자체를 외우게 했던 열두 살 당시 시절에, 처음 듣게 된 음악과 여러 곡들을 그 즉시 피아노로 옮기는 능력이 희아한테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저도 굉장히 놀랐죠.”

해외공연을 자주 다니는 희아 씨가 어느 공연에서 한 가수의 반주를 맡게 됐는데, 그 가수가 마침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을 부르겠다고 했던 모양이다. 영어회화를 할 줄 모르던 희아 씨는 영어단어의 의미가 뭔지 몰라도, 상대방이 말을 하는 그 느낌은 충분히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외국의 무대현장에서도 즉석의 협연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음악의 이론을 모른다면서, 어떻게 이런 연주가 가능하다는 걸까?

풀이하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대중화된 악기인 기타를 가지고 피아노 대신 설명한다면, 우리가 기타 코드라고 얘기하는 F, Am, D7 이런 게 어떠한 이론적 화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지만, 희아 씨는 듣는 귀만으로 얼마든지 그 모든 선율 조합을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화성학(和聲學)의 이론을 모르는데 실제 연주는 가능하다는 것, 이건 정말 보기 드문 특출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달란트’라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해야 할 일이다.

   
 

“얘가 워낙 이론을 싫어하니까, 얘는 정신지체라서 표현을 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노래하는 사람의 기본 코드가 G코드인지 A코드인지,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런데도 얘 머릿속에는 다 들어 있다는 거죠.. 논리로는 풀 수 없지만, 희아 머릿속에는 듣는 것만으로도 다 표현할 능력이 간직되고 있다는 거예요.”

곁에서 어머님 말씀을 듣던 희아 씨가 또 다시 추임새를 집어넣었다. “듣는 걸로는 모차르트죠. 하하하!”

 

맑게 긍정적으로 살기

희아 씨는 느낌 그 자체로 상대방의 의미를 잘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 현상을 파악하는 데 특히 익숙한데, 가장 특징적인 건 그 모든 걸 ‘리듬과 음표’의 느낌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희아 씨가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 우리 옆에 지나가는 저 트럭 차량이 어떤 멜로디로 자나가는지 아세요? ‘미(E)’음으로 지나가고 있잖아요.”

갑자기 나온 언급이라서 그 정확한 의미가 뭔지 몰라 다시 물었다. 세상 모든 현상의 소리를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음계로 이해한다는 얘기였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파악한다는 발언은 처음 듣는 신기한 내용이라서, 대화 나누던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있던 카메라를 들고 허공을 향해 셔터를 누르며 ‘찰칵’ 소리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 소리는 어떤 음계인가 하며 물었더니,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희아 씨는 “파솔, 파솔, 하하하!” 하며 ‘찰칵’의 음계를 분석해냈다.

   
 

참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긍정의 관점으로 본다는 건 사실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희아 씨는 “네!” 하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온다. 종교의 힘이나 그 어떤 외적인 요인을 대입시키기 이전에, 이건 인간 자체가 긍정적이지 않으면 만들어지기 힘든 또 하나의 능력이다. 그래서 어머님께 물었다. 어쨌든 남다른 재능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됐는데, 만약 당시 소녀 희아가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았던 게 옳았을까, 아니면 세상 속에 공개되고 나오게 됐던 게 나았던 걸까?

“공개되고 나온 게 훨씬 낫죠. 세상 속에 나와 살지 않았다면, 아마 밤낮으로 피아노 연습만 계속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됐잖아요. 뭐, 나쁘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긴 했지만, 희아는 누구를 만나도 한 5분 정도만 지나면 동화(同和)가 되면서 잘 어울려요.”

이 대목에서 희아 씨는 일본에서의 경험을 불쑥 꺼냈다.

“일본에 공연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건, 장애인 편의 분야는 일본이 훨씬 선진국이잖아요. 참 부러웠어요. 가장 부러웠던 건 친절함, 장애인을 보는 편견이 없다는 거, 장애인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해 준다는 거. 그리고요. 길에서 뭔가를 물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각각 내용이 다 다르고 짧게 끝나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다섯 사람에게 물어봐도 대답하는 내용이 똑같이 정확하고 친절해요. 그만큼 자신 있게 자세히 설명한다는 건, 결국 그만큼 상대방을 위한다는 느낌을 전하는 거잖아요. 이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본에 가서 느끼는 첫 당혹감은 지나치다고 해야 할 만큼의 친절이다. 예를 든다면 서울 한복판 인사동 길에서 3호선 안국역이 어디 있느냐 물으면,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대답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이요.’로 끝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묻는 이를 직접 데리고 간다. 그리고 목적지가 보이는 곳까지 가서, ‘바로 저기, 저 출입구’라는 점까지 확인시킨 다음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간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목석과 같다. 어쩌면 이렇게 무뚝뚝할까? 이런 얘기를 풀어내니까, 희아 씨는 손뼉을 ‘짝짝짝’ 치며 크게 반겼다.

“맞아요. 지금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다 해주신 거예요. 정말 그래요. 하하하!”

 

숨겨진 보석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소개를 어떻게 하느냐 물으니, 희아 씨는 여전히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단다. 그것 말고 새롭게 추가된 건 없느냐고 다시 물으니, 자신의 명함을 가리키며 ‘통일소녀’라고 불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한다. 통일소녀?

“북녘의 장애인들을 생각하면 참 많이 안타까워요. 우리는 그래도 선진국의 방식을 많이 받아들여서 발전하고 있는데, 북녘은…. 그래서 통일소녀로서 활동하고 있고, 2007년에는 ‘희아천사’라는 이름으로 휠체어 보내기 운동도 했었어요.”

희아 씨는 시종일관 북한을 ‘북녘’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이건 희아 씨의 정신과 사고체계가 만들어질 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들이 또래의 연령층이 아니라 어르신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 생각을 혼자 떠올리고 있을 때, 희아 씨는 이 생각이 맞았음을 전하는 내용을 계속 말했다.

“저는 어릴 때 독일이 통일되는 걸 보고,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어 북녘의 장애인들도 행복해지기를 바랬어요. 노력하다 보면 꼭 될 거에요. 사실 우리나라 자체가 책임감 없이 혼란을 겪는 건 나라 전체가 반쪽으로 잘려 있기 때문이에요. 나라가 장애인인 거잖아요. 허리가 잘려 있으니까 서로를 비난하며 정서가 깨지고, 이런 걸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해요.”

희아 씨의 입에서는 김구 선생님과 그의 아들 김신 장군, 보훈처장을 지낸 바 있는 김구 선생님의 손자 김양 선생님의 존함이 계속 거론됐다. 그리고 중국의 장예모(張藝謀, Zhang Yimou) 감독이 준비 중이라는,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한중(韓中) 합작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충만하게 표출했다. 또한 중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인 랑랑(郎朗, Lang Lang)과 함께 그 영화의 OST(Original Sound Track, 영화음악) 제작에 참여하게 되기를 기대했다. 희아 씨의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이시고, 평생 안중근 의사를 스승으로 삼고 사셨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결혼이오? 저는 결혼보다는 이렇게 활동하는 게 좋아요.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게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장례식이었거든요. 결혼을 하건 안 하건 간에, 저는 그런 봉사의 삶이 훨씬 나은 삶이라고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믿고 있어요. 인류애를 위해 살고 싶어요. 그렇기에 저는 제가 이렇게 활동하며 사는 삶이 행복해요.”

희아 씨는 어머님께서 얼마 전 출간된 <제이콥 안녕>이라는 책에 쓰셨던 추천글을 언급했다.

“장애인분들 그리고 그 부모님들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고난 다음에 다가올 기쁨을 잊으시면 안 돼요. ‘희아는 피아노를 치는데, 우리 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는데, 저는 장애가 있지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큰 기대보다는 이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진정으로 느껴보시는 게, 가장 가까운 행복의 길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저의 엄마가 <제이콤 안녕>에 그걸 말씀하셨거든요.”

희아 씨의 의견을 어머님께서 이어받으셨다.

“제이콥은 아이큐(IQ) 170으로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천재로 주목 받고 있죠. 그런데 생후 18개월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이후, 의사 같은 전문가들로부터 ‘열여섯 살 정도 되면 자기 운동화 끈이나 묶을 수 있을 거’라는 부정적인 평가만 받아왔었죠. 그 정도로 극심한 자폐증상을 앓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뛰어넘는 물리수학적인 원리를 발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 아이도 있기 때문에, 장애아(兒)들을 잘 관찰해서 숨겨진 보석을 잘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희아도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라는 역할이 주어지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말만 들었거든요. 제이콥도 마찬가지잖아요. 하지만 아이가 최하 수준일 때 아이와 어떻게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지, 그 어둠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살펴봐야 해요. 자폐를 포함한 모든 장애아들에게는 더 높은 차원의 사명이 숨겨진 보석으로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간직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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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희아씨~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네요~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2015-07-13 11: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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