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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인권의 '외침'이 되고 싶다[만난사람]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이애리 기자 │사진 이용태  |  aery727@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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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4.08.05  15: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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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2004년 아름다운재단 산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변호사 단체로 출범했다. 최근 들어 공익변호사 단체들이 여럿 생겨났지만, 당시는 소수자들의 인권문제 전반을 망라하는 유일한 곳이었고, 공감은 여전히 장애인, 여성, 이민자, 성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의 인권 문제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 호 함께걸음이 만난사람은 공감의 창립 멤버이자 상임이사인 염형국 변호사다. 11년 차 공익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염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법률지원, 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특별히 탈시설, 정신장애인 문제 등 장애 인권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바위를 향해 던지는 계란이 터지고 또 그 위에 다시 던지 터지고 쌓이고를 반복하면 결국 그 바위를 덮고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인권문제 역시 늘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하지만 말 못하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대신해 외치는 염 변호사와 같은 이들의 외침은 오늘도 살아서 바위를 덮고 또 덮고 있다.  

   
 

Q_공감이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굉장히 광범위한 분야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많은 이슈를 망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기지촌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공동대리인단 활동 같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기획하고 활동하는 편인가

각 해당 영역에서 단체 간의 협업 형태로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공감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사업은 거의 없다. 주로 해당 영역 단체들과 소송이나 법 개정 활동을 해보자는 논의가 되면, 연대체를 만들고 혹은 역할을 분담해서 공감은 법 개정 초안 마련, 소송 등을 맡아서 하고 있다.

공감이 국내 최초 공익연합변호사 단체이다 보니 단체들의 수요가 많았고 접촉면이 넓어져서 다시 그 규모를 축소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 현재 공감이 추구하는 방향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면서도 다른 단체에서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영역은 그 단체가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다른 단체에서 못 하는 분야를 발굴해 나가는 식으로 설계해 나가고 있다.

Q_부(富)와는 거리가 먼 인권변호사가 되셨다. 언제부터 인권변호사를 꿈꾸신 건가

변호사로서 일정 이상의 봉급을 받을 수 있겠지만, 대기업 회장이 버는 것만큼 돈을 아주 많이 벌 수는 없다. 최소한은 충족돼야겠지만, 돈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적으로 소외되고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변호사직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제가 사법시험 천 명 합격생 세대였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선발됐고, 앞 시험 기수에 비해서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올해로 제가 인권변호사 활동을 11년째 하고 있는데, 동기 천 명 중에서 저는 그 누구보다도 즐겁고 보람되게 지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Q_변호사님은 활동가처럼 보일 정도로 장판(장애계판)에서 동분서주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특별히 장애인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공감이 처음 활동할 때 공익단체를 대상으로 파견지원을 신청받았는데, 주로 신청이 들어왔던 곳이 성매매 피해여성, 이주노동자, 장애단체였다. 당시 4명의 변호사가 한 영역씩 맡아서 현장 단체에 가서 일했고, 그래서 제가 자연스럽게 장애단체를 맡게 됐다. 처음 나갔던 곳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였고, 그 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활동이 늘어나게 됐다.

처음 연구소에 갔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초자 변호사였는데, 간지 얼마 안 돼서 성년후견 법안을 만들라고 하더라.(웃음) 사실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당황스럽지 않은 척하면서 일본 법안을 참고해 억지로 만들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또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제정되는 시기였는데 토론회에 하나도 모르는 저보고 토론자로 나가라고 해서 그때 부랴부랴 공부해서 나가기도 했다.(웃음)

초반에는 장애인과 일하는 게 솔직히 많이 낯설고 다소 껄끄러움도 있었는데 겪다 보니까 익숙해지고 개개인의 특성, 사정 등을 알게 되니까 장애 인권 문제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됐고, 좀 더 잘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게 된 것 같다.

Q_변호사님이 활동하신 10여 년 동안 장애 관련 법이 제·개정됐고 다양한 제도들도 생겨났는데,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삶에 얼마만큼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나

다양한 영역들을 담당하고 있어서 다른 영역들을 잘 아는데, 장애인 영역만큼 놀랍게 법 제도가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른 영역은 법 제도 개선에서는 특히 지지부진한 것 같다. 계속 법 제도가 바뀌고 새로운 개선이 있는 영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게 개인적으로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영역에서 제도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비된 것 같은데, 인식 개선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낙인을 해소하고 장애인도 진정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우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또 주먹구구식으로 도입된 기존 제도가 현실에 잘 안착시키는 게 과제가 아닌가 싶다.

Q_특히 2008년부터 시행된 장차법의 경우 실효성이 낮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기존 제도가 문제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장차법만 놓고 보더라도 법 규정에는 다 존재한다. 편의, 고용, 사법의 접근성, 문화, 교육, 재화용역 서비스나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 되도록 법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현실에서 몰라서, 알아도 여건이 안 돼서, 혹은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과 괴리가 있는 부분이 있어서 적용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장차법 같은 경우도 제정된 지 만 6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실에서는 장애인차별 인식 수준이 높지 않다. 특히 제9조 ‘정당한 편의제공’은 법조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들은 100~200년 정도 걸려 안착됐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관련 제도개선 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 넉넉잡아 20년이 채 안 된다. 그렇기에 당연히 거쳐야 할 과도기적 현상이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안착이 돼가는 과정이다. 인식과 제도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인권단체들과 공익변호사들이 메꿔야 할 영역이다.

   
 

Q_최근 염전 노예사건도 있었고, 장애인권 문제는 워낙 가짓수가 많고 뿌리가 깊어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 우선 과제를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신적 장애인의 문제다. 지적장애, 정신 장애인은 본인 스스로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사회도 그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비근한 예로 보험 가입할 수가 없고, 노동력도 비장애인처럼 인정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 같은 경우도 지적·정신장애인의 문제가 가장 해결되기 어려운 인권문제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지적장애인 노동력 착취 문제뿐 아니라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정신장애인의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Q_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이 올해 제정됐는데, 이 법이 초안과 많이 바뀌면서 소득보장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을 주기도 했는데

장애유형이 15개인데, 특정 장애유형을 대상으로 법을 만든 것은 대단히 흔치 않지만,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는 특수하게 규율하고 지원할 필요가 대두됐기 때문에 제정됐다.

그럼에도 형평성의 문제는 있다. 발달장애인만 법이 제정돼서 최저 소득까지 보장되고 다른 장애인은 그렇지 못했을 때 장애인 간의 형평성의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예산이 계속해서 확대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복지를 아직도 투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부담과 시혜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수준도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이상의 법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시행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법을 통해 개별화 교육, 서비스 등 개별 욕구에 따른 서비스가 제공되는 부분은 다른 장애인 영역에서도 개별 장애인의 욕구에 맞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Q_소송을 진행했던 사건 중에 안타깝게 패소한 사건이 있었나

2006년 서울시에서 청계천이 복구될 때 많은 서울시민의 성원을 받았지만, 청계천을 가보면 지체장애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경이었다. 그때가 장차법 시행 전이었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는데 차별이라는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시정되지 않았고, 서울시와 시설관리공단 상대로 장애인 차별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외국 사례를 찾아보니 명백한 차별로 인정했고 손해배상도 하고 시설도 접근성을 갖추도록 개선하라는 판결도 있어서 소송했는데 결국 패소했다.

Q_당시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무엇이었나

시설의 미비로 장애인들이 손해를 입은 게 아니다는 것리었다. 이용을 못함으로써 받는 정신적 박탈감은 참을 수 있는 수인한도 범위 내라고 하면서 비장애인 입장에서 가볼 수도 안 가볼 수도 멀리서 볼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고려해봤을 때 동등하지 못한 접근권으로 차별이 심각하고 박탈감이나 상실감이 큰데,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와 형식논리로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Q_반면 선례로 남은 사건이 있다면

소송은 아니고, 성폭력 특별법이 개정되기 전 6조가 항거불능조항이 왜곡돼서 해석이 되고 있었는데, 항거불능 조항에 대해서 기존 법원의 해석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비판하는 판례비평을 대법원에 보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판례비평 이후에 항거불능을 해석하는 게 확대가 됐다.

그리고 작년에 두 가지 조정 결정을 받은 소송이 있는데, 지하철 공사 상대로 신도림역사에 환승구간 엘리베이터 설치하라는 것과 장애인 화장실을 남녀공용을 분리하라는 소송이었다. 비록 판결은 안 됐지만, 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소송을 통해 사회적 비용과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건축 심의 단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접근이 보장되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비단 시설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정책 결정에서도 장애인을 고려한 결정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_말씀하신 청계천 사건도 그렇고, 재판부와 법조인들의 장애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조인들에게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갖도록 하는 교육과 프로그램을 경험토록 하고, 여러모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최영 판사처럼 법조계에 더 많은 장애인이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인 최영 판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 입소를 1년 동안 유예해달라고 했다. 당시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각종 자료 및 설비들이 많이 갖춰지게 됐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법조인들의 인식이 쉽게 바뀌려면 장애를 가진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많이 나오고 또 그들이 법정에 갈 때 접근성, 정당한 편의 등을 요구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어쩔 수 없이 바뀌게 되지 않겠나.

또 다른 방법으로 장애인 차별이나 인권침해 관련해서 계속 소송 형태로도 제기해야 하는 것 같다. 그냥 인권위 단계에서 마무리되면 법원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서 계속 접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차법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고민하게 되고, 장애인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Q_비만, 에이즈 등 현행법상 장애유형으로 규정되지 않은 ‘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7월 17일 에이즈 환자들의 요양병원 입원 거부에 대해서 인권위에 진정했고, 기자회견도 열었다. 에이즈 환자들이 정부의 위탁받은 특정 병원에서 요양을 받고 있다가 인권침해 문제 때문에 위탁이 해제됐고 다른 요양병원으로 전원조치 됐는데, 많은 요양병원이 전염성이 있고 격리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에이즈 환자를 받지 못하겠다고 거부했다. 에이즈 환자들은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이 아니지만,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인 손상이나 기능 상실로 인해서 그것이 장기간 이루어지면서 일상생활에서 중대한 제약을 가져오는 것이 장차법상 장애인의 정의이기에 장애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장애인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 같다. 에이즈 환자, 이주민(언어, 피부색이 다른)들도 사회적 장애에 해당될 수 있는데, 본인의 존재로 인해서 차별을 받는 것이다. 예컨대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는 외모에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 학력, 전과 등도 비슷한 맥락으로, 본인이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본인이 얻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지 않나.

이 문제는 정부나 사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를 봐도 희생자인 아이들이 임대주택에 사는 빈곤층이 아니라 강남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이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이미 대다수 국민들이 그것을 알고 있고 인식하고 있는데 빈부격차로, 사회적 지휘의 고하로 인해서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보장 받아야 할 안전문제, 차별 받지 않아야 할 평등 문제가 기본 선에서 깨져나가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먹고 살기 어렵다 보니까 정상의 범주를 정해놓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자꾸 배제하고 격리하고 차별하고 거부하는 배타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좀 더 풍요롭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으려면 ‘열린사회’가 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사회적 장애인들도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만 우리 모두의 인권이 보장이 될 수 있겠다.

   
 

Q_사실상 다수에게 이민자, 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는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혼자서 농사지어서 밥 해먹고 휴대폰도 만들어서 쓸 수는 없지 않나. 누군가의 지원이나 역할이 있어야만 본인도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삶과 사회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연결 관계가 건강해야만 개인도 건강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한쪽은 멍들어있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으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황이 방치되고 지속되고, 안전망 자체가 없으면 소수가 아니었던 사람도 어느 순간 그 위치에 처할 수 있다.

즉 인권은 일종의 ‘안전망’이다. 그 사람이 잘 되어야만 나도 잘 되고, 그 사람의 위치에 내가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궁극에는 나를 위한 길이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길인 것 같다. 권리라는 것도 사람 ‘人’(인)자처럼 서로 의지하고 관계가 있을 때 보장이 되는 것 아니겠나. 그런 맥락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자기와 타자와의 관계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Q_가장 취약한 인권 사각지대는 어디라고 생각하나

정신장애인의 문제인 것 같다. 정신장애인은 정신병원에 있든지, 지역사회에 있든지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해야 한다. 또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회 자체가 병들어 있고 누구도 건강하지 않은데, 이 사람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놓음으로써 안 건강한데 건강한 척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주민의 문제도 정신장애인 문제와 비슷할 수 있는데, 청년들이 직업 구하기가 어렵고 기껏해야 비정규직,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다 보니 자기 현실이 고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해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고 원망하고 싶지만, 정부에 소리쳐도 허공에 메아리치는 것 같으니까, 비판의 대상을 이주민으로 잡은 것이 아니겠나. ‘우리의 직업을 뺏어가고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을 외국으로 유출하는 사람’이라고 공격하는 게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심해졌다.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의 필요로 온 사람들임에도 동등한 노동자로 대접해주지도 않고, 사회 모든 부조리의 근원이 이주노동자인 것처럼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도 한다. 대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고 아주 우려스러운 문제다. 이런 문제가 궁극에는 정부의 책임이고, 기득권자들의 더 자신의 기득권을 넓혀나감으로써 상대적으로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문제인데, 1%와의 싸움이 아닌 99%인 사람들끼리의 싸움이 되고 있다.

Q_제도가 어느 정도 만들어졌으니 이제는 범국민적으로 인권 운동을 확산해야 하지 않나 싶다. 공감이 매년 진행하고 있는 인권법캠프도 그런 운동의 일환인가

제도 개선만으로 사회가 변화되고 인권이 신장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사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차별과 인권침해가 해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감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대학생 및 예비 법조인을 대상으로 인권법 캠프 진행하고 있다. 사회의 소수자, 사회 약자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서 보여주고 느끼도록 함으로써 인권 감수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우리 사회가 크게 바뀌긴 어려울 테고, 결국엔 모두가 사회의 주체로서 같이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바꾸려고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 정치문제를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치인들끼리 밥그릇 싸움하고 권력을 나눠 가진다고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회가 바뀌려면 정치가 바뀌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래서 정치참여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 표를 행사하는 게 정말 별것 아닌 것 같고 이걸로 뭐가 바뀌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올바른 유권자의 권한 행사가 사회를 바꿀 수가 있다. 참여하고 연대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길인 것 같다.

Q_인권변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준다면

변호사의 영어 표현이 다양할 수 있는데, ‘advocacy(애드보커시)’는 ‘대신해서 말해주다’라는 뜻이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대신 말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역할은 변호사만의 역할은 아니다. 인권단체 차원에서 인권 활동을 통해서 할 수 있다. 공익변호사, 인권변호사라고 하면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려운 일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그것이 외국 같은 경우는 공공후견인이나 시민후견인, 변호사의 공익활동 프로보노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변호사나 전문직들 내지 사회의 기득권층들이 그런 역할을 등한시했었고 지금도 사실 특히 정치권에 있는 분 중에 기득권 다툼을 하고 국민과 동떨어져서 정책을 펼치시는 분들이 많은데 말 못하는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주는지 관해 반문해보면 그렇지 못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advocacy’, 대신해서 말해주는 사람의 역할을 할 때에 우리 사회가 차별, 인권침해가 해소가 되는 평등하고 존엄하고, 존중 받는 사회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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