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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보세'에 가려진 가난한 사람들의 배제와 감금의 정책인권 없는 수용소 정책의 역사 ②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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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5.03.30  09: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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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와 80년대의 수용소 정책

1970년 3월 14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시와 시경 합동으로 부랑아 집중 단속’이란 기사가 나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시중을 돌아다니는 무작정 상경자, 부랑아, 부랑인들의 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엑스포 70’일 이라는 행사로 인해 거리정비가 필요하여 3월 14일부터 모든 부랑인들이 구걸 행위자나 나환자, 껌팔이, 차잡이 등과 함께 적발 즉시 보호시설에 수용됨”

이는 1972년 10월 유신선포와 비상계엄령 발령으로 치안본부가 강화되면서, 치안본부의 중요사업 중의 하나로 부랑아 단속을 상시적 사업으로 배치케 한 것에 따른 것입니다.

1973년 7월 <동아일보> 의 기사에도 부랑인 단속에 대한 기사가 보도됩니다. ‘노숙자 등 일제 단속’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지하도, 역 주변 등지에서 노숙하는 부랑인, 무작정 상경하여 거리를 방랑하는 자, 껌팔이, 구걸하는 사람 등이 특별단속의 대상이 됨.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은 전원 수용 됨”이란 보도가 나오는데, 이는 더러운 사람들을 안보이는 곳에 수용한다는 ‘거리 청소’에 다름없음을 보여줍니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국가의 수용기술도 정교해지기 시작합니다. 연령과 성별 등을 따지기 시작했고,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며 분리·수용하게 되는데, 이는 행정의 기능과 관리의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부랑인이라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했을 경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로 재분류를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부랑인을 쓰레기로 간주하고 거리를 깨끗이 하겠다는 의지는 더 강화됩니다.

1976년 12월 서울시는 ‘새마을정화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기사 또한 넘쳐 납니다.

1976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새마을정화운동의 지침내용 중 노점상인, 앵벌이, 부랑인 단속이 들어 있음”이라고 보도하고 있고, 1978년 11월 24일 기사에서는 “1978년 11월 서울시 강서구도 연말까지 관내 부랑인 일제 특별단속에 나설 것인데 적발될 자 중 성인남자는 시립갱생원에, 성인여자는 시립 남부 부녀보호소에, 아동들은 아동상담소에 각각 넘길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저는 실제 이러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시설에서 40여년을 사셨던 분이 지난 2009년 탈시설-자립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이 분 또한 휠체어를 타고 서울역 근처에서 껌을 팔다가 잡혀 부녀자보호소에 들어갔습니다. 잠깐일 줄 알았던 시설생활이 40년이 됐다고 합니다. 처음엔 부녀자보호소에 있었으나, 이후 장애인복지법 등이 만들어지면서 장애인시설 등이 만들어지자 김포의 한 시설에 입소됐고, 그 후 줄곧 세상 밖을 구경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980년도는 어땠을까요? 박정희 군사정권이 막을 내렸으나, 그 뒤를 이은 정권 또한 불법적으로 획득한 군사정권이 돼 버렸죠. 바로 전두환 정권 시대인데요, 전두환은 불법적으로 탈취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국민에 대한 강압 통치는 계속되는데, 이 때 전두환은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어 서로 다른 정책을 펼칩니다. ‘부랑인’과 같은 ‘비국민’을 대상으로는 무단정치를 수반하게 되고 국민에게는 자유를 느끼게 할 수 있는 3S 정책, 즉 스포츠, 영상, 섹스 산업을 부활시킵니다. 1980년 여름 서울시는 과거와 똑같이 부랑인 일제단속에 나서는데, 영등포 관내에서만 1백31명을 ‘적발’해서 미성년자는 시립 아동상담소, 13명의 여자는 부녀보호소, 연고자가 없는 노인 등 34명은 시립갱생원으로 입소됐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또한 1981년 성동구도 1백54명의 부랑인, 걸인, 껌팔이, 앵벌이들을 단속해 시립갱생원에 21명, 부녀보호소에 30명, 아동상담소에 1백3명을 송치했다는 기사가 보도됩니다. 하지만 박정희정권과의 차별성을 염두에 두었는지, 비판의 여론이 있었는지, ‘복지’를 명분으로 ‘수용’을 합법화하게 됩니다.

   
 

당시의 기사들을 살펴보면, <매일경제>에는 ‘보사부, 도시의 부랑인 없어진다’는 기사가 보도됩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88올림픽 등에 대비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깨끗한 인상을 주고 국민들의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 이제까지 단속에 치우쳐 왔던 부랑인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해결키로 하고 내년에 재활 사업을 강력히 추진할 방침”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도시환경 저해요인으로 물질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거리를 더럽히는 존재로 파악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과연 이러한 발상은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고, 우리 사회는 왜 그것을 용인했던 걸까요?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지식인과 시민들은 도대체 이 상황에 대해 왜 눈감고 귀 막았을까요? 무슨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한 무자비한 인권침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1980년대에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맞이해 복지를 가장한 부랑인 단속이 더욱더 강화됩니다.

다음 기사는 그 단면을 보여줍니다.

“올림픽에 대비해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 이미지 정화 차원에서 단속을 넘어선 ‘재활’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진다. 보사부는 1982년 당시 전국의 보호대상 부랑인 수를 11,500여명으로 추산. 부랑인을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연고자가 있는 사람을 귀가, 연고자가 없으나 활동 능력을 갖춘 사람은 직업 훈련을 시키고, 재활 교육을 받고도 다시 구걸행위에 나서는 상습적 부랑인에게는 엄중한 처벌을 내렸다. 그리고 23억 2,3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영농 및 건설기술 등을 가르치는 6개월 직업훈련코스가 개발되며, 5개소의 보호시설이 신축되고, 기존 22개소의 시설 중 4개소를 보수해 수용시설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다음 기사도 그 증거입니다.

“「형제복지원 성지원사건 이후 거리에서 구걸, 신문팔이, 껌팔이 등을 하면서 떼 지어 다니는 9~15세 가량의 부랑아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들은 구걸을 하는 수치심을 없애려고 약국에서 환각제를 다량 구입하여 복용하거나 공업용 본드냄새를 흡입하여 환각상태로 시내 지하도 등에서 구걸하거나 다방 등 유흥업소를 다니며 껌, 신문 등을 강매하고 있으며, 심지어 학교 주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뺏거나 소매치기까지 일삼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구걸 등을 한 돈으로 오락실, 만화방, 무허가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고 있어 비행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들을 선도하여 파출소나 시 아동삼담소를 통해 일시보호소에 인계해도 그 시설 아동까지 데리고 도망 나오는 경우가 많아 부랑인 시설인 ‘희망원’에 보내도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부랑아 수용시설을 만들어 정서교육, 기술교육 등을 통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며, 선도적 차원에서 비행의 온상이 되고 있는 만화방, 오락실, 무허가 여인숙 등의 단속이 시급하다. 아울러 우리가 동정으로 던지는 동전 한 개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이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랑아와 부랑인들을 사회적 악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986년 말 전국적으로 592개의 ‘사회복지시설’이 설치됨. 7만 6,228명이 수용됨. 이 가운데 공식적으로 부랑인 시설로 분류된 것은 모두 36개소임. 여기에 대략 16,000여 명이 부랑인으로 수용됨. 이중 시립 시설은 5개, 종교단체 시설이 10개(천주교 8, 기독교 1, 불교 1)이며 나머지 21개소는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임. 전남과 경남에 각각 5개, 서울과 강원, 전북에 각각 4개, 부산, 충남, 충북에 각각 3개씩, 경기도에 2개소가 있었음. 형제복지원의 수용인원이 3,164명으로 가장 크고, 수용자가 많으면서도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을 들은 서울의 마리아 수녀회 갱생원이 1,998명, 대구 시립 희망원이 1,400명, 서울시립 부녀 보호소가 1,200여 명을 수용”

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80년대 말 올림픽을 맞이해 수용소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경제성장과 발전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정화’란 이름으로 사람까지 깨끗하다는 개념으로 청소하는 반인권적인 정책이 정당성을 갖는 것이지요.

일단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 정부의 대책이 발표됩니다.

1987. 2. 16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부랑인시설운용 개선방안’ - 가족 및 친지 위주로 된 법인을 공익법인화하고 대표이사와 시설장을 분리, 종교인과 교육계인사·사회복지 전문가 등을 참여시켜 이사회 보강, 회계 및 운용업무의 지도감독을 시장, 군수, 구청장이 추천한 법인 감사가 맡도록 함. 공인회계사에 의한 회계감사를 의무화. 일정규모 이상의 사설은 보사부가 직접 감사. 관계 공무원과 종교인, 사회 복지 전문가. 지역유지 등으로 구성된 ‘입·퇴소 적부심사위원회’를 두어 정기적으로 재소자 적격여부를 판단. 상설 소심사위를 두어 수시로 입·퇴소 여부를 심사. 시설 규모는 5백 명 수용을 기준으로 적정화. 수용자 200명당 1명꼴이던 종사자를 50명당 1명꼴로 늘림. 80퍼센트만 지원하던 운영비를 국가가 100퍼센트 부담. 직업보도와 교육을 강화. 취업을 알선하여 사회에 복귀 시킨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대책은 과연 믿을 만 할까요?

드디어 1987년 5월 형제복지원 사건이 가능하게 했던 [내무부 훈령 410호]가 폐지됩니다.

정부는 1970년에 사회복지법인들로 하여금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토록 하기 위한 법으로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했고 1975년 12월 15일에는 내무부 지방기획과와 치안본부가 공동으로 협의하여 ‘내무부 훈령 410호’를 발표했지요.이 훈령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사무처리 지침’이라는 것으로서 전국의 각 시도와 경찰에 내부 업무지침으로 전달 됩니다. 사실상 ‘부랑인 임시 수용’의 법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법인 아닌 행정부처의 지침에 불과한 거이지만요.

내무부훈령 410호의 내용을 잠깐 살펴볼까요?

내무부훈령 제2절 <부랑인의 정의>에서 일정한 주거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정류소 등 사람이 많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으로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들을 모두 부랑인으로 간주하고 있고, 제2장 제2절에서는 부랑인의 배회가 예상되는 역, 터미널, 지하도, 육교 등의 우범지역에 지역관리 책임자 또는 인접한 상점주인 등을 지정하여 부랑자들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제3절 ‘업무처리방침 6항’에서는 ‘걸인, 껌팔이 등 부랑인 이외에 노변행상, 빈 지게꾼 등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들에 대한 조치로, 부랑인 대책에 준하여 점차적으로 단속 보호조치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부무 훈령이 바로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계기로 폐지된 것이죠. 하지만 곧바로 ‘보사부 훈령 523호’가 만들어집니다. 부랑인 단속의 주무부서인 보사부가 훈령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용적인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시설운영자들에게 단속의 권한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정부는 슬쩍 뒤로 물러서 그저 관망할 뿐이죠. 복지의 이름으로 자행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제와 격리의 국가정책은 이후로도 강화됩니다.

다음 호에서는 90년대 이후의 시설정책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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