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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만드는 건 환경이고, 느끼게 하는 건 ‘사람’입니다사람 사는 이야기_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안승준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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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6.01.21  1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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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남다른 경험과 체험을 간직한 이들도 많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다. 문제는 그게 ‘지식의 허세’로 끝나고, 경험과 체험의 ‘자화자찬’으로 진행이 되며, ‘말잔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언어의 유희 그 자체로 결론을 맺는다는 점이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허탈해지는 경우가 그런 이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야 할 때인데, 그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허비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참으로 소중한 이를 만나게 된 것 같아, 이번 만남의 의미를 나름 진지하게 되새기는 나날을 얼마간 보내게 됐다. 폭넓은 지식에 더해지는 남다른 경험과 체험, 거기에다 논리정연하게 진행하는 의견제시에 덧붙은 건 ‘겸손함’이었기에 더욱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그건 단지 일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식행위로는 절대 불가능한, 한마디로 확실하게 ‘내공이 쌓인 인물’이라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개를 시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항의가 들어올 게 분명하다. ‘무슨 밑도 끝도 없는 과찬이냐고.’ 그런데 그런 만남을 맞게 한 당사자이기에, 오히려 고마움의 인사를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참으로 소중한 인생의 언어, 미처 기대하지 못하고 접하지도 못했던 삶의 체험담을 듣게 됐다. 한빛맹학교 수학교사인 안승준 씨가 이번 호의 주인공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그의 등장이 반가울 독자들이 많을 거라는 기대감이 ‘그의 항의(?)’를 방어하는 방패가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것이 바로 이 나라의 현실이었다는 것

“그쪽에선 워낙 담담하게 ‘그렇게 할 테면 해 봐라’ 하는 식으로 나오니까, 피해를 당했던 제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거죠. 다른 놀이공원 측도 역시나 같은 반응으로 대처했으니까요.”

지난 2015년 3월에 발생한 대형놀이공원 L사의 놀이기구 탑승거부사건. 시각장애라는 이유로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당해서, 사회적 파장의 주인공이 됐던 당사자의 의견은 담담했다. 당사자? 이번 호 주인공인 안승준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더 큰 놀이공원인 E사도 마찬가지예요. 그게 그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장애인 탑승금지’ 같은 메마른 표현으로 적어놨다가, 공식적인 항의가 빗발치면 ‘탈출에 어려움이 있다’는 식으로 말 표현을 바꿔놓는 것이죠. 회사 차원에서 도망칠 탈출구를 아예 미리 만들어놓고 대응을 한다는 거예요. 그 표현이 문제가 되겠다 싶으면, 또 다른 표현으로 슬쩍 바꿔놓고요.”

사실 안승준 씨가 세상에 ‘악역’ 같은 이름을 날리게 된 건, 영국의 대영박물관 방문 후기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다음부터’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비너스를 느끼다’라는 짧은 제목은 이미 인터넷 검색에서 닳고 닳을 만큼 유명세를 치른 기고문이기도 하다. 단지 그 글의 글쓴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장애인권사(史)’에 길이 남을 해프닝이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갔을 때, 그 곳 관리인의 권유에 따라 한 조각품을 손으로 직접 만지게 됐던 경험을 글로 올렸죠. 그런데 우리의 문화에선 그게 충격으로만 받아들여졌던 모양이에요. 댓글의 대부분이 욕으로 채워졌죠. ‘국가망신이다’, ‘안 보이는 게 자랑이냐?’ 이렇게 시작된 욕설의 진행이 결국 자기들끼리의 댓글싸움으로 길게 이어지더라고요.”

당시 안승준이라는, 아시아 출신인 듯 보이는 한 인물의 등장, 그건 우리 대한민국의 타성으로 본다면 ‘무시해도 될 만한’ 인물이 나타난 게 분명할 것 같다. 우리가 비정규직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항상 쏟아내는 비수가 바로 그런 무관심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영국이 전 세계 앞에 자랑하는 그 대영박물관의 관리인은 안승준 씨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수천 년이 된 문화재를 향한 영국인들의 자존심도, 한 시각장애인이 문화재를 감상할 권리보다 앞서지는 못한다!’

“L사가 내상을 입긴 입은 것 같아요. 제 사건과 관련된 일이 반복되면, 거기에 항의하는 장애당사자들에 한해 놀이기구를 탑승시켜 준다는 거죠. 그러면서도 저한테 연락해서 정말 조목조목 따지더라고요. ‘당신이 장애인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할 수 있느냐’고요. ‘작정을 하고 오는 게 아닌 이상, 장애인이 자기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하던데, 장애인은 그냥 장애를 가진 장애 그 자체로 살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인가요?”

일단 ‘장애인’ 하면 모든 장애인이 가지고 있을 약점을 ‘그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고 한다. ‘장애인은 논리적으로 말을 하며 대처할 리가 없고 불가능하다’는 대기업의 천박한 인식이 문제를 확대시킨 셈이다. 우습다. 자신들의 얄팍한 밑천을 드러내기 전에, 2015년 한 해 동안 자기들 회사 최고위층 사이에서 어떤 추악함이 국민 앞에 낱낱이 드러났는지를 먼저 떠올리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 수업은 속이 시원해요

그는 현직 맹학교 수학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수학’ 하면 무조건 떠올려야 할 복잡한 공식의 나열 때문인지, 시각장애와 수학을 선뜻 연결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정말 좋아했단다. 세계 수학올림피아드 1등을 한 경력이 그의 이력에 남아 있는데,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필요 없는 일 아닐까?

“어릴 때부터 무척 좋아했어요. 잘한다고 하니까, 제가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초등학교 때까지는 눈이 보였으니까, 수학올림피아드대회 같은 데는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고 했고 항상 참가했어요. ‘저건 내 거야.’ 잘한다고 하니까 더 열심히 했던 거죠. 실명한 이후에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중도장애의 가장 큰 약점인 점자에 약하다는 현실 때문에, 80페이지가 넘는 국어 같은 과목의 시험보다는 20면 내지 30면 정도인 수학이 훨씬 문제 풀기에도 수월했단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수학과로 정했는데, 학교에서 권한 건 특수교육과였다고 한다. 그래서 협의 끝에 합의를 본 게 수학교육과였단다. 수학과는 언제든지 복수전공이 가능할 테니까 절충점을 찾은 셈이 된다.

“당시까지는 선생님이 될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교생실습 때 큰 계기가 생기게 됐죠. 저의 모교인 서울맹학교에 교생으로 갔는데, 비장애 선생님께 수학을 배우던 아이들이 제 수업을 몇 번 듣고 나서 저를 찾아왔어요.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 속이 엄청 시원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뭔가 싶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때까지 제가 전혀 모르던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됐어요. 같은 문제를 풀이하는데도 시각장애학생들은 비시각장애학생들과 다른 부분을 어려워하고, 다른 부분에서 더 궁금해 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안승준 씨는 자신이 풀이하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단다. 그렇게 외웠기 때문에 그 방식대로 기억을 했고, 당연히 학생들한테도 그 방법으로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신세계를 만난 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단다. ‘그렇게 계산하는 방법도 있어요?’

“그때 그 상황이 저한테는 엄청난 감동이었어요. ‘아, 내가 수학자가 되고 싶지만, 강단에서 이렇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 거의 없을 수도 있겠다. 이 자리는 내게 꼭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서 대학원을 특수교육으로 다시 갔죠. 시각장애학생들에게는 저 같은 방식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절실함 비슷한 감정과 다짐을 하게 됐던 거예요.”

 

원인불명? 그건 명백한 의료사고입니다

안승준 씨의 지금 시력은 광각이라고 하는, 빛의 유무 정도를 느끼는 수준이란다.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깜깜한 밤길에서 유일하게 간판 불이 켜진 슈퍼를 찾을 수 있을 정도라며, 그냥 마음의 위로를 갖는 데 만족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요만큼의 시신경이 살아있긴 살아있구나’ 하는 감정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까지 마칠 무렵, 원래 있던 뇌수종 수술을 받게 됐어요. 그냥 간단한 수술이라서 아침에 입원했다가 저녁에 퇴원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때 뭔가 사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명백한 의료사고인데, 과실여부를 따지기 전에 일단 사람을 살려야 하잖아요. 제 생명이 갑자기 위태로운 상태가 됐거든요. 그런데 살려줄 수 있는 사람 역시 의사잖아요. 거기에 대고 싸움을 걸 수도 없는 상태에서 시간만 흘러가버린 셈이 됐죠.”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이었고, 담당의사는 외국에서도 인정받던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단다. 그 사람을 놓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아침에 입원해서 저녁에 퇴원한다’ 했던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됐단다. 난데없이 말이다.

“맹학교에 온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외부의 사회에서는 정말 훌륭한 안과의사라고 추앙 받는, 그런 박사들의 실패작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거죠. 과실은 절대 인정 안 해요. 대부분의 진료차트에는 ‘원인불명’, 이렇게 남죠. 그런데 원인이 없는 일이 어떻게 있겠어요. 그런 경우가 그렇게 많을 리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원인불명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가톨릭의 신부가 되는 게 안승준 씨의 간절하고도 유일한 꿈이었단다. 선생님들도 그가 당연히 신부가 될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가톨릭교회에선 장애인은 사제가 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기에, 그의 꿈은 ‘포기’로 결론이 나고 말았단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간절한 꿈이었단다. 시신경 위축으로 인한 시각장애 1급이기에 내려놓아야 했던 꿈. 말 다 못할 회한이 아직도 짙게 남겨지는 듯, 그 대목에서 그의 표정은 아주 잠시 어두워졌다.

 

장애를 당당하게 말하는 세상

모 방송사에서 시각장애 앵커를 처음 선발할 때, 가장 먼저 주목받았던 게 바로 안승준 씨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중도장애의 점자 읽기는 선천성장애의 점자 읽는 속도를 따라갈 방법이 없다. 순발력이 기본이어야 할 앵커로선, 가장 큰 제약이 바로 점자 읽기 속도였던 셈이 된다.

“살아가면서 삶의 계획은 자주 바뀌고 계속 수정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뭐가 될 거야’보다는 ‘뭐를 할 거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거든요. 제가 글을 쓰고 다양한 강의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일반 사람들이 장애인이나 장애를 왜곡해서 본다는 게 아니라 장애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장애의 실체 자체를 모르는 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어요. 장애가 무엇인지, 장애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에요.”

왜곡이 아니라 아예 모른다는 거, 맞는 말이다. 최소한의 배려 같은 게 오고가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기에 안승준 씨는 장애의 현실, 장애의 진실, 장애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싶단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잉태시키는 매스미디어, 그 중에서도 방송 화면이 만들어내는 장애 이미지 고착화를 가장 먼저 개선시키고 싶다고 한다.

“티브이(TV)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에 장애인이 있으면, 대부분 완전 우울한 가정이거나 아주 가난한 가정이죠. 또한 중도에 장애를 입는 것은 그 드라마의 매우 위기상황이거나, 그런 상황전환을 대변하는 소재로 쓰일 뿐이잖아요. 단란한 가정 안에 장애인이 있는 경우는 찾을 길이 없죠. 그래서 저는 미디어를 먼저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어요.”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의 장애에 대해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란다. 좌절감과 실패, 우울과 죽음의 이미지부터 먼저 떠올려야 하는 장애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장애에 대해 완전히 열려 있는 환경, 유니버설 디자인이 확실하게 갖춰진 세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장애를 웃으며 얘기 나눌 수 있는 코드가 되는 세상, 그게 저의 최종 목표이거든요. 제가 앞으로 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 아니면 교사를 계속 하더라도 마지막 목표는 ‘장애를 우습게 만들자’예요.”

 

장애가 뭔지도 모르면서 장애인 배려?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는 건 자신의 신체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제약 때문이다.’ 우리가 편의시설증진을 위한 토론을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화두가 ‘환경의 장애’이다. 그런데 안승준 씨는 거기에 덧붙여야 할 사항이 있다고 했다.

“환경이 장애라는 건 분명히 맞죠. 그런데 그보다도 더 확실하게 지적해야 할 건,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도록 만드는 게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에요. 장애인들은 보통 인생의 전환기 때 그런 걸 많이 실감하게 되죠. 시각장애 입장으로 말한다면, 여기 맹학교를 다닐 때는 잘 몰라요. 그러다가 대학을 가야 할 때, 그때 느끼게 되죠. ‘아, 내게 장애가 있구나.’ 그 다음 취업을 해야 해요. ‘아참, 나는 장애가 있구나.’ 그 다음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 하죠. 그때도 느껴야 하는 건 자신의 장애에요. 결국 한 장애인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장애를 느끼게 만드는 건 모두 다 사람이라는 거죠.”

편의시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란다. 안승준 씨는 무엇이든 신상품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우선 만나고 싶단다. 기술을 가지고 상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는 ‘장애’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왼손잡이용 상품들이 나오는 건 왼손잡이를 고려한다는 건데, 정작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려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케이블 방송에서 찾아와서, 리모콘을 어떻게 만드는 게 잘 쓸 수 있는 거냐고 물었어요. 리모콘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리모콘 화면의 내용을 안 읽어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선거와 관련해서도 ‘투표할 때 어떤 게 제일 문제예요?’ 하고 묻는데, 우리들은 투표행위 이전에 일단 투표소까지 가는 게 문제거든요. 수요자인 장애인 당사자들의 실제 상황을 읽지도 않고 피상적인 질문만 하는 거예요. 샴푸와 린스 제품들 중에 어떤 게 더 좋으냐고 물으면 안 되죠. 일단 샴푸와 린스가 구별이 되게 만든 다음에 그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건 ‘장애인 = 무조건 도와줘야 할 대상’이란 인식에서 생겨나는 우열 관계의 형성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돕는 사람은 우(優), 받는 사람은 열(劣), 그렇기에 돕겠다는 사람은 항상 자기 생각과 자기 방식대로 돕는 행위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뭐든지 ‘우수한’ 사람이 ‘열등한’ 사람에게 하는 건 선행이고 베푸는 행위라고 포장된다는 건데,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진정한 도움과 해결책이 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고민도 없이 행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그는 진단을 내린다.

“장애체험이라는 걸 저는 아주 안 좋게 바라보거든요. 그건 너무 위험한 체험이에요. 신체적으로 위험한 게 아니라, 장애체험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거만해진다는 게 위험하다는 거죠. 안대를 쓰고 몇 미터 걷고 나서 시각장애체험을 해봤다고 하죠. 저는 사실 그 정도로 힘들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 짧은 몇 걸음만 가지고서, 시각장애를 아주 깜깜하고 답답하고 암담한 인생의 존재들이라며 결론을 내려버려요. 여자체험을 한다며 남자들이 하이힐 신고 몇 걸음 걷는다면, 세상 모든 여자들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는 대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되잖아요. 실제로 여자들은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니는 경지에 이르러 있는데도 말이에요.”

시각장애인을 도와주겠다며, 무조건 팔을 잡고 끌어당기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휠체어는 무조건 밀어줘야 한다며, 전동휠체어까지 뒤에서 밀겠다는 이들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기본적인 아니,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우’의 입장만 생각하는 게, 장애를 ‘열’로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 그 자체로 갈수록 고착되는 것이다.

“휠체어에 1분 정도 앉아 휠을 밀고, 안대 쓰고 열 걸음 걷는 게 장애체험인가요? 차라리 1년 정도 안대를 쓰고 살아본다면, 그 정도를 장애체험이라 할 순 있겠죠. 진정한 이해 없이 우열관계만 재확인시키는 작금의 장애체험은 아주 위험하고 불필요한 행위인 겁니다.”

 

벽은 선생님이 먼저 허물어 줄게요

안승준 씨한테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입장을 물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급해 달라고 청했는데,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에게는 교사의 입장이 가장 무거운 주제란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난제라는 것이다.

“저는 아이들과 똑같은 입장이잖아요. 똑같은 시각장애, 그렇기에 아이들은 저를 보면서 한계점을 정하는 것 같아요. 제가 꿈꿀 수 있는 게 아이들의 한계가 되는 것이죠. 아이들한테 선생님은 엄청난 사람이거든요. 무조건 슈퍼맨인 건데, 제가 벽이라 하면 아이들에게도 벽이 돼요. 대신 제가 그걸 무너뜨리면, 아이들 마음에서도 벽은 무너뜨릴 대상이 되는 거죠. ‘이건 내가 못해.’ 그 순간 저도 모르는 벽 하나를 아이들에게 새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얼마 전에 읽은 글 하나가 떠오른단다. 육상 1600미터 달리기에선 ‘4분’이라는 벽이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기간 수많은 최고의 선수들이 도전했어도 절대 깨지지 않던 ‘마의 4분’이었는데, 어느 대회에서 한 선수가 4분의 벽을 넘게 되자 그 해에만 10명의 선수들이 모두 4분 이내의 기록을 올렸단다. 한 사람이 깨는 순간 우르르 깨지는 현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긴 100미터 달리기에서도 ‘마의 10초’, ‘마의 9.9초’, ‘마의 9.8초’ 같은 표현을 얼마나 자주 들어왔었던가. 마라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 앞에서 교사로서의 목표는 꿈을 넓히는 거, 최소한의 목표는 벽이 안 되는 거예요. 안마사를 제외한다면, 맹학교 학생들의 꿈이 서너 개로 한정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걸 만들어주는 게 선생님인 거죠. 서너 개로 좁혀버린 게 교사라는 거, 바로 ‘저’라는 게 가장 슬픈 일이 돼요. 그래서 의미가 큰 일은 아니지만, 제가 계속 방송에 나가고 강연도 하고 기고도 하는 행위 모두가 ‘나는 이것도 할 수 있어. 저것도 할 수 있어.’ 이런 걸 애들한테 전해주고 싶은 거예요. 저 자신이 벽이 되면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이유가 그것인 거죠. 꿈을 꿀 수 없는 상황은 잔인한 거예요. 아이들이 느끼는 벽을 몸소 먼저 제거해 주는, 긍정의 영향력을 희망으로 전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저는 더욱 더 노력할 겁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_한빛맹학교 수학교사 안승준

대담 조은지 기자 | 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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