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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선배들이 되고 싶습니다시각장애인 밴드 절대음감
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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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5  17: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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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절대음감

이민석 (보컬, 키보드)

황인상 (일렉기타)

국승환 (베이스기타)

이민혁 (어쿠스틱기타)

조원성 (드럼)

 

비정상? 우리가 정상이다!

이번에 만날 인물들은 음악연주 전문그룹인 밴드 ‘절대음감’이다. 만남의 장소는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의 지하 스튜디오였고, 약속시간은 그들의 연습시간에 맞춘 저녁 7시였다. 말 그대로 ‘불타는 금요일’인 불금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역에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누군가가 매번 강조하며 얘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여기만큼 완벽하게 실현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었다. 모든 이들이 자기 개성 그대로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 취재를 위한 방문 당시까지는 쌀쌀한 저녁 공기였는데도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한 남성이 담배를 문 채로 천천히 걸어갔고, 그 옆으로는 두터운 파카에 후드로 머리까지 감싼 누군가가 서둘러 뛰어갔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한 젊은이가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며 저만치 서성댔고, 색색의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꽁지머리 남성 셋이 그 옆을 지나갔다.

저렇게 짧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짝 올라간 교복치마의 여고생 몇 명이 가면 수준의 화장을 한 채로 인근 카페 앞에 모여 서서 깔깔댔고, 더 이상 찢을 데가 없을 정도로 복장 전체가 갈기갈기 분해된 옷차림의 한 여성이 손에 든 캔 맥주를 들이키며 지나쳤다. 중요한 건 아무도 서로에게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입든, 뭘 하든, 서서 걷든 물구나무서서 이동하든 서로가 서로의 관심 밖에 존재한다. 여의도 한복판이나 광화문 사거리에서는 SNS의 화제로 등장할 법한 ‘비정상’의 면면들이 이 공간에선 지극히 평범한 ‘정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라는 문구가 문에 새겨진 차량 한 대가 다가와 스튜디오 입구 앞에 멈춰 섰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내렸다. 홍대거리니까 저녁에 선글라스를 쓰는 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지나치던 주위 사람들이 비로소 시선을 던지는 건 차량 안에서 안내견이 내린 다음부터였다. 이 인물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게 그제야 인지가 되는 것이다.

“아유, 좀 늦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첫 인상 자체가 화통하게 말이 아주 잘 통할 것 같은 인물, 바로 절대음감의 리더 이민석 씨였다. 작년 12월에 한 팀으로 만나게 됐다던 시각장애인 안내견 ‘고유’는 아직까진 주인과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듯 주위를 연신 두리번댔다. 여기는 처음 온 장소라서 낯선 것 같다는 주인의 설명이 뒤따랐다.

“그래도 굉장히 똑똑한 녀석이에요. 자기가 오늘 있을 자리가 공식적인 자리인지, 중요한 만남인지 여부를 알아서 판단하고 얌전하게 있거든요.”

함께 내려간 지하 스튜디오는 여러 개인 연습실들이 흡사 노래방의 풍경처럼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고, ‘절대음감’이라 적힌 푯말의 첫 번째 문이 우리를 반겼다. 스튜디오 주인장인 듯 보이는 인물이 다가와서 살짝 귓속말을 전했다.

“오늘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신다고 했죠? 멤버들이 찾기 쉬워야 하니까, 출입구에서 첫 번째 연습실은 언제나 절대음감한테 먼저 배정합니다.”

그 배려가 고마웠다. 멤버들 대신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절대음감, 더 강하게

연습실에는 이미 두 명의 멤버가 와서 악기 세팅을 만지고 있었다. 일렉기타의 황인상 씨, 베이스기타의 국승환 씨가 리더의 등장을 반겼다. 뒤이어 드럼의 조원성 씨가 들어왔고, 매번 지각(?)한다는 어쿠스틱기타의 이민혁 씨가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이때 참으로 독특한 노래 한 곡을 듣게 됐다. 리더로서 악기 전체의 음질과 앰프의 음감을 조율하던 이민석 씨가, 조율의 과정 전체를 노래 형식으로 하나하나 지적하는 나름의 즉흥곡을 부른 것이다.

“볼륨을 조금 낮추고, 베이스를 약간만 올리고, 조금만 더, 더더더, 오케이, 이제 튜닝을 다시 하고, 전부 다 같이, 베이스 2번 줄 튜닝 다시 하고, 아, 됐네. 오케이, 딱 좋아요!”

위의 인용문 문장을 가요처럼 멜로디에 담아 천천히, 강하게, 구슬프게, 높고 낮은 톤으로 부르는 모습은 상당히 이색적인 진풍경이었다. 진짜 멋진 모습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룹 또는 밴드라고 부르는 연주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건 실제 연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각자의 손 풀기와 몸 풀기가 진행되는 십여 분이다. 일단 연주에 들어가면 전체의 호흡을 맞춰야 하기에 개인이 아닌 밴드 자체가 돼야 하지만, 손과 몸을 푸는 동안에는 각자 자기 마음껏 하고 싶은 준비운동을 하게 된다. 가장 자신 있는 연주의 장르가 그때 다 노출된다. 누가 록에 심취했는지, 누가 펑크와 스윙을 좋아하는지, 누가 발라드를 원하는지가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드러나는 것이다.

“저희 절대음감은 2010년에 결성해서, 현재의 멤버로 라인업(구성)이 갖춰진 건 2012년 말부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얼굴로 함께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밴드 구성원의 소개가 일일이 진행된 다음의 첫 질문은 다름 아닌 팀 이름의 의미였다. 왜 절대음감인가?

“사실은…, 그냥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처음엔 검색이 잘되는 걸로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뭔가 임팩트(impact, 강한 영향력) 있는 이름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제가 약한 부분이 뭐든 이름을 짓는 걸 잘 못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큰 공연행사를 담당해야 할 일이 생겨서 급하게 검색을 하다가, 음악에 있어서 가장 검색이 잘되는 키워드인 절대음감이 눈에 띈 거예요.”

멤버 전체는 시각장애가 맞고, 베이스기타를 치는 국승환 씨(4급) 빼고는 전부 다 1급이란다. 그럼 중도장애가 있는지 물으니까, 중도라고 말하기 애매한 아주 어린 시절의 고열로 시력을 잃은 드럼의 조원성 씨와 어쿠스틱기타 이민혁 씨가 굳이 구분을 짓는다면 중도라고 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됐다. 드럼을 치는 조원성 씨는 1급 시각장애에 청각장애까지 있다는 게 아닌가. 밴드 전체의 리듬감을 가장 확실하게 지배해야 할 드러머가 청각장애라고? 리더 이민석 씨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원성 씨의 왼쪽귀가 그나마 들리는 편이라서, 왼쪽에 서서 큰 목소리로 말하면 대화가 가능하다는데… 글쎄, 이건 본능적인 리듬감을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절대음감의 무게감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시점이었다. 그는 그게 가능하다는 의미 아닌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절대음감의 모든 멤버들은 서울맹학교 동문이다. 리더인 이민석 씨는 서른을 앞둔 대선배 입장이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20대 초중반의 비슷한 나이로 이미 학교에서 밴드의 호흡을 맞춰 왔던 면면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동문 개념 따위는 전혀 따지지 않고 멤버들을 모았는데, 어찌어찌 뭉치다 보니까 결국엔 동문파티가 돼 버렸다는 한탄이 멤버 전체의 웃음으로 이어졌다.

멤버 모두의 개별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듣겠다고 했다. 일렉기타의 황인상 씨가 1번 타자로 등장했다.

“기타 경력은 좀 되지만, 정말 제대로 기타를 입문한 건 3년 정도 될 거예요. 일렉기타를 친 건 4년 정도 됐네요. 이펙터(기타리스트가 연주할 때 발 밑 바닥에 놓고 음색을 조절하는 여러 장비들의 조합)는 제 것을 늘 휴대합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세팅을 바꾸며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어요. 공연장 자리마다 앰프가 달라서 그 조합의 변수 때문에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긴 하지만, 이젠 워낙 공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까 대응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쳤는데, 원래는 일렉기타를 치고 싶었거든요.”

베이스기타를 담당하는 국승환 씨의 발언이 시작되자마자, 리더인 이민석 씨의 끼어들기가 또 시작됐다.

“이 친구가 원래는 일렉기타를 치고 싶어 했는데, 예전 어느 공연에 베이스 담당이 없어서 급하게 승환이를 꼬셨(?)죠. ‘네가 베이스기타를 담당해야 해. 너는 잘할 거야!’ 하하하!”

“그게 솔직히 많이 힘들었는데요. 치지 않던 악기가 저랑 맞을 수 있을까 하며 자신감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공연 무대 전체를 휘어잡고 지배하는 연주의 음색이 바로 베이스잖아요.”

“제가 처음 드럼 스틱을 잡았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당시는 두들기는 순수한 그 느낌이 좋았거든요. 7살 때였나? 어느 날 가족들과 TV 앞에 앉아 있는데, 너무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물었죠. ‘이게 무슨 악기냐? 이 타악기가 뭐냐?’ 그랬더니 딱 한 사람이 치는 드럼이라는 거예요. 당시까지는 국악 사물놀이와 드럼을 구분하지 못했을 때였거든요. 그걸 한 사람이 다 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그 소리도 좋았지만, 그렇게 혼자 연주한다는 퍼포먼스 자체가 너무 매력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드럼에 본격적으로 몰입하게 됐죠.”

“기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쳤으니까 좀 오래됐죠. 중3 때 도덕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작은 연못’이라는 곡을 부르며 기타를 직접 쳐주셨어요. 악기 소리라는 게 정말 실제로 들으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며 너무 감탄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지만, 음악을 하리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갔더니 누가 음악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민석이형이었죠. 그 만남 이후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절대음감은 무엇보다 공감대가 있으니까 마음이 잘 맞고, 무슨 말이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편안한 것 같아요.”

   
 

귀감이 되는 선배로 남고 싶다

특이한 건 모든 멤버들의 인생 진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고비의 순간마다 좌표를 전한 선배 하나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선배가 바로 리더 이민석 씨다. 정말 대단한 선배였다고 한다. 학교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전설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하니, 얼마나 확실하고 두드러진 활동을 했는지는 상상만으로도 그려지는 것 같다. 하긴 2004년에 당시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황제’라고 불리던 프로게이머 임요한 선수와 한판 승부를 벌여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한 시각장애인이 있었다. 그 또한 이민석 씨다.

“같은 젊은 세대로써, 같이 좋아하는 걸 통해서 이 어려운 세상을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취지로 만든 게 절대음감이에요. 다른 후배들을 도울 일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음악을 꿈꾸는 후배들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떠올라서 음악을 꿈꾸던 후배들을 찾았던 거죠. 제가 워낙 일을 많이 벌이고 다니다 보니까, 저를 찾아오는 후배들이 정말 많았어요.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 자기 꿈을 못 찾고 방황하는 애들을 도와주고 응원하다 보니까,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후배들이 좀 많은 편이죠.”

가장 감동적인 무대가 있었는지, 있다면 언제 어디서 한 공연이었는지를 물었다. 가장 첫 손가락으로 꼽는 공연이 있었단다. 제대로 된 자신들만의 악기를 모두 갖추고 섰던 무대였단다. 상대적으로 저가인 연습용 악기가 아니라, 진짜 최고의 소리를 내는 자기 악기를 모두 완비해서 했던 연주, 그건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넘어가는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2014년 7월의 그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며 모두가 당시를 회상했다.

“어느 장르에 국한된 게 아니라, 실용음악의 영역 안에 있는 음악들은 일단 다 소화해 보고 싶어요. 다양한 장르가 공부도 되고 우리 실력도 늘게 만드는 방향이 될 테니까요. 절대음감의 목표는 많은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팀이 되는 거예요. 우리 멤버들한테도 각자의 후배들이 있잖아요. 제가 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였다면, 우리 각자의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모두의 선배가 되면 좋겠어요. 그런 친구들한테 ‘아, 나도 절대음감 멤버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꿈을 전할 수 있다면 저희도 행복할 거예요.”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지면을 통해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남겨달라고 했다. 이민석 씨가 먼저 물꼬를 텄다. 자기의 꿈이라는 건 사실 남이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해 달란다. 부모나 남의 의견에 끌려 다니지 말고,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의 의지 하나로 자신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되기를 기대한단다.

“부딪쳐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음악을 정말로 하고 싶다면 정말 자기의 소신을 확실하게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황인상

“어떤 일이든 모든 일은 다 자기를 위해서 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남을 돕는 일도 자기의 행복과 보람이 없으면 무의미하잖아요. 무엇보다 자기가 행복한 쪽으로 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끝에 가서 후회하더라도 행복한 일을 하세요.” - 이민혁

부모의 요구 같은 것에 다들 힘들어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거에 너무 신경을 안 쓰면 좋겠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편한 마음으로 생활하면 좋을 것 같아요.” - 국승환

“후배들이 음악을 정말 즐겼으면 좋겠어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자기감정을 실을 수 있는 만큼 즐기고 좋아하다 보면 그만큼의 음악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음악을 말이에요.” - 조원성

 

준비된 인터뷰는 끝났다. 긴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멤버들의 손이 ‘근질근질’했던 모양이다. 각자의 연주 준비가 끝나자, 리더 이민석 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날의 메인이벤트가 시작됐다. 본격적인 연주가 울려 퍼진 것이다.

“자, 갑니다(연주 시작합니다). 기타,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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