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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학회]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 교육
글. 엄수정/ 미국 컬럼비아대학 박사과정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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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6.05.26  16: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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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소개를 해야 하는 상황을 종종 맞닥뜨린다. 특히 강의를 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나의 연구 주제 또는 학문적 관심사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해야 할 기회가 많다. 나의 학문적 관심사에 대해서 소개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또는 심지어 혼란스러운 표정을 야기하는 어구가 있다. 바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 내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그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한다. 사실 내 소개를 하는 장소에서 이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이 글을 통해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교사교육에 대해 새로운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2007년 가을이었다. 외롭고 삭막한 도시라고 느껴졌던 뉴욕 맨하탄에서 박사과정 첫 학기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모든 것이 낯선 그 시기에 나의 어드바이저로 배정됐던 Celia Oyler 교수님께서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해주셨다.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학문적 관심사와 이력에 집중됐다. 대화 도중에 교수님께서는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물으셨다. 나는 학생의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내가 왜 이러한 주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셨고, 나는 나의 학부시절 경험과 교사로 일한 경험을 언급했다.
 

초등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초등교육과에 입학했던 나는 특수교육과를 복수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특수교사로 일하고 계셨던 어머니의 영향이기도 했고, 초등교육과와 특수교육과를 복수전공한다면 다양한 학생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만 같은 내 생각의 결과이기도 했다. 대학시절 초등교육과 특수교육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더 나은 교사가 되는 과정이라는 뿌듯함을 느끼는 동시에 두 전공의 차이로 인한 고민과 갈등을 경험했다. 초등교육과에서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학생 중심의 수업 방법을 배웠다.
특수교육과에서는 개별 학생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학생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방법, 조작적 용어를 사용해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방법, 과제분석법을 활용해 중재계획을 세우는 방법, 긍정적인 행동변화를 위해 강화계획을 세우는 방법, 장애 범주의 특성과 각 범주에 해당되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중재방법 등을 배웠다. 그 당시의 나는 학령기 학생들의 질 높은 학교 교육을 공통적인 목표로 하는 두 전공이 왜 이렇게 다른 강조점을 지닌 교수적 지식과 방법을 예비교사들에게 가르치는지 의아했다.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대학 졸업 후에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을 모두 가르칠 기회가 있는 일반학교에서 일하기로 결심했고, 임용고시를 봤다. 장애학생이 ‘통합’돼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의 교사로 나의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교사로서 장애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학급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뿐만 아니라 학습활동에 즐겁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초등교육과 특수교육을 복수전공한 나는 이러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교직생활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다양한 흥미, 요구, 경험을 지닌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턱없이 부족한 교사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실망감과 좌절감을 맛봤다. 특히 학생들은 장애학생과 일반학생, 두 그룹으로 나눠지며 나는 특수교육과 초등교육 관련 지식과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이 두 그룹에 해당되는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던 나의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교직생활을 하는 내내 나는 혼란스러웠다.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미국유학을 결심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다양한 학습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또한 나와 같은 고민을 할 교사들을 도울 수 있는 획기적인 교수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모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교육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Oyler교수님의 질문에 이러한 나의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참으로 열심히 설명했었더랬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설명을 조용히 그러나 매우 집중해 듣고 계시던 교수님께서는 내가 장애를 진단받지 않은 학생들을 ‘정상’ 학생이라고 호칭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시며 넌지시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무심한 말투였다. “What is normal(정상이라는 게 무얼까)?” 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머리를 무엇인가로 크게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짧은 질문 하나로 인해 내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사용했던 ‘정상’이라는 개념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참으로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사회의 지배적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나 자신이 창피하기도 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웠다.
 

과연 무엇이 정상적인 것인가? 나는 무엇을 근거로 특정 학생들을 정상범주에 포함시켰을까? 왜 나는 특정 종류의, 특정 정도의 인지적·사회적·행동적 다양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해석했을까? 내가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사용했던 정상이라는 개념은 어떤 집단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까? 자연스럽고 반박의 여지가 없으며, 상식적인 것으로 여겼던 이 잣대를 통해 교사로서의 나는 누구에게 특혜를 주고 누구를 차별했을까? 모든 학생들이 존중받고 즐겁게 배우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나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획기적인 교수방법이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성을비규범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Oyler 교수님은 내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 내의 Elementary Inclusive Education Program(EIEP)이라는 석사학위를 제공하는 초등교사 및 초등특수교사 양성 프로그램의 수장으로 계셨다. 나는 2008년부터 그 교사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일을 하게 됐다. 교사교육 프로그램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 교육’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교사교육 프로그램의 교수진들은 일부 학생들에게만 적합했던 학교 교육체제, 교육과정, 학교문화, 교수방법을 비판하며,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 개혁 운동을 지지했다. EIEP의 교수진은 프로그램의 교육철학과 신념을 요약한 program position paper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우리 교수진은 모든 학생들을 위한 평등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드는 데에 공헌하길 희망한다. 우리는 각각의 학생들을 전적으로 존중할 수 있고,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인종, 계층, 장애, 성별,국적, 언어, 성적취향, 종교 등을 근거로 학교에서 경험하는 소외와 차별을 줄일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는 데에 전념할 것이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이라는 목표는 프로그램의 교육과정(예: 필수 및 선택 강의, 강의내용, 강의자료, 프로그램 행사, 교생실습학교 및 교생 지도교사 선정)에도 명확히 반영돼 있었다. 예비교사들은 장애학과 비판적 다문화교육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 했고, 다양한 과제물과 읽기자료를 통해서 학교와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억압을 인식할 기회를 제공받았다. 이는 예비교사들에게 사회와 학교의 규범적 가치체계가 왜 특정 아동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예비교사들은 본인이 어떠한 현상이나 상황, 또는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보다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분석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예비교사들은 교생실습과 필수과목을 병행하며 교생실습을 통해 경험한 것에 대해서 교수진과 동료 교생들과 깊은 논의를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예비교사들은 다양한 인지능력, 신체적 특징, 행동양식, 학습스타일을 갖는 학생들이 수업에 보다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러한 교사교육 프로그램에서 교수진으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대학에서 받았던 교사교육이 떠올랐다. 각각의 학생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막연히 배웠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비판의식 없이 가지고 있던 가치체계가 각 학생들에 대한 이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양한 교육학적 지식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교재를 읽고 많은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어떠한 지식도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배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교생실습을 하며 효과적인 교수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러나 ‘학교란 무엇이고, 학생이란 어떻게 행동하고 배워야 하며, 교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내가 갖는 사회문화적 기대치가 특정 학생들의 참여를 어떻게 막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보지 못했다. 만약 내가 EIEP와 같은 강조점을 지니는 교사교육을 받았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사실 미국에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은 그리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30여 년 동안 ‘사회 정의 실현’은 미국의 교육과 교사교육에 있어서 주요 쟁점으로 간주돼왔다. 물론 ‘사회 정의’라는 용어는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지만, 미국 전역의 많은 교사교육 프로그램들은 ‘사회 정의 실현’을 강조하며 교육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의 문제에 긍정적 공헌을 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재조직해오고 있다. 미국 교사교육의 지표를 제시하는 두 기관, 즉 National Council for Accreditation of TeacherEducation (NCATE)와 Interstate New Teacher Assessment and Support Consortium (INTASC)에서도 ‘사회 정의’라는 개념을 교사교육과 관련 짓고 있다. INTASC는 1992년에 교사가 갖춰야 할 사회 정의와 관련한 지식, 태도, 기능을 명시했다. NCATE는 1978년부터 다문화교육 관련 과목을 교사교육 프로그램에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2000년에는 ‘사회 정의’라는 단어를 교사가 지녀야 할 자질을 정의하는 데에 사용했다. 미국에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은 교사교육 개혁에 대한 주요 접근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느 특정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러한 시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회에서 자라고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획득한 것이다.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학생과 교사의 역할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배워왔고, 그러한 지식은 상식이 돼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상식이 교육 불평등을 유지하는 근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사회 규범적 잣대에서 벗어나는 특성을 지닌 집단의 아동들은 학교에서 배제와 소외를 경험한다. 다양한 인지적·행동적·정서적 특성을 지닌 장애 아동, 저소득 가정의 아동,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이민자 가정의 아동들이나 혼혈아, 가부장적 가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사회에 교육받는 여학생,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교육받는 탈북 주민 자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이 시기에 살아가는성소수자 학생들 모두 학교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학급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고, 적극적으로 학습 활동에 참여하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교수방법이 아니다. 이들의 ‘다름’에 대한 반성적, 비판적, 분석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이 필요하다.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학교 교육체제, 학교 문화, 교육과정, 교수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를 개혁할 수 있는 교사의 자질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사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한국의 현 교사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이 이에 대한 답안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미국에서 지난 30여 년간 진행돼 온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교사교육’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현 교사교육에 대한 반성적 분석을 촉구하고, 한국의 맥락에 적합한 새로운 교사교육을 상상하는 데에 공헌할 수 있다고 믿는다. Oyler 교수님이 던졌던 짧은 질문이 그랬듯이, 이 짧은 글이 독자들에게 교사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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