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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낙지장애인ABC-시작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1
글. 안승준/한빛맹학교 교사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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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6.07.21  18: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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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내가 산낙지를 먹지 못했던 건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내 모든 판단의 기준이자 가치의 근원이었던 어머니께서 살아있는 낙지를 바라보던 모습만으로도 그 녀석은 내게 있어 먹어서는 안 될 야만스런 음식으로 각인됐던 듯 하다. 보신탕은 물론이고 해삼이며 개불같이 생김이 아름답지 못한 그것들은 비슷한 학습과정을 거친 내 앞에서는 산낙지와 특별히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재미난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에 그것들을 처음으로 강요한 분 또한 다름 아닌 어머니셨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정전처럼 빛을 잃은 아들의 눈 앞에서어머니는 무엇엔가 홀린 듯 변해가고 계셨다. 냄새만 나도 구역질을 하시던 보신탕을 할머니의 코치를 받아가며 우리집 부엌에서 끓이시고 몇 미터 밖에서 보이기만 해도 징그러움에 몸서리치던 산낙지를 손수 썰어내고 계신 분 또한 나의 어머니가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몸에 좋다는 것들은 내 눈을 돌려내라는 어머니의 명 아래 심청이의 역할을 강요받으면서 내 입 속으로 앞 다퉈 뛰어들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혐오와 멸시를 받던 것도 영웅의 대접을 받으며 초능력에 가까운 치료의 기적을 기대받는 것도 모두 산낙지 일당들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지갑 속에 아직 복지카드가 있는 걸 보면 그 녀석들 중 누구도 완벽한 영웅이 되지는 못했던 듯하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 있었으니 그건 내가 그제서야 그 녀석들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건 그냥 맛있는 음식이었다. 어머니의 표정과 반응들에 사로잡힌 나의 편협한 가치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만남을 13년간이나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력과도 작별을 고했다. 공부도 악기도 잘하던 내가, 어렵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내가, 운동마저 조금씩 잘하려던 내가 한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온갖 전술들과 연구를 통해 획득해 온 딱지들과 구슬들도 주인의 몰락과 함께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게 돼버렸다. 동네를 주름잡던 ‘스트리터 파이트2’의 플레이어 리스트에서도, 천하통일을 꿈꾸던 신작 ‘삼국지3’에서도 나의 이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심지어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세계 수학올림피아드 상장과 뺏지들마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하나 둘 나를 부를 때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난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난 아직도 열심히 몸에 좋은 것들을 먹고 있는데, 내 손에는 하얀 지팡이가 쥐어지고 점자라는 읽기도 힘든 과제들이 주어지고 있었다. 해야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냥 앞을 볼 수 없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하루종일 눈에 대한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열흘이고 백일이고 무릎을 꿇고 눈을 돌려달라는 기도를 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내 믿음이 무척 기특하다고 했지만 난 그저 그만큼 눈을 뜨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강영호 박사님과 이익섭 교수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예쁜 사모님과의 연애스토리,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가정을 이루고 하는 것들이 욕심 많은 나의 꿈을 다시 자극했다. 내가 특수학교에 입학했던 건 그분들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옆에 가기도 싫은 장애인들 틈이긴 하지만 뭔가 나는 홀로 잘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꿈을 꿨던 것 같다. 그리고 장애는 극복돼야 한다는 출처 모를 불굴의 의지 같은 것도 생겨났던 것 같다. 특수학교 입학! 내친김에 기숙사에까지 입소했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그 아이들도 그럴 거라는 내 생각이 용기가 돼줬다.
 

내 예상은 아무 것도 맞아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살 부대끼며 사는 친구들과 선배들 중 누구 하나도 눈의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박사님이나 교수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그들은 그냥 편안했고 평범했고 평온했다. 똑같이 세 끼 밥을 먹고 학교에서는 정해진 시간 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심심하면 야구도 축구도 농구도 했다. 모양도 규칙도 달랐지만 딱지놀이나 구슬치기 정도는 잊어버릴 만큼 내겐 충분히 재미있었다. 흐릿해지고 컴컴해진 눈 따위는 그들에겐 농담의 소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혼자서는 겁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던 나도 둔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다니다 보니 자동으로 재활이 되고 있었다. 여름엔 수상스키를 타고 겨울엔 스키를 타면서 언젠가부터 ‘그들과 나’가 아니라 우리가 돼가고 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됐다.
난 다시 악기도 배우고 수학공부도 하고 대학을 나와서 지금은 수학교사가 돼있다. 내가 이처럼 덤덤히 말하는 것은 글을 빨리 마무리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살다보니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과장하고 화려하게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난 누군가 말하듯 비장애인의 몇 배를 노력하고 그렇게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수능을 볼 때 좀 열심히 공부했고 취업을 위해 발품도 팔고 이 시대 청년들, 이 시대 학생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았다.
 

단지 내가 긍정적이었을 수 있던 건 할 수 없는 것 보다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찾아다녔다는 것. 그것이 약간의 비결일 수는 있겠다. 그건 모두 친구들의 덕이다. 장애라는 것, 그런 것 따위는 언급하지도 않던 장애인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얻게 된 나의 무기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실명 이전에도 실명 이후에도 나의 본질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크게 불편해지긴 했지만 그건 오로지 나의 눈과 관련있는 것들에 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를 구성하는 존재들은 여전히 가능성을 갈구하고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내 장애의 본질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장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산낙지에게 가졌던 혐오도, 그 녀석에게 기대했던 기적적인 치료도 그것의본질과는 아무 관련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미디어의 왜곡된 화면들, 지하철에서 봤던 시각장애인들, 생각 없이 떠들던 누군가의 장애비하 발언들이, 있지도 않은 혐오스런 이미지를 나에게 입혀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난 여전히 불편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장애인 중 하나이다. 직장에서 사무를 볼 때도 좋아하는 이성에게 구애를 할 때에도 일상을 지낼 때에도 헤아릴 수 없을만큼 불편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가 멀쩡한 눈을 가졌더라도 모양과 정도는 다를지언정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슬픔과 불편함들이 나의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인생 자체가 장애로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건 짧은 인생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살아도 삶은 빠듯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음 장애를 접하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 장애를 겪게될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장애는 특별한 것이 아닌 불편함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혐오와 좌절을 장애와 동일시하게 만든 누군가 때문에 매 순간 슬픔과 아픔 그리고 가열찬 극복 따위를 상상하면서 괴로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수님이나 박사님을 동경할 수는 있겠으나 그게 모든 장애인들의 궁극적 목적도 아니지 않는가? 개개인의 삶은 장애의 유무보다는 원래 가지고 있던 본질적 성향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혐오나 멸시의 대상도 아니지만 엄청난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게으른 장애인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장애! 그것은 본질 없는 불편함일 뿐이다. 치료되거나 없어질 수는 없지만 생각의 방향과 시선의 차이에 따라서 느껴지는 크기의 차이는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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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정
아름다운 글입니다. 그저 불편함...일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2018-09-11 17: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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