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스무 살의 독립기념일장애인 ABC - 시작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②
글. 안승준/한빛맹학교 교사  |  cowalk100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8.17  15:37: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산낙지와 산토끼간, 기치료나 기도원의 안수마저도 나의 눈을 한순간에 뜨게 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데는 꼬박 2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사실 재활교육을 받기 위해 복지관 문을 처음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장애를 인정했다기보다는 뭔가 배워두면 나쁠 것 없다는 생각 정도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복지관의 첫인상은 신기한 사람과 신기한 물건들만 모아놓은 이상한 나라 같은 것이었다. 시계도 컴퓨터도 말을 하고 분명히 안 보인다던 선생님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건물 이곳저곳을 안내해주고 계셨다. 두 눈 멀쩡한 어머니조차 조심스럽게 “진짜 안 보이세요?”라고 물어봐야 했을 정도로 선생님의 오리엔테이션은 완벽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출발한 나에겐 초고속

진도의 수업이 제공됐다. 소리 나는 컴퓨터의 자판들을 외우고 눈이 보일 때도 해 보지 못했던 PC통신의 채팅도 할 수 있게 됐다. 암호처럼 복잡한 점자들을 외우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도저히 읽혀지지 않을 것 같던 그것들을 더듬더듬이나마 읽을 수도 있게 됐다.

문제는 보행 시간이었다. 간단한 실내보행법들을 익힐 때에는 몰랐던 감정들이 하얀 지팡이가 손에 쥐어지는 순간 울컥하며 올라왔다. 가족들에게는 매미채 만들어도 좋겠다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고 있었지만 내심 핑 도는 눈물을 참느라 온 안면근육들을 초긴장 상태로 유지시켜야만 했다. 그래도 기본동작들을 익힐 때는 견딜만 했다. 처음으로 건물 밖을 향해 나가던 날의 엄청난 감정 상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맹학교의 어떤 선생님께서는 시각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세 번쯤 손목이 끊어지도록 아파야 비로소 스스로 살 수 있는 기본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점자, 안마, 보행 세 가지를 배울 때의 어려움을 말씀한 것인데 내겐 손목 통증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처음으로 내가 지팡이 짚은 사람이 됐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던 그 날, 어쩌면 처음으로 눈 앞이 깜깜해졌다는 것을 알던 그 날의 충격과 비길 만큼이나 혼돈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불쌍하게 볼까? 혹시 친구들이라도 지나가지 않을까? 가족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생각들은 선생님의 지시 따위는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내 온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안마를 배울 때도 점자를 읽어갈 때도 그 배움이 힘든 것보다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수백 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안마라는 좋은 기술을 습득하고도 주변에 봉사하지 못했던 건 단지 내 장애를 한 번 더 인증하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도 나 스스로 한 번 더 드러내는 것은 엄청난 고민과 용기가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초인간의 영역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렵게 배운 지팡이 보행도 나의 눈이 돼주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스무살의 어느 날 여자 친구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은 무모한 용기는 수년간 깨지 못했던 두터운 벽을 깨뜨리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몇 배의 시간, 수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나서야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날의 성취는 나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집 앞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하나를 살 수 있게 된 것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시내까지 나갈 수 있게 된 것도, 더 많은 사람과 더 넓은 관계들을 맺게 된 것도 그날의 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난 비로소 복지관 선생님의 자연스런 행동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팔에 계속 의지하고 살았다면 나의 연애, 20대의 추억들까지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편한 일이지만 그만큼의 제한도 뒤따르는 것이다.

스무 살의 뒤늦은 걸음마를 한 날은 나에게 새로운 독립기념일이 됐다. 장애를 드러내는 것은 장애를 인정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 장애에서 해방되는 것 또한 장애를 당당히 드러낼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일방적이고 끝없는 도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열 개를 받았다면 하나라도 갚으려고 할 때 관계는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끝없이 만들어가야 한다. 많은 부분 포기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몇 갑절 절실한 일도 바로 그것이다. 불편하고 왜곡된 편견들과 시선 속을 사는 우리에겐 너무도 거창한 계기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모든 장애인들이 독립적 주체가 되는 각자의 독립기념일을 선포했으면 좋겠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9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이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2
‘장애인’이 아니라 이웃으로 똑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3
[D&I] 청각장애인 범죄자에 대한 형량 반값 할인 과연 타당한가?
4
[D&I] 참정권은 개인의 능력에 좌우되지 않는다
5
[D&I] 영국의 장애차별금지법과 통합 평등법의 의미
6
부산시 ‘장애인 스포츠선수 고용증진 협약’ 체결
7
발달장애인의 개인별지원 위해 전문기관과 특수학교 협력
8
지적장애아동 폭행한 장애인시설 사무국장 벌금 500만원 선고
9
그것이 나의 인생 같다면, 바로 그걸 선택하세요
10
장애인 소재 프로 '월 방송시간 5% 이상' 의무화 추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이태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