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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데도 부정당해왔던 권리들, 이젠 우리도 외치기 시작한다.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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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6.09.13  10: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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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서울 동대문 DDP 앞에서 거행된 1017빈곤철폐의날 투쟁대회에서 맘상모 회원들이 피켓으로 자신들의 참여를 알리고 있다(이미지제공=맘상모)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하는 집회나 결의대회엔 새로운 깃발과 얼굴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새로운 결사체가 탄생했다는 의미가 된다. 몇 해 전부터 각종 연대의 모임에 가장 커다란 손피켓을 들고 동참하는 ‘맘상모’, 그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다. 자영업자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외치던 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또 모이면서, 이젠 법제도까지 바꿔내는 힘을 갖게 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을 만났다.

상임활동가인 임영희 씨는 지난 2007년부터 노들야학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2013년부터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서 상근활동을 했던 익숙한 얼굴이기에, 훨씬 반갑고 내용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막연한 ‘남들의 얘기’일 수 없는 맘상모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들여다본다.

 

‘법대로’의 폭력을 깨야 하는 것

젊음의 거리라는 곳을 걷다 보면, 이렇게 많은 매장들이 큰길가뿐 아니라 모든 골목 안쪽까지 가득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경우가 있다. 고기집도 종류별로, 술집과 음식점도 종류별로 거리 전체에 다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다 편의점과 화장품매장, 액세서리매장, 의류매장, 커피전문점, 다양한 분야의 학원, 미용실, 분식집 등등 ‘원하는 건 무엇이든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는’ 매장들 또한 끝도 없이 네온사인 간판을 밝히고 있다. 모두 다 영업이 잘 되고, ‘부자 되세요!’를 이뤄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난히 장사가 잘 되는 집이 있고, 텅 빈 탁자만 놓여 있는 가게들도 있다. 매장 규모가 큰 곳이 있고, 아주 작은 공간을 비집으며 영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업종과 크기와 분야는 다 다르지만, 이 모든 매장들한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극소수의 선택(?)받은 매장들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은 임차상인들이 운영하는 자영업 매장이라는 사실이다. 보증금과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모두 대고, 월세까지 꼬박꼬박 내야 하는 임차상인들을 우리는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단골집이 되면 인간적인 관계도 맺을 수 있다. 음식 맛 좋고 인심 좋은 사장님을 알게 되면 기분도 좋아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장님들은 모두 마음 편하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영업을 하는 걸까? 수익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큰 꿈을 설계할 수 있는 희망이 충만하고 있을까? 자신의 매장을 자신의 집보다 더 가꾸고 아끼며, 아무런 걱정 없이 내일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게 가능할까?

   
▲ 맘상모 임영희 활동가

“제가 전장연에서 활동할 때, 부동산 관련 일도 병행하고 있었어요. 탈시설과 맞물려서 장애인 당사자분들의 방도 구해드리곤 했는데, 그때 저의 고객으로 오셨던 분이 바로 우장창창의 사장님이셨어요. 제가 그 가게 자리를 구해드렸던 거죠. 매장 영업이 참 잘되고 있을 때, 1년 반 만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문제가 터졌던 겁니다.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가 남양유업 사태로 대표되는 ‘갑질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와중이라서, 우장창창의 문제 또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것이죠.”

임영희 활동가는 맘상모의 첫 시작점부터 함께했다. 잘못된 법인데도, 허점투성이인 제도인데도, 일단 ‘법대로’라고 하면 임차상인이 건물주나 임대인을 이길 방법이 없다. 그게 법이기 때문이다. 정식계약을 맺은 임차상인인데, 중간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가게를 비우라는 요구에 맞섰던 게, 바로 ‘가로수길 우장창창 사건’이라는 긴 싸움의 시작이 된다. 우장창창 사장의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한두 사람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당신도 그래? 나도 그런데?’

“지금도 여전하지만, 3년 전에는 훨씬 더 심했어요. 당해도 어쩔 수가 없다는 거죠. 재수 없어서 겪는 일, 그냥 안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일어나도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취급된 거예요. 임차상인들은 단번에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건데도, ‘법대로 하자’는 논리 앞에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던 거죠. 억울한 사연을 남기는 인터넷카페를 만들었는데, 전국의 임차상인 사장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너나할 것 없이 자신들의 한숨을 쏟아냈죠. 그래서 ‘개개인으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우리가 힘을 키우기 위해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심정 그대로의 이름을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라 짓고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던 거예요.”

맘상모의 첫 출발점이 우장창창이라는 것, 그 우장창창의 영업장소를 처음 소개한 이가 임영희 활동가라 하니, 맘상모의 탄생은 그가 그 자리를 연결해주던 순간부터 예고됐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물을 알아봤다면 아무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을’의 입장에 있는 임차상인들의 마음은 거의 동일하다. 어떤 임대인을 만나도, 터질 일은 결국 터지고 만다는 현실에 공감하는 것이다.

 

모이는 만큼, 뭉치는 만큼 권리가 확보된다

맘상모의 카페 회원은 2천5백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실제로 회비를 내며 활동하는 회원들은 7백 명 정도가 됐고, 서울 신촌에 정식 사무실을 낸 뒤 3명의 상근활동가가 근무하고 있다. 3년여 만에 제대로 된 조직의 틀이 갖춰지게 된 것이다. 2002년에 만들어지고 11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악법으로 지탄받던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은 2013년 6월에 한 차례, 2015년에 두 번째로 부분개정이 됐다. 거저 얻어진 결과가 아니다. 바꾸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이다.

“임차상인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직접 하기 시작하면서 바뀌게 된 거죠. 이건 의미가 굉장히 큰 일이에요. 당시까지만 해도 상인들이 ‘아, 내가 이러저러 해서 쫓겨나는데 억울해.’라는 얘기를 못하던 세상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금기시됐던 거죠. 누군가 쫓겨난다고 하면 ‘그러니까 네가 계약을 잘 했어야지. 계약이 끝났는데 뭐가 억울해?’ ‘그러니까 네가 똑바로 알아보고 했어야지. 법이 그러면 네가 더 조심했어야지.’ 다들 이런 반응만 보였던 거예요. 흔한 표현으로 안 나가고 ‘땡깡’을 부리는, 계약이 끝났는데도 뭔가 더 얻어내려는 수작 정도로만 취급됐던 거죠.”

흩어져 있던 개개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모이고 뭉친 이들의 외침은 메아리를 타기 시작했다. 때마침 젠트리피케이션(한 지역에 외부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입주자들이 쫓겨나는 현상)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건물주들의 전횡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가법의 문제점이 연일 언론을 도배했고, 결국엔 국회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여전히 허점투성이라는 건 남은 과제가 된다.

“모두의 목소리는 비슷해요. ‘어, 나도 그런데?’ ‘얘도 그래.’ ‘어, 너도 그래?’ 억눌려왔던 억울함과 분노가 사회적인 이슈로 분출할 수밖에 없는 발화점까지 이르게 된 거죠. 맘상모의 모든 활동은 임차상인들의 권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이건 역사적으로 증명됐었던 현상들과 궤를 같이 하죠. 존재하지만 부정당해왔었던 권리들이 있잖아요. 여성의 참정권, 장애인의 이동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권리인데 당시엔 부정당했잖아요.‘이동권’이라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모두가 비난을 했습니다. ‘버스 타고 어디 가시게요?’ ‘왜 나오세요?’ ‘지하철 타고 갈 데나 있으세요?’ 고작 듣는 소리가 이런 비하와 무시밖에 없었잖아요.”

임차상인들의 권리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지만, 끝없이 부정당했던 걸 이제는 바로 잡자는 것! 맘상모의 갈 길은 멀지만 방향은 뚜렷하기에,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직접적으로 전개될 게 분명하다. 지금도 가로수길 ‘옛’ 우장창창 자리 앞에선 저녁마다 문화제가 열린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 연설을 하고, 누군가는 박수를 보낸다. 그 곁에서 누군가는 전단지를 나눠준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 이젠 서민들의 피눈물 위에서 희희낙락하던 ‘그들’에게 되돌려줄 때가 됐다. 이 땅의 그 무엇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 바로 ‘국민’,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우장창창 서윤수 대표

함께걸음(이하 함께) 얼마 전까지 ‘사장님’이었는데, 지금은 매장이 아닌 거리에 서 있다.

서윤수 대표 (이하 우장창창) 억울한 게 제일 큰 요인이 된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고, 먹고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데 결국 쫓겨났다. 쫓겨나고도 욕을 먹는, 빼앗긴 사람이 욕을 먹어야 하는 이 땅의 시스템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함께 수많은 언론에 언급이 됐지만, 임차상인의 실제 목소리가 왜곡됐다는 여론도 크다. 대표 입장에서 무엇이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키는가.

우장창창 단적으로 한 가지만 언급하겠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다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발언을 할 때 책임감 있게 전후 상황을 확인한 뒤 입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신하는지, 사실관계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저를 비난하는 방송을 진행해 왔다. 그동안 진심으로 신뢰를 갖고 ‘그 인물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진짜 피해 당사자가 되고 나니까, 그런 인물들이 우리나라 여론을 이끌어갔다는 민낯을 확인하게 돼서 정말 깜짝 놀랐다.

함께 오랜 기간 동안 진보논객으로 널리 알려졌던 몇몇 인물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우장창창 맞다. 정말 놀랐다. 그 인물들은 이 현장의 실제 사실을 전혀 모른다. 일면식이나 전화 통화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자의적인 왜곡된 정보에 의존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동안 제가 경청했던 그들의 발언 또한 어떤 수준의 무책임한 개인 언변이었는지가 확인되는 게 아닌가? 정말 ‘깜짝 놀랐다’는 표현 이외엔 언급하기 힘든 심정이다.

함께 대한민국이 6백만 자영업자의 국가라고 한다. 그 6백만 서민들 앞에 우장창창이 불을 질렀다. 맘상모의 탄생까지 만들어냈다. 하고 싶은 핵심의 발언을 듣고 싶다.

우장창창 6백만의 자영업자? 맞다. 쫓겨나면 그냥 당한다. 그건 두려움이다. 뭔가 주장을 하고 싶어도, 건물주가 계약서에 적어놓은 그대로 당해야 한다. 생존의 터전인 가게를 하루아침에 빼앗긴다. 독자 여러분 주변에 자주 간판이 바뀌는 가게들이 있다는 거, ‘좀 이상하다’ 싶은 매장 자리들이 눈에 띌 것이다. 그게 갑과 을의 장난에 따른 피해자들의 매장인 것이다.

함께 맘상모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우장창창 이렇게라도 싸워야만 알려진다. 알려져야만 바뀐다. 이 싸움이 일개 개인의 분노인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싸우는 투쟁으로 인해 혜택을 보는 게 바로 전체 임차상인들이다. 6백만 임차상인들이 이렇게 부조리하게 기울어진 무게중심에서 하루하루 힘겨워하고 계실 텐데, 우장창창의 싸움이 먼 곳의 남의 일이라고 넘기시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일단 상황은 가게에서 밀려난 입장까지 됐다. 그렇다면 대표의 입장에서 이젠 어떻게 할 건가?

우장창창 어차피 생활 아니, 생존을 위해선 매장을 다시 어딘가에서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하려면 빚을 져야 한다. 명예회복? 정말 힘겨운 일이다. 제가 6년 동안 쌓아놓은 결실이 일순간에 ‘얘, 나쁜 임차상인이야, 맞아도 싼 임차상인이야, 이 사장이 참 나쁜 인간이네?’ 이 프레임으로 이 사회에 전파가 됐다. 저는 그렇게 안 살았다.

함께 억울한 상황에 빠졌는데,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새로 빚을 져야 한다는 대목이 참 마음 아프다. 우장창창 장사? 음식장사는 정말 솔직하다. 마진이 딱 정해져 있다. 1만원 기준으로 2천원, 많이 남으면 3천원이다. 노력하는 대가가 바로바로 나온다. 제가 열심히 한 만큼 고객들이 ‘잘 먹고 갑니다, 맛있게 먹었어요.’ 하면 감동의 전부가 된다. 공산품 판매처럼 1만원에 원가가 2천원 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원 플러스 원(1+1, 같은 제품 하나 더 무료로 제공하기) 같은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함께 가감 없이 정리하겠다. 의견 그대로 원고에 올릴 테니, 마무리 차원에서 한마디를 남겨 달라.

우장창창 고맙다. 무엇보다 먼저 원하는 건 명예회복이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정확히 잡을 것이다. 생존권을 한순간에 박탈당했는데,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는 국가가 대한민국인가? 이건 6백만 자영업자들, 그 가족까지 포함한다면 2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존권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는 실제 현실인 것이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는 무엇인가? 저는 사회적으로 완전 왜곡돼 있는 진실을 바라잡고, 반드시 답을 얻어낼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하고 싶다. 맘상모, 반드시 승리의 결실을 얻어낼 것이다.

   
▲ 2015년 8월에 거행된 광화문집회에서 맘상모 회원들이자신들의 상호명을 적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미지제공=맘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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