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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학회]장애인 그리고 안락사와 연명의료 중단
글. 조한진/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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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8  11: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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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망 시기의 인위적 단축에 대한 논의

2016년 2월 3일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 속에 연명의료의 법제화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이 논의에 의해 가장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장애계는 배제돼 왔다. 이에 본고는 장애인의 관점의 토대 위에서 인간의 사망 시기의 인위적 단축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인간의 사망 시기의 인위적 단축과 관련해서는 먼저 안락사, 존엄사, 연명의료 중단 등의 용어가 혼용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락사는 환자 상태와 안락사의 방법에 따라 순수한 의미의 안락사(본래 의미의 안락사), 직접적 안락사(적극적 안락사 또는 살해형 안락사), 간접적 안락사(협의의 안락사 또는 치료형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부작위에 의한 안락사, 연명의료 중단) 등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손미숙, 2014 조민석・문하영, 2014).

이 네 가지 유형 중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와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하고, 나아가 미국에서는 이른바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안락사의 유형 사이에 진정한 차이가 있는가? 아니다. 안락사의 유형 모두가 소위 인도주의적 근거에서의 환자의 죽음이라는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소극적 안락사 내지 연명의료 중단이 다른 유형보다 더 도덕적인가 역시 아니다. 안락사의 유형에 있어서 동기와 의도가 같다면,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것과 부작위의 결과로 똑같은 결과가 발생될지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그 행위를 단순히 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도덕적 차이가 없다. 결국, 안락사 유형의 구분은 실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 합법화의 옹호자들이 혹 이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연명의료 중단은 장애인이 아니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질병’, ‘정상 기능’, ‘장애’ 등의 개념은 우리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도 장애인의 한형태라고 생각하도록 허용할 만큼 융통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률을 가질 때 우리는 연명의료 중단의 자격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제한하지 않고, 이와 더불어 중증장애인과 같은 다른 예외적인 사례에 대해 보다 허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고에서는 장애인과 안락사를 연관 지어 논의하도록 하겠다.

 

안락사에 대한 장애권리 운동의 비판

자율성에 대한 반대 논리

장애권리 운동은 중증장애인에게 안락사를 거부하는 것은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용인될 만한 ‘가부장주의’(paternalism)라고 주장하는데,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Scoccia, 2010).

첫째, 선택이 자발적・자율적으로 형성된 선호・신념을 반영한다면, 자격 있는 성인의 자기 본위의 선택에 간섭하는 것은 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그러나 안락사를 요청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중증장애를 가진 삶은 존엄성이 결핍돼 있거나 그들에게 케어나 원조를 제공하는 다른 사람에게 과도한 부담을 과하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 그 동기를 부여받는다. 셋째, 그것이 장애를 가진 삶은 품위가 없거나 다른 사람에게 과도한 부담을 과하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면, 그것은 억압적인 사회 환경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자율적이지 않은 믿음・선호를 표현한 것이다. 넷째, 그들의 요청이 정당한 편의・지원을 제공하기를 거부하는 ‘장애 차별주의’(ableist) 사회에서의 삶이 매우 열악할 것이라는 신념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면, 그것은 비자발적이기 때문에 자율적이 아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중증장애인들에 의한 안락사 요청에 동기를 부여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의 거부는 그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장애인의 선택이 정말로 자율적인 것일 경우는 드물다.

 

존엄성과 잘못된 선택

종교적 윤리와 생명의 신성함의 윤리 또는 칸트의 윤리가 정확하다면, 장애를 가진 어떤 삶이 존엄성이 결핍돼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먼저 생명의 신성함의 관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그의 형상’대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됐기 때문에, 충분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고 성스럽고 존엄성을 부여받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어 칸트의 관점은 모든 사람은 도덕적 기능을 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도덕적 지위 및 ‘값을 따질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양쪽의 관점에 따르면, 배변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결핍돼 있거나 휠체어의 도움으로만 이동하는 삶을 사는 것은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은 인간 존엄성의 기초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Scoccia, 2010).

한편, 억압적인 가부장적 문화에서 사회화된 여성이 여성에 대한 억압적 관행을 지지(예를 들어, 딸이 성폭행을 당한다면 그 딸은 그 가족에 수치라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지만, 그 지지는 억압적 사회 환경에서 비롯됐음을 고려할 때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Scoccia, 2010). 그런데 이와 똑같은 것이, 장애인을 출생부터 사망까지 부당하게 대우하는 장애 차별주의 사회에서 사회화돼 온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존엄성 및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지 않음에 대한 믿음에 있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장애에 기반을 둔 차별・낙인화의 만연

생명권 운동에 있어서 안락사는 프라이버시 이슈의 의미와 함께 대략 생명의 신성함의 이슈인데 비해, 장애권리 운동에 있어서 그것은 차별과 낙인화의 이슈이다. 첫째, 미국의 장애권리 활동가들은 안락사의 이용이 차별적이고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에 대한 한 대법원 사례를 위해 쓴 법정 의견서에서 안락사 반대 단체인 Not Dead Yet(아직 죽지 않았어)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조력자살은 그러한 차별의 가장 치명적인 형태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Barnartt, 2004:9).

안락사의 실행은 ‘장애를 가진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차별적 믿음을 반영한다. 만약에 비장애인이 자살하기로 선택한다면, 사회는 그 선택을 실행돼서는 안 되는 비이성적 결정 과정의 산물로 대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장애를 가진 ‘존엄적이지 않은’ 삶보다는 죽음을 ‘선택’한다면, 시스템은 그 개인의 곤경을 동정하고 죽을 권리를 지지하며 그의 장애가 극도의 절망의 근원이라고 가정한다”(Bagenstos, 2006: 435).

둘째, 장애인들의 최대의 고통은 그들에게 가해진 사회적으로 낙인화된 정체성이다. 안락사는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편함・반감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 장애를 가지고도 독립적・생산적 삶을 살도록 돕기보다는 그들이 자살하도록 돕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이 권리이어야 하는지를 숙고하기 전에

현재의 증거는 연명의료 중단을 합법화하는 것으로부터 득을 볼 소수의 사람들의 이해관계보다도, 연명의료 중단을 조절하기 위해 도입될 수 있는 법률・절차・기준이, 장애인의 삶을 헛되이 끝내고 그러한 결정에서 법률・의료 공무원들의 견딜 수 없는 정도의 개입이 수반되는 데 오용될 개연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리킨다. 특히, 장애인 가족 구성원에 있어서 연명의료 중단에 의지해야 한다는 압력은 크며, 연명의료 중단이 좀 더 손쉽게 접근 가능하고 용인됨에 따라 앞으로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Miller, 1993).

더구나 가족이 없는 상태로 장애인시설에 거주해 법정대리인이 시설의 장으로 돼 있다면, 이러한 장애인의 살 권리의 보장은 더욱 취약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연명의료결정 법률에서는 의사능력(意思能力)의 문제와 관련해 미성년자의 경우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미성년자가 아닌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명시적 조항도 두고 있지 않다.

앞에서, 장애권리 옹호자들은 안락사의 합법화가, 장애인에 대한 이중 잣대를 만드는 장애인 차별적 편견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연명의료결정 법률과 같은 법률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Not Dead Yet와 같은 장애권리 운동은, 장애인 차별이 극복되고 모든 사람의 절박한 욕구에 대해 동등한 관심을 보이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에 의한 어떤 안락사 선택도 완전히 자율적일 것이기 때문에, 그 안락사를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듯하다(Scoccia, 2010).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오류가 있으며, 장애인이 완전히 자율적인 사회에서조차도 어떤 유형의 안락사이든 여전히 잘못된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장애인의 요청이 자율적이라 하더라도, 세 가지 근거에서 장애인에 대한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Scoccia, 2010).

첫째, 장애인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장애 차별주의 사회에서조차 장애인은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낫다. 둘째, 장애인들의 복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할 의무보다 더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근거로 셋째, 장애인 안락사는 장애인을 에워싸고 있는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장애인의 생명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면, 사회의 자원을 공유하고 시민권을 부여하거나 존경을 표하거나 심지어 죽음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필요성은 없어진다(Miller, 1993). 연명의료 중단을 촉진하기 위해 바쳐지고 있는

에너지는 장애인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을 돕는 데에 더 잘 사용될 수 있다(Bristo and Burgdorf,1998). 그러므로 연명의료 중단이 권리이어야 하는지를 숙고하기 전에 우리는, 장애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타당한지, 또는 우리가 품위 있는 삶의 선택지를 만들도록 먼저 시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Miller, 1993).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연명의료결정 법률의 시행령・시행규칙의 제정 단계에서 장애계와 성실하고 진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 글은 ‘조한진, “안락사, 존엄사, 연명의료 중단, 그리고 장애인,” 『한국장애인복지학』, 제31호, 2016, 221-242면.’을 축약한 것이다.

 

 

 

참고문헌
손미숙. 2014. “소극적 안락사 혹은 연명치료중단의 정당화 근거에 관한 고찰”. 『강원법학』 42: 173-212.
조민석・문하영. 2014. “연명시술의 중단에 관한 법적 연구・존엄사를 중심으로-”. 『법학연구』 41: 31-53.
Bagenstos, S. R. 2006. “Disability, Life, Death, and Choice.” Harvard Journal of Law and Gender 29: 425- 463.
Barnartt, S. August 2004. “Trajectories of Issue Emergence and Convergence: Assisted Suicide in the Disability and Right-to-life Movements.” Paper Presented at the Annual Meeting of the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San Francisco, CA. Bristo, M., and R. L. Burgdorf Jr. 1998. “Assisted Suicide: A Disability Perspective.” Issues in Law and Medicine 14(3): 273-300.
Miller, P. S. 1993. “The Impact of Assisted Suicide on Persons with Disabilities-Is It a Right without Freedom?” Issues in Law and Medicine 9(1): 45-54.
Scoccia, D. 2010. “Physician-assisted Suicide, Disability, and Paternalism.” Social Theory and Practice 36(3): 47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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