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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대신 만화로, 나는 자유인으로 산다웹툰 작가 라일라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kl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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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5  10: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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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 대신, ‘귀머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부터 자극적이다. 무언가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칠 만한 거친 일들이 전개될 것 같은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주 귀여운 캐릭터가 주인공인 인터넷 포털사이트 속의 웹툰이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연재하며 화제의 중심에 선 라일라 작가를 만났다.

‘나는 귀머거리다’라고 쓰고, ‘나는 자유인이다!’라고 읽어야 할 반갑고 소중한 만남이었다. 그의 의견에 따라 사진이 아닌, <함께걸음>을 위해 새로 그려서 보내준 캐릭터로 그의 얼굴을 대신한다. 그와 나눈 삶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저는 자유로움이 좋아요

   
 

라일라 작가, 그는 구화(口話)를 잘한다. 소리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삶을 살아왔지만, 상대의 눈빛과 입 모양만으로 의미를 이해하고선 자신의 입 발음으로 대답을 한다. 가끔의 동문서답은 웃음꽃의 마중물이 된다. 그는 왜 수화 대신 구화를 익히게 된 걸까?

“저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보통 일반학교라고 부르는 비장애인학교를 다녔는데, 제가 다닌 학교엔 청각장애인이 많아서 방과 후 청각장애인 교실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 선생님이 수화를 못 쓰게 하셨어요. 수화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혀야 익숙해지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구화에 집중하셨어요. 무서울 만큼 수화 대신 구화를 강조하신 거예요. 선생님이 무서우시다 보니, 자연스레 수화는 안 배우게 됐죠. 수화는 아주 간단한 표현 정도만 할 줄 알아요. 실제로 구화 교육에 집중하신 건 저의 엄마였죠. 엄마의 절대적인 노력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구화를 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신분증에 새겨진 세 글자의 본명 대신, 그는 라일라라는 필명으로 세상 한가운데 섰다. 그런데 이번 만남의 전제가 사진 촬영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대학 09학번의 젊은이라면 얼굴 공개도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왜 그는 사진 대신 캐릭터 사용을 원했는지 궁금했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걸 즐기는 세대가 지금의 젊은 그들이 아닌가. 딱 한마디 대답을 던지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조용히 살고 싶어서요. 하하하!”

 

있는 그대로의 저의 삶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책을 읽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런데 이원복 교수님의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경우는 글자가 굉장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만화라는 표현 방식 때문에 쉽게 읽고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잖아요. 만화의 매력을 그렇게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라일라 작가는 전문 미술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2014년에 졸업했다. 한마디로 그림의 정통 과정을 밟아온 전문 작가인 것이다. 세상으로의 첫 등장은 웹툰의 형식이었지만, 그가 드러낼 화폭의 세계는 동양화를 비롯해 무궁무진하리라는 짐작이 가능해졌다. ‘나는 귀머거리다’의 주인공은 어떻게 정해진 건지 물으니까, 그는 온 몸의 동작과 활짝 웃는 얼굴에 큰 음성으로 외치듯 말했다.

“제가 강아지를 엄청 좋아해요!” “제가 강아지 캐릭터를 정하고 나니, 졸지에 저의 부모님도 강아지 캐릭터가 되셨죠. 하하하! 그런데 언니를 포함해서, 저의 가족의 실제 인상과 비슷하게 특징을 잡았어요. 아빠와 똑같이 눈이 ‘부리부리’한 언니의 캐릭터도, 실제 모습과 꼭 닮았다고 다들 말씀하시거든요.”

이 웹툰 연재의 가치는 특별한 지점에 있다. 청각장애인의 삶이 ‘있는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각색하거나 적당한 장치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청각장애인의 일상이 100% 그대로 노출된다. 인간 라일라의 삶이 생중계처럼 공개된다고 할까?

그래서 이 웹툰을 처음 접하는 비장애 중심의 시선에는 일정한 ‘낯섦’과 ‘당혹감’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낯섦과 당혹감이 이질감이나 거리감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청각장애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고 공유하며 공감하는 새로운 시선을 탄생시킨다. ‘나는 귀머거리다’의 참된 가치는 그 지점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제가 어떤 일을 겪으면, 친구들한테 얘기해줘요. ‘오늘 이런 재밌는 일이 있었거든.’ 웹툰에도 표현되는 것처럼, 제 일상 속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잖아요. 저 혼자만 알고 있기엔 좀 아까운 느낌 같은 거, 그래서 그걸 만화로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제 만화를 보면서 ‘인식개선이 됐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게 될 때마다 솔직히 저는 신기해요. 저한테는 완전히 저의 일상이잖아요. 그런데 독자 분들에게는 가깝고도 먼 이야기로 느껴지셨다는 거죠.”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입니다

   
 

이 글을 정리하는 시점 기준으로, ‘나는 귀머거리다’는 128화의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예정으로는 약 200편 정도로 마무리를 구상하고 있단다.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에피소드를 그릴 건지는, 이미 다 메모로 정리해서 벽에 전부 붙여놨다고 한다. 보통의 열정이 아니다. 벽에서 한 장씩의 구상이 떼어지면, 그 빈 공간에 새로운 기획과 구성이 채워질 게 아닌가.

라일라 작가는 모든 장애 영역 중에서, 청각장애인의 연대가 가장 약하다는 점을 거론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을 경우,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예가 청각장애인한테 가장 많다는 것이다.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인공와우시술을 통해 장애 영역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기에, 공통된 소통의 문화가 다른 장애에 비해선 아주 적은 편이란다. 일반적으로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고 교류하면서 일정한 동지의식을 느끼는 게 대부분인데, 청각장애인은 혼자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혼자 속으로 삭히는 생활에 익숙해진다고 한다.

“연대도 잘 없는 데다 구화를 위한 발음 훈련도 여의치가 않다 보니까, 일부러 의도한 게 아님에도 세상과 등지고 지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힘든 일이 있어도, 자기한테 흠이 있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속으로만 삭히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저의 웹툰을 보시고선 ‘나 혼자만 겪는 일인 줄 알았는데, 청각장애인 모두가 겪는 일이구나’,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희망을 갖게 됐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 말씀을 전해주실 때마다, 연재하는 입장에선 가장 큰 기쁨을 느끼게 되죠.”

 

삶 자체가 경험이고 유의미한 체험입니다

라일라 작가는 동양화 전공과 함께 국문학도 전공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왜 우리의 언어를 택했던 걸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열등감 같은 것도 작용한 것 같아요. 청각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문화의 습득이 가능하잖아요. 사투리나 비속어, 은어 같은 것까지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걸 하나도 몰라요.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요. 그래서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면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도전한 거예요. 학구열과 문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리말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망이 합쳐진 거죠. 국문학 전공은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너무 재미있는 강의를 많이 들었거든요.” 라일라 작가가 입학하자, 대학 측에서는 속기도우미를 그에게 지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데 익숙했다. 그런 그에게 속기도우미의 등장은 강의실의 교수와 칠판을 비로소 시선 안에 담게 만든 크나큰 계기가 된 게 분명한 일이다. 혼자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수업이 됐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긍정의 변화인가. 웹툰을 지망하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격려와 조언의 한마디를 남겨 달라 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선배냐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분명 엄청 높은 곳에 존재하는 선배의 자리에 그가 있는 게 맞다. 웹툰에 도전하려고 시작점에서 문을 두드리는 작가 지망생들의 규모는 우리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많다. 네이버 웹툰의 경우 ‘도전만화’ 코너에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올릴 수 있고, 그 중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작품들이 ‘베스트 도전’ 코너로 승격이 된다. 그 후에도 치열한 도전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공식적으로 네이버 웹툰 작가가 되어 연재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라일라 작가도 단순히 그림 좀 그리고 입담이 있는 정도의 수준이 아닌 게 분명하다. ‘웹툰 작가’라는 호칭이 수많은 ‘누군가’에겐 월계관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증거가 그것인 셈이다.

“경험을 많이 하고, 영화와 책을 많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여행이라든가 아르바이트라든가, 다른 무언가를 계속 접하는 과정 속에 경험이 쌓이고 하고픈 이야기가 풍성해질 테니까요. 그게 더 많이 쌓이고 더 풍성해질수록,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라일라 작가는 어떤 경험을 많이 했을까? 지금 작가로서 연재하는 웹툰 자체가 청각장애인의 삶 이야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은 남과 다른 청각장애인의 삶 자체가 자신만의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비장애의 삶 속에 들어가서 겪게 되는 모든 게, 그에겐 경험으로 쌓이며 축적된다는 대목은 밑줄을 긋고 싶은 내용으로 가슴에 남았다. 그는 인생 자체를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을 그리고 싶어요

   
 

‘나는 귀머거리다’의 모든 연재가 끝나면 이어질 후속작품이 분명 있을 텐데,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귀띔해 달라고 했다. 아직 없다며 적당히 무마할 줄 알았는데, 라일라 작가는 반색을 하며 자신의 큰 목표를 꺼내놓았다. 오래 전부터 구체적인 설계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반응이었다.

“저는 판타지라든가 일제강점기 시대 배경의 이야기도 그리고 싶어요. 특히 저는 전기문이라든가 평전 읽는 걸 엄청 좋아해요.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아주 많이 그려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떤 인물들을 구상하고 있는지를 말해달라고 했다. 곧장 하나의 이름이 나왔다.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윤동주 시인의 삶을 가장 먼저 그려보고 싶다는 것이다.

“제가 제일 해보고 싶은 게, 한국 근현대사의 시인 열 분을 뽑아서 만화로 연재하는 거예요. 진짜로 해보고 싶어요. 윤동주, 김소월, 백석, 김수영, 이상, 기형도, 이런 시인들의 생애를 만화로 표현해 보고 싶어요. 저는 우리나라 시가 너무 아름다워요. 보통 학생들은 교과서 수업으로만 시를 배우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시가 시험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거잖아요. 저는 정말로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시 작품을 남긴 시인들의 치열한 삶이 어떠했는지를 저의 만화로 그려보고 싶어요.”

라일라 작가는 밝았다. 한 군데 감추고 가려둔 그림자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애를 불행이 아닌 개성으로 존중해줬다는 그의 가족의 힘이 가장 컸을 게 분명한 일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 한가운데 가족을 등장시킨 건, 그의 삶에 중심이 되는 것도 가족임을 증명한다. 만남을 준비하면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 영국의 록그룹인 퀸(Queen)이라는 대목을 어디선가 읽은 바 있었다. 그래서 만나러 오는 동안 퀸의 라이브 공연실황을 들으며 왔다고 하니까, 그날 봤던 얼굴 중에서 가장 밝은 표정이 등장했다. 입가가 귀에 걸렸음은 물론이다.

“한 2011년도? 그때까지는 음악에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애국가 가사도 1절만 외웠을 뿐, 음악 자체를 모르고 지냈거든요. 방송에 나오는 댄스가수들의 시각적 이미지 정도만 좋아했던 수준? 당시에 제가 우울증이 좀 심했던 시기였는데, 인터넷에 누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공연 영상을 올린 걸 우연히 보게 된 거예요. 그걸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아, 저게 음악이구나!’ 저는 뭔가에 빠지면 엄청 심하게 빠져들거든요. 한 달 내내 그 동영상만 계속 반복해서 봤어요. 윤동주 시인의 시집에 빠졌을 때도, 매일 같은 책을 끝도 없이 계속 읽었거든요. 한 달 내내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반복해서 울려대니까, 제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꼼짝도 안 하니까, 저의 엄마는 제가 귀신이 들린 줄 알았대요. 하하하!”

청각장애 입장에서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함께, 스피커를통해 전해지는 진동으로 박자와 장르를 익혀간다. 라일라 작가는 그때부터 음악을 검색하는 데 전념했단다. 레드제플린, 비틀즈, 메탈리카 등등, 게다가 각 그룹의 멤버들 이름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면서, 존 본햄(John Bonham, 전설의 헤비메탈 그룹 레드제플린의 드러머)이 정말 최고라며 그의 엄지손가락이 우뚝 솟았다. 이후의 대화는 록음악에서 포크에 이르기까지, 음악 하나를 화제로 뜨겁고 즐겁게 이어졌다. 지난번 글에서도 같은 의미의 문장을 남겼지만,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하다. ‘나의 일’이 ‘나의 삶’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다른 세상과 다른 삶을 내보일 필요는 없다.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걸으며 달려가는 것 이상 충만한 생활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귀머거리다’의 멋진 연재와 함께, 그가 그림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세상을 어서 빨리 들여다보고 싶다. 이제 20대 후반의 나이,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선 그가 전할 무한의 감동을 기대한다. 그의 독자로서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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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행인
역시 라일라 작가님이셔용!ㅠㅠ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너무너무 기운이 나요!
우울했던 기운마져도 즐겁고 나도 열정적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ㅠㅠ
인터뷰라던가 찾아보고 싶었는데 겨우 찾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당!

(2016-11-28 22: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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