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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은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문화의 실현입니다 --한국장애학회함께 걷는 우리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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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6.12.27  11: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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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열린 한국장애학회 2016년 추계학술대회 현장에서 장애인문화예술극단 휠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수화통역을 진행하는 박미애 씨.

‘장애학?’이라는 물음표와, ‘장애학!’이라는 느낌표의 차이가 장애학의 존재를 구분하는 이 땅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있어야 할 학문이라 받아들이면서도, 그 학문의 명칭이 일면 생소하게 들리는 게 현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법학과 경제학, 인류학과 사회학 등을 각각의 개별적인 학문 영역으로 이미 알고 있었듯이, 이젠 우리 모두가 ‘장애학’이라는 명칭을 익숙하게 마주해야 할 시대가 됐다. 실제 존재하는 학문의 한 분야이기에, 그 학문의 탐구영역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할 일은 우리의 몫이 된다.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나라에 장애학의 존재를 가장 앞서 외치며 뿌리내리는 이들이 있어 찾아갔다. 한국장애학회가 이번 만남의 주인공이다.

 

한국적인 장애학을 재정립한다

한국장애학회는 2015년 5월 한국장애학회 창립총회 및 제1회 학술대회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하면서 정식 출범했다. 하지만 그 뿌리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학을 통해 개별적으로 장애학을 전공하고 돌아왔던 여러 전문가들이 2009년 10월 장애학연구회를 창설하면서, 대한민국 장애학의 첫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존의 장애 관련 학문들이 장애인복지학, 특수교육학, 재활과학 등으로 장애인의 삶에 도움이 됐던 건 사실이죠. 그런데 문제는 전문가 중심이다 보니까, 실제로 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지난 11월에 열린 한국장애학회 2016년 추계학술대회 현장에서 장애인문화예술극단 휠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장애인을 주로 서비스의 대상으로, 또한 교육과 재활의 대상으로 주시하다 보니,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일상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 측면이 컸던 겁니다.”

   
한국장애학회 초대 회장인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

한국장애학회 초대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장애학의 국내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장애인 당사자가 없는 장애 관련 행정의 맹점을 먼저 지적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의료와 복지 분야로 치우쳐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장애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라는 건, 사실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결정 과정에 의해 좌우되는 게 실제 현실이라는 점이죠. 그런데 그걸 기존의 학문에선 전혀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론의 논리보다는, 당사자의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는 관찰과 대안이 필요하다는 게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출발하게 된 장애학의 가치가 되는 겁니다.”

‘장애학, 누구와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첫 번째 주제의 학술대회로 출범한 한국장애학회는, 짧은 기간 동안 탄탄한 내적 구성을 갖추며 상승의 탄력을 이미 마련해놓았다. 학회 조직과 분과위원회의 내부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이 다수 포진하며 단단한 대열이 갖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분화된 각 분과위원회의 활동 또한 두드러진다. 총무분과위원회, 편집출판분과위원회, 학술분과위원회, 연구분과위원회, 정책분과위원회, 국내협력분과위원회, 국제협력분과위원회, 문학특별분과위원회, 문화예술특별분과위원회의 면면만으로도, 한국장애학회의 활동 범위가 얼마나 다양하고 구체적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동안 현장에서 활동한 장애인 단체들이 앞세운 논리들은, 장애학적인 요소가 이미 일정 부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학문의 이름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장애학의 틀이 현장에 적용되고 있었다는 거죠. 그게 장애학의 이론이라는 걸 몰랐던 것뿐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온 학자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유학을 다녀온 현장 활동가들에 의해 장애학의 이론과 논리가 재정립되고 있기에, 우리나라는 장애학이 정착할 기반이 이미 갖춰져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문화부터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장애학의 중심은 영국과 미국으로 대표된다. 영국의 장애학은 신체적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구분한다. 정의 또한 나눠진다. 손상은 ‘신체적, 정신적 또는 감각적 손상에 따른 개인 내적인 기능 제한’ 그리고 장애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으로 지역사회 내의 정상적인 생활에 참여할 기회 상실 및 제한’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장애의 개념’과는 뚜렷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 중심으로 모든 걸 평가하는 우리와 달리, 장애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차별과 장벽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장애학은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의 성장에 큰 영향을 받으며 싹이 트기 시작했다. 흑인들의 인권운동이 내걸었던 ‘통합교육’, ‘공공장소와 일터에 대한 접근 보장’, ‘분리 반대’ 같은 핵심 요구사항들을 이어받아, 장애인 인권운동에 접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전통적으로 개인주의와 실용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의 특성과 같이, 미국의 장애학도 장애의 문제를 사회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굳이 구분한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영국식의 장애학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법제도 개선에 큰 비중을 뒀던 거죠. 하지만 법과 제도 개선만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의 시각이 크게 바뀐 건 사실 없습니다. 근본적인 인식을 바꿔야 하는데, 단순한 인식개선 캠페인 같은 방식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미국의 장애학 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학회 회장인 조한진 교수는 문화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일회성 또는 일과성 행사나 캠페인으로는 바뀌지 않는 틀을 근본부터 바꾸기 위해선, 전체 사회의 문화를 움직이면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항상 언급하는 게,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편견과 선입견 같은 것이잖아요. 법과 제도로는 편의시설 보강 정도의 물질적인 개선만 뒤따르지, 그 편견과 선입견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왜곡된 시선과 인식을 바꾸는 가장 크고 강력한 방법은 문화로 표현하는 거예요. 실제로 매스 미디어와 영화, 드라마와 문학작품 속에서 장애인이 잘못 묘사되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왜곡된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부작용을 계속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그것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문화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따져본다면, 법제도 우선의 개선이 아닌 문화의 환경부터 바로잡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문화 공감대 한국장애학회는 한 걸음씩 내실 있는 발전을 전개하고 있다. 2009년 10월 장애학연구회 창설 이후로 정기 세미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 2011년 7월엔 한일 학술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2012년 12월엔 일본 교토에서 ‘장애학 한일 교류 심포지엄’을 열어 열띤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고, 2013년 10월에는 <한국에서 장애학 하기>를 출간함으로써 일반대중에게 장애학을 소개하는 길을 열기도 했다. 또한 2015년 5월 정식 출범과 더불어 봄과 가을에 각각 춘계 학술대회와 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에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 프라자에서 열린 한국장애학회 2016년 추계 학술대회도, 장애학에 관심 있는 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조한진 교수가 강조했던 바 그대로, 이번 추계학술대회는 ‘장애학! 문화와 바람나다’는 주제를 정하고, 문화 저변에서 장애학이 나아갈 방향을 토의하고 제시하는 장을 만들었다.

‘학술대회’라는 명칭이 전하는 딱딱함에서 벗어나 문학과 영화, 공연예술을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장애학이 나아가고 바라봐야 할 ‘문화’가 무엇인지를 참석자 모두가 함께 살펴본 것이다.

“장애학은 생긴 지 40여 년밖에 안 돼서 완전한 정착을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역으로 ‘젊은 학문’이라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접 학문과 만나면서 본질적인 장애학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특화된 장애학을 만드는 상승작용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맞는 장애학을 발전시킬 방안이 충분하다는 것이죠.”

문화를 바꾼다는 건 결국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꾼다는 의미가 된다. ‘A’라고 생각했던 걸 ‘B’로 바꾼다는 것, 그건 단순히 생각만 바뀌는 게 아니라 실제 행동도 변하는 커다란 변화가 뒤따르는 것이다. 그게 캠페인성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바꿈’이 되기 위해선, 대중의 기본인식이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조한진 교수는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예로 들며,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다른 미국 사회와 문화를 설명했다. “제가 미국 시카고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년 반 정도 연구원으로 있었어요, 제가 있던 사무실이 학장님 바로 앞방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5층이었는데, 경보가 울리면서 복도의 모든 차단벽이 다 내려오고 모두 다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어요. 화재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못 타니까, 제가 내려갈 방법은 계단밖에 없잖아요. 이미 모든 사람들은 다 대피했는데, 저한테 어서 피하라고 하셨던 학장님이 두 목발을 잡고 아주 천천히, 아주 힘겹게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던 제 뒤를 계속 따라오시는 거예요. 그 위급한 상황에서 끝까지 말입니다.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밝혀져서 급박했던 상황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저는 그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생각 자체가 다르다는 거잖아요. 제 뒤에서 한 걸음씩 끝까지 저와 동행하셨던 그학장님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건 ‘만약 우리의 경우라면?’이라는 우울한 상상이다. ‘배려’와 ‘함께’라는 게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다는 거, 그건 ‘같이 잘 살아보자’는 식의 화려한 방송 자막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행사 같은 걸 하고 뷔페에서 식사를 한다면, 우리 같은 경우엔 대부분 비슷하잖아요. 조교나 학생 한 명을 시켜 적당한 음식을 가져와서 제 자리 앞에 놓고 가겠죠. 그런데 거기선 학장님이 직접 빈 접시를 들고 제 곁에 함께합니다. ‘뭘 먹고 싶은가? 네가 얘기를 해라. 그럼 내가 접시에 담아주겠다’는 거예요. 그런 모습, 그런 행동에 일체의 권위의식 같은 게 없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거예요. 이건 ‘장애인에게 어떤 대접을 해야 한다’는 데서 한 차원 더 나아가서,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하는 문화적인 공감대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장애학회 소개와 별 상관없을 듯 보이는 미국 유학 시절의 일화를 두 가지나 언급하는 이유는, 조한진 교수가 특히 강조하는 ‘문화’의 의미를 보다 피부에 와 닿게 이해시킬 내용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방송과 문학과 드라마 안에서 장애인의 모습이 ‘좀 괜찮게’ 보이도록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의 변화를 통해 근본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바꾼다는 건, ‘삶 그 자체’에서 공동의 배려가 일상화되는 세상으로 승화됨을 의미한다.

한국장애학회가 나아갈 길이 비단길이 아님은 모두가 이미 알기에, 거친 자갈밭과 늪에 마주친다 해도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의 응원이 함께한다면 하나씩의 알찬 성취가 열매 맺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화려한 구호가 아닌 진지한 내실로 성장하는 한국장애학회의 오늘과 내일을 응원한다. 월간 <함께걸음>에는 이미 한국장애학회의 연재기고가 매달 진행되고 있다. ‘함께 걷는’ 동행 속에서 학회 구성원 모두가 꿈꾸고 기원하는 세상을 함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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