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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자 조금 더 나아가자대학 장애동아리 릴레이 연재 ②
글과 사진. 하태우/서울대학교 턴투에이블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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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0  10: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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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인권포럼 「장애의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대학 내 장애인권, 현황과 개선방안」을 다녀와서

 

변해가는 학교, 변하지 않는 학교

2010년 3월에 입학한 이래로 나의 대학생활은 다사다난(多事多難), 그 자체였다. 대학생 신분이 햇수로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학부 졸업이 요원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앞으로 경험할 대학생활보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대학생활이 더 많은 탓인지, 요즘은 캠퍼스를 거닐면서 심심찮게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고는 한다. 확실히 학교는 많이 변했다. 낡고 오래된 건물 대부분은 리모델링됐고 몇몇 건물은 아예 사라졌다. 이전에는 공터였던 곳에 지금은 식당과 카페, 세미나실, 전시 공간을 갖춘 큰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어쩌다 몇 없는 친구들과 새내기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나같이 학교가 참 많이 변했어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학교는 예전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지만, 또한 달라진 것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다. 여전히 내 전동휠체어는 계단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거나 장애인화장실을 찾아 헤매느라 쉴 틈이 없다.

학교 축제의 한복판에서 인권 행사가 진행되지만 정작 메인 무대 어디에도 수화 통역이나 자막안내는 없다. 장애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는 그야말로 한결같은 모습이다.

지금까지 어떠한 노력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간 학내의 장애 인권 증진을 위한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었다. 특히 ‘턴투에이블(정식 명칭은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TurnToAble’이며 현재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이다)’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고 이는 때때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은 어디까지나 학생 개인 혹은 동아리 차원에서의 시도와 노력일 뿐이다. 대학이 바뀌기 위해서는 대학이 고민해야 한다. 학교 차원에서의 시도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학교에게 어떤 존재들일까?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필요한 학생, 수화나 문자로 통역이 필요한 학생, 전공 서적이나 강의 자료를 음성파일로 제공해야 하는 학생 등 우리들의 장애와 그에 따라 필요한 지원은 다양하다. 과연 학교는 나를, 우리를 다른 이들과 같은 학내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을까? 우리들을 인정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고민할까? 얼마 전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다녀온 인권센터의 아홉 번째 인권포럼은, 학내 장애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우리들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인권포럼, 곰 인형의 재발견

지난 2월 14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주최로 「장애의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대학 내 장애인권, 현황과 개선방안」 인권포럼이 열렸다.

계절 학기가 끝나고 겨울 방학이 한창인 2월 중순에, 그것도 곳곳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얼어 있는 관악산 자락의 캠퍼스에서 ‘장애 인권’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어쩌면 행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무리수였는지도 모른다. 영하 8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학교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나를 포함한 동아리 친구들을 제외하면 과연 누가 이 날씨에 이곳을 찾아올까 하고 생각했다. 우정관 1층 로비에서 친구들을 만나 오들오들 떨면서 2층 대회의실로 올라갔다. 걱정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발표 내용을 담은 책자와 과자 몇 개를 챙긴 다음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어떤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첫 번째 순서는 작년 여름 인권센터와 턴투에이블이 함께 진행했던 ‘학내 장애인이동환경 조사사업’의 결과 보고서 발표였다. 조사 사업의 결과 보고서는 여러 주목할 만한 부분을 담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장애인의 이동 환경에 있어 가장 큰 문제가 여전히 물리적인 시설의 부재라는 점이었다.

드론으로 택배를 배송하고 스마트폰으로 포켓몬을 잡는 세상인데, 고작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어 신청했던 강의를 취소해야 하고 원하는 동아리 가입을 할 수 없다니. 당시 조사 사업에 참여하면서도 그랬지만 이렇게 잘 정리된 내용을 보니 또 한 번 힘이 빠졌다. 이는 장애 학생의 학내 이동권과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직접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조사 사업 자체도 마찬가지다. 인권센터의 기획과 지원이 없었다면, 활동 인원이 스무 명 남짓한 작은 동아리에서 학내 주요 건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사 사업의 결과 보고서 발표가 끝나고 다음으로 김원영 변호사가 발제를 맡았다. 김원영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형이자, 본교 학부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 장애 학생이었다. 선배는 먼저 자신이 입학했던 2002년부터 지금까지의 학내 장애 인권 운동을 되돌아봤다. 2002년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였으니까 그때의 관악 캠퍼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파르고 험준했을 것이다. 선배를 포함한 여러 명의 학생들은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이름으로 학내 곳곳에서 장애 학생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10년도 더 지난 ‘연사팀’의 활동들은 지금도 구글에 검색하면 수많은 기사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싸움은 계절을 가리지 않았고, 시험 기간과 방학을 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어떤 문제를 나의 문제와 남의 문제로 나누지 않았다.

선배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스크린에서는 연사팀의 활동 모습이 사진으로 제시됐다. 그중 하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느 건물의 실내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수동 휠체어가 세워져 있었고, 휠체어에는 하얀 곰 인형이 앉아 있었다. 선배는 사진 속 계단을 다 올라가야만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을 찍은 사람도, 사진 속 곰 인형도 지금은 학교에 남아 있지 않겠지만, 사진과 같은 상황은 여전히 캠퍼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자동문에 비데까지 된 더 좋은 장애인화장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화장실 문을 열면 각종 청소 용구에 쓰레기 봉지로 가득 차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제대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는 곰 인형에게 왠지 내가 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배는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물리적 환경이 개선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학내 구성원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 자체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온라인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병신’이나 ‘애자’, ‘장애인이냐? 그것도 못하게’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언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며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어쩌다 누군가가 이러한 표현의 부적절함을 이야기하면 되레 몰매를 맞는다. 마음대로 화장실도 못 가서 불편한데다가 끊임없이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더더욱 곰 인형에게 미안해졌다.

세 번째로 발제를 맡은 분은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의 김광이 대표였다. 원영 선배의 지적과 비슷한 맥락에서 김광이 대표는 장애 인권에 대한 ‘무감수성’이 학내에 만연하다는 점을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캠퍼스에 장애 학생의 수가 적기도 하고, 장애 학생 개개인이 일상에서 타인의 ‘무감수성’을 마주하면 할수록 많은 상황을 회피하고 외면하게 되며, 이는 기존에 만연해 있는 ‘무감수성’을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김 대표는 장애 학생 당사자의 장애로 인한 경험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장애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질 필요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표현과 수용, 그리고 존중. 구체적인 방법은 더 생각해야겠지만 이것만으로 온전히 마음에 와 닿았다.

 

조금 더 나아가기

김광이 대표의 발제가 끝나고 인권센터의 박찬성 변호사가 마무리 발언과 이후의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그 자체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분명하게 정리가 안 되는 지점도 있었다.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첫 번째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복도 쪽에 앉아 있던 사람이 손을 들고 두 번째로 질문을 했다.

자신은 우연한 계기로 장애와 관련된 경험을 몇 번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장애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원영 선배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선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변을 시작했다. 답변이 조금 길어서 내용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용의 요점은 이랬던 것 같다. 우리가 장애 인권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 드는’ 장애인의 모습을 상정할 때가 있다. 오늘 포럼에 참석한 세 명의 발제자도 모두 휠체어를 타고 있을 뿐 여기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장애 인권의 영역에서 정말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장애인들은 그렇지가 않다. 정말로 이들의 문제에 관심이 있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굉장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은 척박하고 가혹하다. 그들이 지속하는 투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인내해야만 끝날 수 있다.

언제까지 내가 지금과 같이 생활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더 이상 앉아 있을 힘조차 없게 될까? 근육병이 얼마나 더 진행이 돼야만 수영장에 가고, 친구들과 연극을 하고, 애인을 휠체어 뒤에 태우고 벚꽃을 보러 다녔던 시간을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게 되는 걸까? 내 삶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미 줄어들 대로 줄어든 삶을 무미건조하게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 혹은 다른 누군가를 보며 자신의 삶도 나중에는 저렇게 줄어들겠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작아질 것이다.

이는 대학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신축 건물에는 경사로나 장애인화장실이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학교 축제는 철저하게 비장애인 중심으로 기획될 것이다. 학내에서 장애 인권을 외치는 목소리는 조금씩 작고 단순해질 것이다. 나아가자. 계절에 상관없이, 시험 기간에 상관없이, 이것이 내 문제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나아가자. 조금 더 나아가자. 캠퍼스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곰 인형을 만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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