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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조연이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입니다서울시립 청소녀건강센터-----나는 봄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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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4  09: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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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의 다목적 프로그램실. 식사를 위한 식당 겸 교육실. 토론이 이뤄지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가출청소년’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건 무엇이 있을까?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청소년’ 대신 ‘가출청소녀’라고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기존의 부정적인 편견에다가 온갖 비윤리적인 굴레가 덧씌워질 게 분명하다. 불건전한 성(性)을 먼저 떠올리며, 모든 일그러진 상황을 덧칠하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출청소녀’가 사실은 우리의 일상 바로 곁에서 끊임없이 ‘SOS’ 구조신호를 보내던 위기 상태의 아이들이었음을 직시하는 순간 관점은 달라진다. 우리 모두의 딸이자 조카이고 사촌이라는 사실, 그걸 그들에게서 이끌어내는 한 단체가 있어 문을 두드렸다. 철저하게 그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서울시립 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이 그 곳이다. 진솔하게 자세한 설명을 전해준 백재희 센터장의 생생한 언어 중심으로 본문을 정리한다.

독자 여러분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은 건, ‘생생한 언어’로 풀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청소녀들의 거친 표현이 인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본문에 ‘OO’, ‘OOO’로 표기된 부분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

 

네가 옳아, 악착 같이 살면 돼

“잘 찾아오셨네요. 처음 오는 아이들은 여기를 찾기 힘들다고 불만이 많거든요.”

서울 지하철 합정역을 나와 어느 정도 걸어야 등장하는 골목 안쪽에, 서울시립 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이 자리 잡은 늘푸른여성지원센터 건물이 있다. ‘나는 봄’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단다. ‘I’m spring’, 그러니까 스스로가 봄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날아다니는 생동감의 ‘Flying spring’을 뜻한다고 한다. 밝게 환영하며 맞이하는 백재희 센터장의 첫 인상 또한 ‘나는 봄’이었다.

미리 언급하지만, 다른 취재와 다르게 ‘나는 봄’이 크게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눈높이’였다. 어른의 시선이 아니라 방문하는 청소녀들의 눈과 마음에 모든 걸 맞춘다는 것, 어디서나 듣게 되는 속칭 ‘꼰대’의 일장연설이 아니라, 청소녀들 스스로가 궁금해 하고 자문자답하며 마음을 열게 만드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센터의 모든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나는 봄’만의 노하우였다.

“사실 언론과의 만남은 가급적 사양을 해요. 언론이 원하는 건 뭔가 자극적인 것,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시혜적인 관점, 게다가 선악의 양분법 같은 걸 요구하거든요. 저희 센터는 ‘가출청소녀’로 상징되는 위기의 아이들이 주로 찾고 이용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려는 데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언론과는 일단 안 만나려 합니다. 아이들의 초상권 문제도 있고요. 저희가 하는 일은 탄탄한 내실을 다지는 게 우선이지, 굳이 이 아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외부로 홍보해야 할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함께걸음>은 어떻게 초대가 된 걸까?

시민사회단체의 한 어르신의 연결이 계기가 됐다. <함께걸음>한테는 거기를 취재하면 좋은 내용이 나올 거라고, ‘나는 봄’한테는 거기서 취재를 하면 좋은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봄’은 결정했단다. 취재를 받아들이기로 말이다. 취재하는 입장에서 특히 고마웠던 건, 카메라 앞에 센터 내부를 가감 없이 공개했다는 점이다. 센터에 있던 청소녀들의 초상권 보호를 당연히 지켰음은 물론이다.

   
 

“다들 별난 애들이죠. 별나게 행동하고 미움 받고 부족하고 또 사고치고, 이런 애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애들이 당장 듣고 싶은 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같은 훈계나 허튼 위로가 아니에요. 올바르게 살라고, 말 그대로 꼰대가 늘 하는 말 같은 건 필요가 없거든요. 어디를 가든 꼰대들한테 치였던 애들이잖아요. 그러면서 더 불만이 쌓이고 힘들어졌기 때문에, 저희는 아이들을 그렇게 마주하지 않아요. ‘맞아, 네가 옳아.’ ‘괜찮아, 잘 살아. 악착같이 잘 살면 돼.’ ‘죽지만 마. 왜 죽어?’ 이런 식으로 맞장구를 쳐 주면, 애들의 눈빛이 달라지죠. ‘이건 또 뭐야?’, ‘지금 뭐라는 거야?’ 하며 한 번 더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만드는 거예요.”

청소년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시설은 굉장히 많다. 국가 차원에서, 종교 시설이나 민간 차원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명칭의 청소년센터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자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설들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상처를 더 받게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배려한다 해도 버릴 수 없는 ‘꼰대’들의 시선 때문이다. 돌고 돌다가 지친 아이들이 ‘나는 봄’으로 찾아드는 이유가 그것일 것 같다. 여기는 꼰대가 없다는 것 말이다. 아니, 최소한 꼰대가 아닌 척 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백재희 센터장이 한 말이다.

따뜻한 밥 한 끼의 행복함

서울시립 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의 명칭에는 ‘건강’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센터의 주된 업무는 의료지원이기 때문이다. 성폭력, 성병, 임신 등 신체적 정신적 질병에 노출되기 쉽지만, 상담과 치료의 방법을 찾기 어려운 청소녀들을 위해 문을 연 게 바로 ‘나는 봄’이다.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치과, 정신과 등의 전문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매달 두 번째 주 금요일 저녁은 ‘나는 봄’ 건물 전체가 ‘불금’이 된다. 열린 공간으로 야간진료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 야간진료에 한해 남자청소년의 진료 이용도 가능하다. 청소녀들의 남자친구들이라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저희 센터의 존재가 아이들한테 각인이 된 건, ‘밥을 준다’는 점이 가장 클지도 몰라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절실한 부분을 먼저 해결한다는, 그래서 저희 센터의 별칭이 ‘밥 주는 진료소’로 알려져 있거든요. 처음에는 친해지기 위해서 식사부터 제공했어요. 애들이 돈이 없어서 굶는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원치 않았거든요. 어떻게든 먹을 순 있잖아요. 대신 여기에 오는 애들은 맛있게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 먹고살기 힘겨운 집안에서, 아니면 한부모나 조손가정 안에서 마음 편한 따뜻한 밥 한 끼가 아쉬웠던 아이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자주 오든 처음 방문하든 간에, ‘나는 봄’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구한테나 처음 듣는 말은 이것이라고 한다. “밥 먹었니?” 그렇게 묻고 나서 어느 선생님이든(‘나는 봄’은 활동가 대신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즉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단다. 제대로 된 주방시설이 없어서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만들지만, 최대한의 정성을 들여서 예쁜 그릇에 담아 ‘너를 위해서 준비했어.’라는 마음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식사자리엔 반드시 선생님이 함께 마주앉는다고 한다.

“저희가 하는 이 식사 시스템을 어느 사회복지 전공 교수님한테 설명 드렸더니, 그 교수님이 굉장히 유의미한 격려를 해주시는 거예요. 음식을 직접 만들고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는 거죠. 그 뒷모습에서 엄청난 마음의 위안(힐링)을 얻게 될 거라는 말씀에, 저희 또한 미처 몰랐던 커다란 의미를 깨닫게 된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는 거잖아요. 늘 했던 식사제공이었지만 따뜻한 밥 한 끼,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센터 구성원 모두가 되새기는 계기가 됐죠.”

실제로 센터를 찾은 모든 청소녀들한테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단다. 원래의 의도는 이 공간이 더 좋아지기 위해선 뭐가 더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만족했던 건 ‘밥 먹었니? 또 먹을래? 더 먹어라. 싸 줄 테니까 가져갈래?’ 이런 선생님들의 한마디 한마디였다고 한다. ‘나는 봄’을 찾는 청소녀들이 가장 크게 가슴으로 받아들인 건, 바로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식탁으로의 안내였다는 결론이 된다.

   
 

어, 제 얘기도 들어주네요?

이제부터는 서문에 미리 밝혀뒀던 ‘OO’과 ‘OOO’이 등장할 순서가 된다. 실제 사례를 언급해야 하기에, 무슨 단어가 ‘OO’으로 대신 묘사됐는지는 어렵지 않게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추측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저희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하는 욕설이나 비속어를 똑같이 맞받고 되물으며 대화를 나눠요. 순간순간 멈칫하는 건 오히려 말을 하던 아이들이죠. 왜냐? 그런 반응과 이해를 받아본 적이 없던 애들이니까요.”

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하필이면 처음 방문했던 ‘청소녀’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욕설을 내뱉던 아이였단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알아보니까, 모든 청소년 관련 센터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중학생 연령의 아이였다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선생님과 활동가들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오죽했으면 한 복지관의 선생님은 이 여자애를 감당하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퇴사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인지의 감을 잡는 건 독자 여러분의 몫이 될 것 같다.

“저희 센터의 진료보다는 외부의 병원으로 진료를 나가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나가자고 했는데, ‘아, OO, 비가 와. 택시 태워줘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동행한 선생님이 ‘돈도 많다. OO, 까불지 말고 나와. 죽을래?’ 그러니까 얘가 ‘어, 이건 뭐야? 선생이 왜 이래?’ 하며 당황을 했던 거죠. 사실 저의 센터에선 욕에 아주 능숙한 선생님 한 분을 모셨어요. 일부러 한 분을 심어놓은 거죠. 아이들의 욕은 그들 연령대의 대화법이에요. 그걸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대안도 없는 황당함이지만, 그건 사실 애들한테는 감탄사 정도로 주고받는 일상의 표현이거든요. 그걸 감당하며 넘어서야 하는 게 저희들의 임무이기도 했으니까요.”

같이 택시를 타며 선생님이 기사님한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니까, 그 아이의 반응은 ‘뭐래니? 잘난 척하고 OO이야.’였단다. 그래서 선생님이 한 맞대응은 ‘조용히 해, 죽어.’였는데, 차에서 내릴 때 ‘감사합니다!’는 선생님의 인사에 대한 반응 또한 ‘허참, OO!’이었단다. 병원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선생님께 인사를 드려도 ‘개무시’하던 그 아이는 진료실 문을 나설 때는 침묵하다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사와 마주할 때 이 한마디를 꺼냈다고 한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모든 청소년 기관과 시설에서 블랙리스트 영순위로 올라 있던 이 아이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했다는 거죠. 왜냐,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걸,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걸 ‘욕쟁이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실감하게 된 거예요.

선생님이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물었대요. ‘어? 네가 인사를 해? 재수 없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대요. ‘근데요. 신기한 게…, 인사를 하니까 약사선생님이 제 인사를 받아주네요?’”

 

가장 절실한 건 가장 단순한 결핍에서 시작된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그 아이는 집 안에서 제대로 된 정서적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하며 살아왔어요. 그렇다 보니 ‘내가 이렇게 계속 당해야 돼?’ 하며 외계인처럼 방황했던 거예요. 싸움이 붙어도 ‘나한테 걸리면 죽어!’ 이래야만 자기를 보호할 수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 절대적인 자기보호 본능이라고 할까? 그랬던 아이가 여기에 와서, 자기한테 말대답으로 욕을 하는 선생님이란 대상을 처음 만난 거예요. ‘OO’이라고 하면 ‘OO’이라는 표현을 같이 쓰며 대화가 진행되니까, 그 아이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 입장에선 ‘여기는 뭐하는 데야?’ 하며, 자기 자신과 이 상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던 거죠.”

그 ‘블랙리스트’의 아이는 결국 소년원에 가게 됐다고 한다. 폭력과 조건만남과 보호처분 등의 갖가지 상황에서도 말썽이 계속되던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보낸 편지가 ‘나는 봄’의 선생님한테 왔단다. 그 사연 안에는 이런 한 줄이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올바른 걸 얘기하며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하면 더 쉬울 것 같았어요. 나쁜 짓을 했다면 ‘왜 했니?’, ‘왜 그랬니?’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어떡할 건데?’, ‘너의 계획이 있을 텐데 말해볼래?’ 그런 밑바닥에서 출발하면, ‘후유, 나도 몰라요. 어떻게 해야 돼요?’ 하며 애들이 되물어본다는 거죠.

‘그래? 그런데 나한테만 물어보지 말고,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물어봐. 사람의 생각은 여러 가지로 다 다르거든.’ 대신 선택은 네가 하는 거라고, 너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줘요. 애들은 그때부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죠. 스스로의 삶과 결정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는 거예요.”

일반적인 청소년센터는 사례관리를 위한 담당자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A라는 아이는 A선생님한테, B라는 아이는 B선생님이 전담을 하며 업무상의 상담기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A아이가 센터를 방문했을 때 듣게 되는 말은 ‘어, A 왔니? A선생님이 지금 저기서 상담 중이야. 기다려라.’ 그러면 마냥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봄’의 입장은 다르다. 아이들의 마음속 이야기가 어떻게 사례관리의 문서로 남겨져야 하느냐는 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나는 봄’ 센터의 봉사자나 의료진한테 저는 항상 강조를 해요.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이라고요. 그런데 사실 이 ‘좋은 어른’이라는 표현이 저희들 내부에서 나온 건 아니에요. 아이들한테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라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한 아이가 ‘나는 좋은 어른이 되는 거요’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좋은 어른이 뭔데?’ 하며 되물었더니, ‘좋은 어른은 빚 안 지는 거고요. 또 애들 데리고 놀러 다니는 거고요. 제 얘기를 잘 들어주는 거예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거예요.”

아주 흔하게 듣던 얘기 같지만, 그 발언의 의미를 되씹어보면 가슴 아픈 내용일 수밖에 없다.빚? 빚으로 풍비박산이 난 가정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같이 놀러 다닌다는 거’, 이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그런데 이 자체가 없는 상태의 가정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 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는 거, 어쩌면 아이들한테 가장 결핍됐고 가장 갈망하던 게 이 대목인지도 모른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하다는 거, ‘나는 봄’의 존재이유는 이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위기 상태인 청소녀들의 건강과 인생 상담을 전담하는 모델이 전국에 저희밖에 없어서, 사실 모든 사례들을 하나하나 새로 만들어가야 해요. 기존의 진료와 상담방식으로는 해결 안 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보고 자료를 만들고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 또한 저희들은 지양하고 있어요. 성과를 내세우는 게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건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결과만 낳게 되니까요.”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입니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녀들을 대하는 ‘나는 봄’의 운영방식이 남다른 것은, ‘나는 봄’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살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나는 봄’의 모(母)법인은 운영법인인 (사)막달레나공동체다. 성매매여성들의 인권과 건강을 지원하며 수십 년의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더 나이 어린 대상으로 눈을 돌린 데서 보다 직접적인 해결책 모색이 가능해진 셈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거칠고 가장 밑바닥의 삶과 함께했던 거잖아요. 쉼터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만나던 그 여성들은 이런 얘기를 자주 꺼내곤 했어요. ‘야,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누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줬으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냐?’,

‘내가 십대 때 여기를 알았어봐. 그럼 지금보단 좀 낫지 않았겠냐?’ 너무나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고백이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희는 이렇게 답했어요.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그리고 네 경험이 네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고 말예요. 이게 막달레나공동체의 주된 가치거든요.

‘네 경험은 그때의 경험인 거야. 지금까지 연관되진 않아. 계속 연관될 거라고 믿진 말자. 이겨내고 벗어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 많으니까 말이야.’”

‘나는 봄’을 자주 찾는 이들 중엔 십대 아기엄마들이 많다. 세상에서는 미혼모라고 서늘한 시선만 던지지만, 어린 아기엄마들이 마음 놓고 존재할 공간은 사실 찾기 힘들다. 차가운 시선에서 벗어나 육아의 정보를, 자신의 건강을, 가득 쌓인 심리 상담을 편하게 받을 곳을 찾고 또 찾다가,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결국 ‘나는 봄’으로 귀결된다.

“여기 선생님들이 아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아기들이 오면 너무 예뻐서, 너도나도 안고 업고 난리가 나죠. 아기엄마들은 아기를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갈 데가 없어요. 특히 본인의 치과 치료를 아기와 함께 갈 순 없잖아요. 치료하는 동안 아기를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엄마들한테 이곳은 가장 마음 편하게 치료 받고, 위안과 힘을 얻게 되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저희는 아기를 위한 선물도 한아름 안겨주죠.”

처음엔 센터 안에서 데면데면하던 청소녀들은 아기들의 등장에 분위기가 바뀐다고 한다. 그중에는 ‘내가 이모야!’ 하며 아기를 안고 너무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도 있단다. 유독 아기를 잘 돌보는 아이들은 나중에 선생님들께 털어놓는다고 한다. 출산 경험이 있다고, 그리고 입양을 보냈다고 말이다. 그러면 선생님들의 격려가 시작된다. 훌륭하다고, 잘했다고, 생명을 지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이냐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말을 꺼내면 손가락질 받을 줄 알았는데 칭찬을 받으니까, 그 다음부터 애들은 자기 아이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요. 다른 아기를 보면 ‘우리 애도 이만큼 컸겠지?’, 어린이날이나 주말이 되면 ‘우리 아이도 어디 놀러갔겠지?’ 하며 그리움마저도 마음을 열어놓는 거죠. 아이들은 무언가를 고백하면,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센터나 복지관에서 활동가들한테 그런 반응을 접했던 경험들이 있었던 거죠.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하나예요. 같은 입장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모든 걸 긍정의 관점으로 대화를 나누면 되거든요.”

 

덧붙임. ‘나는 봄’ 백재희 센터장과의 긴 대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 지적장애를 가진 청소녀, 그 중에서도 경계성 지적장애 당사자들의 현실과 실제 상황이었다. 센터를 이용하는 당사자 청소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도 폭넓게 들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에 별도의 지면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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