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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저서 <나를 알아줘>우리를 알면 함께하는 세상이 열린다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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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2  09: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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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빈 작가와 강캐빈 작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출간된 서적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눈에 띈다. 필요 이상 쉬운 표현 위주로 일관한다는 것, 완곡한 권유 같지만 결론은 규정으로 귀결된다는 것, 더 큰 자유를 언급하면서도 마지막은 가이드라인만 남는다는 것 등이 거기에 해당된다. ‘발달장애인은 내용을 이해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발달장애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림을 그려, 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 정확히 맞춘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것이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선언과도 같은 책을 기획・출간한 성남시장애인권리증진센터(이하 증진센터)에서 그 주인공들을 만났다. <나를 알아줘>의 모든 그림 작업을 담당한 강캐빈 씨와 이해빈 씨, 또한 증진센터가 이뤄낸 성과를 함께 들여다본다.

 

실제 사례들을 공유하는 책

‘발달장애인의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나를 알아줘>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달장애인이 당하는 학대의 사례들을 발달장애인의 시선으로 열거하고, 그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내며 문답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장애인 학대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앞부분을 지나면, 장애인 학대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눠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다.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경제적 학대, 유기와 방임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상기시킨 다음, 여러 가지 예를 등장시켜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점검하게 만든다. 신체적 학대의 경우 아래와 같은 항목들을 읽으며, ‘내가 당한 일’이 무엇이고 그게 신체적 학대였음을 직접 확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 손, 주먹, 손바닥으로 나를 때렸습니다. ○ 발로 나를 차거나 때렸습니다. ○ 나에게 발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 나를 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 손톱으로 나를 꼬집었습니다. ○ 내 팔이나 목을 꺾거나 비틀었습니다. ○ 가기 싫은데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라는 소제목으로 하나씩의 실제 사례를 등장시키는 구성은 집중도를 높이며 빠른 이해를 돕는다. 정말로 이런 학대가 존재한다는 것, 이러한 학대를 실제 경험했다면 앞으로는 당당하게 거부해야 함을 발달장애당사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책 55면의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를 예로 옮기면 독자들의 이해가 편해질 것 같다.

나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돌아다니면 혼냈습니다. 선생님 “왜 계속 돌아다니면서 말썽을 피워! 이 약 먹어.” 선생님은 나에게 약을 주었습니다. 나는 약을 먹었습니다. 나는 약을 먹고 나니 하루 종일 졸음이 왔습니다. 나는 약을 먹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약을 먹고 잠만 잤습니다.

102면과 103면에 제시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같은 경우 실제 이런 일이 있을 만하다는 공감, 더불어 그게 바로 심각한 학대 행위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나는 수업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왜 엉뚱한 소리를 하니? 교실 뒤에 나가서 손들고 있어.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라고 큰소리로 말해.” 나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나는 선생님이 시켜서 교실 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손을 들고 ‘정신을 차리자’라고 계속 외쳤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앞에 있어서 나는 창피했습니다.

   
   
   
 

우리도 독서의 주체가 돼야 한다

<나를 알아줘>의 가치는 당사자들에게 맞춘 눈높이이고, 그 눈높이를 당사자들이 직접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은 많을 수 있지만, 실제로 직접 기획과 제작에 착수했다는 건 남다른 실천이자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나를 알아줘>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증진센터 박윤근 팀장의 설명이 뒤따른다.

“취미 이상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어머님들을 만났을 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언젠가는 꼭 자녀가 그린 그림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 걸까요? 최근 장애분야에서 ‘장애인 보완대체의사소통(AAC, Augmentative& Alternative Communication)’이 확산되고 있죠. 저희 기관에서 발달장애인의 AAC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이 책의 기획과 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증진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학대피해나 장애로 인한 차별경험 상담을 진행할 때, 언어보다는 그림이나 사진을 활용했던 경험과 사례가 많았거든요.”

박윤근 팀장은 <나를 알아줘>가 신선하면서도 굉장히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되돌아봤다. 평소 서점에 갈 때는 필요한 책만 찾고 구입하는 데만 익숙했었는데, 이 책을 제작하고자 마음을 먹은 뒤부터는 그제야 비로소 서점의 천장이 보이기 시작했단다. 천장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A 문학, B 여행, C 역사’ 등등 책의 성격과 대상에 따라 크게 분류가 돼 있는 게 눈에 띈 거죠. 예를 들어 아동들을 위한 동화책, 남성들을 위한 스포츠 잡지, 직장인들을 위한 자기개발서 등이 일일이 다 나눠져 있는데,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찾기란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아직까지도 발달장애인이 책을 읽는다는 걸 생소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 되겠죠. 그건 역설적으로 발달장애인을 주된 독자로 하는 서적의 출간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대가 아닌, 실제생활에서 발달장애인이 생각하는 학대의 개념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다는 구상이 진지하게 떠올랐죠. 당사자들에게 폭언을 일삼는 사람의 입을 강조하며 그려서 입에서 각종 흉기가 쏟아져 나오는 그림을 보게 하면, 신체적 폭력보다 말 한마디가 더 큰 학대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게 되잖아요. 그 모든 걸 발달장애당사자들의 의견과 능력으로 만들어 보자는 설계를 함께 세우게 됐고, <나를 알아줘>는 그 첫 번째 결실로 탄생한 결과물이 되는 겁니다.”

 

새로운 결실은 계속 만들어진다

 

   
<나를 알아줘> 책 표지

<나를 알아줘>의 글 내용은 먼저 사회복지사들이 정리했지만, 46명이나 되는 발달장애당사자들의 감수를 일일이 거쳤다는 점이 남다른 특징으로 기록된다. 당사자들의 생각과 표현이 생생하게 담기는 데 중점을 뒀고, 당사자들의 이해도에 맞는 쉬운 문장과 용어를 직접 선별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도가 한눈에 읽혀지는 그림들이 다수 삽입됐다는 점이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당사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번 출간작업에는 강캐빈 씨와 이해빈 씨가 그 실력을 인정받아 우선섭외가 됐다고 한다.

1990년생 27살인 강캐빈 씨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7년 전에 귀국을 했다고 한다. 아직까진 우리말이 서툴러서 영어가 먼저 나오지만, 한 단어 한 표현씩 우리말을 익히기 위해 노력한단다. 1994년생 23살인 이해빈 씨는 자폐를 가진 당사자로선 극히 드물게 활동보조인 활동을 직접 하는 젊은이란다. 성남시 한마음복지관의 Airattack팀의 농구선수로 활동하는 등 스스로 사회성을 찾아가기 위해 힘쓴다면서, 꽤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며 몇 가지 사항을 연이어 설명하기도 했다.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됐을 때의 심정이 어땠는지, 캐빈 씨의 어머니 강영옥 씨와 해빈 씨의 어머니 박경희 씨의 음성으로 대신 들어봤다.

“일단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기뻤고요. 캐빈이 뭔가 전문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림을 통해 무언가에 봉사하는 삶을 저는 원했거든요. 저는 캐빈이 뭔가를 해야 할 때마다 항상 이해를 먼저 시켜요. 이해를 안 시키면 부모가 그냥 끌고 가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이런 작업을 해야 하고 약속된 날짜까지 마쳐야 한다는 거,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걸 물어보니까 자기가 그리고 싶대요. 그래서 능동적인 마음자세로 참여하게 됐어요. (강영옥 씨)”

“저도 굉장히 기쁘게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큰 원석(原石)이라도 세공하지 않으면 보석이 될 수 없는 거잖아요. 해빈이의 그림 실력이 이런 좋은 기회를 만나게 돼서, 훌륭한 결과물로 탄생하게 됐다는 데 큰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장애‘라 하면 지체장애 중심으로 사회가 바라보잖아요. 그런데 발달장애인의 시선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자료가 만들어진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더 소중한 작업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의 범위가 꼭 발달장애인한테만 국한된 건 아니라고 봐요. 이 사회의 모든 소외계층들의 현실도 이 책 안에서 투영할 수 있다는 거죠. 똑같은 입장이라는 거, 위치와 상황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차별의 형태는 대동소이하다는 점에 이 책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박경희 씨)” <나를 알아줘>는 초판으로 7백 부를 제작했는데, 발행부수 10배 이상의 주문신청이 들어와서 추가로 증보판을 찍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도 구독할 수 있도록 리디북스(ebook) 와 계약을 맺었고 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다고 하니,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도 손쉽게 <나를 알아줘>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업이 일과성 아닌 장기기획으로 설계되고 있다는 박윤근 팀장의 부연설명은 증진센터의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든다. “<나를 알아줘>는 발달장애인이 겪는 학대를 중심으로 출간했는데, 앞으로도 새로운 기획으로 계속 이 작업을 이어갈 겁니다. 발달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일할 권리, 문화와 여가를 즐길 권리, 선거에 참여할 권리 등, 발달장애인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작업을 ’참여와 인권‘의 가치를 기반으로 계속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만들 이 작업에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께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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