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
드러나지 않아 더 소외되는 청각장애인 참정권
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  cowalk100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6.12  18:09:3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청각장애인 김상섭씨가 스마트폰 음성-문자 변환 어플을 이용해 투표사무원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후보자 자질 검증에 신경 썼다. 지금껏 한 번도 실시된 적 없는 무(無)원고 스탠딩 형식의 토론이 시도돼 많은 주목을 얻었지만, 여기서도 청각장애인의 권리는 뒷전이었다. 토론자 5명에 배치된 수어 통역사는 단 한 명. 치열하게 오가는 다섯 후보자의 토론 내용을 청각장애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참정권 보장은 권고사항 아닌 의무

   
장애인문화정보누리에서 제작한 대선 토론 수화통역사 배치 예시.

5월 3일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여론조사에서 ‘TV 토론이 지지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40.5%로 절반에 가까운 수준을 보였다. 같은 날 또 다른 매체에서는 TV 대선토론 방송 시청 후 유권자의 21.5%가 선택을 바꿨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대선토론이 유권자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토론방식에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후보자들의 자질을 여과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에게 이 당연한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는 토론회가 계속되는 동안 청각장애인의 대선 정보 접근권 보장을 위해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검토하겠다”는 입장만을 밝히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시간끌기를 했다. 방송국 역시 현실적 제작 조건의 한계, 비장애인 시청권 등을 이유로 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일부에서는 “수화 화면 대신 자막 서비스(폐쇄자막)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자막의 속도가 화자의 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오타가 발견되는 등 보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에게 언어체계가 다른 제2외국어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듯 수어를 모국어로 하는 청각장애인에게 한국어는 제2외국어나 다름없어, 한글 자막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비장애인에 비해 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후보자를 선택하거나, 결국 소중한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는 엄연히 반인권적 차별에서 비롯된 결과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정보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토론방송의 수어통역사 배치는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 정도로 언급돼 있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돌발상황에 투표사무관은 속수무책

투표과정에서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없을까? 대선 본 선거 당일, 수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김상섭 씨를 따라 투표소를 찾았다. 선거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각 투표장에 장애인을 위한 투표 안내 매뉴얼과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는 등 장애인 참정권을 위해 다방면의 준비를 마쳤다며 홍보했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투표소에서 수화통역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투표사무원은 김상섭씨에게 안내매뉴얼을 내보이며 투표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매뉴얼에 따라 김상섭씨가 건넨 신분증을 확인한 사무원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한 건물에 투표소가 2개였던 탓에 투표소를 혼동한 것이다. “투표소를 잘못 찾았어요”라는 사무원의 말에 김상섭 씨는 급히 스마트폰의 음성-문자 변환 어플을 실행해 다시 설명을 부탁했다. 어플의 도움을 받아 옆 투표소로 이동한 김상섭씨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대선투표 기간 동안 선거관리위원회에 수화통역사 인력을 지원한 농아인협회 측에 따르면, 본 투표에서는 총 230명의 수화통역사가 배치됐다. 전국 1만3천여 개의 투표소 수를 생각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스마트폰 사용에 무리가 없는 김상섭씨의 경우 투표가 가능했지만, 만약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거나 수어 이외에 다른 언어 체계에 미숙한 유권자였다면 과연 무사히 투표를 마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투표 후 김상섭씨에게 소감을 묻자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안내자와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수화통역사 배치가 확대된다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선거관련 정보 접근권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우리가 함께 있어야 할 이유
2
발달장애인 권리 증진 국제학술대회 개최
3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수사매뉴얼 발간
4
“국가는 장애인 학대피해 예방할 책임 있어”
5
우리의 무관심은 역사를 반복시킬 수 있다
6
제 4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 개막
7
「기초생활수급 장애인을 위한 근로유인 해외 제도 분석 연구」보고서 발간
8
케어라는 이름의 폭력
9
인천시, 인천대공원 '무장애나눔길' 조성
10
수원시, '장애물 없는 놀이터' 만든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제호: 디지털 함께걸음  |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김성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