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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 바로 국민입니다군인권센터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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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1  1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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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 김형남 간사

2012년 111명, 2013년 117명, 2014년 101명…, 적지 않은 이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윤일병 사건, 허일병 사건, 노훈련병 사건, 오대위 사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 내용과 원인이 무엇일까? 문제의 핵심은 복잡한 만큼 단순하다. 없었어야 했던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조직 차원에서 덮고 감추려 시도했다는 점, 그나마 외부로 알려졌기 때문에 국민이 알게 된 사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위의 사건들은 모두 ‘죽음’과 연결돼 있고, 상황의 심각성은 이 글 첫 문장의 숫자들이 대신 증명한다. 군복무자의 연간 사망자 규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수많은 부모, 적지 않은 젊음들이 가슴 졸이며 진지하게 직시해야 할 군(軍) 내부의 인권실상을 등대처럼 밝히며 파헤치는 이들이 있어, 그들의 활동과 대안을 함께 들여다봤다. 군인권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기시감’이랄까? <함께걸음>이 시설문제에 집중하던 그 모습 그대로의 느낌과 실감이 눈앞에 선해지는 이유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과 공유가 가능해질 것 같다.

 

군(軍), 을(乙)들의 전유물인가?

‘군대 얘기 30년 간다’는 말이 있다. 부풀려진 허세와 과장이 대부분이지만, 군 복무를 마친 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만큼 ‘전혀 다른 세계’를 겪으며 생존했다는 반증이고, 그만큼 용납할 수 없는 응어리를 지워내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이 되기도 한다. 군(軍),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누군가에겐 도전이고,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되며, 누군가에겐 생을 접어야 할 막다른 절벽이 되는 걸까.

군인권센터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7년여 전 언론에 공개되면서 모두의 공분을 샀던 기사 한 대목을 옮기며 군대의 의미를 되씹어 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17대 정권(2008~2012) 최고위층 인사들의 병역기록이다. 이명박(대통령, 면제), 김황식(국무총리, 면제), 원세훈(국정원장, 면제), 안상수(여당 원내대표, 면제–행방불명), 강만수(특별보좌관, 면제), 윤증현(재경부장관, 면제), 정종환(국토해양부장관, 면제), 이만의(환경부장관, 면제), 전윤철(감사원장, 면제), 정정길(대통령실장, 면제), 원희룡(혁신위원장, 면제), 김성환(외교통상부장관, 면제), 백희영(여성부장관, 해당 없음)…. 그나마 눈에 띄는 1인이 있다. 김태영(국방부장관, 합참의장 만기전역). 그렇다. 이게 대한민국이다.

 

모든 군인은 국가의 존엄한 존재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009년 12월 창립식과 함께 개소하면서, 인권의 무풍지대였던 군 내부를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국내 대표적인 인권단체로 발돋움했다.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으로 일정부분 군대의 인권상황도 관찰의 대상 안에 포함되긴 했지만, 공무원 조직이라는 한계와 통치권자의 의도에 따라 좌우되는 부침에 의해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군인권센터의 등장은 비정부기구로써의 독립성을 견지하며,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권침해와 차별의 문제를 국민의 시선으로 직시하는 게 가능해진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군인권센터는 인권침해 상담 및 피해자 법률지원, 인권의식 향상 캠페인, 입법 및 제도개선 등은 기본사항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본질의 날개를 보다 넓고 크게 펼쳐낸다. 유엔(UN)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법(대한민국 국회가 비준함)이 실제 현실 안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국방예산, 군축, 무기거래 등과 같은 거대한 예산의 집행을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이는 지금까지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국방예산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겠다는 도전이며, 철의 장막처럼 가려져 있던 군대의 울타리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군인권센터의 핵심 중 하나는 일반 군복무자들의 상담전화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군복무 중 발생하는 모든 불편함과 불합리한 상황, 직접 목격한 비리 등을 직접 신고할 수 있다. 02-7337-119(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상담 가능)인 대표전화까지 이 지면에 밝혀놓는 이유는 군복무가 교도소처럼 유폐된 상황이 아닌, 해당자격을 가진 누구나 국민의 의무로써 거쳐야 할 당당한 권리의 행사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진실은 밝혀진다, 생명이기에

“군인권센터의 신고전화를 저희는 아미콜(ArmyCall)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전부터 운영했고 그 명칭을 붙인 건 2014년인데, 재작년 2015년에 육군에서 아미콜의 상표등록을 시도했습니다. 한마디로 뺏어가겠다는 것이죠. 저희 센터에 병사들의 신고전화가 크게 늘어나니까, 군에서는 아미콜을 이용하지 말라는 공문까지 예하부대에 내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더 고마운 입장이 됐죠. 왜냐하면 아미콜의 존재를 군 전체에 확실하게 알려준 계기가 됐으니까요. 상표등록 시도에 대해서 군인권센터가 특허청에 소송을 걸었고 작년 2016년에 승소를 했으니까, 아미콜은 군인권의 대표번호로 확실한 인지도와 함께 계속 유지가 되는 겁니다.”

취재를 위해 마주한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 김형남 간사는 핵심사항 중심으로 단번에 이해가 가능한 설명을 이어갔다. 군인권센터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아하, 그게 바로 군인권센터였구나!’ 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대표적인 활동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 2014년에 발생했던 윤일병 구타가혹행위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이었다.

“군대 내 가혹행위나 구타, 그것이 이렇게 전면적으로 전체 사회에 이슈가 됐던 건 거의 처음이었죠. 말 그대로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던 사건입니다. 그 이전까지도 참혹한 사건들은 비일비재했지만, 대부분 은폐되고 변명으로 일관됐던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 사건은 달랐습니다. 국민들은 군에 대해 쌓였던 불신을 일시에 표출하게 됐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됐습니다.”

실제로 그 사건의 파장은 엄청났다. 인간의 형태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전신이 시퍼렇게 피멍 든 시신의 모습에서, 군 생활을 경험한 어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와 삼촌처럼 군대를 이미 체험한 남성들뿐 아니라, 어머니와 누이들처럼 가족의 입장인 여성들까지, 게다가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이나 군복무를 앞둔 젊은이들한테도 그 충격은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갔다.

“군에서 나올 수 있는 잘못되고 왜곡된, 바로 잡아야 할 모든 부분들이 이 사건 안에 다 녹아 있습니다. 윤일병은 2014년 4월 13일에 사망했는데, 이 사건이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사회에 드러난 건 같은 해 7월이었죠. 군이 묻어버리려 했다는 겁니다. 쇼크사(死)였다는 거죠. ‘냉동만두를 먹다가 목에 걸려서 기도폐쇄로 죽었다’며 내부적으로 입을 맞춘 거짓말을 내세웠는데, 저희 센터의 운영위원이셨던 현직 의사선생님이 증언을 해주셨어요. 그 증언에 따라 진실이 파헤쳐진 거죠. ‘20대 젊은 남성이 음식을 먹다가 기도폐쇄로 죽을 확률은 0%에 가깝다. 음식이 걸려도 다 토해낸다. 이건 임종을 앞둔 어르신들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이건 분명히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동안 군인은 국민이 아니었다?

   
 

윤일병 사망사건 이후로 군인권센터의 인지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센터의 관점은 다른 지점에 집중되고 있었다. 실제로 윤일병 사건 이전 해인 2013년 센터의 연간 상담건수는 122건이었는데, 윤일병 사망사건 폭로 이후인 2014년에는 상담이 무려 836건으로 급상승한다. 이걸 인지도 상승이라 자부해야 할 일일까? “아니죠.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군 내부에 가혹행위가 없었을까요? 그건 아니라는 거죠. 다들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아야지’ 하며 삭히기만 하다가, 윤일병 사건의 공론화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살아날 방법을 찾아낸 거라고 봅니다. 죽을 수 있는 상황까지 내몰렸었는데, 또한 평생 트라우마를 지녀야 할 상태였는데, 그걸 어떻게든 벗어날 대안을 찾게 됐다는 거죠. 저희 센터의 성과라기보다는, 열린 소통의 공간을 현역 군인들이 찾아냈다는 점에 훨씬 큰 의미를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군대의 사건사고가 윤일병 사건 하나만 있는 건 아니기에, 센터의 활동과 연관된 다른 사고사례를 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오대위 사건’이 등장했다. 한 여성장교의 자살이라 지나치기엔 너무나 비상식적인, 군 내부의 모든 비리가 집약된 구조적 만행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군 성폭력사건의 대명사가 된 오대위 사건은 가해자인 모 소령이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대중의 분노와 여론의 폭발을 불러일으켰다. 군인권센터가 적극 개입하면서 실형선고의 2심을 이끌어냈는데, 두 가지 핵심증거가 판결을 뒤집게 만들었다. 하나는 심리부검이고 또 하나는 목격자의 진술이었는데, 사망자의 사인(死因)을 생전의 심리상태로 역추적하는 심리부검은 <함께걸음>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인 당시 국립공주병원장이었던 이영문 박사팀이 진행했다.

“일기장 같은 기록을 보면 계속 나오거든요. 성추행 당했다, 성추행 당했다…. 거기에다 같이 근무하던 병사들이 용기 있는 결단으로 증언을 했습니다. 실제 성추행 당하는 걸 봤다고 밝힌 거죠. 가해자 측 변호인의 협박과 회유에, 병사들은 실제 집무공간에서 성추행 장면을 매일 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 두 가지가 모두 증거로 채택이 됐고, 결국 가해자 모 소령은 실형을 선고 받은 뒤 현재 복역 중에 있습니다. 한 여성 대위의 단순자살로 묻힐 뻔했던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거죠.”

그런데 이 지점에서 굉장히 놀라운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윤일병 사건과 오대위 사건 등을 거치면서, ‘군인복무기본법(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이 2015년에야 비로소 제정되고 작년부터 시행됐다는 것이다. 군인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법마저 최근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나라 공무원 중에 공무원의 지위가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집단은 군인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경찰은 경찰공무원법이 있잖아요. 군사독재를 30년이나 했던 나라에서, 정작 일반 군인은 법으로 지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너무나 기형적인 국가였다는 걸 반증합니다. 국방부장관이 임의로 제정한 군인복무규율로 국민인 군인들의 기본권을 제약해왔다는 거, 그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은 엄청난 위헌을 저질러왔던 겁니다.”

 

헌법 제17조 –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일반 사병이 아닌 직업군인들은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일반 실형선고가 내려지면 그 즉시 파면된다. 파면되면 연금도 못 받게 되고 군복무기록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군 복무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연령대에 해당되면 사병으로 다시 입대해야 할 최악의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기에 발생한 문제를 일단 가리고 은폐하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는데, 그 근본원인 중 하나는 각 사단마다 제각각 군사법원이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사는 사법부 안에서도 독립돼 있죠. 그런데 사단의 군사법원에는 주심과 부심인 판사 두 명과 심판관이라는 인물, 이렇게 세 명이 재판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그 세 명이 모두 사단장의 부하라는 게 문제인 거죠. 사단장의 결제로 최종 선고가 내려지기 때문에, 재판과 구형의 투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의 원님 재판을 떠올리시면 돼요. 춘향전의 예와 같이, 고을마다 원님이 ‘원님 마음대로’ 재판하고 벌을 내렸잖아요. 그 폐해를 군인권센터는 지속적으로 지적해왔고, 그 결과로 올해 7월부터 사단급 군사법원이 폐지가 됩니다. 그리고 상급기관인 군단에서 군사법원을 관할하게 됩니다. 전국에 백여 군데, 그러니까 육군은 사단별로, 공군은 비행단별로, 해군은 함대별로 제각각 있던 백여 개의 군사법원이 앞으로는 십여 군데로 줄어듭니다. 전국에 있던 백여 명의 ‘사또’들은 지금 초비상상태가 됐죠. 자기 뜻대로 주무르던, 자기를 철저히 보호하던 법의 울타리가 단번에 사라지게 됐으니까요.”

법과 관련된 주제가 언급된 만큼, 최근 큰 파장을 낳고 있는 군대 성소수자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형남 간사는 그 사건 또한 군인권센터가 진행해왔고 현재 진행하는 사건들 중 손가락 안에 포함될 큰 사건이라며, 사건의 발단과 진행이 얼마나 왜곡됐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고 군인권센터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에 사건의 전말을 세세히 기술하긴 어렵지만, 큰 줄기 중심으로 사실(fact)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육군에서 동성군인 두 명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촬영해서,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건 실제 있었던 일이 맞다. 부대 내 당직실에서 관계를 맺었기에, 이는 군기문란에 해당되고 음란물을 유포한 정보통신법 위반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두 명의 위법행위는 구제할 방법도 없고 구제할 필요도 없다. 군인권센터도 그 두 명의 군인이 누군지 모르며, 그들을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지점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군 수사기관들은 수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휴대전화에 담긴 모든 연락처들을 털어낸 뒤, 거미줄을 치듯 동성애 성향의 군인들을 불특정다수로 색출해낸 것이다. “지난 1980년대 학생운동을 간첩사건으로 엮어가듯이, 똑같은 수법으로 수십 명의 신상을 털어냈어요. 한 명한테서 세 명을 털어내고, 그 세 명한테서 각각 세 명씩을 또 털어내는 방식을 사용한 거죠. 전체 조사대상은 50여 명 되는 것 같고, 이 중에 입건된 군인은 대략 30명 정도, 저희가 파악하고 있는 피해자는 15명 정도 돼요. 그런데 그들이 현재 어디서 어떻게 수사를 받고 있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본인한테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게 잡아들인 군인들 중에 마지막 순번으로 연행된 사람이 바로 재판을 받고 있는 A대위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동영상을 촬영했던 그 두 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인데, 공개되지도 않은 개인 취향을 이유로 난데없이 구속되고 실형(2017. 5. 24.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을 받은 거잖아요. A대위는 전역을 일주일 남겨놓은 상태였거든요. 이 사건의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가가 한 국민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집어넣은 첫 번째 사례라는 겁니다. 이건 군대 내부의 문제를 떠나서, 국가 인권 차원의 큰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국제적인 이슈로 터져나갈 겁니다.”

 

군인의 인권은 국가 의식의 척도가 된다

   
군인권센터가 자리한 이한열기념관의 모습

군인권센터가 지향하는 목표를 물었다. 김형남 간사는 군인권센터의 공식입장이라며, 큰 의미가 담긴 설명을 현실감 있게 이어갔다.

“저희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거예요. 존중 받는 사람이 남을 존중할 줄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군대라는 곳은 국민을 지키겠다고 존재하는데, 자신들의 기본적인 권리나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들을 지킬 수가 있겠어요. 국방력 강화를 위해 큰돈을 들여 좋은 무기를 사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그런데 그 무기를 돌릴 사람이 군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고 복무의 보람을 느끼게 해줘야, 이 무기들을 가치 있게 잘 운영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무기에는 큰돈을 쓰고, 정작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천시 받고 사람대접도 못 받는다면, 실제 전쟁이 났을 때 누가 나라를 위해, 그 누가 국민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 싸우겠어요. 자기 조직 안에서 최소한의 존중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 대목에선 미국 같은 나라의 예가 필요하다. 미국에선 소방관 한 명이 순직을 해도 대통령이 나온다. 해외에 파병된 군인이 전사해도, 그 운구가 도착할 때 대통령은 공항에 나와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자를 맞이한다. 우리가 영화에서도 자주 봤던 장면들이다. 대통령이 직접 엄숙한 예를 갖추는 그런 장면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다른 군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라를 위해서 내가 죽을 만하구나’, ‘내가 군인으로서 복무할 보람이 있구나’, ‘내가 죽어도 나라에서 나를 책임져 주겠구나’, ‘내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떠나도, 나라는 나의 가족을 잊지 않겠구나’, 이런 각오와 다짐이 절로 샘솟아나지 않을까? “군인의 사명감이라는 건 국가가 나를 책임진다는, 내 명예로운 죽음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을 때 생겨나잖아요.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자긍심에 충만하다면, 그것 이상의 전투력은 요구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군에서의 죽음은 말 그대로 ‘개죽음’입니다. 군복무를 하다가 죽었는데 이걸 순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그걸 가지고 국가에서 소송을 걸고 1심, 2심, 3심까지 국가가 항소하는 꼴만 본다면, 어느 누가 ‘나’를 희생해서 국가를 지킬 생각을 하겠어요. 이건 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가치와 철학의 문제라고 봐요. 군대는 그 가치와 철학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전선에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민주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가장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는 군인들의 한숨과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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