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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구성원입니다한국난민지원네트워크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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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7  10: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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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한국난민지원네트워크

지난 2015년 9월 초, 전 세계는 단 1장의 사진 때문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바 있다. 바닷가에 누워 있던 한 여자아이의 모습 때문이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여아는 잠든 듯 터키 해변에 누워 있었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었고, 독일을 중심으로 난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뒤늦은 발표가 잇따랐다.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도 유럽 전역의 5만여 가톨릭 교구들에게 난민 수용을 급히 호소할 정도였으니, 당시의 충격과 파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로 난민당사자들이다. 만약 그 해변에 있던 게 성인인 흑인 남성의 주검이었다면, 그래서 언론조차 외면하고 지나쳤다면 과연 그 여자아이만큼의 관심이 존재했겠냐는 반박인 것이다. 이게 난민의 현주소이다. 그리고 그 현주소는 지금 대한민국으로 옮겨오고 있는 중이다.

2015년부터 세 번째가 된 올해의 난민영화제가 왜 열리는지, ‘난민지원네트워크’라는 조직이 국내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확인해 봤다.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오늘의 현실이 분명했다. 다만 이 땅의 국민인 우리들만 ‘난민’이라는 용어에 무심했을 뿐이다.

 

난민,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

‘이주노동자’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게 얼마 전 같지만, 이미 우리나라는 이주민들에 의해 사회의 한 축이 움직일 만큼 저변의 구조가 바뀌면서 그 틀이 확고해진 바 있다. 난민(難民)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로 나뉜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집을 잃고 고생하는 사람’과, ‘전쟁이나 재난을 피해 떠돌아다니며 고생하는 사람’ 중 우리가 주목하는 난민은 후자에 가깝다. ‘정치적 문제나 전쟁 등의 이유로 고국을 떠난 이들’을 가리키는 난민(refugee)은 국제법에 명시된 ‘난민의 법적 개념’을 확인하는 걸로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난민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개념은 ‘인종(Race), 종교(Religion), 국적(Nationality), 특정한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Membership of particular social group), 정치적 의견(Political Opinion)을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國籍國) 바깥에 거주하고 있는 자(者)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 공포로 인해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내용이 길고 상세한 이유는, 그만큼 난민의 정의를 정확하게 규정해놓지 않을 경우에 발생할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한 국가만의 일이 아닌, 외교적 갈등이 곧장 뒤따르는 게 바로 난민의 존재와 난민의 발생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나라가 싫다고 다른 나라를 원하는 건 해당되지 않는다. 일반 범죄자의 도피도 인정되지 않고, 긴급성이 없는 사안 또한 난민의 자격이 될 수 없다. 지금 당장 급하게 피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위험과 공포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하며, 자국을 벗어나는 행위 이외엔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길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난민신청을 했다고 해서 곧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원하던 국가에서 받아들여야만 ‘일말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당하면 제3의 길로 떠나야 한다. 2013년 발발한 남수단의 내전으로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는 거, 시리아를 떠난 보트피플이 지중해에서 수백 명씩 몰살되고 있다는 뉴스의 내용은, 난민이란 단어가 ‘생사의 갈림길’과 같은 의미임을 드러낸다. 생존과 죽음을 동시에 마주해야 하는 극한상황이 난민들의 ‘지금 이 순간’인 것이다.

 

우리도 사람이다. 살게 해 달라!

   
공익법센터 어필(APIL) 이일 변호사

2016년 한 해 동안 본국의 박해를 피해서 대한민국의 국경을 두드린 이들이 7천5백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 그건 평소 듣지 못했던 놀라운 수치가 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고, 정식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온 이들은 1백 명도 채 안 돼 1.54%의 역대 최저 난민 인정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난민들의 인권과 생존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한국난민지원네트워크, 그 연대체에서 주최하는 난민영화제의 주관단체인 공익법센터 어필(APIL)의 이일 변호사에게 질문했다. 한 해 난민신청자가 7천 명이 넘는다는 데 대한 놀라움만큼 궁금했던 건 ‘왜 한국인가?’였다. “세 가지 정도의 이유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가 가장 실제 현실과 맞습니다. 원래 한국이란 국가는 생각도 안 했는데, 말 그대로 ‘어쩌다가’ 한국에 오게 됐다는 거죠. 급박하게 탈출해야 하는데, 비행기의 경우는 비자가 없으면 불가능하잖아요. 그럴 때 브로커 같은 이들이 ‘프랑스(또는 다른 나라)와 한국이 지금 가능한데, 한국의 비자를 더 빨리 만들 수 있다. 일주일이면 가능하다’고 하면,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죠.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있는지, 어떤 정체성의 국가인지도 모르는 채로 일단 몸을 피하며 급히 떠난다는 겁니다.”

이 대목에선 한국이란 나라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은 유럽처럼 국경을 맞댄 육지를 통해 이동할 방법 자체가 없다. 분단국가로써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다를 통해 들어올 만큼 인접한 국가가 없다. 중국이 있긴 하지만, 보다 쉽게 이동이 가능한 동남아국가로의 육로 대신 바다를 거쳐 한국까지 굳이 모험을 걸 필요성이 부족하다. 남겨진 가능성은 ‘육(육지)·해(바다)·공(하늘)’ 중에서 비행기를 이용한 하늘길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두 번째는 인천국제공항이 아시아 중심의 허브공항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천국제공항에 와서 다른 비행기로 환승할 계획이었는데, 목적지였던 국가에서 ‘이 인물은 비행기를 타게 하지 마라. 우리는 입국 안 시킬 거다’ 하는 정보가 통고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워낙 첨단의 정보전달체계가 갖춰지다 보니까, 문제가 있는 인물이나 위조된 여권과 비자 등에 각국이 즉각 반응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환승구역 안에서 예정하지 못했던 반(半)구금상태로 기약 없이 머물러야 합니다. 그런 상황이 길어지다 보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방법도 없으니 나는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겠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하는 편입니다.”

세 번째는 내부적으로 공감을 얻기 힘든 사례가 되겠지만, 한국을 굉장히 인권친화적인 국가라고 판단해서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된다. 전임 유엔사무총장의 나라, 한류의 나라, 첨단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나라 등의 이유가 그들로 하여금 한국을 목적지로 만들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엔 각자의 분명한 의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항공편을 이용할 만큼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그들은 현지에서 변호사였거나 기자, 교수, 국가기관원 등의 지위로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이었던 면면들도 적지 않다는 의미인데, 아쉽게도 그들의 이력은 그들의 나라에서만 누렸던 과거가 된다. 대한민국에 난민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기본적인 한국말조차 못하고 생존할 방법마저 막막한 ‘불법체류 상태’의 외국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 난민영화제인가?

   
 

2006년부터 연대체로 활동을 시작했던 한국난민지원네트워크는 지난 2015년부터 난민영화제(KOREFF, Korea Refugee Film Festival)를 개최하고 있다. 2017년 올해로 제3회 행사가 거행됐고, 인간의 수명을 빗대 ‘80회까지 가겠다’는 주최 측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일반대중의 호응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난민지원네트워크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주최하고, 공익법센터 어필이 주관을 맡았으며, 올해는 국가인권위원회와 21세기자막단이 후원을 담당했다.

“국가 안에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있죠.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여성을 여전히 소수자로 분류하는 사회적 시선이 굳건하게 존재할 정도니까요.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은 이 땅의 소수자들 인권옹호를 위해선, 모든 걸 이분법으로 가르는 허구적이고 폭력적인 권력구도를 뒤집어야 합니다. ‘모두가 이방인이다!’는 기본적인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 보다 실질적으로는 ‘여기 이미 그 모습 그대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걸 국가와 국민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의 삶 안에는 모든 다수자와 소수자들이 오래 전부터 공존하며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환경이 국민 정서 밑바닥부터 조성되고 있는 건 맞지만, 난민신청자들에게 제시되는 건 ‘미안하지만, Not yet, Not here.’라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은 안 되고 아직은 그들을 받아들일 때가 안 됐다는 얘기인데, 이건 장애당사자들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소수자들이 긴 시간 동안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내용과 일치한다. 수십 년간 절대법칙처럼 내세우던 ‘기득권층의 논리’가 난민신청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한마디 더 – 대한민국 국민도 난민이 될 수 있다?

군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하겠다는 A대위 사건 이후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중 일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런 국가의 사법체계 안에서는 군대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들의 인권에 중점을 두는 법률단체에 문의가 계속된다고 한다. 동성애의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3국으로의 난민신청이 가능하냐고 말이다.

이 대목은 공익법센터 어필이 제공한 구체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짧게 정리를 한다. 문제는 성소수자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당연히 어렵다.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하는 상대국의 법적인 질문에, 일일이 그 사례들을 모아 증명하기 힘겨운 게 실제 현실이라는 것이다. 더 난해한 문제는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공포였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모든 게 난망하다. 하지만 A대위 사건이 대한민국의 실제 현실임을 역설적으로 국가가 입증했기 때문에, 해결이 가능할 방법론은 존재한다고 한다. 실제로 2009년에 캐나다로 난민신청이 인증된 사례가 있었다는 건 새롭게 듣게 된 소식이다.

찾아드는 난민들의 문제가 국가적인 재앙인 듯 떠들었던 나라,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안에 살던 국민은 다른 해방구를 향해 떠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현실이 대한민국의 실상을 확인하게 만든다. 난민들을 침입자 아니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었던 실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헬조선’의 국민 일부는 이미 터키 해변의 ‘아일란 쿠르디’가 되어, 오래 전부터 쓰러진 채 국가를 향해 ‘SOS’를 보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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