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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은 함께하는 ‘관심’입니다피치마켓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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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1  13: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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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피치마켓

2017년 6월 3일부터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발달장애인법)’ 제27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문화·예술·여가·체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하여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흥미에 적합한 방식으로 설계된 시설, 놀이기구, 프로그램 및 그 밖의 장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똑같은 국민으로 누려야 할 권리의 행사를 국가가 보장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 시행 이전에 치러진 탓일까? 지난 대선에서도 우리는 투표권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에게 ‘국민의 권리’를 배려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만나보지 못했다. 누가 후보인지, 어떤 정당인지, 공약이 뭔지, 정확한 투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전히 모르는 채 또 한 번의 선거는 진행됐고, 긴 세월동안 지적됐던 발달장애인들의 불편함은 역시나 똑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특화된 대선 공약집을 출간한 단체가 있어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 공약집을 기획 출간한 피치마켓을 만나본다.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 이번에도 민간이 먼저 움직였음을 또다시 확인하게 된다.

 

‘쉬운 글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

   
피치 마켓 함의영 대표

‘레몬마켓(Lemon Market)’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인들이 중고차 시장을 빗대면서 생겨난 표현인데,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는 불공정한 상황에서 낮은 품질의 제품을 구입하게 되는 시장 구조를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엔 무척 먹음직스러운 모양인데, 두꺼운 껍질 안쪽엔 시고 맛없는 열매만 담겨 있다는, 그래서 레몬은 미국의 속어로 ‘불량품’을 뜻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껍질이 아주 얇아서, 겉모습만 봐도 껍질 속 내용물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과일이 복숭아잖아요. 겉과 속이 같은 우량상품만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마켓의 반대개념으로 ‘피치마켓(Peach Market)’이라 합니다.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들 간의 투명한 정보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취지로, 저희 단체이자 기업의 명칭을 피치마켓이라 정하게 됐습니다.”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가 특히 인상적인 공간 안에서, 무언가의 토론이 진지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함의영 대표의 환대가 이어졌다. 발달장애인으로 상징되는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도서를 기획 출간한다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도전을 진행하고 있는 단체가 바로 피치마켓이다. 스타트업(Startup)은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의미하지만, ‘고위험, 고성장, 고수익’을 지향하는 인터넷기업 중심이기에 피치마켓을 규정하는 용어로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젊은 청년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단체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그들이 이뤄낸 값진 성과를 듣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왜?’라는 사족을 붙여야 할, 바로 ‘느린 학습자들’을 지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부분부터 말씀드린다면,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유엔의 한 기구 산하 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전공 시절에도 늘 느꼈던 거지만, 나름 글을 어렵게 쓴다는 집단의 사람들이 쓴 글로 공부를 해왔었잖아요. 교과서든 판례든 간에, 하나의 문장이 반 페이지에서 한 면을 가득 채우는 게 보통이었죠. 그걸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이렇게 쓰는 글들이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개인적인 질문을 무척 많이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던 중에 ‘글을 조금 더 쉽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뜻이 맞는 이들을 모으고 만나 토론하는 작은 모임을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거창하고 가치 있는 일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시작점은 아주 단순하게 ‘쉬운 글이라는 건 어떤 것일까?’를 진지하게 얘기 나누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출판의 편집을 담당했던 이, 특수교사 활동을 하던 이, 그런 면면들이 하나둘씩 추가로 합류하다 보니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졌단다. ‘정말로 쉬운 글이란 건 어떤 것일까?’

“어떤 명확한 기준도 없고 구체적인 목표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토론만 진행되고 있었죠. 그런데 모임 구성원 중에 한 분이 자기 동생이 발달장애인이라고 밝힌 거예요. 그래서 그 동생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만들면 좋겠다며, 저희들의 지향점이 단번에 확실한 목적지를 찾게 된 겁니다. 쉬운 글을 필요로 하는 직접적인 대상을 알게 됐고, 거기에 우선 저희들의 논의를 집중하게 된 것이죠.”

 

다들 무모하다 했던 도전의 시작

   
   
 

물론 ‘느린 학습자’는 발달장애인들만 지칭하는 건 아니다. 독서에 흥미를 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뒤늦게 세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활자 중심의 두꺼운 책 부피에 부담을 느끼는 어른들 또한 얼마든지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만’ 집중된 설정이 아니라, ‘누구나’를 향한 열린 공간의 작업이 무한대로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는 과정도 계속 진행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의견이 엇비슷한 내용이었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든다고 해서,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어차피 큰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여기에 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을까? 쉽지 않다. 독자층이 너무 얇다. 실질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당사자는 아주 적다’ 등의 현실적인 조언들이 계속 이어졌죠. 거기에다가 ‘글을 읽는다고 해서, 가시적으로 무엇이 바뀔 수 있다는 건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계셨어요.”

참으로 힘든 선택의 기로였지만, 함의영 대표는 승부수를 던졌단다. ‘사비를 털더라도 일단 만들어 보자!’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어중간한 책 한 권을 사회에 던져놓는 것보다는, 비장애의 시선 앞에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작업을 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출간된 첫 작품이 바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됐다. 비장애인들도 선뜻 읽지 않던 책, 그 무게감을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던져놓은 것이다.

“솔직히 엄청난 모험이었죠. 정식으로 피치마켓을 설립하기도 전에, 사비를 끌어와서 그런 제작을 시도했으니까요. 우리나라 언론이 ‘처음’이라는, ‘최초’라는 표현을 좋아하다 보니, 출간 직후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건 사실이에요. 첫 작품이 출간되고 나니까, 이 분야의 공부를 정말 더 진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때까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작업에 몰두하기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남들의 관점으로 볼 때는 지명도 있는 좋은 직장이고 나름 실력도 있는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을 텐데, 그 모든 걸 과감히 벗어던졌다는 건 보통의 결단을 넘어선 게 분명한 일이다. 무슨 소명의식도 아니었을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집중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문해력’이라고 하죠. 표준어는 아니지만,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발달장애인은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개개인이 모두 다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잖아요. 문해력의 차이가 너무 크게 나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의 방향을 바꿔 보면, 비장애인들 역시 개개인마다 글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다들 다르잖아요. 저희의 대상은 발달장애인이었는데, 출간한 책에 접근하는 방식부터 문제점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더 깊게 고민해야 하는 과정이 일정 기간 있었습니다.”

퇴사까지 한 입장에서 잘못된 시도라기보다는,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파악하는 데 함 대표는 더 진지한 시간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 사회에 일정한 경종을 울린 걸로 끝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 도전해야 하는지, 더 늦기 전에 이즈음에서 접어야 하는 건지를 최종 결정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을 때, 그에겐 피치마켓의 정식 탄생을 알리게 될 소중한 연락이 전해졌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물질적 후원 같은 게 아닌, 누군가의 진솔한 편지 한 통이 찾아들었다는 것이다.

 

책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대화

“이젠 제가 누님이라고 부르게 된, 당시 나이 마흔이라고 밝혔던 한 분이 저희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저희가 출간한 책을 읽었다고,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책을 읽으셨다는 거예요. 어머님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가정 형편이 교육을 계속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책이라는 걸 학창시절부터 읽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오셨대요. 글자는 아는데, ‘독서’라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채로 지내셨다는 거죠. ‘난생 처음으로 책을 첫 장부터 끝까지 다 읽어봤다. 이런 책을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그 분의 편지는 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바로 이어서 같은 마흔 살이라고 밝힌 다른 한 분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저희한테 보내주셨죠. 저 나름 심각했던 고민과 갈등은 그 편지들과 함께 끝을 보게 됐습니다.”

이런 결론과 결실을 얻기 위해서, 그동안 긴 시행착오와 함께 ‘쉬운 글’을 찾아 나섰던 게 아닌가. 함의영 대표는 본격적으로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쉬운 말을 발굴하기 위해, 2015년에 정식으로 피치마켓의 문을 열게 됐다고 한다. 교류와 연구 차원에서 만나던 모임의 구성원 중에서, 정식 직원으로 합류하는 얼굴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단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갓 시작해서 틀도 잡히지 않은 자리로 옮긴다는 건 보통의 열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문해력과 이해력이라는 거, 저희가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게 될 게 바로 ‘쉬운 이해의 방법’이겠죠. 일단 저희는 비장애 청소년들이 읽는 책들은 발달장애당사자들도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게 일차 목표였어요. 그런데 방법론을 달리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책을 읽고 그 자체로 톨스토이의 정신세계와 철학을 전부 이해하자는 게 아니었거든요. 저희의 더 큰 목표는 하나의 책을 읽고 난 다음, 그 독서를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가 좀 더 늘어나게 하자’는 것이었어요. 한마디로 말해서 독서 후에 ‘얘깃거리’가 하나라도 더 늘어난다면, 저희들의 출간 작업은 성공했다는 거죠. 단 한 권의 독서가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쌓여가게 될 때, 비로소 근본적인 변화와 성과가 마련될 테니까요.”

함 대표가 언급한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정된 대화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화제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매개체를 ‘독서’로 풀어가겠다는 건 파급효과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수동적인 입장에서도 볼 수 있는 건 동영상이지만, 독서는 능동적인 자세에서 나름의 생각을 만들고 지워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피치마켓의 ‘스스로 읽는 책’ 시리즈 출간은 이제 10권을 넘기는 결실을 일궈내고 있다. 특수학급의 수업자료를 개발해 지원하고 있고,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발달장애당사자들을 정식 작가로 육성하는 디자이너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그런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쉬운 글’ 개발에 가장 큰 성과를 얻는 건, 독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진행하는 통합 독서 동아리 ‘피치마켓 프렌즈’가 아닐까 싶다. 사전교육을 받은 비장애 대학생과 청소년들이 피치마켓에서 제공하는 독서활동 가이드라인을 숙지한 뒤, 발달장애당사자들과 일대일로 독서 활동을 진행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장소를 제공받아서, 매번 정기적으로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놀라서 저희한테 말씀하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학생들이 책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저희한테는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죠. 한 선생님은 감사의 편지까지 보내주셨는데, 그 편지도 저희들을 정말 뭉클하게 만들었어요. 학교에서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을 같이 읽었는데, 얼마 후에 한 학생이 복도에서 혼자 울고 있더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대요. 그랬더니 그 학생은 아까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두 주인공이 주고받은 선물이 가난 때문에 쓸모없게 된 게 너무 슬프다고, 책 내용을 곰곰이 되새기다가 뒤늦게 그 슬픔을 느끼게 됐다는 거예요. 이건 저희가 바라던 최상의 경우였습니다. 발달장애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 찾는 작업이 성공했다는 거고, 그 내용을 마음에 담아놓을 만큼 완성도도 높였다는 반증이 됐으니까요.”

 

스스로 결정하는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

   
 

첫 작품집 출간 이전부터 현재까지 발달장애당사자들에게 직접 감수를 받은 횟수만 1천 회가 넘었다는 건 ‘쉬운 글’을 찾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얼마만큼의 정성을 쏟으며 한 권 한 권의 완성을 일궈냈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일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한 ‘쉬운 대선 공약집’의 기획은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

“항상 언급되고 지적됐던 문제였잖아요. 정당한 투표권을 가진 성인인데도, 발달장애인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죠. 그 점이 계속 제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 좀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에는 그 작업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저희가 하던 방식대로 사회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었죠. 많은 방송 언론에서 취재를 나왔을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키긴 했는데, 인터뷰 때마다 제가 했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와 문장을 쉽게 풀어낸 이 공약집을 우리가 민간 차원에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건 정부에서 먼저 해야 할 움직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죠.”

2017년 12월 대선 일정에 맞춰 긴 호흡으로 기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탄핵정국으로 돌변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최종심판까지 내려지게 되니, 함 대표와 피치마켓 가족들은 모든 게 발등의 불이 됐다고 한다. 임시직 직원 4명까지 추가로 투입해서 제작에 임했는데, 본격적인 선거유세가 시작될 무렵 유력주자들의 공약이 크게 수정되는 일까지 생겨났단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두 권으로 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글 공약 19대 대선 공약집’을 출간하게 됐는데, 예상치 못했던 지점에서 뜻밖의 암초가 등장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제93조(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에 따라, 이 공약집의 배포가 금지된 것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찾아낸 게, 피치마켓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전자책 형태의 출간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의 투표에서 항상 등장하는 문제는 깨알 같은 글씨의 수많은 공약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어느 당이 있고 그 당의 후보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 설령 한 명을 정했더라도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에 정확히 기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쉬운 공약집’에는 주요 후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 그림 옆에, 그 후보를 선택하려면 어느 자리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를 실제 투표지 모습으로 보여준다. 후보의 얼굴과 이름, 기호인 숫자와 투표지의 위치까지 한눈에 익힐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중심으로 편집했어요. 그런데 주요 공약인데도 해당 전문직이나 취재기자 정도가 아니면 일반 유권자들도 모를 내용 또한 적지 않았죠. 예를 들어 국방 분야에서 ‘킬체인’과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를 조기 구축하겠다는 거, 또 다른 후보가 꺼내든 ‘KMPR(대량응징보복)’과 ‘전술핵 재배치’ 공약 같은 건 누구에게나 생소한 용어들이잖아요. 그렇다고 이 공약집 내용에서 임의로 뺄 순 없으니, 가장 쉽고 단순한 그림과 함께 설명을 적어 넣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쟁의 폭격방식인지는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내용은 발달장애당사자들도 유권자로서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함의영 대표는 당사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성취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독서법을 귀띔해 주었다. ‘곁에서 함께 읽기’가 답이라 했다. 혼자 읽게 하거나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읽게 하는 건, 당사자의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단다. 그렇기에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친구들이든 곁에 가까이 앉아 읽고, 짧은 호흡이라도 한 단원씩 읽은 뒤 그 내용을 서로 대화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대화를 할 기회가 많아지고, 자기한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단지 독서만을 위한 게 아니죠. 비장애인과의 대화가 늘어난다는 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비장애인들과의 소통이 보다 원활해진다는 효과를 낳게 돼요. 소통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모든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게 가능해지니까요. 저희는 그 콘텐츠를 개발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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