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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무능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영화이야기
글. 이영문/아주대학교 인문대학 특임교수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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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2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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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악(evil)은 평범하고 진부하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을 지켜보면서, 본디 인간의 본능은 끝없는 쾌락을 추구하고, 극도로 이기적이며,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의 해석을 믿으려고 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청문회와 특검을 통해 대학교수, 법조인, 의료인, 고위직 공무원 등 전문직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서 본능을 견제하는 에고(ego)와 초자아(superego)가 전혀 망가지지 않은 채 거짓을 일삼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은 시키는 일만 했을 뿐 전혀 잘못이 없다는 진술도 나왔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일까요?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로 설명되는 죄인들도 있었지만, 법정에 선 모든 사람이 사이코 패스는 아니었습니다. 문득 몇 년 전 보았던 영화, 바로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나치의 광기와 부패, 스탈린과 파시즘의 독재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위대한 사상가의 일생을 그린 영화 ‘한나 아렌트(2012, Hanna Arendt, 독일)’가 떠올랐습니다.

영화는 한나 아렌트(바바라 주코바 분)의 짧은 회상과 더불어, 2차 대전 이후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생각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학살을 피해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2차 대전 유대인 학살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향합니다. 재판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는 아이히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전혀 갖추지 않은 ‘사유의 무능’을 지닌 나치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합니다. 또한 독일 제3제국의 악마적인 시스템에 따라 행동한 아이히만의 죄는 ‘악의 평범성(진부함, banality of evil)’에 해당되므로 이런 시스템에 앞장선 유대 지도자들도 함께 죄를 지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동기도 없이 행해진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는 범죄는 단지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였다는 것이지요. 유대인 사회는 흥분했고, 모두 한나 아렌트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가 반인륜적이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고, 독일을 포함한 전 유럽에 도덕적 사회 규범을 와해시킨 죄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즉, 아이히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이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인 ‘생각하는 힘’을 아주 쉽게 저버린 망연자실한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자고 한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단순히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고 말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어야만 예기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인류의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배우 바바라 주코바의 연기는 탁월합니다. 실제의 한나 아렌트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지요. 어눌한 영어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강단에서의 모습은 거의 모노드라마 수준의 연극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한나 아렌트를 전혀 모른 채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지루한 노릇이지만, 아무런 편견 없이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선과 악의 경계에 기대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고, 다시 한 번 생각의 힘을 강력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와 2016년 한국 상황을 보면서, 이제 저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실천이 개입된 사유’의 개념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생각을 2017년 우리나라 상황에 대비시키면, 의외로 많은 부분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국정농단 자체를 어쩔 수 없는 권력의 속성으로 이해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행동은 인간이기를 거부한 혹은 까맣게 잊어버린 반인륜적 행위 자체로써 바로 생각의 무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의 평범성’은 악행의 모습이 평범하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생각하는 힘을 평소에 갖추지 않은 진부함, 혹은 생각하는 힘이 권력에 의해 마비된 상태에서 일어난 평범성에서 악행이 쉽게 저질러 질 수 있다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촛불혁명에서 촉발된 긴 겨울을 보내고, 국민들의 힘에 의해 정치권력을 바꾸는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경구를 체험했습니다. 새 시대와 더불어 독자 여러분 모두의 ‘생각하는 힘’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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