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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장애인의 조정자 ‘장애인 대의원’잉그리드 퀘러너 “더 나아져야 한다”
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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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2  16: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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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정부까지 가 닿는 일은 쉽지 않다.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나서는 장애인 단체의 요구들도 정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복지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장애인과 장애인 단체들의 욕구를 좀 더 빠르게 청취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장애인대의원’ 또는 ‘주정부 조정자’로 번역되는 이 제도는, 지역에 따라 명칭이 조금 다를 뿐 모두 같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 함께걸음에서는 지난 7월 말, 독일 함부르크 지역에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잉그리드 퀘러너’를 만났다.

 

 

독립적인 명예직

장애인대의원 또는 주정부 조정자(이하 장애인대의원)는 독일 전체를 아울러 각 지역마다 운영되고 있는 제도다. 함부르크 또한 그 중 한 지역으로, 다른 지역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장애인대의원은 법에 의해 지정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한 권리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는다. 함부르크의 장애인대의원은 함부르크 연방법 4장 13항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

 

<함부르크 연방법 4장 13항의 장애인대의원 명시 내용>

1. 시의회는 선거주기 동안 주정부 조정자를 임명한다. 주정부 조정자의 직무는 다음 시의회가 선출되면 종료된다.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일단 전임자가 직무를 유지하고 후임자가 임명되면 직무를 끝낸다. 새로 선출된 시의회가 전임자를 다시 지정할 경우 연임이 가능하다.

2. 주정부 조정자는 시민과 정부 사이에서 독립적인 자세로 둘 사이를 중재한다. 장애인의 평등과 여성장애인의 성별로 인한 불이익을 제거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공권력의 주체에게 책임을 다할 것을 압박할 수 있고, 사회 전반적인 차별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3. 장애인의 평등과 관련된 모든 법률과 계획 제정에 조정자로 관여한다.

4. 공권력의 주체는 주정부 조정자를 원조하는 역할을 한다. 필수적인 정보나 안내를 제공하고, 필요한 서류 열람을 허용한다. 단,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의료기록 등은 열람이 불가능하다.

5. 주정부 조정자는 2년에 한 번씩 활동에 대해 보고하는 책을 내야 한다. 법률 시행 결과, 함부르크 장애인의 현재 상황 등을 알리는 내용을 포함한다. 주정부는 조정자의 활동보고와 연방 자문단이 제출한 입장표명을 시의회에 전달해 이후 법률 제정 등을 진행한다.

6. 주정부 조정자는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명예직으로 수행된다. 고정적인 임금은 없으나, 직무 보장을 위한 충분한 인력과 진행 경비 등의 물적 지원이 보장된다. 함부르크 연방법에 표기된 명칭에 더욱 가까운 번역인 ‘주정부 조정자’로 기재함. 함부르크 외 지역에서는 ‘장애인대의원’으로 번역되는 명칭을 쓰기도 함.

 

독일 함부르크 노동법원 건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잉그리드 퀘러너 장애인대의원(이하 잉그리드 대의원)은 자신의 업무 파트너인 플로리안과 함께 취재진을 맞았다. 소박한 사무실에서 마주한 잉그리드 대의원은 ‘장애인대의원은 장애인일 것’이라는 예상을 깼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아닐 뿐, 그는 장애인 자녀를 양육한 가족이자 장애인 관련 연합 단체에서 일한 장애계 경력자였다. 장애인대의원은 새로운 주정부가 구성되는 시기에 장관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 임명자 조건에 ‘장애인’이라는 기준은 없다. 다만, 비장애인이라면 장애인과 관련된 사람이어야 임명될 수 있다. 잉그리드 대의원은 장애인대의원이 임명직이지만 임명 이후에는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출범할 때 임명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애인대의원은 어떤 정부 기관에도 속하지 않는다. 지극히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부와 상하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 장관과 소통하면서 장애인 정책을 결정하지만, 함께 일하거나 협력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에 있지도 않다. 정부로부터 어떤 급여도 받지 않는 명예직이기 때문에 더더욱 독립적일 수 있다. 이러한 위치는 장애인대의원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직무질서를 지킬 필요 없이 직접적으로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당장 바꿔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다. 이미 정부에서도 장애인대의원의 독립적인 활동과 근본적인 역할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인과 정부 사이의 조정자

잉그리드 대의원의 임기 중, 함부르크 내에 위치한 한 건물의 계단에서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애초에 장애인 접근성이 낮은 건물이었다. 해당 건물 책임자는 추락사고에 대해 말뿐인 사과 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함부르크 지역 신문사에서는 이 사고와 관련된 기사를 냈고, 기사를 본 정부에서 잉그리드 대의원에게 연락을 해왔다. 잉그리드 대의원은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정부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계단 공사를 추진했다.

앞의 사례처럼 장애인대의원은 정부와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 장애인 및 장애인 단체들의 입장을 듣고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장애인대의원은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단체들의 입장을 다양하게 청취하기 위해 장애인위원회와 상시 소통하고 협력한다. 잉그리드 대의원은 장애인대의원 역할에 있어 장애인과 정부의 중간조정자 역할은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대의원은 자신이 혼자 생각해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장애인들에게 어떤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발언할 수는 없다. 여러 장애인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장애인위원회와 꾸준히 소통하며, 인터넷을 통해서도 의견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알아내고 해결을 위한 방법들도 논의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다만, 장애인, 장애인 단체들과 논의한 내용을 정부에 말하고 정부를 납득시키는 부분은 조정자로서의 내 역량에 달려 있다. 때문에 정부책임자와의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어야 하며, 요구를 납득시킬 전술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정부를 내 편으로 만들어서 요구에 따른 목적을 달성해야 성공적으로 직무를 해내는 것이다. 또한 지속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복해서 강조함으로써 달성된 목표가 함부르크 전반에 꾸준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잉그리드 대의원은 특히 장애인 접근성에 집중하고 있다. 함부르크 전역에서 장애인들이 교통약자로서 이동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교통 접근성 문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장애인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우리는 함부르크에서 그런 장벽들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만약 장애인 접근이 불가능한 교통 수단이 발견되면 그곳의 책임자에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문서를 보내고 직접 논의를 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플로리안이 직접 시연을 해 이동 제약을 주정부에 알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위원회는 조언자이자 고문관의 역할을 하는 연대체로, 장애유형별로 다양한 그룹들이 속해 있다. 각 그룹들은 위원회 회의 논의 내용에 대한 찬성, 반대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대의원은 장애인위원회에 참여해 각종 토론과 결과를 청취한다. 잉그리드 대의원은 장애인위원회에 속한 그룹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경쟁 구도를 만드는 등 장애인위원회의 활성화를 이끌어낸다. “최근 장애인위원회에서 토론하는 주제는 ‘평등법’이다. 2005년 만들어진 장애인 평등을 위한 함부르크 연방법은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유엔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의 목표와 정신에 따라 새로운 평등법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에 대비해 장애인위원회에서는 새로운 법을 위한 좋은 항목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잉그리드 대의원(오른쪽)과 플로리안

난항 중인 발달장애인 자립

잉그리드 대의원은 독일 발달장애인 관련 최대 이슈로 거주 문제를 꼽았다.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누구와 어디서 함께 살 것인지 결정하는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충분한 지원은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서는 장애인들이 사회복지국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돈을 책정받을 수 있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예산을 요청하면 사회복지국에서 합당한지 여부를 판단해 예산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플로리안 또한 현재 이러한 시스템으로 혼자 생활하고 있으며 필요 시 직접 고용주가 돼 여러 서비스를 사용한다. 이러한 체계 자체는 잘 잡혀 있는 상태지만 발달장애인이 체계를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신체장애인에 비해 적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시스템을 활용하는 모든 과정을 지원해줄 매니저가 필요한데 이 매니저를 고용하는 비용은 예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매니저가 독일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개인예산제도의 밖으로 밀려나 있는 발달장애인들은 다른 해결방안이 없을 경우 결국 시설로 유입되고 있다. 시설 유입 상황에 대해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활발한 활동을 함으로써 시설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사회복지국이 돈을 기준으로 자립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에 대한 항의가 점차 강하게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함부크르에서 조직된 발달장애인 당사자 조직 피플퍼스트는 주거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권을 보장받아, 정부 수준에서 이뤄지는 토론에 항상 참여하는 등 거주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모든 정보를 쉬운 언어로 작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이 생기면서 이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열린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제도

장애인대의원은 정부로부터 임명됐지만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동시에,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제도다. 이는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귀를 열어두고, 놓친 부분이나 충분히 관심을 두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상시적인 피드백을 수용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어 임명한 뒤 영향력이 없는 상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대의원을 통한 장애인과 장애인 단체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충분한 활동을 위한 지원을 하면서도 그것을 정부의 의무로 받아들이고 장애인대의원의 독립적인 역할을 인정한다. 자신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서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잉그리드 대의원의 자신 있는 답변은, 이 독특한 구조가 앞으로 독일 내 발달장애인 자립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잉그리드 대의원은 “정치는 장애인의 투표가 필요하고, 장애인들은 정치로의 쉬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정치와 장애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 다음 호에서는 독일에서 시도되고 있는 발달장애인 거주 및 자립 형태를 전달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후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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