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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
글. 정혜란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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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4  17: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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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뇌병변장애 당사자 A씨는 최근까지 일자리를 알아보다 결국 구직활동을 완전히 포기했다. 장애로 인해 일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뿐더러, 겨우 채용이 되더라도 받게 되는 월급이 현재 기초생활수급비로 지원되는 수준과 큰 차이가 없거나 더 적기 때문이다. A씨는 “한때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아이까지 있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2.

10년 이상 거주하던 시설에서 나와 최근 고시원에서 혼자 사는 발달장애인 B씨는 지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는 월급 30만 원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고 있다. 자립 이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특정 직종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주변에서는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면 기초생활수급이 중단된다며 B씨의 취업을 만류하고 있다. B씨는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기초생활수급권과 취업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게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포함한 총 7가지 급여를 현금 또는 현물 지급 등의 방식으로 보장하고 있다. 2017년 1인 가구를 기준으로 소득이 495,879원 이하면 생계급여를, 661,172원 이하면 의료급여를, 710,760원 이하면 주거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 과거 이 제도는 일정 단일기준을 넘는 경우 7개 모든 급여가 일괄적으로 중단되는 방식이었지만, 보건복지부는 2015년 7월 맞춤형 개별급여제도를 도입해 급여별 차등 기준적용을 통한 수급 대상자의 점진적 자립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발달장애, 뇌병변장애, 중복장애 등 중증장애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취업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에서 기초수급 대상자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5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가구 중 장애인 가구 유형은 18.9%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막상 이들에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라도 이들이 수급권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직업센터의 김민영 팀장은 최초 취업상담 실시할 때 기초생활수급 대상 여부를 반드시 묻는다고 말했다. “대상자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취직 시 임금에 따라 수급권이 일부 또는 완전히 중단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그럼 고민을 하다가 결국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조직국장 역시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주변 장애 당사자들로부터 상담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탈수급을 위해서는 이 제도가 취업과도 잘 연계돼야 하지만 이러한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넘기 힘든 최저임금의 벽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중 노동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는 이들은 “수급권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다면 생계유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까지 구직활동을 했다는 C씨는 혼자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 당사자다. 면접 이후 몇몇 곳에서 입사제안을 받았지만, 이 회사들이 C씨에게 제시한 임금은 월 100만 원 내외였다. 이는 생계, 주거, 의료 등의 수급 대상 기준을 넘어서는 수준이지만, 실제 그가 받고 있는 생계급여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여기에 그가 지원받고 있는 의료급여와 주거급여까지 고려하면 수급을 전혀 받지 않고 월 100만 원 수준의 돈으로 이 모든 비용을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C씨 역시 취업을 포기하고 앞으로도 수급권자로 남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 근로자들은 법망을 피해, 또는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일부 장애인을 대상으로는 ‘최저임금적용제외인가 제도’가 적용되고 있어 장애인에게 최저임금 이하를 주는 것이 사실상 합법화돼 있다. 이 제도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 대해 노동부의 인가 과정을 거쳐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를 인정한다. 2007년 1,133명이던 승인 인원은 2016년에는 7,935명으로 대폭 늘어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원외정당 노동당은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28.1%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 즉 100만 원 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장애계는 최저임금 보장을 위해 적용제외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중증장애인 일자리 보장과 사업장의 재정적 문제 등을 이유로 현행 제도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김민영 팀장은 수급권을 포기하고도 취업을 선택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임금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왕 취업을 할 거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실제로 수급권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하는 상당수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다. 하지만 전문적인 직업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장애의 정도가 중증인 경우 이런 조건의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취업,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도전’

겨우 최저임금을 맞춰 받더라도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차는 있지만 상당수 기초생활수급 대상 장애 당사자는 기본적인 생계비보다 의료비, 주거비에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의료비에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상당 금액이 꾸준히 발생하는 경우라면 최저임금 이상을 받게 되더라도 기타 지원 없이는 생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성철 조직국장은 현행 수급권제도가 이러한 대상자들의 욕구와 현실적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수급이 곧 탈빈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듯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해서 안 좋았던 경제상황이 곧바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의료비와 주거비는 소득이 발생하기 시작해도 수급 대상자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복지부가 맞춤형 개별급여제도 등을 내놓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거의 없다.”

한번 취업을 해 수급권이 중단되면 실직 시 재수급 대상자가 되기까지의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전에 취업을 했던 기록이 있기 때문에 노동능력이 인정돼 수급 대상자 선정에서 탈락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급권 신청 시 심사를 하고 보상결정이 나기까지 한 달 반에서 길게는 세 달까지의 기간이 소요된다. 결국 어렵사리 재수급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이 기간 동안은 아무런 소득 없이 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Good Job 자립생활센터 생활주택의 김한준 코디네이터 말에 따르면 기존 수급비 지원 중단을 고려하고도 취업을 선택하는 장애 당사자의 상당수는 재정적으로 뒷받침 해줄 만한 뒷배경이 있어 당장 모든 급여의 수급이 중단되고, 동시에 일자리를 잃더라도 그리 큰 타격을 받지 않는 사람이다. 최근 구직활동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A씨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면서 “최소한 의료비와 주거비에 대한 불안만이라도 해소된다면, 수급권 중단을 감안해서라도 취업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A씨와 같이 취업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대부분은 당장의 약값, 병원비와 잠잘 곳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이들에게 취업이란 생사를 건 무모한 도전이 됐다.

 

꿈마저 앗아간 기초생활수급권

최근에는 보치아 종목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뇌병변장애 당사자 정호원 선수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자격이 박탈되면서 논란이 됐다. 지난해 9월 브라질 리우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지급받은 포상금액이 기초생활수급 자격 기준 금액을 넘겨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 선수가 지금까지 지원받던 생계비, 의료비, 보험료 혜택, 활동보조인 등의 지원이 모두 중단됐다. 정 선수는 리우장애인올림픽 이후 지금껏 미뤄오던 척추측만증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으며,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에는 큰 수술을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 일에 대해 정 선수는 “정기적인 소득 없이 연금과 포상금만으로 살아가기엔 현재 감당해야 할 부담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대비도 전혀 할 수가 없다”며 “계속 운동을 계속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돼 운동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앞으로 정 선수와 상황이 비슷한 다른 선수들도 생계를 걱정하느라 꿈을 위한 노력의 기회조차 포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이다.

 

당사자들의 현실 상황 제도에 반영해야

“아기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해서 당장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처음이라면 넘어져도 보고 부딪쳐도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기초수급생활 대상자인 장애인 당사자 역시도 취업 즉시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립을 하기란 힘들다. 언제 또 다시 실직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직 이에 대한 안전망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것 같다” 몇 차례의 구직활동 끝에 취업포기의사를 밝힌 A씨의 말이다.

김민영 팀장 역시 실무자로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수급 대상 당사자들이 의료비, 주거비 부담으로 고민하거나 예기치 못한 실직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한다. “취업이 되더라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적응할 때까지 일정 지원은 계속되는 방향으로의 제도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수급권 재신청 시 과거 취업기록이 선정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역시 당사자들의 불안감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실직을 했다고 해서 또 바로 재취업이 될 거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정성철 조직국장은 다시 한번 현행 제도가 수급 대상 장애인 당사자들의 현실적 상황을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게 근로소득이 있을 경우 급여에서 30%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소득으로 인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제액이 낮아 결과적으로 일을 해서 받는 임금과 수급비의 차이가 거의 없거나 크지 않게 된다. 소득공제액이 어느 정도 현실화된다면, 일을 하고 싶어도 수급비 단절 우려로 인해 취업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또 기존 수급자가 취업 등으로 소득이 발생했을 때 최저생계비 150% 수준이면 2년간 의료급여와 교육급여를 보장하는 ‘이행기 급여’ 제도가 있었지만, 맞춤형 개별급여제도가 시행되면서 폐지됐다. 탈수급 이후에는 이 같은 연계급여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급여 선정 기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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