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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대사건의 핵심은 ‘당사자’다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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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3  09: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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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위기거주홈’ 거주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청주시 타이어노예 사건, 반복되는 시설 내 학대사건…, 장애인 학대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은 떠들썩하다. 인터넷 뉴스 댓글창에는 가해자를 향한 맹비난이 줄지어 쏟아지고, 이런 여론을 인식하듯 국가 차원의 피해자 구출과 전수조사는 발 빠르게 이뤄진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여론이 잠잠해지면 사건의 피해자 역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희미해져 간다. 그렇다면 사건 이후 피해 당사자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 대중의 관심에서 소외된 이 영역에서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는 그 누구도 하지 않던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

 

또 다시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약 3년간 운영하는 시범사업이다. 지원센터의 김강원 팀장은 센터가 설치되기 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서 활동했다. 2000년 설치된 인권센터는 전국 통합 장애인인권상담전화(1577-5364)를 운영하며 인권침해 사례를 접수하고 대응해왔다. 이 과정에서 인권센터는 특히 장애인 학대사례에 자주 개입하게 됐다. 인권센터의 연차가 쌓이면서 과거 이들이 지원했던 피해자들을 모니터링한 결과, 상당수가 사건 이전과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김강원 팀장

“최근 크게 이슈가 됐던 염전노예 사건만 봐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어요. 눈에 보이는 사건은 일단락된 듯 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갈 곳이 없었고, 심지어 몇몇 분들은 자신의 학대피해지인 염전으로 돌아가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2014년 염전사건이 터졌을 때 저희 인권센터를 포함한 기관 및 단체는 ‘염전노예장애인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소송을 진행하고, 사건 발생지인 전남 신의도에 두 달 간 머물며 조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했어요. 하지만 이분들이 다시 학대피해지로 돌아가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산다면 결국 이 노력들은 아무 의미가 없게 돼 버리는 거죠.”

장애 이외의 영역에서도 학대피해자들의 피해회복과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쉼터운영은 기본적으로 법제화돼 있다. 성폭력쉼터, 학대피해노인쉼터, 학대아동쉼터 등이 그 예다. 가해자로부터 긴급 분리된 피해자는 이 같은 쉼터에 임시로 거주하며 학대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회복하고, 지역사회 복귀를 위해 수사절차에 대한 법률적 지원, 피해회복을 위한 의료적 지원, 취업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받는다. 이 지원은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그동안 장애인은 이 당연한 권리에서도 배제돼 왔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염전사건 이후 뒤늦게 장애인 학대피해자를 위한 쉼터운영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보건복지부에서는 2015년 8월부터 임시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국에 6곳에 불과해 모든 인원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작 중요한 피해회복과 자립 지원체계는 전혀 갖춰지지 않은 채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김강원 팀장은 적절한 지원체계의 부재가 구출된 학대피해장애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학대피해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피해회복과 온전한 주민으로서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사후지원입니다. 이 과정이 없다면 상대적으로 학대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놓인 피해자들이 또 다시 피해를 입는 건 시간문제인 셈이죠. 특히 장애인 학대피해자는 장애 특성에 따라 비장애인 학대피해자와는 또 다른 지원들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염전사건 피해자 일부는 갈 곳을 찾다 결국 노숙인쉼터로 가게 됐는데, 그 안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거나, 하는 일 없이 무료하게 시간만 흘려보내다 결국 그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게 됐어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장애인 쉼터 입소를 아예 거부당하는 일도 빈번하고요. 정말 갈 곳이 없으면 결국 시설로 가게 되는데,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죠. 더군다나 오랜 기간 학대를 당한 피해자 중에는 장애인 등록이나 주민등록이 안 돼 있는 경우도 드물게 있어 이 경우 시설입소조차 불가능해요. 이렇게 학대피해 사건에서도 장애인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요.”

 

장애인학대피해 근절을 위한 노력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장애인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작년 1월 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서울에 위치한 본부 외에도 경기, 경북, 전남에 지역센터를 두고, 장애인학대피해 예방과 신고접수부터 사건 조사, 피해자 지원까지 장애인학대피해 전반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학대 영역은 타 학대유형과 비교해 본격적인 연구조차 이뤄진 적 없는 볼모지였다. 때문에 사업 초반에는 현장 활동가와 전문가 등이 모여 장애인학대의 개념과 지원체계 등에 관한 연구를 우선적으로 진행됐다.

연구과정에서 △신체적 학대 △성적학대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등 학대유형에 따른 장애인 학대지표도 새롭게 개발됐는데, 장애 특성을 이용해 학대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타 학대유형의 지표와는 또 다른 내용이다. 이 지표는 발달장애인이 참고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과 그림으로도 다시 제작됐다. 지원체계 연구에서는 아동학대, 노인학대, 가정폭력, 성폭력, 강력범죄 등 국내 학대피해자의 지원체계와 해외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체계를 참고해 국내에 적합한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체계를 재정리했다. 김강원 팀장은 이 과정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분절돼 있던 기존 체계들을 접목시키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학대피해장애인에게는 범죄피해자로서 필요한 지원이 있는 한편, 장애인으로서 필요한 지원도 있어요. 두 영역의 지원체계는 이미 각각 존재하지만 이것이 접목된 형태는 그동안 없었던 것이죠.”

지원센터는 학대피해 신고접수를 위한 전화(1577-5364)를 운영하는 한편 재가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조사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학대 발굴’을 통해 은닉되기 쉬운 지역사회 내 학대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설 종사자, 공무원, 학생 등 일정한 틀 안에서만 의무적으로 진행되던 학대 예방 인권교육의 범위를 지역사회 주민에게까지 확대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학대피해장애인이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사법절차 내 지원 체계를 마련한 것도 주요 성과 중 하나다. 학대피해아동, 성폭력 피해자 등에게 지원되는 전문 ‘진술조력인’ 인력은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피해자가 무사히 사법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다. 하지만 이 지원체계에서도 학대피해장애인은 그동안 제외돼 왔다.

“발달이나 자폐성 장애인은 내용파악의 어려움으로, 신체장애인은 정보의 접근성 문제로 수사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사 관정에서 진술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더 어려움이 있어요. 이와 관련한 지원이 법체계 내에서 전무한 상황이라 이 공백을 메우고자 민간차원에서 ‘진술지원인’ 양성과정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교육내용과 과정까지 도맡아 작년에는 총 17명의 인력을 배출했고, 수사기관에서 의뢰해오면 이들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학대피해장애인의 삶을 되찾는 ‘위기거주홈’

   
   
위기거주홈 내부 모습

장애인학대문제에서 지원센터가 무엇보다 중요시 하는 요소는 학대피해장애인 ‘당사자’다.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들이 또 다시 학대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이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년 말부터는 ‘위기거주홈(쉼터)’이라 불리는 임시쉼터를 운영하면서 거주자들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 법률, 의료, 취업 등 다방면의 지원을 하고 있다. 김강원 팀장에 의하면 쉼터 개소 이래 작년까지 총 4명이 지역사회로 자립했으며, 올해는 10명 정도가 자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강원 팀장은 이것이 분명 쉽지도 않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개인차가 있지만 긴급 분리된 피해자들은 보통 약 6개월간 쉼터에 머물게 되고, 그 기간 동안 피해 회복과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여러 지원이 이뤄집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언론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건의 피해자분들도 여럿 저희 쉼터를 거쳐 가셨어요. 일명 ‘타이어 노예’ 사건의 피해자도 그 중 한분이었는데, 처음 쉼터에 오셨을 때까지만 해도 공격성이 심하고, 위생이나 금전관리 등 개인관리가 전혀 안 됐어요. 쉼터 내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은 많이 변화된 모습이에요. 사회성도 회복되고 이제는 제법 멋도 잘 내세요. 취업 이후 수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지역 복지관과도 연계돼 꾸준히 이용하시면서 쉼터를 퇴소하시게 됐어요.”

쉼터 운영 경험과 추가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8월에는 학계 전문가와 법률가, 현장전문가 등과 함께 쉼터의 바람직한 초기 모델 수립을 위한 ‘학대피해장애인 쉼터 운영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서는 △국내·외 쉼터에 대한 비교·분석 △전문가, 실무자, 당사자 인터뷰 및 이를 통한 바람직한 쉼터의 운영방안 △쉼터의 설치 방식 △쉼터의 종류 △쉼터의 업무 △설치 세부기준 △이용절차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민간차원 넘어선 지원 필수적 장애인학대피해 예방에서 사건 조사와 피해자 지원까지, 지원센터는 장애인학대 문제를 망라한 모든 역할을 민간기관 차원에서 짊어지고 있다. 때문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쉼터 운영에 관한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황상연 실장은 쉼터 내에서 학대피해장애인 거주인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민간기관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들을 토로하면서 무엇보다 공적부문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쉼터 내 학대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기초생활수급 서비스,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 공공 서비스의 개입은 필연적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공적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상당해요. 더 나아가 이 역할을 가장 잘해낼 수 있는 건 여러 지원분야에 대한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간기관이 해내기엔 각 지원분야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과정도 쉽지 않기 때문이죠. 복지가 발달된 선진국에서는 평생에 걸친 국민 한 사람의 사례관리를 국가차원에서 책임지고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복지는 국가의 역할이니까요.”

거주인이 쉼터를 퇴소한 후 평생에 걸친 사후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일도 큰 어려움 중 하나다. 이를 위해 지원센터는 지난 3월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역사회 기반의 복지자원 발굴 및 연계에 강점을 가진 복지관과의 협력을 통해 피해자의 온전한 지역사회 정착을 꾸준히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관 한 곳과의 협력만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년 말 종료되는 시범사업

최근 3년이라는 시범사업 기간의 중간지점을 찍은 시점에서, 김강원 팀장은 지금까지 지원센터가 진행해 온 연구와 역할모델을 사업 종료 후 어떻게 제도적으로 녹여낼지 고민이 크다고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저희 센터가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커요. 피해자 자립 지원에 있어 저희만의 고유한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되는 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최근 저희 센터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설치되고, 이곳 역시 예산 부족으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차선책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보건복지부 산하의 학대피해장애인 쉼터에 저희의 역할을 제대로 녹여내는 것이에요. 남은 사업 기간 동안 학대피해장애인 지원 역할의 구체적 모델을 제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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