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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어디든, 우리가 가는 곳은 생명의 무대가 된다페스테자(FEST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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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7  15: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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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순간부터 ‘어, 뭐야?’ ‘어, 누구지?’ ‘와아, 이건 무슨 음악일까?’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힌다면, 그건 어떤 종류의 음악일까? 말 그대로 획기적인 리듬이다. 낯설 만큼 이국적인데도 아주 익숙한 우리 것 같다. 단순한 악기 구성인데 어떻게 저만큼의 흥겨움을 발산할까 싶어질 때면, 이미 어깨를 들썩이며 그들의 행진 뒤를 따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흥겨움이 터져 나오는 곳은 화려함 넘치는 초대형 무대가 아니다. 낮은 곳, 아픔이 있는 곳,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 그들이 존재하고 앞장선다. ‘삼바’로 상징되는 브라질의 타악기 리듬에 우리의 정서를 가미해서, 슬픔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타악기 연주팀 페스테자를 만났다. ‘아, 이 팀!’ 하며 반기는 독자 여러분이 많으시리라 기대한다.

 

슬픔을 넘어선 축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하자작업장학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안학교로 손꼽힌다. 제도권 교육의 틀을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끼’가 무한대로 발산되는 현장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지하고 질서가 잡혀 있다. ‘자유’와 ‘자율’이 작업장학교 전체를 지배한다. 주어진 타성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생을 지향하기에, 그들의 하루하루는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안에 페스테자가 있다. ‘페스테자’라는 팀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냐고 물으니, 함께 앉은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글쎄요?”를 연발한다. 열심히 준비하고 공연하며 지내왔지만, 정작 스스로를 설명할 ‘인터뷰 멘트’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단다. 페스테자의 중심을 맡은 동녘, 무브, 쥬디와 함께했다. 그들의 호칭은 모두 별명으로 통한다고 한다.

동녘 “페스테자는 하자작업장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다섯 명의 청년그룹인데, 학교 안에 십대 학생들의 공연팀이 있어요. 그래서 외부 공연을 나갈 때는 페스테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참가를 하죠. 학교의 일정상 한두 명, 두세 명씩 빠질 때가 있어서 공연 인원이 늘 유동적이긴 한데, 최대로 잡는다면 열다섯 명이 연주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무브 “저는 맨 처음 팀이 생겼을 때부터 함께했고요. 저희의 선배그룹인 ‘촌닭들’이라고 있었어요. 시골의 닭처럼 좋은 활력을 내는 팀이 돼 보자는 취지로 활동했죠. 초기엔 여러 제안들이 있었어요. 일반 밴드 음악도 했고 다양한 여러 시도들을 했었는데, 당시 한국의 인디음악에서도 거의 볼 수 없었던 브라질음악이 저희의 최종 선택이 됐던 거죠. 그래서 자기 일을 하면서 놀이의 문화도 함께하자고 준비를 하게 됐어요.”

페스테자(Festisa)는 축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페스테조(festejo)와, 슬픔이라는 뜻의 트리스테자(tristeza)를 결합해 만든 조어다. 2009년 ‘슬픔을 넘어선 축제’라는 의미를 담아 새로운 팀 이름을 만들면서, 그들은 본격적인 팀 구성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작업장학교를 다니는 십대의 학생이었던 이들은 졸업 후 하자센터에서 일하는 이십 대가 됐다. 이들은 ‘청년과정’이라는 곳의 직원으로 활동하는데, 하자센터는 교사나 직원이라는 표현 대신 ‘판을 돌린다’는 의미에서 ‘판돌’이라는 예명을 사용한단다.

동녘 “원래 레게음악을 하던 분이 계셨는데, 개인적으로 브라질음악을 접한 뒤 완전히 매료가 되셨대요. 그래서 그게 너무 좋아서, 혼자 브라질에 삼 년 유학을 다녀오셨죠. 그리고 서울에 삼바학교를 만드셨어요. ‘평소에 음악을 가까이 두고, 일상 자체로 그걸 향유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가. 이런 건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취지로 학교를 운영했는데, 저희의 선배그룹인 촌닭들도 거기에 가서 브라질음악을 배웠죠. 그 학교와 작업장학교가 연결이 되면서, 본격적인 페스테자의 틀이 갖춰진 거예요.”

   
 

 

우리의 무대는 ‘땅’이다

거리에서 페스테자와 마주친 사람들은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촬영을 시작한다. 특이한 건 사진 촬영이 아니라 동영상 촬영이라는 점이다. 정지된 사진으론 느낄 수 없는 흥겨운 리듬을 제각기 담아두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연주하며 행진을 하면, 거리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뒤를 따른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달려 나온 사람들까지 행진에 합류하는 모습, 그리고 경쾌한 몸짓으로 그 리듬에 몸을 맡기는 건 예정에 없던 축제의 한 장면이 된다.

   
 

동녘 “우리의 사물놀이가 그렇듯이, 브라질의 리듬도 가장 서민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냥 평범한 평민들, 소시민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좀 낙후된 동네, 그런 데서 주변에 널려 있는 자재들을 손에 들고 두들긴 게 시작이에요. 양철 같은 걸 펴거나 모양을 만들어서 서로 리듬을 맞추고, 같이 어울리며 흥을 돋우고, 그러던 게 쌓이고 쌓여서 삼바의 리듬이 된 거죠. 그 리듬이 퍼지고 퍼져 나가면서 거대한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국민적인 흥으로 발전하게 된 건데, 브라질의 리오 페스티벌의 영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실 거예요.”

쥬디 “저희가 공연을 가는 곳은 거의 다 사회적 이슈들과 결합된 부분들이 많아요. 그냥 일반적인 행사도 종종 있지만, 좀 멀더라도 저희가 있어야 할 곳이라 판단되면 달려가서 함께하려 노력하거든요.” 그렇다면 공연의 규모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어디였는지 듣고 싶었다. 질문으로 던지니까, 세 사람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답했다. “너무 많죠!” 공연 때마다 단원들 앞에 서서 지휘자 역할을 담당하는 무브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브 “저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은데, 오래 전 낙동강 강변을 걸으면서 공연했던 적이 있었어요. 4대강 사업이 막 시작됐을 때였죠. 당시 공연자였지만 학생 신분이기도 했기에, 사회적 문제를 접하면서 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을 때였어요. 그런데 4대강 사업의 그 현장을 직접 걷게 됐던 거죠. 그렇게 대자연이 무너져가는 곳에서 즐거운 리듬을 연주한다는 게 의미도 있지만 괴롭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마냥 즐겁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같이 걷던 사람들과 대열을 이뤄서 가다가 한 지점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흐르는 강물을 뒤의 배경으로 두고 관객을 바라보면서 연주를 했어요. 그 공연을 끝내고 저희들끼리 얘기를 하면서 이런 결론을 함께 내리게 됐죠.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고요.”

그날의 공연이 페스테자 단원들에게 남긴 의미는 상당히 컸다고 한다. 페스테자의 무대는 흔히 얘기하는 스테이지(stage)의 공간이 아니라 조금 더 땅에 가까운 곳이라는 것, 모든 걸 사람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주변과 세상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페스테자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다.

무브 “또 한 가지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은데, 매년 3월 11일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리는 추모제를 서울시청 인근에서 해요. 항상 길놀이패 역할을 저희가 담당하거든요. 저희들의 공연 분위기는 굉장히 활기가 넘치지만, 사실 그 행사의 주제는 추모제잖아요. 그런데 매년 하면서 제가 느꼈던 건, 그 행사가 저희 팀 이름과 너무 잘 부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신 되돌릴 수 없는 슬픈 일인데, 그 슬픔을 넘어서 축제를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매번 곰곰이 되씹어보게 되니까요.”

지난 9월 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842일 동안 진행했던 광화문농성을 잠정중단하면서, 지하 농성장 맞은편에 놓여 있던 영정사진들을 광장의 무대 위로 올려놓고 문화제를 개최한 바 있었다. 그 문화제 시작의 문을 연 것도 페스테자였는데, 당시 장애인권활동가들 간에 짧은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억울한 죽음의 영정사진들을 앞에 놓고, 어떻게 페스테자 같은 흥겨운 공연을 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그때 한 활동가의 한마디 발언으로 그 논쟁은 즉시 중단됐다. “지하에서 5년을 보내다가 이렇게 광장으로 나왔는데, 이젠 이들을 자유롭게 보내줘야 하잖아. 그 의미 깊은 순간을 빛나게 할 음악이 바로 페스테자 아냐?”

 

더 많은 걸 얻는 건 저희들입니다

   
   
 

쥬디 “저는 세월호와 관련된 공연들을 꼽고 싶어요. 여러 번 했거든요. 지난봄에는 목포신항에서도 함께했고, 작년엔 안산에서 유가족분들의 행사에도 함께했어요. ‘엄마랑 함께하장’이라는 장터 행사였는데, 저희가 공연을 할 때 정말 비가 엄청 왔거든요. 그래도 안 멈추고 연주를 계속하니까, 유가족분들과 참석한 많은 분들이 함께 춤추며 저희 공연과 그 비를 즐기셨어요. 정말 인상에 남는 날이었는데, 그런 자리에서 저희가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었고 감사할 일이었다고 간직해요.” 동녘 씨는 작업장학교 학생 시절의 오래 전 기억을 먼저 끄집어냈다. 일본의 신체장애인들로 구성된 연극극단이 있었는데, 그들이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하게 됐단다. 그래서 연습을 하고 공연까지 올리는 몇 개월 동안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그가 맡은 일은 무대 위의 조력자였다고 한다. ‘쿠로코(黑者)’라 불리는, 검은 옷에 얼굴까지 모두 검은 천으로 가리고 중증장애인 배우들의 무대 위 위치를 옮기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객석의 관객들에게 안 보이는 존재, 무대 위에 없는 존재로 약속된 그 역할을 맡았던 게,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 같은 무게감으로 남겨졌단다.

동녘 “그 경험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때부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가 그냥 정상인이라고 말하는 ‘정상’,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라는 거, 그렇다면 ‘보통’이라는 게 뭘까? 그 기준은 도대체 뭘까? 그 고민을 정말 진지하게 했었습니다.”

페스테자는 노들(장애인)야학의 행사에 자주 참여를 한단다. 거의 매 계절마다 공연을 가는 것 같은데, 이젠 노들야학의 활동가들과 친숙해질 만큼 인간관계도 맺게 됐다고 한다.

동녘 “그런데 노들야학이나 차별철폐연대 행사 같은 데 가면, 그런 ‘기준’이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상이라는 걸 깨닫게 돼서 개인적으론 엄청난 의미를 얻게 되거든요. 격리되고 유폐돼 있던 사람들이 야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만나면서, 배움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잖아요. 그렇게 밖으로 나오는 분들과 마주하면서, 저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거예요. 매일 매일이 혁명인 분들이잖아요. 저희는 연주를 하러 가지만, 그 혁명적인 마음 같은 걸 늘 배우고 오게 돼요. 노들야학은 항상 활기가 넘치거든요. 저는 갈 때마다 제가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서, 참 좋은 마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흔히 ‘레퍼토리’라고 부르는, 페스테자의 연주곡은 몇 곡이나 될까? 굳이 분류하자면 다섯 곡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흥이 나다 보니까 계속 듣다 보면 그 곡이 그 곡인 것 같고, 같은 곡을 또 들어도 전혀 다른 곡처럼 새롭다고 나름의 소감을 전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게 맞는 이유가 있단다. 그때그때마다 삽입할 수 있는 별도의 리듬이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공연장과 행사장의 분위기에 맞게 따로 준비된 연주를 삽입한다는 건데, 중간에 다른 리듬이나 특정 악기의 독주를 툭 집어넣는다고 한다. 그러면 듣는 이들의 달아오른 흥이 두세 배로 터져 나오는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쥬디 “열세 명에서 열다섯 명이 항상 같이 공연하는 건 아니고요. 세미나실이나 강의실 같은 실내 공간에서 연주를 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큰북 같은 건 가져가지 않고, 작은 손악기 중심으로 연주를 해요. 전자기타가 포함될 때도 있고 ‘까바낑유’라는, 우크렐라 비슷하게 생긴 포르투갈 고유의 기타로 노래를 할 때도 있거든요. 거리의 행진 때 보셨던 규모와 형식으로 매번 공연하는 게 아니라, 장소와 취지에 맞는 소규모 인원의 연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공연할 때 관객이나 참석자들의 열띤 호응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엔 무슨 생각이 들까? 그들의 얼굴 표정, 그들의 눈빛, 그들의 몸짓이 분명 연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브 “제가 그런 걸 양쪽으로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공연하잖아요.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팀원들이 잘 하고 있는지, 그 다음에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해요. 무엇보다 먼저, 저는 저희 팀원들의 상태부터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우리 공연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딱 받게 되면, 그때부터 저는 관객들한테 모든 걸 집중합니다.”

경쾌한 리듬의 흥을 참지 못한 몇몇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게 되면, 지휘자 역할을 맡은 무브 씨는 관객의 다른 자리로 가서 호루라기를 불며 불씨를 놓는다. 일단 타오르기 시작한 객석의 한쪽은 ‘알아서’ 타오르기 때문에, 더 많은 흥겨움을 유도하기 위해 다른 자리의 흥을 돋우는 것이다.

무브 “그런데 가장 조심스럽게 제가 신경을 쓰는 부분은, 장애당사자 여러분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인데요. 박수를 유도해야 할 순간인데, 손뼉을 칠 수 없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함성이 뒤따라야 할 순간인데, 우리 당사자분들은 그게 어려우실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이 즐거움을 어떻게 나누고 전달하는 게 나을지, 그걸 항상 진지하게 고민하며 관찰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선, 머릿속으로 페스테자의 공연 현장을 계속 떠올리며 읽는 분들이 적지 않으시리라 판단된다. “이 팀의 공연을 내가 직접 봤어!” 하며 현장의 흥이 되살아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그렇다면 페스테자 입장에서 ‘우리 공연을 이렇게 즐겨 주세요!’라는 당부의 한마디 또한 남겨놓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어진다. 페스테자가 공연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를 발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동녘 “저희가 페스테자를 시작할 때부터 설정해 놓은 숙제이자 목표이기도 한데, 한쪽에 무대가 있고 객석이 따로 정해져 있잖아요. 그리고 그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떨어져 있고 높이가 다르잖아요. 저희가 꾸준히 시도하는 숙제는 그 높이를 없애고 하나로 합치는 거예요. 그 거리와 높이가 거의 같게 만들어서, 나중에는 서로가 함께 뒤섞이는 현장을 만들 겁니다. 매번 공연 때마다 그 목표를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는 거, 저희를 직접 보셨던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무브 “공연을 무대 위에서 시작해도, 저희는 공연 중간에 일단 무대 아래로 내려갑니다. 내려가서 조금 더 가까이에서 연주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거든요. 저희들이 그런 현장, 가깝게 함께 호흡하는 걸 목표로 하는 팀이라는 걸 이 지면을 통해 알게 되신다면, 저희를 볼 때마다 더 가깝게 다가와 주시면 좋겠어요. 저희가 다가가기 전에 먼저 와 주시는 게 저희는 훨씬 더 반갑거든요.”

쥬디 “저희도 저희들의 연주에 흥이 나서 몸을 움직이게 되는데, 함께하신 모든 분들이 같이 흥겹게 동참해 주시면 저희들이 더 힘이 나죠. 저희들한테 확 다가와 주세요. 저희는 더 신명나는 감동으로 연주를 전해드릴 겁니다.”

동녘 “전동휠체어를 타신 분들도 휠체어로 춤을 표현해 보세요. 지난 번 광화문 행사에선 온 몸으로 춤을 추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서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런 분들한테 저희들은 응원의 힘을 얻습니다.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흥을 표현해 주세요. 그 흥을 저희는 열 배 스무 배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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