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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실재, 그 사이를 유영하는 ‘소리 없는’ 노래정용준 <가나>
글. 차희정/아주대학교 외래교수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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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4  11: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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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단편소설 <가나>(『현대문학』, 2009.12)의 첫 장면은 바다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형 선박에 올라탄 세 명의 해경에 의해 건져진 시신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다. 대체 죽은 지 얼마나 됐을까?

육체의 대부분이 짓물러 사라진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 모습은 제대로 끔찍하고 역겹다. 섬뜩하다. 물에 불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얼굴과 희고 불투명한 구슬모양의 동그란 뼈마디를 드러낸 손가락, 허벅지에서 시작해 움푹 패어버린 옆구리 안에까지 다닥다닥 달라붙은 검붉은 고동 무리와 그의 귓속에서 허둥대며 기어나온 칠게는 남자의 죽음에 대한 눈꼽만큼의 위로도 없어 보인다. 부패한 육체는, 그저 더럽고 처참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곧 죽은 남자의 목소리를 호명해 죽음과 죽음 이후의 새로운 실재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죽음이 너무나 쉽게, 간단하게, 고통 없이 왔다는 것과 육체가 바다에 침잠하고 부유(浮游)하는 과정 속에서 흩어지고 사라지는 등 변용되고 승화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다. 그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 이야기는 죽음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아내에 대해서다.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하비바(사랑받는 자)’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하비바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은 쉽게 찾아왔다

지금 내가 잠을 자는 것인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그렇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죽은 것이다. 죽음은 잠처럼 익숙하게, 하지만 예상할 수 없게 찾아왔다. 어, 하는 그 사이에, 나는 죽었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아랍계 남자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떠나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들과 아내가 고향에 있다. 빨리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두 해가 지나도록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가 배를 타게 된 사연도 기구한데, 짐작하듯 굶주림 때문이다. 그의 마을에 도둑이 들어 모든 것을 노략질 하고 나서 초원에서는 거둘 것이 없었다. 돌을 캐는 일마저도 벌이가 되지 않는 즈음에 그는 들을 줄만 알고 말은 못하는 벙어리 아내 하비바와 갓 태어난 아들을 두고 몇 개의 국경을 넘었다.

뱃일은 힘들었지만 성과가 없었고 지난한 시간과 침묵, 살인과 죽음 충동만이 질기도록 반복됐다. 그리고 오랜만에 도착한 육지, 항구에 정박한 이틀이 끝나고 다시 바다로 향하기 위해 이제 막 스크류가 몸을 떨기 시작한 순간 죽음을 만났다. 그는 중심을 잃고 바다로 떨어졌고 스크류에 허리가 패이면서 곧장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배 난간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던 그의 발이 풀어져버린 줄에 걸려서 정말 “어, 하는 사이에”, 바다로 떨어진 것이다. 그는 배 안에서의 불면의 시간을 “땅속에서 웅크리고 몇 년을 살아야 하는 유충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선실의 어둠이 죽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잠을 자는 것과 꿈을 꾸는 것과 죽은 것을 동일 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죽음을 잠을 자거나 꿈을 꾸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이 찾아온 죽음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그가 죽어가면서 경험한 것들이다. 그는 의식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을 알았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새롭고도 섬세한 이해와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꿈이 아니며 현실도 아니”라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한 죽음은 이런 것일 수 있다. 뭔가 비극적이고 장엄한, 무수히 많은 것들과의 이별과 그 과정에 동반되는 온갖 감정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대면하고 정리하는 시간도 거둬버리는 무지한 비정이야말로 죽음의 얼굴일지도. 그러나 육체로 표상되는 살아있는 현존재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 또 다른 존재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면 이는 대단히 흥미롭다. 그리고 구성되는 새로운 존재 세계가 무엇을 기반하고 있는지 고백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침묵하는 대지의 추방과 노래를 잉태하는 바다

소설의 주인공은 하비바를 아내로 맞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작고 야위었으며 벙어리이기도 해서, 마음에 두었던 ‘카밀라’가 삼촌과 결혼한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울분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녀는 자신을 분명하게 거부하는 그에게 화가 날 법도 한데 늘 까치발로 소리 죽여 걷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한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비겁과 오만함이 부끄러워서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때렸다. 권위에 저항하지 못한 무기력함은 총을 들고 마을에 쳐들어와서 사내들을 죽이고 양을 약탈해 간 도적들에게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대고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던 자신을 견딜 수 없게 했다. 그는 저항하다가 이마에 총을 맞고 죽은 사촌 ‘이수와르’를 땅에 묻으며 죽음 앞에 한없이 무력했던 자신을 미워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기르던 양을 약탈당한 대지가 남자들의 무기력함과 여자들의 오열로 더 크고 깊게 황량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하비바는 그가 겪은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서 그와는 자못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곱게 끌어안고는 토막난, 기괴한 소리로(정작 들리는 것은 그것밖에 없지만) 노래하고 있다. 울고 있지 않았고 특유의 무표정인, 평안함까지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혼곡일까, 죽음 이후 ‘좋아하던 노래’로 다시 태어나서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엄마와의 만남인 걸까? 목소리를 상실한 하비바의 성대를 통해서 죽은 그녀의 어머니는 분명 실재하고 있는 듯하다.

‘엄마가 죽었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엄마가 죽었습니다. 나는 노래하고 싶습니다.’소리 없이 열린 그녀의 입에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내 마음을 뚫고 지나갔다. 뚫려진 면이 거칠어 너무도 따가웠다.

하비바는 소리 없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속에서 존재하지 않으나 실재하는 어머니와 이별하지 않았다. 사라진 어머니의 존재가 그녀의 노래 안에서, 또는 노래 그 자체로 새롭게 실재하는 것이다.

그는 그날 밤 하비바의 남편으로서 그녀와 동침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너무나 작지만 그 품은 놀라울 정도로 넓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와 하비바의 아들 ‘가나(노래)’의 탄생이 이어졌다. 이제 그는 많은 생명을 삼키고도 황량함으로 침묵하는 대지로부터 스스로 추방되고자 한다. 사촌과 마을 어른들의 죽음을 통한 존재의 사라짐의 엄청난 공포와 그러한 세계에서 느낀 무기력함과 부끄러움은 대지로부터의 자발적 추방을 통해서 상쇄될 것이다. 그는 아내 하비바의 노래와 순결한 핏속에서 이를 치유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비바, ‘사랑받는 자’와의 조우를 기대하며

그가 배를 탄 이후 잠시 정박하게 된 항구, 드넓은 바다 위에서의 시간이 잠시 멈추는 땅에서 보낸 이틀 동안 그는 정작 갈 곳이 없었다. 땅은 사람들이 보고 싶었지만 만날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또, 그저 돈을 쓰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는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줄 것이기에 희망했던 육지가 정작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음을 깨닫는다. 명료하고 분명하게. 이러한 소외감은 그가 ‘결국 난, 술을 마시기 위해 배를 탔구나’는 탄식을 통해서 드러나고 잠시 후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이어진다. 잠을 자듯 편안하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별할 수 없는 속에서.

그리고 바닷속을 부유하는 육체는 구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면밀하고, 세밀하게 훼손되어 간다. 흘러내리는 핏물을 따라 학꽁치 떼가 유영하고 은색 몸빛을 닮은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갈치가 곁을 맴돈다. 구멍난 옆구리로 보리새우가 숨어들고 고동은 산책하듯 편안하고 여유롭게 움직이며 그의 몸을 녹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육체는 바닷속 부드러운 땅에 서기도 하고 천천히 떠오르기도 한다. 자유롭다. 주지하듯 그는 뱃사람들에게 전해오는 신화 속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이끌린 것도 아니었고 침묵과 고요로 위장한 바다의 유혹의 손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해경에 의해 발견된 그는 행려병자로 분류되고 곧 화장된다. 재가 된 그의 육체는 바람에 날리며 바다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그리고 하비바가 좋아하던 노래가 됐다. 그는 노래로 하비바와 가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존재를 확인하려는 고집을 접어둔다면 이제 어디서도 그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바람인 듯 노래인 듯 만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죽음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능성, 존재 너머에 실존하는 삶을 찾거나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삶이거나 다시 태어나는 윤회적 차원의 삶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나 분명하게 실재하는 삶을 철저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지금 우연찮게, 어이없이,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은 다른 삶의 계기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이 우선은 훼손되고 헤쳐지고 나눠지고 녹아진 후에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 바다의 배양. 바다는 그래서 표정 없이 죽음을 애도한다. 실재의 탄생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하비바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어쩌면 바다는 청동의 사물을 품어 생명을 잉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신화처럼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바다에서 다시 생명을 얻은 그것은 이전의 모습과 같거나 또 다른 형태로 표상될 것이다. 그, 온 우주를 유영하는 소리 없는 노래는 실재하는 무엇으로 하비바와의 조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사라진) 신체에 대한 위무 또한 계속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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