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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시설’에서 ‘시설에서 벗어난 삶’으로창간 30주년 기획 ① 탈시설
글. 조은지 기자 ◉ 사진. 함께걸음 자료사진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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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5  10: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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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창간 30주년인 2018년을 맞아 편집부에서는 함께걸음이 다뤘던 주요한 장애계 이슈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각각의 주제가 이슈화 됐을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인물을 통해 과거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지금까지의 변화와 앞으로의 미래상을 그려볼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주제로는 현재까지도 장애운동의 주요 이슈로 자리잡고 있는 ‘탈시설’로 선정했다.

 

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시설로 내몰릴 위험에 처해 있고, 한 번 시설로 들어가면 사회로 다시 나올 확률도 별로 없다. 이는 복지부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복지부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 장애인 시설 현황을 분석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 기간 동안 입소한 장애인들은 2천2백여 명이 늘었는데, 퇴소자는 1천77명이 줄었다.(2000년: 1천452명, 2005년: 375명) 2005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장애인 시설이 331개소였음을 감안하면, 한 시설에서 1명 남짓 퇴소한 셈이다.
……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재활지원팀은 “현재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지원책은 없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탈시설 후 행정 공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현재 대책은 없다.”고 털어놨다.

2007년 1월호 함께걸음 ‘죽거나 혹은 그 정도를 감수해야 가능한 꿈, 탈시설’ 중

 

시설 안 인권보장에 물음표를 갖다

“한 특수교사가 전화를 해 자기가 맡았던 반 학생이 집안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들어갔는데, 우려가 된다고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강원도의 어느 산 꼭대기에 위치한 시설에는 건물이 없었다. 울타리로 설치한 철창 너머 부지에 컨테이너들과 헐벗은 사람들 뿐이었다. 원장은 방문인의 출입을 거부했다. 그 학생만 밖으로 내보내 만나도록 했고, 찾아간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안에 들어가 실태를 볼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장애인 조카의 입소 상담을 하러 온 고모로 위장해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끔찍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들, 갇힌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 헐벗은 몸에 번진 피부병, 식당이라고 부르던 축사에서 제공되는 정체불명의 죽 한 그릇 등등. 원장은 내게 자신있게 시설을 둘러보게 할 만큼 그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자신의 자식을 시설 내에 가두고 개줄에 묶어놓을 정도였으니, 개선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 곳을 보고 온 이후로 탈시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늘 탈시설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의 여준민 사무국장은 ‘탈시설’이라는 용어조차 없었던 때부터 탈시설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시설비리와 시설 내 인권침해가 속속 밝혀지면서 시설 문제가 줄을 잇기 시작했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초반, ‘더 나은 시설’이 아닌 ‘시설을 벗어난 삶’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랐다. 신체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기 시작하면서 기동력이 생기자, 장애운동이 활발해졌고, 이동권 투쟁과 함께 탈시설 이슈도 논의됐다. ‘탈시설’이라는 운동의 이름을 만들었고, 장애계는 장애인의 시설 거주를 당연시하는 정책들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던 중, 발바닥 활동가들은 장애운동을 한국보다 먼저 시작한 미국을 방문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직후인 2008년이었다.

“미국 일리노이주를 중심으로, 탈시설 운동 과정과 지역사회 자립 지원 서비스, 정책을 살펴보는 연수였다. 일정 중 일리노이 주정부 서비스전환국과의 만남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서비스 체계를 주정부 주도 하에 구축하고 있었다. 주정부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사는 것보다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리노이주 외 몇몇 주는 당시에 이미 시설해체에 돌입했다고 전해들었다. 국내에서도 장애계 내에서는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논의되고 있었지만, 정부가 공감하거나 움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연수에서 마주한 미국의 ‘탈시설’ 추진 상황은 다소 놀라웠다.”

미국의 탈시설 지원 시스템을 둘러보고 온 여준민 국장 및 발바닥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탈시설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009년, 탈시설자립생활 쟁취를 위한 60일의 ‘마로니에 노숙농성’이 이어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박옥순 사무총장은 마로니에 투쟁이 현재의 장애인전환지원센터 구축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시설에서 살고 있던 장애인 8명이 시설 밖 생활을 알게 됐고, 시설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서울시에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쳤다. 노숙 농성을 하는 동시에 당시 서울시장의 일정을 쫓아다니면서 탈시설을 외쳤다. 결국에는 모른척 할 수 없게 된 서울시장이 우리와 마주했고, 탈시설을 위한 요구사항을 전달할 수 있었다. 서울시의 장애인 전환시스템이 그 투쟁 결과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 학자들이 시설 안에서 거주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 외에 탈시설에 관련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탈시설, 그리고 그 후

2000년 초, 탈시설에 대한 인식은 비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낯설고 불안한 것이었다. 시설에서 나가 지역사회에서 정착하는 것 이전에 당장 의식주 해결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박옥순 사무총장은 탈시설한 장애인에게 따라오는 지원이 전무했을 당시, 탈시설 운동을 접하고 시설 밖으로 나왔던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고군분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지역사회에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마련돼 있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반응들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겠지만, 어떻게든 될 거라는 용기로 시설에서 나온 당사자가 있었다. 활보도, 기초생활수급비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당장 24시간 활보가 필요했다. 살기 위해서는 대안이 없었다. 발바닥 활동가들이 책임을 나눴다. 4교대, 5교대로 직접 활동보조를 하면서 버텼다. 수개월을 버텨야 수급권자가 되던 시기였다.”

2018년 현재는 앞서 언급했던 전환지원센터를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전환지원센터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공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로, 마로니에 농성 이후 2010년에 문을 열었다. 전환지원센터는 자립생활주택을 운영하며 탈시설 장애인이 최장 7년간 자립생활주택 내에서 지역사회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난 8년간 전환지원센터를 이용한 장애인은 총 223명이다.

서울시의 경우, 탈시설 지원금이 지급되고 활동보조지원은 탈시설 이후 6개월 간 추가 20시간을 부여 받을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전입신고 후 신청하면 부양의무자를 찾는 등의 조사과정을 거친 뒤 수급비가 나온다. 만약 조사 과정이 길어져 수급비 지급이 곧장 이뤄지지 않으면 추후에 퇴소 당일부터 소급 계산해 지급된다. 서울시는 타 지역에 비해 선진적인 탈시설 정책을 가지고 있지만, 지자체에 따라 탈시설 지원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박옥순 사무총장은 특히 민간 거주시설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주택의 위험성에 대해 꼬집었다.

“시설이 탈시설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시설이 자립생활주택을 운영하는 목적을 운영 자체에 두게 되면, 시설에서 자립생활주택으로 갔던 장애인이 다시 시설로 돌아갔다가 또 다시 자립생활주택으로 가는 반복이 발생한다. 자립생활주택은 지역사회로 나가기 전 준비 단계이지, 장애인의 자립 가능성을 테스트 해보는 과정이 아님에도 적응을 힘들어하는 당사자를 자꾸만 시설로 다시 입소시키는 경우들이 있다. 자립생활주택의 종사자 선정도 주의해야 한다. 운영 주체가 같으니 시설에서 종사했던 사람이 그대로 자립생활주택 종사자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시설 내에서 당사자를 보호하고 간섭했던 사람이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자신과 함께 지냈을 때, 당사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이미 권력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몸에 익은 습관 그대로 생활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진적이라는 서울시의 탈시설 지원도 수요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옥순 사무총장은 탈시설 운동 초반과 달리 더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오려는 욕구를 가지는 것에 맞춰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좋은 거주시설? 시설은 시설일 뿐

   
 

탈시설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설의 필요성, 좋은 시설의 구축 가능성 등을 말하는 입장은 존재한다. 논의, 연구 등도 탈시설과 시설 내 권리보장에 대한 주제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시설 내 상황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박옥순 사무총장은 최근 방문했던 지방의 한 시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국에서도 좋은 시설로 정평이 난 정신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다. 장애 정도에 따라서 3개의 구역에 나눠 지내고 있었고, 구역들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구역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흡연구역도 조성돼 있었다. 구역 사이 계단에는 출입을 막는 장치가 없었지만 어느 거주인도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았고, 잘잘못에 따라 기호품 제공량을 조절했다. 구역별 거주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구역을 떠나 모두 동일하게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다. 약 복용으로 증상이 없는데 왜 그곳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족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는, 나가고 싶으니 가족들에게 얘기를 대신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10년 전 가족의 방문이 마지막이라는 거주인도 있었는데, 가족의 전화번호를 외워 내게 알려줬다. 그렇게 좋은 시설이라는 평을 받는데, 계속 그곳에 있고 싶다는 사람은 없었다. 시설이 ‘좋다’고 하는 것은 고작 방에서 나오게 해주는 것, 기호품을 주는 것, 하루 일정 시간 산책하게 해주는 것 같은 제한적인 조건에 의한 평가다. 아무리 좋아져도 시설은 시설일 뿐이다.”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 부재 해결해야

앞으로의 탈시설 운동에 대해 박옥순 사무총장과 여준민 사무국장은 입을 모아 우선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마련하도록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은 증가했지만 탈시설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인거주시설 운영 예산이 증액돼 탈시설로 향하는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박옥순 사무총장은 탈시설 시스템이 전국에서 유기적으로 가동되기 위해 중앙정부가 움직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탈시설 운동 초기부터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투쟁하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해, 일단 서울시를 대상으로 운동을 펼쳤다. 서울시가 시범사업을 하거나 어떤 정책을 펼치면 그것을 선례로 해서 시도별 활동가들이 투쟁해 나가는 방식으로 넓혀 나가자는 전략이었는데, 아직까지도 탈시설과 관련된 중앙정부 정책이 없다는 건 큰 문제다. 중앙정부의 정책과 예산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지방에서도 탈시설 과정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여준민 사무국장은 시설에 대한 인식 변화도 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거주시설을 완전히 다 없애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묻기도 한다. 아직 선진국에서도 대형시설은 아니지만 시설이 남아있는 실정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선진국들이 보여주는 장애 정책이나 현황은 종착지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우리보다 좀 더 빨리 시작해서 앞서 달리고 있는 중이다. 시설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사람 대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 어제와 오늘, 내일로 흐르는 ‘시간’에 대한 인식 등 아주 기본적인 사회적 개념들조차 사라진다. 꼭 신체적 학대 등이 없어도 시설 자체가 빼앗아가는 권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탈시설 운동 과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시설은 절대 아니다’ 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내면 모두가 시설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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