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마네키 네코, 복을 불러오는 고양이 앞에서오사카에서 온 편지
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  cowalk100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2.21  13:28:4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사진에 찍힌 커다란 고양이 인형이 보이세요? ‘마네키 네코’, 복을 불러오는 고양이라고 하는데요, 목에도 ‘복(福)’이라는 글자의 목걸이를 걸고 있는 이 고양이, 일본의 새해 풍경을 보여주는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일본에서는 1월 1일부터 3일까지가 연휴이고 그 사이에는 가족이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1월 1일 새해 0시가 되면 그 시간에 맞춰 자신의 새해 소원을 기원하러 신사에 간다든가, 날이 밝으면 조상의 성묘를 간다든가 하는 풍습이 일반적이고, 일련의 행사를 치르고 나면 큰 상점으로 가서 구경도 하고 쇼핑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손님들을 맞이하는 신년 특별기획 상품을 ‘후쿠부쿠로’라고 하는데, 우리 말로 하면 ‘복주머니’라는 뜻으로 5,000엔, 10,000엔, 20,000엔 등 가격이 정해져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지요. 테마는 정해져 있지만 뭐가 들어있는지는 가방을 열어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데, 금액 이상의 ‘깜짝’ 상품이 들어 있으니까 즐기는 재미가 있다고 하네요.

저희 가족도 1월 1일 성묘 후 외사촌들과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오후에는 큰 쇼핑몰로 놀러 갔어요. 특별히 살 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가면 어쩐지 명절 분위기도 나고, 추운데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시간 보내기가 무난하니까요.

거리는 한산한 편이지만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주변길은 막히더라고요. 모두 생각하는 게 비슷한 거겠죠. 천천히 상점들을 둘러보는데 아이들은 관심이 많은 남성의류 가게를 중심으로 둘러보더라고요. 그 가게 입구에서 손님을 부르며 손짓하는 커다란 마네키 네코. 첨단과학의 세상이라지만 ‘풍선으로 부풀려진 복을 부르는 고양이’에게 끌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귀엽다고나 할까요. 저는 휠체어를 탄 채 입구 쪽에서 기다리면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고양이 앞을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이런 저런 모습이 엿보였어요.

어머! 그 고양이 앞에 한 아이가 뛰어와서는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 거예요. 인형 고양이와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죠. 복을 불러오는 고양이의 손을 통해 올 한해 아이가 더 무럭무럭 잘 크고 건강하기를. 좀 있으니 저처럼 휠체어를 탄 한 남성이 고양이 앞으로 다가가더군요. 고양이를 보러 간 건 아닐 거고 아마 고양이 뒤편에 ‘후쿠부쿠로’ 안에 담겨 있는 상품 모델을 입은 마네킹이 있고, 소개하는 광고지가 있으니까 그것을 보러 간 거겠지요. 처음부터 점원에게 문의를 했던 건지 여성 점원 한 명이 따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일본에서는 경축일이나 행사를 할 때 상점 점원들이 ‘하피’라고 하는 전통적인 가운을 입는 경우가 많으니까 빨간 ‘하피’를 입고 있는 여성은 아마 점원일 거예요. 그 손님이 어떤 상품을 고르고 샀는지는 모르지만, 다양한 연령,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그런 풍경을 보면서 너무도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특별해 보였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새해 첫날의 시작, 시작이란 도달점을 향해 나간다는 것이요, 아무리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고 싶다 해도 시간이 머물러 주지 않으니, 나간다는 선택만 주어질 뿐인 우리들은 긴 여정을 지켜낼 힘을 찾아야겠죠. 전자상품 가게의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는 인내심과 노력을 대표하는 스포츠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인내심과 노력을 대표하는 스포츠 중에 마라톤이 있잖아요. 일본에서는 마라톤 거리를 6명의 선수가 릴레이로 완주하는 ‘에키덴’이라는 경주가 있는데, 일본에서 만든 경주라서 외국에서도 그냥 ‘에키덴’으로 불려지기도 한대요. 선수가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다음 주자가 기다리고 있는 목적지까지 완주한 후 다음 주자에게 ‘다스키’라고 하는 띠를 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좀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신년맞이 전국 에키덴 경주대회가 아주 유명하고 인기가 있어서 1월 1일 아침부터 텔레비전으로 중계가 됩니다. 매서운 한겨울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소매에 반바지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선수들을 보면 참 그 결심이 대단하다 싶은데요. 이 경주만 보더라도 일본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영웅적인 한 사람이 아닌 다수가 힘을 합쳐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을 아주 중요시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혼자서 완주하는 마라톤이지만 두 사람이 한 팀으로 달리는 시각장애인 마라톤이 있잖아요. 지난 12월 17일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개최된 마라톤 대회에서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미치시타 미사토 씨가 2시간 56분 14초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웠다고 해요. 이 선수는 2016년 리우패럴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딴 선수라는군요.

그런데 저는 시각장애인 마라톤을 볼 때마다 그 옆에서 함께 달리는 반주자에게도 눈길이 가더라고요. 시각장애인 선수가 세운 세계신기록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함께 달리며 반주자와 함께 이룬 성과잖아요. 일반적으로 반주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안 되지만, 이 대회의 반주자에 대해 찾아보니 호리우치 노리다카라는 시민 마라톤 선수였어요. 여자 선수 종목이니까 같은 여자 선수가 반주자로 달리는 줄 알았는데 경험이 많은 남자 선수라고 하네요. 아무튼 시각장애인 선수와 반주자가 함께 발을 맞춰 달려서 골인하는 모습은 특히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는 이 무렵, 길을 출발하는 모든 이들에게 시사해 주는 점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 누구나 대개 마음 한 켠에 느끼는 불안함도, 타성에 젖은 둔감함도 마찬가지겠지만, 과감히 도전하고 성과까지 이뤄내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도 얻고 도란도란 비슷하게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흐뭇한 모습들 속에서 안도감도 느끼며, 함께 내딛는 새로운 하루가 복되기를 기원해 보는 마음입니다.

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9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근육장애인 맞춤형 복지 정보 제공 홈페이지 개설
2
2018년 함께걸음 설문조사
3
우리 집에 놀러오시세
4
새로운 교구를 활용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5
올해 장애인에게 디딤돌과 걸림돌이 된 판결은?
6
뒤죽박죽 장애정책, UN장애인권리협약과 연계성 강화해야
7
하모니원정대가 추천하는 12월 여행지 BEST 2
8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있습니다
9
부러우면 너희들이 장애인 해!
10
등급제 폐지 희망고문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제호: 디지털 함께걸음  |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김성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