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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삶의 출발, 이동권창간 30주년 기획 ② 이동권
정혜란 기자  |  sousms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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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5  1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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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창간 30주년인 2018년을 맞아 편집부에서는 함께걸음이 다뤘던 주요한 장애계 이슈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각각의 주제가 이슈화 됐을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인물을 통해 과거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지금까지의 변화와 앞으로의 미래상을 그려볼 예정이다. 두 번째 주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적 기본권, ‘이동권’이다.

 

지금은 이동권 보장 주장이 대세지만 한때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 높여 사회에 외친 시절이 있었다. 접근권과 이동권은 똑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어렵던 시절 두 단어는 쓰이는 개념이 달랐다.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 엘리베이터는커녕 휠체어 리프트도 전무했던 암흑의 시절, 장애우들은 이동권 보장은 꿈도 못 꾸고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만이라도 보장하라고 한 목소리로 접근권 보장을 외쳤다. 그래서 그때는 격세지감이 들지만, 무엇보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거리의 턱’을 없애는 것이 운동의 주된 목표였다. 거리 턱을 없애 장애우들이 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요구의 전부였던 것이다.

김순석 열사가 거리 턱을 없애달라고 자살한 지 꼭 10년 만인 94년 접근권 보장을 목표로 한 함께걸음 시민대행진이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흐른 지금 접근권 보장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동권 보장이 대체하고 있다. 또 10년이 흐른 뒤에는 과연 어떤 단어가 이동권을 대체할까? 그때는 아무 단어도 필요 없는 장벽 없는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2005년 7월호 함께걸음 ‘사진으로 보는 장애우 역사- 접근권에서 이동권으로’ 중

   
 

한국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이 만들어지기 이전, 한국 사회에서는 이동권은커녕 점자블록, 휠체어 리프트 등 기본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조차 생소했다. 장애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처럼 자리하던 시절, 故 이현준 씨를 포함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 3명, 청각장애인 1명 등 6명의 한벗장애인이동봉사대 활동가들은 과거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의 활동가였던 전정옥 국장이 머물고 있는 호주를 방문하게 된다.

장애우 가족지원센터의 전정옥 원장은 당시 이들의 호주 방문이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 결성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은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던 앞선 장애운동과는 달리 ‘편의시설을 통한 접근권 보장’이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요구한 최초의 시민모임이었다.

“이들이 호주를 방문했던 1996년도 한국의 장애인은 병원 예약 같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외출을 거의 못했다. 당시 조사에서 연 평균 5번 외출을 하면 많이 하는 편에 속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학교는 물론 직장을 구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반면 같은 시기 호주의 상황은 충격적일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휠체어가 접근 불가능한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하기 힘든 해수욕이 당시 호주에서는 가능했다. 특히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을 때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장애인 지정석이 일부 마련돼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격대별로 원하는 좌석을 선택해 관람할 수가 있었다. 좌석을 선택하면, 놓여있던 의자를 직원이 제거하고 그 공간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돼 가능한 일이었다. 동행했던 청각장애인 활동가도 설치된 청각장애인용 자막해설 덕에 큰 불편 없이 오페라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던 모든 일이 호주에서는 가능했던 것이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이현준 씨가 여행 중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누나 나는 억울해. 정말 재수 없게 한국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왔어. 만약 내가 호주 같은 국가에 태어났으면 학교도 직장도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편의시설 설치를 촉구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

 

이동권 운동의 횃불이 밝혀지다

이 계기로 1996년 12월 이현준 씨를 주축으로 한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이 꾸려졌다.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의 연구실장으로 활동했던 (사)한국환경건축연구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실의 배융호 실장은 당시만 해도 이 같은 개념들이 사회적으로 워낙 낯선 시기였기 때문에, 모임의 명칭을 결정하는 일조차 간단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모임 결정 초기의 목적은 이동권의 개념까지도 포괄하는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임 결성 초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편의시설에 대해 거리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발 지압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편의시설의 개념도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접근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고민 끝에 편의시설을 통해 접근권을 확보하자는 의미에서 모임의 명칭이 결정됐다. 하지만 편의시설과 접근권, 이동권의 개념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접근권에는 건물에 대한 이용 및 접근권과 정보에 대한 접근권, 그리고 이동권 이렇게 세 가지 세부 권리가 담겨 있다. 편의시설은 주로 건물과 관련이 되는데, 접근권을 보장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생각하면 쉽다.”

때문에 모임 초반에는 이 같은 개념과 의미를 대중에 확산시키는 활동을 주로 이어갔다. 바로 이듬해인 1997년에는 ‘편의증진법’이 제정되면서 이들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근간이 됐다. 편의증진법이 제정됨으로써 국내 법률에 ‘접근권’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 제정과는 별개로 실제 장애인들의 삶에 그리 큰 변화가 생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미비한 법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고, 이것이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정점에 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배융호 실장은 말했다.

“법이 생겼지만 대부분 권장사항에 그치는 등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바뀐 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지하철역에 리프트가 하나둘 설치되기 시작했지만, 리프트는 엘리베이터와 달리 「승강기시설 안전관리법」(이하 ‘승강기 관리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고, 부실한 관리감독으로 당연히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가장 분노했던 지점은 2층 이상의 음식점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음식전용 엘리베이터조차도 ‘승강기 관리법’의 적용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추락해, 타고 있던 장애당사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이전부터 이동권과 관련한 운동들이 여러 장애단체에서 진행되면서 관심이 점차 고조되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마침 당시 노들장애인야학 소속이던 박경석 대표와 공동으로 같은 해 4월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꾸리고 선로에 내려가 지하철 연착운동을 하는 등 적극적인 투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내건 이슈는 △모든 지하철에 리프트가 아닌 엘리베이터 설치 △편의증진법 개정 △저상버스 도입 등 세 가지였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서울시로부터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받게 된다. 다음해인 2005년에는 이동권의 내용이 담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이 제정되면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 계획에 따라 전국적으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이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

 

현재진행 중인 이동권 투쟁

   
 

치열했던 이동권 투쟁의 역사만큼이나 눈에 띄는 성과들도 많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지하철 이용에 있어 문제점들이 어느 정도 개선된 시점에서 장애계가 주력하고 있는 이동권 운동의 주제는 ‘시외이동권’이다. 지난 2014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등 장애 단체와 변호사, 그리고 유모차를 끄는 부모 등은 교통약자단체이동권소송공동연대(이하 이동권소송연대)를 꾸리고 국내 운송업체와 지자체,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내용의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전장연의 문애린 국장에 따르면, 전국의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보급률은 2016년까지 40%를 충족시키겠다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로 열악한 실정이다. 하지만 시외버스의 경우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마련돼 있지 않아 문제는 더 심각하다. 4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소송이 이어져 왔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문애린 국장은 설명했다.

“이미 2015년 첫 판결이 있었지만 이동권소송연대 측에서 항소를 제기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첫 판결에서는 모든 교통약자가 아닌 장애인에 대해서만 이동권이 일부 인정됐고, 무엇보다 문제가 됐던 점은 국가에 대한 책임은 쏙 빠진 채 오로지 민간 운송업체에만 그 책임이 전가됐다는 것이었다.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설치만 진행하더라도 시외버스 한 대당 최소 4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데, 그런 비용까지 들이면서 민간업체가 사업을 유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예정대로라면 작년 12월 재판이 끝났어야 하지만, 연구가 필요하다는 둥 기재부에서 예산을 안 내준다는 둥 터무니없는 여러 이유들로 실랑이가 이어지고 있다.”

문애린 국장은 장애인을 비롯해 고령화 등 사회적 변화로 인해 늘어가는 모든 교통약자의 인간다운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동권 투쟁은 멈출 수 없으며, 이를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시외이동권 소송 진행과 더불어 지금까지 국토교통부 장관 면담, 법 개정 요구 등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왔다. 작년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만나 2차례 TF팀 회의를 진행했지만, 우리 요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언급되지 않았다. 2005년 교통약자법 제정 이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교통약자 이동권의 현실은 제자리걸음이고, 특히 중소도시로 갈수록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연히 해야 할 직무를 유기하는 국가로 인해 이들이 언제까지 집 안에 갇힌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모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한편에서는 지금까지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라는 특정 영역에 한정돼 집중적으로 이뤄진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배융호 실장은 보다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이동권, 더 나아가 이보다 더 포괄적 개념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를 둘러싼 패러다임이 뿌리부터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동권 운동에서 집중적으로 요구했던 편의시설은 접근권 보장 방법의 가장 낮은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동과 접근에 무리 없는 사람들만을 고려해 설계된 건물이나 시설에 어떤 요소를 추가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아쉬운 입장에서 요구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높은 단계의 접근권 보장 방법은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디자인 초기부터 장애유무, 장애유형, 연령, 국적 등에 상관없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의 주요 이용자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동권 문제는 결코 장애인이라는 특정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서 특히 소외되기 쉬운 발달장애 영역 등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이동권, 더 나아가 정보에 대한 접근권까지도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덧붙여 현행법에도 이 같은 흐름이 담길 수 있도록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담고 있는 ‘편의증진법’과 ‘교통약자법’의 전면 개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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