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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이 아니라 ‘다 함께’입니다이화여자대학교 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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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6  10: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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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그림찾기는 ‘귤 까는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열린 세미나를 진행한다. 매번 하나의 책을 주제로 회원 여부와 상관 없는 참가자들과 열린 토론을 함께하는데, 이 날은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을 담은 수전 웬델의 <거부 당한 몸>으로 열띤 논의가 진행됐다

장애인권운동 현장에서 들려오는 절박한 목소리 중 하나는 ‘함께하는 젊은 친구들이 줄어든다’는 하소연이다. 운동에 동참하는 새로운 얼굴들을 찾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100미터 달리기 하듯 앞만 보고 내달려야 하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서로의 속도에 맞게 함께 걷는다는 건, 세상에 뒤처지는 일로 인식되는 분위기 또한 우려가 커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씨앗이 심어지고 있고, 뿌리를 내리면서 열매를 맺어가는 마음들이 있다. 강요나 의무가 아닌, 자발적 선택에 따라 동참한 대학생들의 활동이 주목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장애인권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노력하는 이화여자대학교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를 소개한다. 함께 걷는 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캠퍼스 안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자치단위연합회는 학부생들의 공공성 증진에 목적을 두면서, 총학생회 회칙에 근거한 자치단위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 총학생회 산하기구였던 영화관(시네마떼끄), 도서관(생활도서관), 여성위원회가 자치단위연합회의 일원이 됐고, 틀린그림찾기는 2005년에 자치단위로 인준을 받아 독자적인 기획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에 특수교육학과 학생회 소모임으로 시작했고, 과 학생회로부터 독립하면서 자치단위로 들어가게 됐다고 알고 있어요.”

대화에 함께한 틀린그림찾기 활동가들은 13학번에서 15학번 중심이기에, 틀린그림찾기가 처음 발족한 2003년의 일은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된다. 평소엔 본명 대신 활동명으로 서로를 부른다고 했다. 책 본문에 어떤 명칭으로 적을지 물으니까, 잠시 진지한 대화를 서로 나누더니 각자의 선택에 따르자고 결정했다. 한 명은 본명, 세 명은 활동명이 좋다고 했다.

본명을 택한 김소정 씨(사회교육학과 14학번), 활동명을 원한 무말 씨(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15학번), 젱가 씨(공간디자인과 13학번), 모자 씨(컴퓨터공학과 14학번)가 2018년 현재의 대학생 시점으로 자신들의 활동 내용을 펼쳐놓았다.

무말 “동아리와 다르게, 자치단위는 학생회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독립성을 보장 받고 있어요. 학교에 활동가들의 개인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없고, 학교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거죠. 학교 측에서 활동비를 받는 동아리는 아무래도 일정한 가이드라인 같은 게 생기잖아요. 자치단위는 학교 전체의 인권감수성, 또한 문화다양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활동에 중점을 둡니다.”

김소정 “동아리는 내부 구성원들 간의 친목이나 학술모임처럼 구성원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자치단위는 ‘대중사업’이라고 해서 학내 비영리 공공사업을 우선해야 돼요. 때문에 좀 더 공익적인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개인적인 수익사업은 할 수 없어요. 학생회비로 운영되니까, 학교 전체의 학생인권감수성과 문화감수성에 집중하는 거죠.”

틀린그림찾기라는 명칭은 다름을 틀린 것으로,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틀린 그림’들을 찾아 고쳐나가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단다. 단위의 이름이 참 예쁘고 쉽게 기억된다고 하니까, 명칭에 관한 논의가 오랜 기간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무말 “예전부터 틀린그림찾기에서 ‘그림’이 시각 중심의 용어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어요. 장애인권모임에서 굳이 비시각장애인 중심인 용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시돼서 다들 동의는 했거든요. 그래서 바꾸면 좋겠다는 필요성에는 일단 동감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름의 역사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대안을 도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의 장애인권모임이라면 당연히 다른 대학과의 연대활동도 활발할 텐데,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루는지 궁금했다. 일단 각 대학의 인권문화제를 중심으로 교류가 활성화된단다. 장애인권 함양과 함께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장애혐오의 내용을 담아 틀린그림찾기에서 자체 제작한 카드게임이 있는데, 다른 대학 인권모임에서 자기들도 진행하고 싶다 해서 그 게임을 공유하게 됐단다. 다른 한 대학과는 자판기 프로젝트라고 해서,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는 자판기의 문제점을 모든 비장애학우들이 일깨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공동 진행했다고 한다.

무말 “이웃인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모임 게르니카에서 신촌과 이대 주변의 배리어프리 지도를 만들기 위해, 인근 매장들을 자세하게 조사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저희한테 최종 업데이트를 함께 진행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와서, 곧 같이 활동에 들어갈 겁니다. 뜻깊은 작업이 될 거라 기대가 돼요.”

 

너무나 많은 불합리함이 이젠 보인다

틀린그림찾기는 비장애학생들의 장애체험을 실시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선 발견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있다. 장애체험의 역할뿐 아니라 활동보조인 역할도 함께 조를 이뤄 실시하는데, 장애당사자들이 마주치는 벽과 그들이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어 큰 성과를 얻게 된다고 한다.

무말 “장애를 가졌을 때 사람들이 어떤 시선적 폭력을 휘두르는지 경험하게 됐고, 이런 문제점 확인을 통해 학교 시설이 얼마나 미비한지도 알게 됐죠. 예를 들면 현금인출기(ATM)를 이용하려 해도 휠체어사용자는 손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고, 화면이 터치형 메뉴로 돼 있을 경우는 사용할 방법 자체가 없게 돼요.”

김소정 “저희 단위 방이 있는 학생문화관 엘리베이터는 안내방송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시각장애인은 지금 열린 문이 몇 층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거죠. 또 이 건물에 있는 ATM기기 3대 중 2대는 이어폰을 꽂아도 시각장애인용 음성안내가 안 나왔어요. 이런 것들도 전부 장애체험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것들이죠.”

젱가 “학생증을 갖다 대야만 출입이 가능한 문들이 있는데, 그 위치가 높아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우들이 매번 불편함을 겪고 있어요.”

틀린그림찾기는 장애당사자들이 이용할 수 없는 중앙도서관의 문제점을 집중 거론했다. 얼마 전에 개보수 공사를 해서 지금은 달라졌지만, 그 이전의 장애인화장실은 옆으로 밀고 열어야 하는 미닫이문이 너무 넓어서 장애학우들의 사용이 정말 어려웠단다. 두 손으로 밀어도 힘이 들 만큼 무겁고, 밀어도 휠체어가 통과할 만큼 혼자 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설비였다는 것이다.

무말 “건축법 규정 때문인지, 각 층마다 장애인화장실은 개보수를 마쳐 다 갖추고 있어요. 열람실마다 장애인 지정석도 별도로 마련돼 있죠. 그런데 중요한 점은 장애학우들이 중앙도서관까지 갈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언덕 위에 있고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활동도우미인 근로장학생이 밀어준다 해도 너무 힘겹다고 해요. 막상 도서관에 다다랐다 해도, 이들이 안으로 들어가면 이용할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직원에게 문의하면 뒤편 끝에 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라고 하죠. 이동편의시설이 없다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환경과 인식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젱가 “미대 건물은 두 동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가 학교 다니면서 장애학우를 건물 내에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장애인화장실은 한 동에는 없고 다른 한 동에는 있는데, 이동 방법이 계단밖에 없어서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로 존재하는 거죠.”

활동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건, 자동문이 없는 대학 건물 구조였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우들의 경우만 예를 든다 해도, 대부분 팔의 힘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혼자선 문을 열고 닫는 게 극히 어렵다. 누군가 대신 열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소정 “여닫이문이라 해도, 이상하리만큼 학교의 문들이 너무 무거워요. 직접 경험해 보면 아시게 되겠지만, 문 자체가 큰 힘을 줘야만 겨우 열려요. 장애당사자들에겐 안 열리는 문이 되는 거죠.”

무말 “자동문이 있기는 있어요. 최신 건물들이 여럿 있으니까, 시설은 나름 갖추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 자동문 앞에 여닫이문이 별도로 설치가 돼 있어요. 구조가 왜 이렇게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자동문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다 해도 비장애인들마저 열기 힘겨운 여닫이문이 그 앞에 있으면 장애당사자들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문을 열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멈춰 있는 학우들을 볼 때마다, 이 구조는 반드시 개선해야 된다는 생각을 반복하게 돼요.”

   
앞쪽에 보이는 최신 자동문의 모습 뒤쪽으로 비장애인도 편하게 열기 어려운 여닫이문이 별도로 설치돼 있다. 여닫이문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그 문을 열 수 없으면 중증장애인일 경우 한겨울에도 누군가 열어줄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안 보이는 그들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탄산음료나 캔커피 등 모든 캔 윗면에 새겨진 점자는 ‘음료’라는 표현 하나로 표기돼 있다. 시각장애인이 겪는 선택의 불합리함을 고발하고자, 여러 대학의 장애인권운동 활동가들이 음료자판기의 표면에 똑같은 캔 모양을 부착하고 비장애학생들에게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장애인이동권과 장애인권을 대하는 비장애 일반학우들의 인식이 틀린그림찾기가 지향하는 지점과 너무 큰 거리감이 있어, 새로운 대안과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단다. 장애학우들을 개별적인 ‘1인’으로 대하지 않고, 도와주고 양보부터 해야 한다는 시혜적인 관점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말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는 게, 그냥 비장애인이 문을 열어줘서 형성되는 아름다운 그림 같은 메시지 정도로 머무는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지만,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건 장애인을 ‘불능’과 ‘무능’함으로 고정시키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젱가 “편의시설이 워낙 부족하고 이동권의 제약이 많지만, 그래도 장애당사자들이 학교 측에 개선을 요구하기 어려운 건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뭔가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당장 장애학생지원센터와의 관계가 안 좋아지면 꼭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급적 참고 비가시화된 상태로 존재하면서, 어떻게든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자기를 제어하며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늘 떠올리는 게, 학교와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은 제3의 활동가나 단체에서 각 대학의 문제점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시면, 대학 내에서 장애인권을 위해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큰 힘을 얻게 되리라 생각하게 돼요.”

무마 “맞아요. 저도 동감하는 대목이에요. 저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연대하는 다른 대학 활동가들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거든요. 장애학생지원센터한테 어떤 요청과 요구를 한다 해도, 장애학우의 입장은 언제나 을(乙)이 될 수밖에 없어요. 졸업할 때까지 4년, 중간에 휴학을 한다면 그 이후까지 혼자 감당하며 지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교내 이동편의시설 확충과 장애학우들을 위한 학사서비스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장애계 언론에서 심층적인 문제진단을 해주시고 대안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어요. 각 대학 내 장애인권모임 활동가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건 일정 정도 인식개선과 시설보강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거든요. 큰 틀에서의 지적은 후배들을 응원하는 선배님들의 목소리로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젱가 “여담이지만, 제가 여행을 정말 좋아해서 외국여행을 많이 했거든요. 여행을 할 때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어디를 가든 장애인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그때마다 궁금증을 떠올렸죠. ‘거의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가 이상한 건가?’ 그런데 틀린그림찾기에서 활동하다가 광화문에서 거행된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에 참가했을 때, 저는 정말 충격을 받을 만큼 놀랐어요.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이 한데 모여 있는 걸 처음 목격하게 됐거든요. 분명히 존재하는데 안 보였다는 거잖아요.”

김소정 “제 의견을 덧붙인다면, ‘특수교육의 이해’라는 사범대의 필수수업을 듣고, 정말 좋은 교수님께 배운 덕분에 제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거든요. 그런데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정차한 열차 밖으로 정말 많은 유동인구들이 오가는 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 저렇게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데, 왜 장애인은 한 명도 없지?’ 그 생각은 ‘장애인이 이 사회에 없는 걸까? 아니면 안 보이는 걸까?’로 연결됐죠. 답은 당연히 후자겠죠. 장애인이 안 보일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바로 ‘틀린 그림’이에요. 다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더 넓은 연대를 만들고 싶어요. <함께걸음>에서도 대학 내의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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