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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는 알면서 시청각중복장애는 모르나요?
글. 박관찬/시청각중복장애인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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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1  16: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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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은 349호부터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장애인에 속하는 시청각중복장애인 당사자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미지 소스. freepik.com

한국에서는 규정되지 않은 장애유형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해도, 세상에는 그 고통을 이겨내는 힘 또한 가득합니다.” 헬렌 켈러가 남긴 명언입니다.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이 됐을 때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게 됐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감각기관 중 두 곳이나 장애를 가지게 됐지만 그녀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훌륭한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헬렌 켈러처럼 눈과 귀에 중복으로 가지게 되는 장애를 미국에서는 ‘Deaf-Blind’라고 규정하고, 그 장애의 유형과 특성에 따라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장애의 유형 중 미국의 ‘Deaf-Blind’처럼 시각과 청각에 중복으로 있는 장애는 따로 규정돼 있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제외되므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시각과 청각에 중복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장애 유형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청각중복장애인’, ‘시청각장애인’, ‘시청인’, ‘농맹인’, ‘맹농인’ 등 다양하게 지칭되고 있습니다. 따로 통일화된 개념은 없지만 저는 이 글에서 ‘시청각중복장애(인)’이라고 표기하겠습니다.

단순히 시각과 청각 중 한 가지 장애만 가지고 있어도 보는 것이나 듣는 것에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기 마련인데, 중복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면 얼마나 더 답답할까요? 헬렌 켈러처럼 전맹·전농의 특성을 가진 분들은, 어쩌면 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에 먹고 자는 등 기본적인 의식주밖에 모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이 얼마든지 있으며, 앞으로도 시청각중복장애를 가지게 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청각중복장애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정립부터, 그 장애의 유형과 특성에 따른 맞춤 서비스와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시청각중복장애의 원인

시각과 청각에 중복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는 정말 다양합니다. 헬렌 켈러처럼 뇌척수막염 등 특정한 병으로 인해 시각과 청각에 한꺼번에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고, 시각이나 청각 중 어느 하나에 먼저 장애가 발생했다가 뒤에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시신경위축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신경 구조가 다 이어져 있는데, 시신경위축으로 시각장애를 먼저 가지게 됐다가 청신경에도 영향을 주게 돼 청각장애를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가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 등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청각장애가 선천성 난청이었다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한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어셔 증후군(Usher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장애인의 90%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다고 할 만큼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장애인입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각종 사고나 병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고, (물론 건강한 분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으며 신체적 기능의 노화로 장애를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현대사회에서는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 15가지 장애유형 외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가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유형이 바로 시청각중복장애입니다.

 

시청각중복장애의 유형

시청각중복장애라고 해서 무조건 전혀 보지 못하고 전혀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각장애를 ‘맹’과 ‘저시력’으로 나누고청각장애를 ‘농’과 ‘난청’으로 나누듯이 시청각중복장애도 그 타이틀 내에서 장애의 정도와 특성에 따라 나눠지게 됩니다.

잔존시력과 잔존청력이 남아있어 ‘저시력+난청’인 경우, 잔존시력이 남아있지만 청력을 상실한 ‘저시력+농’인 경우, 시력을 모두 상실했지만 잔존청력이 남아있어 ‘맹+난청’인 경우, 시력과 청력을 모두 상실한 ‘맹+농’인 경우로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시력’이라도 시력이나 시야의 정도에 따라서 볼 수 있는 정도가 천차만별이고, ‘난청’ 역시 데시벨(DB)의 수치가 다 다르기 때문에 세세하게 따진다면 정말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시청각중복장애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시신경위축으로 인해 시력에 먼저 장애를 가지게 됐다가 청각장애도 가지게 됐습니다. 시력은 단독보행뿐만 아니라 달리기도 가능하지만, 멀리 있는 사물을 한 박자 늦게 보거나 잘 보지 못하는 ‘저시력’입니다.

글씨는 휴대용 독서확대기를 이용해 읽거나 큰 크기로 확대해야 볼 수 있습니다. 청력은 솔직히 저도 저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비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당시 들었던 노래를 지금 다시 들으면 들어낼 때가 ‘가끔’ 있거든요. 그리고 정말 ‘어쩌다’ 제가 사는 집의 초인종 소리를 들어낼 때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는데도 그 소리를 전혀 못 듣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저의 상태가 ‘저시력+난청’인지, ‘저시력+농‘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종류의 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장애의 정도와 특성에 따라 의사소통 방법도 다양합니다. 보통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은 ‘말’을 통해서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받는데,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구화, 수화, 필담 등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런데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하는 구화, 수화, 필담을 제대로 또는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2언어로 채택돼 있는 수어를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인 ‘수화’의 경우,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촉수화’와 ‘근접수화’를 주로 사용합니다. 촉수화는 당사자 간에 구사하는 수화를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의사소통 방법으로, 잔존시력을 모두 상실했거나 시력이 남아 있더라도 보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이 사용합니다.

근접수화는 시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저시력인 시청각중복장애인이 보기에 편한 위치만큼 가까이에서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입니다. ‘필담’의 경우에는 글씨를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시력 정도에 따라 소통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잔존시력이 남아 있으면 그 시력에 맞게 글씨를 크게 써서 의사를 전달하면 되지만, 전맹인 경우에는 글씨를 써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의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굳이 전맹이 아닌 저시력인 시청각중복장애인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위에 언급한 의사소통 방법들은 주로 청각장애를 먼저 가지게 된 시청각중복장애인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청각장애를 먼저 가지게 됐기 때문에 수화나 필담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데, 반대로 시각장애를 먼저 가지게 된 경우에는 수화를 보고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각장애를 먼저 가지게 된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잔존청력이 남아있는 경우, 그 청력에 맞게 큰 소리로 말해주면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청기 등을 착용하면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경우에는 비장애인 간의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통한 소통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책을 읽을 때 점자로 된 책을 읽기도 하고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 점자를 통한 소통방법도 있습니다. 점자가 6개의 점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6개의 점을 사람의 양손 손가락에 대입해 점자로 활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있습니다.

점자의 6개 점 중 1점은 왼쪽 검지, 2점은 왼쪽 중지손가락, 3점은 왼쪽 약지손가락, 4점은 오른쪽 검지, 5점은 오른쪽 중지손가락, 6점은 오른쪽 약지손가락에 각각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점자에서 초성 ‘ㄱ’이 4점이면 오른쪽 검지를 찍어주면 되고, 중성 ‘ㄱ’은 점자의 1점이므로 왼쪽 검지를 찍어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점자에서 ‘가’는 약자로 1, 2, 4, 6점에 해당하는데,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왼쪽 검지와 중지손가락과 오른쪽 검지와 약지손가락을 동시에 찍으면 ‘가’라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6개의 손가락을 점자처럼 활용해 대화하는 의사소통 방법을 ‘점화’라고 합니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을 비교적 포괄적으로 설명했는데, 그만큼 같은 시청각중복장애인이라고 해도 서로가 지닌 장애의 유형과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법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시청각중복장애인끼리 만난다고 해도 서로가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다를 경우에는 대화가 쉽지 않게 됩니다. 저는 제 의사는 직접 말로 하고, 상대방이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의 손바닥에 글로 적어주는 방법을 가장 선호합니다.

제가 시청각중복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에는 손바닥에 적는 방법, 그리고 촉수화나 근접수화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점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비교적 최근에 점화를 가볍게 배운 정도인데, 점화를 통한 대화는 아직 미숙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벗어나길 바라며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언어, 민족, 문화가 다양한 사람은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시청각중복장애인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어떠한 개념적인 정립조차 돼 있지 않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생소한 시청각중복장애. 헬렌 켈러를 안다면 금방 이해를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렵게 다가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애인복지법에서 명확하게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루 빨리 우리나라의 시청각중복장애인들도 그들의 권리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헬렌 켈러의 명언처럼 이 세상의 일부인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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