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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사건 피해자 진수 씨, ‘평범함’을 소망하다
글. 김은정 · 사진 제공. 위기거주홈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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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7  09: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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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각장애인이 생사의 끝에서 모친에게 한 통의 쪽지를 보냈다. 꾸깃꾸깃한 쪽지에는 ‘살려 달라’는 절박한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중세도, 포성이 오가는 전쟁터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의 한 섬에서 그 쪽지를 썼다. 사방을 채운 하얗고 투명한 소금알갱이들로 눈이 부신, 그래서 순결해보였던 그 섬을 사람들은 ‘천사의 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박진수(가명) 씨는 그 섬을 ‘지옥의 섬’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2014년 2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염전노예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 지옥의 섬에서 빠져나온 진수 씨의 지난 4년이 궁금했다.

 

“요즘 세상에 놀면 바보 돼요.”

   
 

박진수 씨는 이따금 필자의 허를 찌르는 현실적인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은 결코 학력 따위로 재단 할 수 없는 경험에서 묻어나온 말이었다. 그를 만난 곳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위기거주홈으로, 그는 근무지가 있는 안산에서 생활하며 주말이면 종종 그곳을 찾았다. 그곳은 그에게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부모에 이어 유년기를 돌봐주던 조부마저 잇따라 여의고 누나와 떨어지며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그는 공익으로 군 제대 후 고시원, 쪽방 등을 전전하며 찜질방, 목욕탕, 공사장 임부 일 등을 했고 때때로 노숙하기도 했다.

무일푼에, 일거리도 떨어진 그가 광주의 한 터미널에서 갈 곳을 잃고 앉아 있자 중년의 한 남자가 다가와 “일해보지 않을래?”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남자는 청소 일이라며 가자고 채근했다. 버스에서 배편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여로 끝에 다다른 곳은 끝도 없이 하얀 소금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남자는 한 염전주에게 진수 씨를 데려갔고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긴 후 사라졌다. 이후 염전노예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그는 1년 4개월간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저는 그렇게 온 다른 동생과 일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한 명은 판을 닦고 한 명은 소금을 놓거나 도랑을 쳤어요. 아침에 주인이 오면 간단히 밥을 먹고 다시 소금 포장을 했고 점심 먹고 나서는 밭에 풀을 뽑았죠. 그렇게 매일 새벽 2시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했는데 끝나면 지쳐서 잠자리에 들기 바빴어요.”

신의도의 염전 피해자들은 밝혀진 인원만 총 63명으로 중개인을 따라 섬으로 온 장애인들이 대다수였다. 최소 1년에서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제대로 품삯도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과 감금, 폭행의 올가미에 내던져져 있었다. 섬을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선착장은 감시탑과 같았다. 육지로 탈출하려던 이들은 선착장 직원의 연락을 받고 온 염전주의 겁박에 의해 다시 끌려갔다. 더 믿기 힘든 사실은 섬의 관할 파출소였다. 진수 씨만 해도 그곳으로 세 차례나 도망쳐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사정했으나, 다음날이면 다시 염전주의 회유와 종용, 경찰의 묵인으로 인권 유린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염전노예사건의 1차적 가해자는 악질 염전주였으나 이를 알면서도 방관했던 마을 사람들과 지자체, 사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발방지를 약속했던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축사노예’, ‘딸기밭노예’ 등 유사한 사례가 하나둘씩 드러나며 공분을 샀다.

염전노예 피해자 중 8명은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그 중 파출소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증거로 인정된 진수 씨만이 1심에서 승소했다. 현재 7명 중 일부는 항소를 제기한 상태이지만 갖가지 이유로 아직도 그 섬을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오갈 데가 없거나, 은밀한 학대와 착취마저 삶의 일부가 돼버린 이들이다.

 

“염전 일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죠.”

   
 

진수 씨는 반월공단에 있는 한 화학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안산에 자그마한 원룸을 얻었다. 근무 시간은 8시부터 5시까지이고 때로 잔업도 한두 시간 있지만 그는 염전 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며 손사래 쳤다.

진수 씨는 자립 전, 위기거주홈에 입소해 6개월을 보내고 퇴소했다. 등록 장애인이 아니므로 자립이 순탄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지만 그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려 2억 5천만 원에 상당하는 채무금액이었다. 그가 빚더미에 앉게 된 발단은 신분증을 분실하면서였다. 누군가 그의 명의를 도용해 사업자가 돼 세금계산서를 발행했고, 밀린 세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로 인해 염전에 가기 전까지도 그는 떠돌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위기거주홈의 최용빈 간사도 진수 씨의 신용불량 상태가 그의 자립에 큰 지장이 됐다고 설명했다. “신용불량 상태라 이를테면 뭘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우선 자립을 위해 직장을 구해야 했지만 월급이 나와도 모조리 압류되고 통장개설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명의 도용의 법적 구제를 위해 힘썼지만 쉽지 않았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우회적인 길을 찾았다. 그 방법이란 다시 연락이 닿은 진수 씨 누나의 명의로 통장 개설을 하거나 월급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조취를 취하는 식이었다.”

진수 씨가 경제적인 자립에만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다. 진수 씨 역시 그간 떠돌이 삶에 익숙했던 탓에 사회성이 다소 결여됐다. 위기거주홈 입소 후 그는 작게는 몸을 청결히 해 스스로 건강과 위생을 챙기는 것부터, 사람들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며 어울리는 방법을 체득해갔다. 자립 후이지만 현재도 위기거주홈은 그와 소통을 계속하며 사후 관리를 하고 있다. 혹자는 피해의 책임을 등록된 지적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진수 씨 개인에게 묻기도 하고, 그를 지원하고 돕는 것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서동운 센터장은 진수 씨가 경계성 장애인이며 지원과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짚었다. “진수 씨는 국내 장애 범주 안의 이들과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의 간극에 있다. 세상에는 90%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고 70%의 능력을 가지고 나름대로 성실히 사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힘과 권력이 있고, 좀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한 이들에 의해 진수 씨와 같은 약자들이 이용당하고 피해는 축적된다. 가해자들은 고용주, 동료, 가족 혹은 섬의 경찰일 수도 있다. 약자의 표피적인 모습만으로 판단하고 예단한다면 가해자들은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제가 무섭게 생겼어요?”

진수 씨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고충을 쏟아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여성들이 자신을 피하는 느낌이라며 시무룩해졌다. 진수 씨는 이를테면 북방계 표준의 얼굴에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격하게 부인할 수 없는 조금 센(?) 인상이었지만 인터뷰를 하며 수줍음만큼이나 웃음과 배려가 많은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그의 답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주원 학생’이라는 말이었다. 필자는 위기거주홈을 드나들며 주원이(가명, 3월호에 등장했던 보치아 선수를 꿈꾸는 고등학생)에게 의향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말을 놓았다. 좀 더 친근한 사이가 되는 첩경이라는 판단에서였지만 필자보다 주원이를 더 자주 봐왔고 연장자인, 그러나 생각해보면 서른아홉에 불과한 진수 씨가 뱉는 주원학생이라 지칭은 어쩐지 예스럽고 정감 있어 듣기 좋았다.

인터뷰 후 고기를 먹고 안산으로 내려가는 촉박한 일정이 진수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기거주홈에서 동고동락하며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된 준태(가명) 씨가 월급으로 동생들인 진수 씨와 정수 씨(3월호 중국집 피해 장애인)에게 한 턱 쏘기로 했다며 그는 한껏 들떠 있었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진수 씨에게 결혼생각을 묻자 그는 하고는 싶지만 준비가 안됐다고 신중한 어조로 답했다.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는 필자가 그가 단지 명의 도용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 그 액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시점이었다. 바쁘다면서도 진수 씨는 굳이 아래층에서 핸드폰을 들고 와 어린 조카들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의 대화창 프로필 사진도 역시 조카의 얼굴이었다.

바라는 바를 묻자 그는 담담히 말했다. “바보처럼 생활하면 안 되죠. 옛날부터 그런 생각은 늘 마음에 있었는데 그렇지 못 했어요. 그래서 한 때 죽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욕심 갖지 않고, 이렇게 직장 다니고 돈도 조금씩 모으며 살면 좋겠어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비범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우리가 하찮다고, 혹은 따분하다고 폄훼하는 그 ‘평범’함은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이 되기도 한다. 한 시각장애인은 ‘살려 달라’는 쪽지를 통해, 진수 씨는 ‘도와 달라’는 간청을 통해 그 절박함을 호소했다. 진수 씨가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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