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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소중한 삶, 우리에겐 단지 알비니즘이 있을 뿐이다알비니즘 가족이야기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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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7  09: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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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8평창패럴림픽 개막식 날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방송으로 생중계되던 개막식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일 현지에서 개막식장 주변을 하루 종일 둘러보다가, 중앙 매표소 앞에 걸린 작은 표지판 하나에 발걸음을 한참 멈춰서 있어야 했다. ‘뇌병변장애인’, ‘시각장애인’과 같이, ‘장애인’을 하나의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우리의 일상을 깨뜨리는 표현이 그 표지판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Wheelchair Users’. 그렇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지, ‘장애인’이라고 굳이 앞세우며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느낌 그대로의 의미로 이번 만남을 진행했다. 온라인 카페 운영과 정기모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알비니즘 가족이야기’를 만났다. 우리가 늘 마주대하던 이웃이 분명하다는,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그 의미를 재확인했던 대화의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알비니즘(Albinism)은 우리가 ‘백색증’이라고 말하는 증상이다. 멜라닌 색소의 분포와 합성 대사과정에 결함이 생겨서, 출생 시부터 피부와 머리카락과 눈의 홍채에 소량의 색소만 가지거나 전혀 없어 백색의 상태로 살게 되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일반적으로 ‘백색증’이라 표현하지만, ‘백피증’ 또는 ‘선천성 피부색소 결핍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부위는 피부와 털, 눈(홍채)이고, 주요 증상으로는 근시, 난시, 눈부심, 백피증, 사시, 시력감퇴, 안구진탕(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율동적인 안구운동), 유루증(눈물 흘림증)이 일반적인데, 심할 경우 피부암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유전질환이지만 보인자(유전자는 가지고 있으나 신체 외적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일 경우는 아무런 징후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보인자라는 사실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따라서 알비니즘을 가진 자녀가 태어나면 처음엔 모든 게 막막하고,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된다. 지금은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대이기에 검색으로 일단 살펴볼 수 있지만, 인터넷 이전의 PC통신도 없던 당시엔 ‘독특함’과 ‘특이함’ 자체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알비니즘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가 아직 없어요. 장애유형에 포함되지 않고 시각장애로만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얼마간의 시력이 남아 있는 경우는 장애등록도 할 수가 없는 거죠. 우리나라엔 보통 일천 명 내외가 있다고 말하는데, 어떤 통계에선 이천 명 선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알비니즘 당사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셈이에요.”

‘왜 우리 아이만 머리카락과 피부와 눈동자가 하얀색일까?’ 하는 궁금증과 답답함을 가져야 했던 18년 전, 한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서울대병원 안과를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아이가 또 있다는 말에 놀라, 그 아버지는 의사한테 부탁해서 다른 부모의 연락처를 알아낸 후 연락을 하게 됐단다. 이런 아이가 또 있다면 그 부모도 자신과 같은 걱정을 할 것이고 고민하는 내용도 거의 비슷할 것이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취학자녀를 가진 네 가족이 만나게 됐고, 알비니즘 당사자인 이십대 성인 남녀 두 명이 합류해서 여섯 가족이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요. 저는 몇 달 후에 합류하게 됐죠. 앞으로의 방향을 의논하던 가운데, 인터넷을 통하면 전국에 있는 가족들이 연결되기 쉽지 않을까 싶어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알비니즘 홈페이지가 처음 생겨나게 된 거예요.”

알비니즘 당사자이면서 ‘선천적인 멜라닌 색소 결핍이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부제의 저서 <알비니즘 알비니안>을 출간한 장순화 씨는 아무런 정보도 없던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만남의 과정을 시간대별로 설명했다. 홈페이지 운영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포털사이트 카페 ‘알비니즘 가족이야기’를 개설해 모든 회원들이 옮겨왔고, 장순화 씨는 카페지기로 긴 시간 동안 회원들과의 정보교환과 유대를 담당했다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알비니즘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의사의 얘기는 절반 정도 믿지 말고 경험자들의 얘기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한다. 사람마다 유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되 결론은 스스로 내리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맞아요. 알비니즘은 정말 다양해요. 선천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아예 없거나 훨씬 적어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보니, 시력도 차이가 나고 머리색과 피부색도 제각각 달라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증상이지만, 똑같은 경우를 만나기가 어려울 만큼 증상의 차이가 큰 거죠. 게다가 의학적인 분류가 갈수록 세분화되기 때문에, 알비니즘으로 포함되는 영역 또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장애인데도 장애등록을 할 수 없는 장애

   
 

알비니즘은 사람한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포함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는 백사(白蛇)와 백호(白虎)를 떠올리면 된다. 백마(白馬)도 마찬가지 경우가 된다. 사람 역시 피부색(인종)과 관계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온 몸이 하얀 흑인들 또한 존재한다. ‘백색증’으로 번역된다고 해서 무조건 흰색으로만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멜라닌 색소의 결핍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홍채의 색 역시 회색, 붉은색, 보라색, 푸른색, 갈색 등으로 다양하다. 모발도 색소가 전혀 없어 흰색 머리카락이 지속되는 게 보통이지만, 성장하면서 약간의 색소가 나타는 경우에는 비장애와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진갈색까지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피부 또한 완전한 백색이 아닌 분홍색, 연한 백색, 적갈색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알비니즘 가족이야기의 회원은 230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어요. 차 한잔의 개별모임은 언제든 자유롭게 갖고, 일 년에 한 번 정기모임을 진행해요. 무슨 총회 같은 방식이 아니라, 참석 가능한 가족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죠. 큰 펜션 독채를 하나 빌려서 일박이일 동안 저녁에 바비큐파티를 하고,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게 만들어줘요. 부모들끼리 긴 대화를 나누며, 유대감과 새로운 정보를 나누게 되는 거죠.”

전국의 가족들이 만나기 때문에, 장소는 매년 돌아가면서 갖는다고 한다. 이번에는 천안, 다음에는 대구와 같은 식으로 모이는데 스무 가족 정도가 정기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특히 어린 아이의 부모가 가장 열심히 활동한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너무 힘들어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만 하시다가,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크고 있어요’ 하며 소식을 전해주실 때가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죠.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비니즘이 진행성 질환이 아니잖아요. 계속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갖게 된 증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녀가 초등학생 이상이 되면 연락이 뜸해지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곤 해요. ‘알비니즘 환경에 적응을 하셨구나’ 싶어 안심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관계가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이 일말의 아쉬움으로 남겨지곤 합니다.”

알비니즘 가족이야기의 카페지기로서, 장순화 씨는 회원들이 공통으로 갖는 건의사항이 있다고 했다. 장애등록이 시력으로만 판정되기 때문에, 알비니즘의 사회생활을 위한 보조기구 사용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확대경 같은 저시력보조기구를 구입할 때 정부지원 80%를 받을 수 있고 기초생활수급자라면 20%의 절반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는데, 시각장애로 등록된 경우에만 복지카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최소한의 시력을 유지하는 알비니즘 당사자들은 아무런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알비니즘으로 확인된 경우엔, 안과 전문의의 소견서를 가지고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장애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알비니즘이기 때문에, 평생의 장애를 시력측정만으로 규정받는 건 불합리한 것 같거든요. 장애인으로 등록하든 안 하든, 알비니즘으로 판정된 당사자와 가족들에 대한 배려가 국민복지 차원에서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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