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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乙)과 인지장애인의 시민권
김도현/비마이너 발행인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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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14: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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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을’(乙)이라는 말은 대중매체에서도 자주 사용되면서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시사용어가 돼버린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을은 기본적으로 관계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즉 을이라는 정치적 주체는 언제나 ‘갑’(甲)이라는 또 다른 정치적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이러한 갑-을 관계는 당연히 비대칭적이다.

을이 소수자, 못 가진 자, 약자, 그래서 횡포를 당하는 자라면, 갑은 다수자, 가진 자, 강자, 그래서 횡포를 가하는 자이다. 즉, 을이 일종의 과소 인간적 위상을 갖는다면, 갑은 과잉 인간적 위상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것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이다. 다시 말해서 갑-을 관계는 시장체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 계약관계로서, 그리고 앞서 서술한 정치적 비대칭성을 감안한다면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투영된 부정의한 계약관계로서 발현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계약관계 자체에서 배제되는 ‘을 이하의 인간’이라는 형상을 또한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의 을이라면, 불법체류자 신분인 이주노동자는 엄밀히 말해서 을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재하청 관계에서 흔히 표현되는 ‘병’(丙)이나 ‘정’(丁)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는, 그래서 갑-을 관계라는 장(場) 내에 포섭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을 이하의 인간인 것이다. 또한 과도한 임대료 인상이나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 건물주의 횡포에 눈물짓는 임차상인이 을이라면, 구청 단속반이나 용역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쫓겨 다녀야 하는 생계형 노점상은 을에도 미달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세입자들이 을이라면, 청원경찰의 욕설과 발길질 앞에 몸을 일으켜 사라져줘야 하는 거리의 홈리스들 역시 을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충분치 않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노점상, 홈리스는 일정한 맥락 내에서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되기에, 어떤 법적 계약의 장 내에 자신의 존재를 자리매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을 이하의 인간 형상은 그 누구보다도 우선 법적 의사능력(意思能力)과 행위능력(行爲能力)이 부정될 수 있는 인간, 그리하여 인간이지만 도덕적・정치적・법률적으로 인격성이 부정되는 인간에게서 나타난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들로는 민법상 미성년자인 아동과 청소년이 있겠지만, 이러한 형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띠고 있는 것은 이성적 사고 능력(ability to reason)이 ‘정상적인’ 인간에 미치지 못한다고 간주되는 인지장애인(people with cognitive disabilities)・지적장애인 및 자폐성장애인과 같은 발달장애인과 후기 치매환자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전체 장애인구의 7% 내외를 차지하는 발달장애인이 장애인시설 수용 인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자기결정권(right to self-determination)이 임의적으로 부정되면서 ‘보호’의 대상으로 격하되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틀의 설정’과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에 대해

이러한 인지장애인의 시민권을 사고하는 데에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이자 비판이론가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문제설정이 상당 정도 유용하게 응용될 수 있다. 그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경제적인 것으로서의 ‘분배’(redistribution)와 문화적인 것으로서의 ‘인정’(recognition)을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만 동시에 어느 한쪽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바라보는 ‘분배-인정 이원론’을 제시한 정치철학자로, 분배 역시 인정의 한 표현으로 보는 ‘인정 일원론’적 입장의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 그 유명한 『분배냐, 인정이냐?: 정치철학적 논쟁』(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A Political-philosophical Exchange)이다. 그러나 2003년에 이 책이 출간된 이후 그녀는 분배 및인정과 더불어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대표[대의/ 표현]’(representation)를 그 내용적 요소로 하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고 정식화하게 된다. 프레이저가 이처럼 정치적인 것의 중요성을 점차 강조하면서 삼차원적 정의론으로 이행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조건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잘못된 틀의 설정’(misframing)이라는 문제에 착목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하는 잘못된 틀의 설정이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정의의 규범이 적용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일정한 정치공동체들로 분할・제한하는 것, 그로 인하여 특정한 사람들을 어떤 문제의 관련 ‘당사자’에서 배제시킴과 동시에 대화와 논쟁에 참여할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정치적 공간을 근대적 영토국가라는 ‘베스트팔렌적 틀’(Westphalian frame)로 설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초국적인 부정의의 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빈곤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현대사회의 정의론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존 롤스(John Rawls)는 분배적 정의가 국제적인 수준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국내 영역을 그러한 정의의 규범이 적용될 수 있는 배타적인 영역으로 설정한다. 이로 인해 개인으로 그리고 동시에 집합적 정치공동체로서의 빈곤층은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정의의 문제에 대한 정치적 발언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프레이저에게 있어 정치적인 영역에서 부정의는 대표불능[대의부재/ 표현차단](misrepresentation)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녀는 이를 크게 두 가지 수준으로 나눠 설명한다. 하나는 ‘일상-정치적(ordinarypolitical) 대표불능’이다. 이는 정치공동체 내부의 왜곡된 의사결정 규칙들이 이미 구성원으로 간주되고 있는 특정한 사람들로 하여금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없도록 만들 때 발생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앞서 설명한 잘못된 틀의 설정으로 발생하는 것인데, 이를 프레이저는 ‘메타-정치적(metapolitical) 대표불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을 가져오는 잘못된 틀의 설정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권리를 가질 권리’(right to have rights)라고 불렀던 것-즉 일종의 메타-권리-을 상실한 경우와 유사하게 어떤 형태의 ‘정치적 죽음’을 발생시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자선이나 박애, 그리고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떠한 요구 자체를 제기할 가능성과 권리를 박탈당하기 때문에 그들은 정의의 측면에서 볼 때 더 이상 ‘인격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일상-정치적 대표불능이 정치적 발언권을 ‘인정’받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형태의 부정의라면,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은 그러한 정치적 발언권 자체를 ‘부정’당하게 되는 형태의 부정의인 것이다.

 

이성주의적 틀의 설정에 의한 메타-정치적 대표불능

이러한 두 수준의 대표불능, 특히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에 대한 분석은 장애인의 경우와 연관지어 충분히 숙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장애인도 지구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회구성원인 한,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제에서 ‘베스트팔렌적 틀’에 의한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을 경험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베스트팔렌적 틀’의 설정에 의해 야기되는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을 넘어 현대사회의 정의론이 기반을 두고 있는 ‘이성주의적 틀’(rationalist frame)의 설정에 의해 야기되는, 특정 유형의 장애인들이 고유하게 직면해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현대사회의 가장 유력한 정의론인 롤스의 이론을 참조해보자. 그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설득력을 지닌 정의론을 제시하기 위해 사회계약론의 이론적 전통을 보다 일반적이면서도 추상화된 방식으로 활용한다. 그러한 롤스에게 있어 계약의 참여자인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내지 인격체는 “정상적이고 충분히 협력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지닌” 이들로 제한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정의감에 대한 능력(capacity for a sense of justice)과 가치관에 대한 능력(capacity for a conception of the good)이라는 두 가지 도덕적 능력, 그리고 이러한 도덕적 능력을 뒷받침하는 이성・사고・판단의 능력(powers of reason, thought, and judgment)을 말한다. 따라서 그의 정의론에 의거할 경우 이와 같은 도덕적・이성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인지장애인들은 사회계약의 과정에서 배제되며, 단지 계약 이후의 사후적 배려를 통해 포용되는 과정을 거칠 때에만 사회의 도덕적 일원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인지장애인에 대한 이러한 배제는 계약론적 전통에 있는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그리고 좀 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신홉스주의적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도덕론으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고티에(David Gautier)는 자신의 주저 『합의도덕론』(Morals by Agreement)에서 특별한 필요나 손상을 지닌 사람들은 계약론에 의해 근거지어지는 도덕적 관계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제프 맥머핸(Jeff McMahan)은 『살생의 윤리』(The Ethics of Killing, 2002) 등의 저서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들과 심각하게 손상된 인지를 지닌 이들의 도덕적 지위는 한 곳으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즉 ‘근본적인 인지적 제약’을 지닌 이들은 정당한 정의의 주체가 아니며, 그들은 인격체들보다 더 낮은 수준의 불가침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의 정치의 실천: 성년후견제도의 존재 자체를 정치적 의제로

정의의 주체 내지 당사자가 이렇듯 이성주의적 틀에 의해 제한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기본적이고도 상징적인 부정의의 상황이 바로 성년후견제도-이전의 금치산(禁治産)・한정치산(限定治産) 제도를 계승한-를 통해 인지장애인이 자기결정권 자체를 합법적으로 제한・부정당하고 이를 타인에게 위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추상화된 이론의 차원에서 사회계약의 주체로 간주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민법상의 계약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프레이저가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법적・정치적 측면에서 더 이상 ‘인격체’가 아닌 존재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정치적 죽음’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정확히 메타-정치적 대표불능이라는 부정의를 경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년후견제도가 인지장애인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한가라는 차원의 고민을 넘어, 성년후견제도의 존재 자체를 정의 및 민주주의와 관련된 하나의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미 2003년 제58회 유엔 총회의 사무총장 보고서에서는 “성년후견제도가 때때로 부적절하게 활용되어, 아무런 절차적 보호도 없이 발달장애 혹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에게서 법적 능력을 박탈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의 이행 상황에 대한 한국의 1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후 2014년 10월에 제시한 최종 견해(Concluding observations)에서 “2013년 7월에 시행된 새로운 성년후견제가 ‘질병, 장애 또는 고령에 의한 정신적 제한으로 인해 일을 처리하는데 영구적으로 무능한 상태라고 간주된 사람’의 재산과 개인적 사안에 관계된 결정을 후견인이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의사결정 대리(substituted decision-making)에서 당사자의 자율성과 의지, 그리고 선호를 존중하는 의사결정 조력(supported decision-making)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전환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정확히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민주주의의 주체에 대해, 정치 공동체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일인 동시에 “평등과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대를 구성하는 실험”을 해보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지적 차이’라는 인간학적 차이에 의한 분할의 경계를 횡단하며 인권의 정치를 새롭게 실천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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