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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로 말하다-장애인활동가들의 오체투지를 보며
명숙/인권활동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운영위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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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4  10: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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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채지민

“바닥을 기면서 생각했어요. 이걸 우리 아버지가 보면 어쩌지. 안 되는데. 안 되는데…. 90대의 부모라도 부모한테 자식은 자식입니다. 이렇게 제가 바닥을 기는 걸 보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2018년 4월 19일 서울 광화문누각 앞 삼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오체투지에 참여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상임공동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의 마음을 누르던 설움이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47세가 돼서야 야학을 다니며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볼 수 있었고 편의시설이나 교육제도가 없어 집에서 박혀 지내야 했다고 했다. 나이 들어서 교육받으며 만난 세상은 자신도 인간이라는 것, 인간답게 존중 받아야 한다는 걸 일깨워 줬다고 했다.

 

세 시간 기어간 150m

전국장애인차별철폐대회에서 박 대표를 비롯해 오체투지에 참여한 사람들이 세 시간에 걸쳐서 갈 수 있었던 거리는 150m. 광화문 누각에서 경복궁 담길 도로 입구까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 행군이었는지는 당사자들을 비롯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안다.

다리를 쓰지 못하니 팔 힘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가야 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고 신체조건이 다 똑같진 않다. 팔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하반신을 끌고 갈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몸을 엎드릴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장애가 다 다르니 가는 속도도, 모습도 다 달랐다. 사력을 다해 팔로 기어가다 보니 오돌토돌 튀어나온 아스팔트에 온몸이 쑤신다. 아프다. 목장갑 하나, 무릎 보호대 하나로는 도저히 아스팔트의 뾰족함을 막을 수 없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기어갈 수 있는 몸의 상태가 아니라서 옆으로 구르며 오체투지를 했다.

경찰에 막힌 경복궁 담길까지 어림잡아 30m도 안 남았을 때, 내가 박명애 대표를 격려한답시고 “대표님,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힘내시면 돼요”라고 하자, “그거야 비장애인에게 얼마 안 되는 거리지. 우리 장애인한테는 엄청 먼 거리야”라고 대꾸했다. 아차!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미안했다. 장애인들이 두 시간 동안 힘겹게 기어온 것을 보고도 여전히 나는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거리를 가늠하는구나! 여전히 나는 비장애인의 속도와 거리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절규하는 몸뚱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처참하게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팠다. 2014년 기륭전자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겨울의 오체투지가 떠올랐다. 오체투지를 하던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왜 이 냄새 나는 아스팔트를 기어야 하나’ 싶어 속상하고 억울해서 종종 울곤 했다. 몸과 맘으로 비참함을 느꼈다. 장애인들의 오체투지는 그때와는 좀 달랐다. 은폐시키는 장막을 거둬버려 실체가 드러난 느낌이랄까. 상징적이라기보다 장애인들이 살아온 험난한 삶의 실체를 오체투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처절하게 몸으로 절규해야 듣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오체투지라는 말도 비장애인들의 용어다. 오체(五體)는 인체의 다섯 부분인 이마 두 손, 두 발이 땅에 닿게 투지(投地)하는 것이다. 땅에 던지듯 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들 중에는 목을 가누지 못해 이마를 땅에 댈 수없는 사람도 있고, 손이 없거나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발이 그러한 사람도 있으니, 오체투지란 말은 비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절예법을 표현한 한자어다. 그러고 보면 백기완 선생님이 한자어를 지양하려고 표현한 ‘배밀이’가 맞겠다 싶었다. 이날 장애인들은 온몸을 던져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절규했다.

 

주류질서가 요구하는 몸뚱이

생각해 보면 몸뚱이는 언제나 주류에 의해 억압되거나 길들여져 왔다. 자본의 빠른 이윤 증대에 도움이 될 만한 비장애인 남성을 중심으로 생산을 이어왔다. 그렇지 못한 장애인들은 배제시켰다. 세상은 비장애인 남성 유산자들의 입장에서 굴러가도록 세워졌다. 그러니 장애인의 기본권을 충족시킬 만한 서비스나 편의시설에 대한 투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장애인의 몸뚱이를 배제하듯 여성들의 몸뚱이도 통제하고 길들여 왔다.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여성들도 노동현장에 투입돼 일하게 됐지만 언제나 2등 시민으로서 임금이나 승진 등에서 차별받았다. 한국은 특히 남녀 임금차를 비롯한 남녀격차가 가장 커, 밑을 맴도는 나라다.

그뿐이 아니다. 여성들의 몸뚱이를 성애화하고 상품화한다. 일터에서 일하려면 일정한 용모(?)를 갖추어야 한다. 서비스는 이성애 남자들에게 충족감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키스방이니 하는 유사성매매 업종이 아니어도,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성적 존재’가 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판매업이나 관광업 등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려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몸뚱이는 ‘젊고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 이성애 남성들의 취향에 벗어난 몸을 가진 여성은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현장으로 밀려났다. 몸이 육체자본이 되다 보니 여성들은 성형과 다이어트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젊음과 아름다운 몸뚱이는 한시적이라 그녀들의 노동이 수용되는 시기는 짧을 수밖에 없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장애인중심의 자본주의사회가 장애인의 몸을 얽어맸듯이, 남성중심의 자본주의사회는 여성의 몸뚱이를 길들였고, 길들여지지 않는 몸의 여성을 차별해 왔다.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우리의 몸이 자유로워질 수 없다. 정책을 바꾸고 관행을 바꾸려면 국가와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

 

기다리라는 정부의 말, 인권의 유예

오체투지가 시작되기 전 나는, 장애인활동가에게 물었다. 오체투지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냐고. 정부가 장애인운동이 요구한 정책을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탈시설정책도 수용하고 장애등급제도 폐지하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탈시설정책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보건복지부는 로드맵도 예산책정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은 후속보도를 잘 하지 않으니 당사자나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수용했다’는 보도만 접한 사람들은 나처럼 대부분 잘 정리된 줄 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복지법 개정해서 ‘장애등급’을 ‘장애정도’로 바뀌었으나 이를 실행에 옮길 서비스 예산은 확보하지 않았다. 장애인연금분야에서의 장애등급제 폐지 적용은 2022년에 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최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24시간 보장과 활동보조 자부담폐지, 65세 이상 대상 제외 문제는 아예 빠졌다. 현행 활동지원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활동보조 급여량의 15% 이내에서 자부담을 해야 한다. 65세 이상이 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노인장기요양서비스 대상자로 전환돼 급여량이 대폭 줄어든다. 상황이 이러니 ‘2018년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77명의 지체·뇌병변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오체투지로 강하게 요구를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박명애 대표는 “내가 곧 65세가 되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겠느냐. 평생 기다렸는데 또 기다리라는 말밖에 못하냐”고 호소했다. 『정의론』에서 존 롤즈가 말했듯이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기본권’이 정치적 흥정이나 계산의 차원이 아니어야 한다.” 정의는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 계산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기본권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장애인의 기본권을 위해서 예산을 적극 책정해야지 예산이 없으니 장애인들은 기본권을 유예하라는 식의 정책은 부정의하다. 이런 식의 정부정책, 예산 책정은 흔한 일이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게 양보하라고 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그렇게 소수자의 인권은 유예된다. 이것이 기다리다 지쳐버린 장애인들이 몸뚱이들로 절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정부가 이 절규에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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