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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추억처럼 소망한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 같기를여행과 함께하는 부부 윤현희 제삼열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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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8  10: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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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설계 중에서 여행 준비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언제든 또한 누구든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거, 하지만 <함께걸음> 지면에 등장하는 ‘여행’은 언제나 ‘희망사항’과 동의어처럼 새겨지게 된다. 정말 가고 싶지만 갈 방법이 없는, 가고 싶다는 생각만 품고 지내야 하는 환경의 제약 앞에 모든 걸 한숨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떠나고 보는 것’이라며, 독자 여러분한테 ‘떠남’의 도전을 권하는 이들이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과 걷지 못하는 아내의 유럽여행 도전기, 이글을 다 읽은 후엔 누구든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오랜 기간 삭혀왔던 꿈을 다시 끄집어낼지도 모를 일 같다. 그 꿈에 불씨를 놓는 윤현희 씨, 제삼열 씨 부부를 만났다.

 

직접 보고 직접 느끼자. 가자!

남편인 제삼열 씨의 이름은 익숙하다. 지난 2017년 1월에 거행된 제26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시상식에서 작품 ‘열’로 산문부 대상을 받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특수학교 아닌 ‘일반’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는 현직 선생님이고, 소설가로서의 삶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내인 윤현희 씨는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이고,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뒤늦게 미대를 다니고 있는 현직 화가이기도 하다. 그 두 사람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실행에 옮겼으며, 그 결과로 <낯선 여행, 떠날 자유>라는 여행기까지 책으로 출간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떠남’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을까?

 

윤현희 “저는 뭘 하더라도 준비를 다 해놓고 시작하는 게 편한 성격인데, 너무 먼 나라에 처음 가는 거고 현지의 정보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보니, 완벽한 준비라는 게 될 순 없더라고요. 그런데 용기라고 해야 할까? 정말 ‘일단 가서 부딪쳐 보자!’는 결심을 하고 출발했어요.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모든 게 두려웠고 불안한 게 너무 많았죠. 그런데요. 막상 가니까 다 헤쳐 나가게 되더라고요. 거기도 사람이 사는 데잖아요. 도움을 요청하면 주변 사람들한테서 곧장 도움이 전해졌고, 나름의 방법을 찾다 보니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이 어렵지 않게 생겨났던 거예요.”

그래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 아무 일 없이 이 땅의 일상으로 되돌아왔다는 게 그들이 도전한 영국과 프랑스 여행 9박 10일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주 담담한 심정으로 독자 여러분께 제안을 드릴 수 있다고 한다. 가까운 데든 먼 곳이든 간에, 일단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겠다는 마음부터 강하게 정하라는 것, 그래서 그 마음을 당장 내일 떠나는 것처럼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 결론은? 실제 여행을 다녀온 뒤 얻게 되는 ‘정말 별 거 아니었네?’라는 여유와 함께, 여행의 모든 추억이 고스란히 가슴 깊숙이 남겨진다는 것이다.

제삼열 “지금은 너무 부족한 게 장애인 여행 상품인데, 장애인 여행 매뉴얼이 구체적으로 잘 정리돼 있다면, 실제 여행에 나서는 분들이 정말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많죠. 어떤 면에서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저희처럼 직접 도전하는 당사자들이 많은 경험을 직접 쌓고 돌아올수록, 여행사의 상품이라는 게 보다 현실화된 일정과 편의로 마련될 수 있을 거예요. 비장애의 눈이 아니라, 장애당사자의 실제 경험이 여행의 장벽을 하나씩 깨뜨릴 수 있게 만들 테니까요.”

영국과 프랑스라면 일단 대표적인 선진국이라는 거, 쉽게 접하는 그림엽서 같은 이미지들을 우선 떠올릴 수 있다는 거, 거기에 덧붙여서 막상 출발하기엔 너무 먼 나라라는 생각들이 뒤섞이게 된다. 그렇다면 가까운 지역이 아닌, 왜 영국과 프랑스였을까?

윤현희 “저는 일단 그림에 관심이 많고 남편은 문학에 관심이 많다 보니, 어떤 문화적인 기운이라고 할까요? 그 나라들의 그런 환경을 직접 느껴 보고 싶었어요. 인터넷 화면이나 자료집 내용만으로는 접할 방법이 없는 문화선진국의 실제 기운 같은 거, 그걸 직접 부딪치며 체험 자체로 받아들이고 싶었으니까요.”

   
 

모든 게 자연스러운, 그래서 너무 다른 세상

장애당사자로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한 여성과한 남성이 유럽의 선진국을 체험했다면, 분명 우리와 다른 그들만의 ‘무언가’를 직접 몸과 마음으로 마주치게 됐을 것이다. 정말 뭐가 달랐을까? 부부가 다양한 감탄사와 함께 소개한 내용 가운데, 이 땅에선 접할 방법이 없는 몇 가지만 먼저 추려 본다.

윤현희 “다른 그 무엇보다 감탄했던 건 교통편이라는, 바로 이동의 자유로움이었죠.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였어요. 게다가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까지 전부 다 저상인 거예요. 영국은 일반 택시에도 전동휠체어를 탄 상태 그대로 탑승이 가능하더라고요. 차의 문을 열면 그 문 아래로 경사로가 나와요. 택시 자체가 크고 넓어서, 뒷좌석에 앉아 발로 딛는 공간이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만큼 아주 넓다는 거죠. 일반 택시들이 다 그렇다는 거예요. 언제든지 길에서 손만 들면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그대로 택시에 오를 수 있다는 거, 승차거부 같은 건 아예 없는 그들의 환경과 문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죠.”

제삼열 “저는 영국인들의 인식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당장 서울만 해도 지하철 이용을 위해 엘리베이터에 타려 하면 줄을 서있던 이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해서, 전동휠체어 사용자들은 엄청난 불편함을 매번 겪잖아요. 그런데 런던에서 숙소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앞에 서 있던 다섯 살짜리 아이가 버튼을 눌러주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장애인이 먼저 타야 한다는 거죠. 그 옆에 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가치관 자체가 저렇게 정립이 돼 있구나 싶어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장애당사자의 입장에서 해외여행에 도전했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언급하는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체험은 바로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도 나를 안 쳐다본다’는 것이다. 측은함을 담은 동정이나 시혜의 시선도, 불필요한 관심이나 접근도 아예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말 그대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인데,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다가와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능동적으로 말이다.

윤현희 “길을 걷다가 남편이 속이 안 좋아졌는데, 아무리 봐도 화장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급한 마음에 아무 식당이나 일단 들어가서 화장실 안내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제가 가야 하는 줄 알고 실내에 있던 손님들 중에서 가장 건장한 남자를 직원이 부르더라고요. 지하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데려다 주겠다며 저한테 다가왔는데, 화장실이 필요한 건 저의 남편이고 이 사람이 앞이 안 보인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는 직접 안내를 하는 거예요.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방법, 어떻게 팔을 잡게 하고 얼마만큼 앞장서야 하는지를 일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거죠. 너무 정확하게 안내를 해서, 놀라움만큼 신기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배려의 행동이 그 나라 사람들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자 문화라는 게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어요.”

제삼열 “저상버스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엔 버스 자체가 워낙 모자라지만, 그마저도 실제 탑승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인데다가,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에는 아예 좌석 자체가 없어요. 휠체어 이용자가 아무 때나 승차를 해도, 자기 자리가 보장된다는 거죠. 우리의 경우는 접이식 의자를 접지 못한 상태로, 휠체어 사용자가 버스 중간 통로에 그냥 머물러야 하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버스에서 내리려 하면 입구 쪽의 모든 승객들이 먼저 다 내린 다음에, 휠체어 사용자가 안전하게 하차할 때까지 모두 함께 도움을 주세요. 콜택시 하나를 불러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이 땅의 습성으로 본다면, 정말로 저와 아내가 우리 둘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그 여행에서 받았다고 할까요? 그 여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젠 그 섬에 가고 싶다

윤현희 씨와 제삼열 씨는 시간과 기회가 될 때마다, 국내여행 또한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한다. 다만 전제조건으로는 자신들의 차가 없다는 것, 그래서 기차가 닿는 곳 위주로 여행을 하게 됐단다. 그마저도 최근에야 심적인 여유가 생겼지, 불과 몇 해 년 전까지는 지역에 콜택시 문화가 거의 없어서 해당 지역의 역 주변을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물’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는 제삼열 씨는 바닷가에서 술 한잔 하는,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면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여행이 될 거라는데, 현실적인 환경은 바닷가까지 가는 열차를 찾을 길 없고, 그마저도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느린 열차’가 전부란다. 고속열차인 KTX는 노선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준비했다가 일정상 연기됐던 동남아여행에 곧 들어갈 거라는 윤현희 씨와 제삼열 씨 부부. 두 손이 불편해서 수동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기에, 전동휠체어로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윤현희 씨는 그래도 시각에서는 자유롭다. 그렇다면 시각장애를 가진 남편에게는 여행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흔한 사회적 편견처럼 ‘안 보이는데 여행이라니’라는 왜곡된 관점을 본인 스스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제삼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데 미술관에 간다, 그러면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시잖아요. 하지만 저는 즐거워요. 가기 전에 미리 어떤 미술관인지,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거든요. 그 자체로도 저의 상식이 늘어나고, 가서 직접 설명을 듣거나 오디오의 설명을 듣다 보면 상상을 하게 되잖아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얻는 게 있다는 거, 여운이 더 오래 간다는 게 저의 여행 목적인 것 같아요.”

윤현희 “저는 눈으로 보는 시각에 일단 중심을 두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시각 아닌 모든 감각으로 느끼기 때문인지, 저보다 훨씬 더많은 감성을 간직하고 있어요. 제가 잊어버린 기억까지도, 남편은 저보다 더 세세하게 떠올리거든요.”

그렇다면 제삼열 씨는 영국과 프랑스를 어떤 기억과 감성으로 간직하고 있을까? 뜻밖에도 표백제 냄새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삼열 “영국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표백제 냄새예요. 런던 히드라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글쎄요. 아마도 방금 전에 청소를 했을지도 모르겠죠. 그런데 제겐 소독제인 표백제 냄새가 확 풍기더라고요. 주위가 워낙 조용하고, 그러다 보니 굉장히 깨끗하고 청결한 나라라는 첫 느낌을 받았어요. 게다가 영국 사람들은 매너가 대단히 좋잖아요. 단순한 냄새지만 그 인상이 가장 크게 남았어요. 영국에서 프랑스는 (도버해협 해저를 관통하는) 기차로 갔는데, 프랑스 파리의 어디를 가든 커피 향과 빵 냄새, 거기에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의 땀 냄새가 동시에 느껴졌죠. 낭만적이면서도 소란스러운, 그런 이미지가 지금까지도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소리가 아닌 냄새의 느낌만으로 여행의 추억들이 간직되는 거죠.”

남편과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윤현희 씨. 그는 항상 내일이 오늘 같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당장 출발하고 싶은 여행 목적지는 ‘어딘가의 섬’이라고 했다. 비 내리는 바닷가에서의 한잔이 남편 제삼열 씨에게 어서 다가오기를, 또한 이번에 출간한 여행기 다음의 새로운 기록들이 남편의 눈으로, 아내의 다리로 충실하게 기록되며 발표되기를 기대한다. 불가능은 ‘불가능’이라 말하는 이들의 몫이자, 스스로 규정짓는 한계임이 분명하다. 윤현희 씨와 제삼열 씨 부부는 그 한계가 무의미함을 이미 자신들의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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