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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학대 피해 장애인 종규 씨의 ‘보물찾기’
김은정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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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8  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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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규 씨(가명. 42세)는 왜인지 보물찾기를 그리워했다. 어쩌면 유년시절 나눴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그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혔는지 모르겠다. 이후의 삶에 대해서 그는 기억하기를 꺼려했다. 4년간 종규 씨가 학대받았던 논산의 한 딸기농장도 그리고 학대의 가해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사촌형이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알면 머리만 아파져요”

장애인이 딸기농장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전화가 한 고발프로그램에 제보됐고 해당 프로는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로 공조를 요청했다. 그렇게 논산의 한 딸기농장에서 임금 착취와 학대를 당하고 있던 지적장애인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족으로는 병든 노모뿐이라 떨어져 살며 의지할 곳 없던 그를 학대한 가해자는 다름 아닌 사촌형이었다.

영상에서 가해자인 사촌형은 그간 피해자 종규 씨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린 사실이 없고,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동생이라 잘 보살펴 왔으며, 피해자가 자신과 분리될 경우 누군가로부터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로 헤어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종규 씨는 사촌형으로부터 머리와 코를 수차례 맞았다고 진술했으며 술병으로 맞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머리를 헤집어 보여주었다. 딸기 상자를 나르고 하우스를 지키는 등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밥과 마른 멸치 등으로 허술하게 끼니를 해결했으며 엄동설한에도 옷은 단출했다. 거칠고 딱딱하게 굳은살이 잡힌 양손이 그 자체로 하나의 증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촌형은 2011년부터 종규 씨의 장애인수급비 70만 원을 매달 챙겨왔으며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주지 않았다. 가끔씩 건네던 담뱃값과 이발비가 전부였다. 학대 현장에서 분리되고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정수리의 상처는 거의 아문 상태였다.

그러나 4년의 시간이란 결코 아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종규 씨는 그 당시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고 다만 다소 격앙된 어조로 두서없는 문장들을 이어갔을 뿐이다. “딸기밭에서 일하는 거… 부려먹고… 눈을 부릅뜨고… 하루도 못 버텨요. 말도 못해요. 허리 굽혀야 하는데… 진상들, 그 짓거리 못해요.”

 

“저, 자전거 두 손 놓고 타요”

종규 씨는 얼마 전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사회복지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위기거주홈 식구들과 여의도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자전거를 잘 타시냐고 묻자 그는 “그럼요. 저 자전거 잘 타요. 두 손 놓고 타요”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또 한 번 가서 타고 싶네”라며 당시를 반추하는 듯 했다. 사실 불필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학대당하던 4년간 그는 숙소로 쓰던 직원들의 식당에서 매일 5시면 일어나 농장까지 약 6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갔고, 어느 날부터는 사정을 딱하게 여긴 누군가가 건넨 자전거 덕분에 꼭두새벽의 여정이 그나마 좀 수월할 수 있었다.

종규 씨는 주변의 제보가 결정적 계기가 돼 4년간 지속된 학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4년 이전의 그의 생활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종규 씨는 그에 관한 질문에 “알면 머리만 아파져요”라며 고개를 젓는 식으로 함구했다. 그리고 종규 씨는 2017년 1월 위기거주홈으로 입소해 열 달간의 생활을 마치고 자립했다.

종규 씨는 지난 해 9월부터 현재까지 서울에 소재한 한 위탁급식업체에서 음식 재료 정리 및 검수 작업을 맡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오전 5시면 기상해 일찌감치 직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현재의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는데 직장 얘기만 하면 그의 입 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직장 하나는 잘 잡았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손발도 척척 잘 맞고. (주변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고, (식사 때) 먹고 싶은 것 먹어도 되고.”

 

“다 털어놔요. 그래야 속이 후련해지죠”

종규 씨의 자립 역시 당사자는 물론 주변의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황상연 실장은 처음에 종규 씨가 사회성이 부족했다고 전했다. “처음에 종규 씨가 눈맞춤과 감정표현이 잘 안됐는데 그런 기간이 두 달 정도는 지속됐어요. 다른 장애인분들과 한 달 체험홈 생활을 하셨는데 공동체 의식이 부족해 다른 두 분의 원성을 사기도 했죠. 현재는 적응 과정을 거쳐 많이 개선되셨어요.”

종규 씨 또한 공동체 생활에서 겪었던 고충을 토로했다. “함께 생활하면서 (다른 장애인 당사자들과) 싸울 뻔도 했어요. 사람들이 (습관들이) 평생 몸에 배어 있어서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집을 혼자 쓰니까 편하지만 대신 집에 있으면 얘기할 사람도 없고 심심해요.” 그래서인지 그는 휴일이면 위기거주홈을 찾아 동고동락했던 장애인당사자들과 간사들을 만나 일주일의 회포를 대화로 푼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종규 씨와 철민 씨(가명, 최근 잠실야구경기장에서 학대와 임금착취를 당해 쉼터로 입소한 지적장애인)가 흡연하러 가는 길을 동행하게 됐다. 둘은 담배 한 대씩을 피우고 인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한 잔씩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가 동석한 까닭인지 대화의 주제가 과거 본인들이 겪었던 학대였는데 나이로 보면 철민 씨가 한참 연장자였지만 훈련을 마치고 자립한 것으로 따지면 종규 씨가 선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종규 씨는 철민 씨에게 “그 사람(가해자)들이 우리 같은 사람 피 빨아먹은 거나 다름없어요. 당했던 거 저분(기자)에게 다 털어 놔요. 그래야 속이라도 후련해지죠”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그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란히 앉은 철민 씨가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고 앉을 때마다 종규 씨가 “다리 그렇게 꼬지 마세요. 허리 안 좋아져요”라며 자세를 고쳐주고 당부하던 모습이었다.

 

“수영이 헬스보다 두 배는 더 재밌어요”

종규 씨는 자립했지만 사후 지원 중에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로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경제적 자립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월급이 약 80만 원가량인데 매일 편의점에서 2만 원을 지출하는 까닭에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이 생겼다. 편의점에서만 한 달 사용 금액이 200만 원에 이르자 쉼터는 종규 씨와 합의하에 체크카드 한도를 조정했다. 그러나 황상연 실장은 종규 씨를 비롯해 당사자들의 자립 이후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성하게 된 지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에 ICF에 대해 배우게 됐는데 여기서는 자립의 개념을 이를테면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지역사회에 한축으로 참여하는 가로 확장해요. 우리는 그간 당사자가 직업을 구해 소득을 갖고 집을 장만하면 자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지 자립의 첫걸음에 불과했죠. 욕구조사도 수차례 했지만 그저 당사자들의 천편일률적인 대답 혹은 ‘모른다’는 답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최소한의 경험이 있어야 선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의 깨달음은 기자에게도 그간의 인터뷰를 되돌아보게 했다. 학대피해장애인들을 만나오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소망 등을 단골질문으로 건네곤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한참이나 입을 떼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에 대해 단지 장애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뿐 경험의 폭이 좁고, 그래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집 근처 체육관에서 월수금은 헬스장을 다니고, 화목은 수영을 배워요. 일 끝나고 6시 반경에 가서 8시까지 하는데 수영이 헬스보다 두 배는 더 재밌어요.”

종규 씨는 쉼터의 최용빈 간사와 몇 달 전부터 함께 체육관을 다니고 있다. 헬스는 힘에 부친지 슬쩍 쉬고 싶은 마음을 내비췄지만 수영만큼은 끝까지 하고 싶다고 그는 얘기했다.

종규 씨는 최근 1년 사이 처음으로 영화관도, 놀이공원도 갔다. 5월에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다. 위기거주홈 식구들의 단체 제주도 여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규 씨는 경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은 일로 꼽은 낚시, 등산, 자전거 타기를 모두 선두에서 밀려나게 한 것은 예상 밖의 종목(?)이었다.

“나무에 보물 숨겨 놓고 하면 재밌잖아요. (찾은 종이에는) 상품이 적혀 있고, 내가 먼저 찾았다고 손을 들고.”

종규 씨가 천진한 표정으로 느닷없이 왜 보물찾기를 꼽았는지는 미지수다. 유년기의 단편적인 경험이 행복함으로 기억됐는지도 혹은 그때만큼은 장애인을 향한 세상의 불공평한 잣대로부터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모쪼록 종규 씨가 하나하나 자신의 선택지를 추가해가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을 찾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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