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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일상을 묵묵히 지켜주신 슈퍼 활동보조인 이모오사카에서 온 편지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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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8  09: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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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셔라! 완연한 봄날, 집밖을 나섰더니 급격히 올라간 기온도 더해져 정말 화창한 날씨네요. 이런 날은 왠지 마음도 들뜨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반짝이는 것 같아요. 동네 주변에 잠시 나왔을 뿐인데 골목에 놓인 화분의 꽃이며 나무들이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듯 빛을 발해요. 길가의 풀 한 포기에도 만 가지의 생명이 어우러져 자라나 빛을 발하고 있으니, 세상을 향해 발돋음하는 기특한 모습에 자연스레 웃음이 퍼지는데, 앙증맞은 행복을 느낀다는 건 너무 거창한 말일까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행복이 느껴져요. 앞에 탄 아빠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뒤에 탄 어린 딸아이는 종알종알 얘기하고, 아빠의 얼굴에도 싱글벙글 웃음이 피어나는 걸보면 생판 모르는 부녀이건만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나게 할까 궁금해지는데 그건 아줌마의 지나친 호기심? 집 앞의 화초에 물을 주는 아저씨, ‘많이 먹어라, 시원하게 마실게요’라는 대화가 들리는 듯,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지만 그 되풀이 되는 돌봄의 손길이란 질리지 않은 기다림이며 쌓여가는 정이겠지요. 주는 사람도 받는 화초도 화색이 돌고. 파릇파릇 신록이 물들어 가는 듯해요.

봄맞이의 감동을 꽤나 길게 늘어 놓긴 했지만, 매순간이 자연의 심오한 섭리만 깨달으며 행복으로 채워지는 건 아니지요. 우리네들의 생활이란 그저 주어지는 물과 햇볕만으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맞춰가는 과정 속에 꾸려 가는 것일 테니까요. 누구라도 아무렇지 않은 하루보다는 특별한 일과에 대한 동경심은 있을 거예요. 뭔가 재미있는 일, 뭔가 짜릿한 경험을 기대하는. 하지만 그것 또한 아무렇지 않게 되풀이 되는 일상이 뒷받침 돼야만 가능한 것이겠지요. 언제나 같은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요.

저의 일상을 지탱해 주셨던 바로 그분, 오사카에 와서 생활한 20년 중 절반 이상 생활의 기반이 되는 가사일을 지원해 주셨던 활동보조인(일본에서는 헬퍼-도와주시는 분-라고 하는데요) 마츠무라 씨가 몸이 편찮아지셔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하시네요. 얼마 전 일을 마치시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시는 거예요. “사실 전부터 한쪽 무릎이 안 좋아 병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며칠 전갑자기 다른 한쪽 무릎도 아파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근처에 사는 딸을 불러 함께 병원에 갔더니 절대 안정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며칠 간 쉬니까 좀 나아져서 그냥 참고 왔어요. 미양 씨에게 인사도 해야 하고, 갑자기 그만 두게 돼서 정말 미안해요.”

예상치 못하던 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요. 마츠무라 씨가 우리 집에 오신지 어언 13년, 그간 가정 사정으로 쉬신 기간도 있지만 지난 8년 이상은 매주 어김없이 찾아오셔서 불평 한 마디 없이 알아서 척척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셨어요. 마츠무라 씨도 벌써 예순이 훌쩍 넘으셨고, 그간 팔다리가 좋지 않다는 말씀은 가끔 들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악화돼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솔직히 마츠무라 씨가 청소해 주시고, 집 안팎을 살펴 주시는 것도 물론 필요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분이 가사를 돌봐 주신다는 것에 커다란 의지가 되었어요.

마츠무라 씨 전에도 몇 분의 헬퍼가 오셔서 가사를 열심히 도와 주셨지만, 마츠무라 씨가 오시면서 베테랑 주부로서 청소 하나 하나, 사계절 때맞춰 필요한 이불이며, 옷들이며 제가 지시하기 전에 알아서 챙기고 알려 주셨죠. 장애 당사자인 저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장애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주부인 저를 통괄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데 있어서 전면적으로 배려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의 육아와 관련된 물품 처리, 아이들이 커서는 자기 방을 쓰게 되었지만 방청소며 쓰레기통 비우기조차 제대로 못할 때도 저 대신 쓰레기통도 비워주시고, 이불도 정리해 주셨고요. 정말 일 처리도 마음 씀씀이로도 부족함이 없는, 활동보조인이라기보다는 오사카의 이모 같은 분이셨지요. 꼼꼼하고 깔끔하게 가사를 도와주시는 것은 물론 저의 불만이나 불평도 들어주시는 슈퍼 활동보조 이모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불편해지셔서 일을 그만두게 되시다니, 혹시 말없이 뭐든지 해주시는 걸 당연히 여기고 무턱대고 맡겨버리기만 해서 무리를 강요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사람 좋은 것만 생각하고 그 사람을 배려하지 못 했던 건 아닌가 싶은. 물론 제가 엄청나게 무리한 일을 강요해서 그렇게 악화되셨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여서는 안 되는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장애인의 일상을 평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밑바탕을 다듬어 주시는 분들의 일하는 여건을 개선하고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것이 장애 당사자를 위해서도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제도 서비스 확대를 아무리 외친다고 해도, 그 일을 맡아 내 일처럼, 내 마음처럼 해 주는 활동보조인들이 안 계신다면 우리들의 일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어요.

아이들을 비롯해 가족들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체력의 회복이 그리 빠른 나이도 아니시니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좋아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과도히 체력을 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장애인 지원의 활동을 계속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또 어떤 분과 귀한 인연을 맺게 되려나, 기대와 더불어 약간의 불안이 교차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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