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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어!소수장애인
박관찬/시청각장애인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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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8  09: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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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5월호부터 ‘시청각중복장애’ 대신 ‘시청각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시청각장애’는 의학적 특성상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중복된 장애유형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시청각장애로 인해 시청각장애인이 갖는 특성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시청각장애에 ‘중복’이라는 말을 덧붙이게 되면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의 중복된 유형으로, 시청각장애 고유의 특성(예컨대 전혀 못보고 전혀 못 듣는 전맹전농 시청각장애인은 오로지 촉각만이 세상을 접하는 수단이 되는 것)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5월이 되면 부모님만큼이나 제가 꼭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제가 정말 존경하는 스승님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던 스승님, 벌써 십 년도 넘게 지났네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스승의 날뿐만 아니라 종종 연락을 드리며 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왔을 만큼, 스승님은 제가 아름다운 청년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

저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일반학교를 다녔습니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 당시(초・중・고)를 회상해보면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병찬’이를 부르는데 ‘관찬’으로 잘못 알아듣기도 하고, 3학년 때는 학급반장이 되었지만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학급회의를 엉망으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는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 많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장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또래들과 선생님들입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편성되는 반에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제이야기를 합니다. 시력과 청력이 나빠서 보고 듣기 어렵다고요. 그러면 선생님은 저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교실의 맨 앞자리를 제자리로 지정하셨어요. 교탁 바로 맞은편 자리죠. 학기가 시작되고 중간중간 자리를 바꾸는 날이 있어도 저는 항상 그 자리 그대로였어요. 아마 선생님 입장에서는 제가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니까 조금이라도 배려를 한다는 차원에서 맨 앞자리를 지정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그 자리가 저에게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칠판의 글씨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고, 선생님의 말씀도 알아듣지 못했거든요. 그것보다 더 황당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저시력이라서 머리를 책에 가까이 숙이고 공부하는데, 교탁 건너편의 선생님이 보시기엔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아마 제 이름을 불러보셨을 텐데, 제가 못 듣고 계속 머리를 숙이고 있으니까 정말 졸고 있는 줄 알고 책을 읽고 있는 그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또 단체로 벌을 설 때가 있잖아요. 모두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서 손을 드는 벌을 서는데, 선생님들은 그런 벌을 지시하면서 꼭 “관찬이는 빼고” 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도 못 알아듣고, 뭐 때문에 단체로 벌을 서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갑자기 다들 책상 위로 올라가길래 당연히 저도 따라하려는 걸 옆자리 친구가 알려줬어요. 저는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고요. 선생님들은 그냥 제가 장애가 있으니까 ‘무조건’ 앞에 앉게 하고, 단체로 벌을 설 때도 거기서 저만 ‘무조건’ 제외하면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들이 어쩌면 저에게는 배려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꼭 그렇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역차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들 때문에 또래 몇몇은 저를 싫어하고 장애를 이유로 놀리고 괴롭힌 적이 많았습니다.

 

잊지 못할 나의 스승님

학교를 다니면서 당연히 공부를 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동체생활과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승님을 만나게 된 건 저에게 정말이지 큰 행운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후, 스승님은 자리를 자유석으로 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거기서 특별히 저를 예외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늘 일찍 등교했기 때문에 제가 앉고 싶은 자리는 어디든지 앉을 수 있었어요. 제가 앉고 싶었던 자리는 어디였을까요? 교실 뒷문과 가까운 가장 뒷자리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그냥 그 뒷자리가 뭔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앞이나 뒤나 어디에 앉더라도 선생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고 칠판의 글씨를 못 보기 때문에, 결국 공부를 스스로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교실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유석이라는 ‘규칙’을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제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 소속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스승님은 영어를 담당하셨는데, 수업을 진행하시다가 종종 “손들어!” 라고 말씀하신답니다. 그럼 수업에 임하고 있던 우리는 공부를 하다말고 모두 번쩍 손을 들어야 합니다.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인 것 같은데, 여기서 손을 가장 늦게 드는 사람이 앞으로 나가서 스승님께 등짝을 한 대 맞아야 했습니다. 스승님의 “손들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나중에 손을 드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저였겠죠?

그런데 스승님은 자유석으로 지정하면서 저에게 예외를 두지 않으셨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영어시간만 되면 항상 앞에 나가서 등짝을 한 대 맞아야 했습니다. 두 대나 세 대를 맞은 적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너무나 좋았어요. 심지어 열심히 영어단어를 찾고 있느라 다른 또래들이 손을 드는 분위기조차 인지하지 못한 탓에 손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벌칙에 당첨(?)되니까 안타까웠던지 스승님이 다른 방법의 ‘손들어!’를 만드셨어요. 한번은 수업시간에 제가 앞을 보니까 마침 스승님도 저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저를 보신 선생님은 칠판에 아주 큰 글씨로 ‘손 들ㅇ·’라고 적으셨습니다. 마지막에 ‘ㅣ’를 적지 않으셨는데, 그냥 그 상태로 수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칠판의 그 글씨에 분필로 ‘ㅣ’를 그으셨어요. ‘손들어’를 완성한 거죠. 계속 앞을 보고 있었던 저는 번쩍 손을 들었죠. 덕분에 칠판이 아닌 책을 보고 있던 친구가 정말 오랜만에 등짝을 한 대 맞았습니다. 지금도 저에겐 정말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그래도 스승님이 직접 말로 “손들어!”라고 하시는 경우가 더 많아서 제가 대부분 등짝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같은 반 친구 몇몇이 저 대신 등짝을 맞겠다고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친구들이 뭐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손을 늦게 든 저보다 다른 잘못이 있어서 벌을 받는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거든요. 나중에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알게 되었고, 그런 소소한 일을 계기로 저도 친구들과 소통할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등짝 한 대 맞는 것이 아주 사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장애’ 학생이 아닌 그 학급을 구성하는 한 명의 ‘학생’으로 똑같이 대우해주신 스승님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만큼은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손들어!’에서 제가 늦게 들었는데도 다른 학생이 등짝을 맞았다면 어땠을까요? 그 학생은 저를 싫어하고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칙에 따라 제가 매번 등짝을 맞았고, 덕분에 오히려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그로 인해 저도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은 ‘무조건’ 배려해야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선생님과 학생의 상담이 많이 필요한 때인데, 저는 상담을 ‘말’ 대신 ‘글’로 했습니다. 스승님은 교무실에서 컴퓨터에 제가 읽을 수 있는큰 글씨로 타이핑을 치며 상담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 교무실에 가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교무실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제가 잘 보지 못하니까 인사할 타이밍을 종종 놓치거든요. 또 제가 만나러간 선생님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로 잘못 찾아간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승님은 제가 교무실에서 스승님 자리로 정확히 갈 수 있도록 알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다른 선생님과 마주치면 반드시 저에게 인사를 시키셨습니다. 그렇게 스승님 덕분에 다른 선생님들과도 차츰 안면을 익힐 수 있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승님과 메일로 정말 많은 소통을 했습니다. 입시 고민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취미, 관심분야 등 다양한 주제로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저와 스승님 모두 독서가 취미였는데, 그 당시 제가 정말 눈물겹게 읽었던 소설 ‘국화꽃 향기’를 스승님께 빌려드리며 소설을 읽은 후의 느낌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배경이 바로 저의 고향 포항 앞바다였는데, 스승님이 책을 다 읽고 포항 앞바다에 다녀오셨다고 메일로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스승님과 주고받은 메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스승님은 교무실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곳을 가더라도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늘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저의 눈과 귀가 돼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희로애락 그 어떤 것이든 스승님께 꼭 알려드렸고, 어떤 문제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 어김없이 스승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승님은 지금까지 절대 대신 결정을 내려주지 않으셨고, 비교형량하여 제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저의 인생이 스승님을 만난 시점을 전후로 나눠지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제가 삶에 임하는 방식과 태도가 가장 크게 변화된 시기가 고등학교 3학년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스승님의 ‘장애’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식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통합교육의 방향이 아닐까요?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배려를 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 역차별이 신체적·정신적으로 크게 발달하는 청소년기의 또래들에게는 더욱 반발심과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손들어!’처럼 벌칙에서도 예외 없이 하나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또 그를 통해 구성원 내의 협력이나 협동심을 유도해낼 수 있게 접근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덕분에 친구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봄·가을 소풍이 다가오면 늘 괴로웠습니다. 친한 친구가 없었으니까요. 소풍가기 전 조를 짜게 되면 항상 마지막에 남은 친구들끼리 묶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만큼은 정말 소풍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땐 저에게도 함께 토네이도를 탈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올해 초 스승님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평소처럼 숟가락을 뒤집어서 접시 위에 걸쳐놓았는데, 스승님께서 어떤 일화를 소개해주시며 숟가락을 바로 놓아야 되는 점을 알려주셨습니다. 스승님은 노파심에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하셨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꽤나 긴 내용의 일화를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저의 손바닥에 계속 적어주셨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말’이 아닌 ‘글’로 손바닥에다 적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자 계속 글을 써주셨던 스승님, 팔이 많이 아프셨을 텐데 왜 그때 스승님의 어깨 한번 주물러 드리지 않았는지 무심한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스승의 날이 있는 특별한 5월을 맞이하며 더욱 감사드리고 싶은 스승님, 이 글을 통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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