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
학대 피해 장애인의 삶은 계속된다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6.12  09:45:4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지난달 5일,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끝나지 않은 숨바꼭질-신안 염전 노예 63인’편이 방영됐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은 염전주가 장애인을 섬으로 데려와 임금을 주지 않고 길게는 수십 년간 일을 시키다 2014년에 적발된 사건이다. 반인륜적 범죄에 시청자는 분노했다. 방송 직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사건의 재수사와 당시 판결을 내린 판사의 처벌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고 약 5천 명이 서명했다. 그런데 무언가 빠뜨린 거 같다. 피해자다.

세상에 드러나기 전에도 피해자가 학대당하고 살아왔듯, 세간의 관심이 없어도 피해자는 살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장애인 학대 피해자를 위해 마련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제안해 2016년 학대피해장애인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마지막 해를 맞아 연구소는 지난 23일 ‘사람중심의 학대피해장애인 지원방안 및쉼터운영방안 토론회’를 열고 그간의 경험과 남은 과제를 공유했다.

 

   
 

누군가에게 낯선 사회

생각 없이 걸어도 집은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여행지에선 다르다. 지도를 보고 걷는데 길을 헤매기도 한다. 대중교통 타기도, 음식 주문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사는 곳도 누군가에겐 낯선 곳이다. 장기간 고립됐던 학대 피해 장애인에겐 우리 사회가 그렇다.

“처음에는 당사자의 욕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만 했다. 그런데 선택권을 드리면 알아서 해달라고 하셨다. 읽지 못하는 메뉴판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당혹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황상연 위기거주홈 실장은 말했다. 위기거주홈은 학대 피해 장애인이 자립하기까지 필요한 것을 준비하며 단기간 머무는 곳이다. 대중교통 이용법 등 일상에 필요한 기초를 반복해서 훈련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 기본 6개월까지 머물 수 있지만 필요한 경우 최대 1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수십 년을 살아온 방식을 바꾸기에 1년은 짧다. 황 실장은 “트라우마는 일정기간 지나면 회복됐지만 삶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가해자가 사용하던, 언어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업을 갖고 주거가 생기면 자립할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더 기초적인 것부터 되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 쉽다”고 말했다.

 

학대 피해 장애인 특별법의 필요성

장애인 학대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약한 처벌을 받아왔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에서도 가해자 33명 중 20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역의 관행이었고 염전주가 숙식을 제공했다는 납득되지 않는 감형 사유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자가 장애인인 걸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와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무료로 진술조력인과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례법이 별도로 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학대 피해 장애인 또한 그 못지않게 피해 진술과 자기변호가 어렵지만 제공되는 것이 없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강남수 경위는 “장애인 학대 피해자라는 이유로는 어떤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다. 진술조력인을 대동해 중증장애인 피해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중한 명이 성폭행 당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자 진술조력인이 중간에 가버린 일도 있다. 아동만큼 장애인의 진술도 오염되기 쉬운데 어떤 제도도 없다”며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연구소 김강원 실장 또한 “현재 장애인 학대에 관한 규정은 모두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돼 있다. 복지에 관한 기본법에 처벌과 피해자 지원에 대해 상세히 담는 것은 법체계상 적절치 않다.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대피해장애인지원 사업은 올해로 끝난다. 그러나 학대 피해 장애인의 삶은 계속된다. 이들은 아직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새로운 피해자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올해 적발된 장애인 학대만 5건 이상이다. 반인륜 범죄는 외딴 섬에만 있지 않았다. 경상도의 농가와 충청도의 축사에서도, 서울 잠실운동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신안에서 구출된 피해자 중엔 염전으로 되돌아간 사람이 있다. 사회가 적어도 학대 현장보다는 살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를 추천하시면 "오늘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
2
무장애 관광, 해외 사례의 적용 가능성 거버넌스 구조의 필요
3
고용률 부풀리기로 뻥 뚫려버린 행정의 믿음
4
자신을 드러내세요. 세상이 다가옵니다
5
하모니원정대가 추천하는 10월 여행지 BEST 2
6
사법 및 행정서비스에서의 장애인차별금지
7
위축되는 공익인권소송, “패소 시 과중한 소송비용 부담 개선 필요”
8
장애등급제는 어떻게 장애인을 옥죄었는가
9
소득주도성장이란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10
재활케어: 병원에서 지역까지, 그리고 ICF의 활용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함께걸음 제호: 디지털 함께걸음  |  우)07236 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2007년6월26일 | 발행인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성재 | 편집인 겸 편집국장 김성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태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선스 2.0:영리금지ㆍ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