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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정신장애인의 인권 '자유를 향한 긴 여정'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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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2  11: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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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리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관련하여 기본적인 개념과 그 변화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달에는 ⌜정신장애인의 인권⌟(2015, 서미경)의 제2장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을 중심으로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을 논의하고자 한다.

제2장에는 정신장애인의 자유권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논란인 강제입원과 그 대안으로서의 지역사회치료명령, 그리고 강제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인 동의능력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강제입원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당사자의 자유를 제한한 강요에 의한 입원임에도 불구하고 UN 또는 WHO의 국제법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자유권을 강조하면서도 강제입원 및 강제치료를 일정부분 인정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그 근거로는 정신장애인은 동의능력과 병식이 부족하다는 특성 하에서 첫째, 자해⋅타해의 위험성이 있거나 둘째, 손상의 심각성으로 인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신보건법에서도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 나 타인의 안전을 위하여 입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강제입원을 허용하고 있다. 이렇게 저자의 언급처럼 정신장애인의 영역에서 강제입원은 이론과 실천이 모순되는 극명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강제입원에 있어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문제제기는 강제입원의 근거가 무엇이며 그 근거가 타당한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과 관련하여 저자는 강제입원에 대한 논쟁을 온정주의적 관점과 권리존중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온정주의적 관점이란 비합리적이고 결함이 있는 사람의 경우 개인의 권리와 결과를 충분히 고려한 가장 합리적 선택을 위해 그에게 행해지는 강요(coercion)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정주의 관점에서 강제입원을 지지하는 세 가지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무능력에 대한 전제’로 정신 장애인은 장애의 특성상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에게 최선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한다. 둘째 ‘위험성에 대한 전제’로 정신장애인은 자해⋅타해의 위험이 있으므로 자신과 대중의 안전을 위해 강제적인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셋째 ‘손상에 대한 전제’는 치료를 거부하는 정신 장애인에게 필요한 개입을 즉각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증상 회복으로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결과를 초래 한다는 것이다(감사이론).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온정주의의 세 가지 전제조건과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강요경험과의 관계를 검증하는 연구에서 무능력의 전제가 강요경험과 관련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정신장애인은 최선의 것-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기에 강제입원이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능력한 정신장애인이 강요경험을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우리는 우선 정신장애인의 무능력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능력을 동의능력의 부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신장애인 자체가 능력이 없거나 결정을 못하는 게 아니라 정신장애 진단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장애인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그들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정신장애인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고 적합한 의사소통방식을 시도했는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정신장애인에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 대신에 최고의 병원에 대해 소개하고 치료에 관한 정보를 최선의 정보로 제공한다. 그래서 정신장애인들은 다른 대안들에 대하여 고려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이 무능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 대해서는 강제입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온정주의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무능력이 자해⋅타해의 위험성과 결합되었을 때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정당화된다. 이러한 정신장애인의 무능력과 위험성에 대한 전제가 깨지지 않는다면 국가가 강제로 정신장애인을 입원시키는 온정주의는 계속적으로 효력을 가질 것이다.

두 번째는 ‘설득’에 관한 논쟁이다. ⌜정신장애인의 인권⌟(2015, 서미경)에서도 논의하고 있듯이 설득을 강요의 한 부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강요와는 다른 선한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정신장애인은 의사, 가족, 친구 등으로부터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권유받는다. 그때 일반적으로 강요와 설득을 분리시켜 강요는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권하는 것이고 설득은 상대방이 깨우쳐서 행동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에 따라서 설득은 필요하며 유용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설득이 때로는 하나의 강요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강요와 설득의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즉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따르면 좋은 행동으로 이해하고 따르지 않으면 일탈행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에게 전문가나 가족들의 제안을 따르도록 ‘지속적으로’ 설득 한다. 설득의 지속성은 하나의 강요이다.

설득과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해볼 문제는 비슷한 유형의 ‘유도’이다. 정신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그 안에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득’ 하거나 ‘유도’하는 것을 자주 보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도의 형태는 발달장애인에게도 해당된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 사회복지사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유도적 형태로 제안하게 되는 딜레마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이것을 강요로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이 별로 없다는 점과 대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신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해 주는 다양한 사회관계망 또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신장애인에게 어느 한 쪽으로 유도하거나 설득하는 것이다. 만약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다양한 사회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으면 정보에 대한 판단과 결정의 권한이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발달장애인의 정보제공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때 발달장애인이 했으면 하는 좋은 것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또는 직원들은 내가 발달장애인을 위하고 있고, 항상 선을, 최선의 방법을, 좋은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니 발달장애인이 따라와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유도 형태의 정보제공을 문제시하지 않고 사용하곤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장애인을 위해 일한다는 말의 바탕에는 온정주의가 있는 위험한 시각일 수 있다.

결국 설득과 관련한 논의로부터 다음과 같은 측면을 현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선 설득이 강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의 결정권이 정신장애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명제이다. 전문가의 설득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당사자를 비난하거나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강요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설득과 강요의 차이는 ‘권력관계’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푸코에 따르면 인간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정신장애인의 치료에 있어서 권력을 가진 의사 또는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가 설득하는 것은 강요-서미경의 저서에 따르면 ‘긍정적 압력’으로 규정-일 수 있다. 그래서 설득하는 사람은 어떤 목적과 의도로 정신장애인에게 얘기하는지 그리고 정신장애인과 어떠한 관계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즉 평등한 관계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에 관한 논쟁을 보면서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점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오랫동안 발달장애인은 손상으로 인하여 자기결정할 능력이 없고 자해와 타해의 위험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현재 그러한 편견은 많이 깨지기는 했지만 정신장애인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강력한 신화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신화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정신장애인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계속 보여주며 재생산하고 있다. 전형적인 예로 지난해 일어났던 강남역의 사건을 정신장애인의 소행으로 보도했던 미디어들을 들 수 있다. 정신장애인에게 낙인찍인 그 신화들을 어떻게 벗겨내어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계속 풀어야 할 숙제이다. 분명한 것은 정신장애인들이 혼자서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계에서 그동안 외면해 왔던 정신장애인들을 억압과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연대를 통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것을 통하여 장애인계가 바라는 ‘완전한 사회통합’을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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