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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사회참여모임 장애인인권지킴이
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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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2  10: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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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은 매달 두 단체 (조직·모임 등)를 만난다. ‘함께 걷는 우리’는 장애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이들을, ‘함께 사는 세상’은 장애의 영역은 아니지만 이 사회의 보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희망의 불씨를 밝히는 이들과 함께한다. 대상의 규모하고는 상관이 없다. 전국적인 조직일 때도 있고, 단 몇 명만으로 구성된 소모임일 때도 있다. 외형의 크기보다는, 내적인 진정성을 우선 살피며 새로운 만남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이번 ‘함께 걷는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이런 모임이 활성화 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이들과 마주했다. 작은 동아리 형태로 만나지만, 남다른 일상 속에 스스로 내면의 성장을 지향하는 이들, 바로 사회참여모임인 ‘장애인인권지킴이’가 그 주인공이다.

   
 

아는 만큼 나를 지킨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중곡역과 가까운 데 위치한 동서울장애인자립센터, 그 곳엔 매주 화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실내 가득 사람들이 모인다. 3년 전부터 계속 진행된 만남의 장소이고, 작년에는 ‘최우수 동아리’로 선정됐을 만큼 내실 있는 성과도 일궈내는 이들이다. 올해에도 서울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의 ‘2018 시민사회 참여모임(동아리) 지원사업’에 선정돼서, 9월 말까지 ‘시민입법참여–장애인 노동권 보장 관련법 연구’를 같이 하게 됐다고 한다. <함께걸음>이 찾아간 날은 마침 2018년 지원사업의 첫 번째 주제토론이 있던 날이었다.

큰 탁자에 둘러앉은 참가자들 앞에 그날의 토론 내용을 소제목 위주로 요약한 A4지들이 놓여지고, 간단한 다과 준비가 끝난 뒤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팀장을 맡은 주정수 씨가 모두발언에 이어 공부할 내용을 쉬운 용어로 하나씩 자세하게 설명했고, 참가자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경청하면서 메모를 하고 짧은 질문을 던졌다. 색다르게 다가온 건, 이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가한 게 분명하다는 실감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 하나 의무적으로 앉아 있는 게 아닌,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발언자의 내용을 새겨듣고 있었다. ‘최우수 동아리’로 선정될 이유가 한눈에도 읽혀지는 모습들이었다.

“법이라는 게 사실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이죠. 일상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그 내용을 알고 이해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요. 더욱이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들한테 필요한 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법 자체를 몰라서 사각지대로 내몰리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저희 동아리 모임은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생활 속의 법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헌법 같은 기본법 전체는 몰라도 되지만, 당장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걸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법률지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모임도 처음에는 다들 개념이 잡히지 않아 고생이 많았어요.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할까요? 꼭 필요한 내용부터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이젠 참가자들 모두 법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을 익히게 됐습니다. 아는 만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걸, 각자의 실감으로 깨닫게 된 거죠.”

장애인인권지킴이 모임의 팀장을 맡은 주정수 씨는 2017년 4월호 <함께걸음>의 ‘사람 사는 이야기’ 주인공으로 소개된 인물이기도 하다. 법을 전공한 인권강사이고 오랜 강의 경력이 말해 주듯, 장애당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식부터 선별해서 주제토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이라고 할까? 주정수 씨 자신이 뒤늦게 법을 전공하게 됐던 ‘법의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돌다리 두드리듯, 또한 한 계단씩 밟고 올라서듯 가장 쉬운 설명과 예를 들어가면서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그런 그의 노력에 대한 반응은 토론 참가자들한테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궁금한 부분을 곧장 질문하는 데 모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거창한 이론이 아닌 당장 필요한 것, 가장 아쉬운 부분, 오래 전부터 알고 싶었던 일상의 한 대목들을 콕 집어서 질문하다 보면, 그걸 듣는 다른 참가자들 또한 그 내용을 경청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집중하게 된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그것 또한 바로 ‘나’의 경우가 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인 표준어임이 분명한데, 우리의 헌법에는 아직도 ‘장애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당시의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거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장애자라는 용어는 온갖 비속어와 함께 쓰이던 오래 전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헌법에서조차 장애인의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걸 토론 참가자들은 ‘장애자’라는 한 단어를 통해 상기시키게 됩니다. 모두의 결론은 하나로 모아지게 되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헌법부터 보장하라는 귀결로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2018년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올해 첫 번째 공식 모임인데도, 참가자들은 별다른 어색함 같은 것도 없이 곧장 토론 주제 속으로 몰입했다. 몇 해 동안 지속된 모임이다 보니, 이미 이틀에 익숙해져 있다는 반증과도 같았다. 취재를 위해 곁에 앉아 같이 듣던 입장에서도, 강의와 토론의 내용은 주의 깊게 귀담아 들을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 선정에도 신경을 쓴 주정수 팀장의 노력도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중요한 부분을 메모하던 토론과 강의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들이 나눴던 주제들 중 두 가지만 짧게 이 지면으로 옮겨 본다. 그건 장애인인권지킴이 모임의 참가자들만 공유할 지식이 아닌, 장애와 비장애 구분을 떠난 모두의 지식이자 일상의 나침반이 돼야 할 핵심사항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근로’와 ‘노동’이라는 용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일을 한다’는 의미로 엇비슷하게 생각하게 되지만, 근로(勤勞)는 사용자(사업주)에게 종속된 상태로 일을 한다는 개념이 내포돼 있다. 반면 노동(勞動)은 사용자(사업주)와 동등하고 평등한 위치에서 계약하고 일을 한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근로자’는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기업을 위해 지시대로 순종하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고, ‘노동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과 자부심에 따라 노동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근로’라는 단어보다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훨씬 강한 권리를 갖게 된다. 그런데도 현실은 ‘근로기준법’이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 ‘노동’이라는 단어를 비하하며 ‘근로’가 정확한 표현인 것처럼 포장돼 있다. 헌법에서도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제32조)’와 같이 근로라는 단어를 우선시한다. 왜 그럴까?

해방 이후 제헌헌법을 제정할 당시, 좌우의 이념대립이 ‘노동’이라는 용어를 불순한 가치로 덧씌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의 ‘노동당’이라는 정당명이 절대적인 방점을 찍었다. ‘노동’이라는 한마디가 ‘빨갱이’로 규정되는 시발점이 됐던 것이다. ‘노동조합, 고용노동부, 노동3권’ 등의 명칭 안에 ‘노동’이 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근로자의 날’은 존속하고 있다. 정확한 용어로 법이 개정돼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들어서는 장애학계의 주장과 같이, 장애를 인간의 신체에 한정 짓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신체적 손상보다 더 심각한 게 바로 환경의 문제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앞에 경사로만 있으면, 어디든 엘리베이터만 있으면, 거리와 건물 입구에 턱만 없으면, 모든 교통수단에 휠체어 지정석만 보장돼 있으면, 수어통역과 음성전달이 지속된다면, 그렇게 유니버설 디자인이 보편화만 된다면,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지 않을 환경이 충분하게 확보된다는 게 학계와 장애계의 주장이다. 인간이 장애를 가진 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환경이 장애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전반에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한테만 멍에를 뒤집어씌운다. 국가가 사회복지 차원으로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임이 분명한데도, 장애당사자 개개인의 업보인 양 책임을 회피하는 게 사회인식의 전반에 너무나 심각하게 굳어져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동권의 문제도 마찬가지가 되죠. 저 개인적으로는 과격한 투쟁의 방식은 선호하진 않습니다만, 2000년대 초반부터 그렇게 온몸으로 이동권과 장애해방을 외쳤던 현장 활동가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최소한도의 환경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하나인 거죠. 혼자 집 안에서 참으며 삭히지 말고, 자신의 권리를 직접 주장하고 외치라는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우리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잖아요. 모든 장애당사자 여러분들한테 투쟁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일단 밖으로 나오라는 거예요. 가장 빠른 방법은 각 지역의 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해서 교류를 시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그 센터를 중심으로 만남의 폭을 넓혀가면서 자조모임의 틀을 만들어가자는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는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웃과 동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결론은 민주시민이 돼야 한다는 것

서문에 밝혀놓았던 바와 같이, 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모임이 전국 각 지역에서 일제히 활성화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얼마나 아름답고 활기 가득 찬 모습이 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은 몇 배로 증폭이 된다. 그렇다면 장애인인권지킴이 같은 조직은 어떻게 준비하고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주정수 팀장은 오랜 활동 경험에 걸맞게,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각 지역 자립생활센터의 문부터 두드리라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만나서 교류를 갖는 것은 동료상담의 수준에 머물 뿐이지, 자조모임의 틀로 발전할 순 없습니다. 그렇기에 일단 구심점으로 각 지역의 센터를 활용하시라는 겁니다. 한두 명도 좋고 두세 명도 좋고, 그렇게 밑불을 놓다 보면 규모는 자연스럽게 커지게 돼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수십 명이 모이는 것도 저는 권하진 않습니다. 하나의 자조모임은 다섯 명에서, 많게는 십여 명 정도가 적당하니까요. 외적인 규모보다는, 지속가능한 내적인 질을 우선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주 만나는 게 좋다고 한다. 만남의 간격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물었는데, 주정수 팀장은 자신의 체험으로 볼 때는 매주 만남이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성을 갖게 됐다고 단언했다. 만남의 간격이 길어질수록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신 가장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에는 방학이나 휴가처럼 한두 번 쉬는 게 좋고, 국경일 같은 날도 가급적 각자의 휴일로 지내는 게재충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조건 자주 만나고 많이 얘기하는 게 좋은 건 아니라는 충고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걸 서로 의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지도자(리더)가 되는 중심점은 있어야겠죠. 그런데 지도자가 리더십을 갖고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한 명 한 명 당사자들의 의견을 서로 교환하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잖아요. 다수결이라고 해서, ‘무조건 소수가 다수를 따라가라’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소수의 의견 하나하나도 소중하다는 걸 모두가 공감하며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다는 거, 어떤 모임이나 동아리와 주제토론이 길게 이어진다 해도, 그게 바로 최종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각자가 스스로 성장하는 게, 이런 동아리와 자조모임의 목적이자 마지막 목표가 돼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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