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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에서 자립까지, 주원이의 열아홉 해학대 피해 장애인, 그 후
글. 김은정 ◉ 사진 제공. 주원  |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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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2  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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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가명, 19세)은 만 17세의 나이로 탈시설을 했다. 중증의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고 미성년자에 오롯이 홀로 세상과 맞서 싸워야 했던 처지를 보건데 그에게 탈시설이란 그리 장밋빛 청사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알코올중독자였던 부친의 학대, 학대 가해자와 분리돼 옮겨진 시설에서의 2차 가해, 그리고 인권위 신고, 탈시설, 자립까지 어린 나이로 감당하기 벅찬 숨가쁜 시간을 보낸 그였다. 그리고 최신 스마트폰 사양에 흥미 많고 걸그룹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그 또래의 천진한 소년이기도 했다.

   
 

“커피 마시고 돌아가기 바빴으니까요.”

소년은 다소 불편한 손으로 꼬박꼬박 일기를 적어갔다. 그 일기엔 하루의 일상뿐 아니라 자신과 동료들이 겪고 있던 시설 내 음지에 있던 문제들도 포함돼 있었다.

“(시설) 사무실 가서 그럴 거면 우리한테 왜, 어디로 나가고 싶은지 조사를 했냐고 따졌어요. 어차피 안 데려갈 거면서,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랬더니 거기서 너희(휠체어장애인)가 (차에) 타면 많이 못타지 않느냐고 변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른 형, 누나(비휠체어장애인)들은 나갈 기회가 많으니까, 우리의 프로그램만 별도로 만들어달라고 했죠. 그렇게 어쩌다 나가도 차안에서만 밖을 구경하게 했어요.”

소년은 다소 울분 섞인 음성으로 그가 지냈던 시설의 반인권적인 부분에 대해 진술했다. 그가 사무실에 가서 실무자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비단 휠체어장애인에게 차별적인 외출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7명의 중증장애인 남성들과 함께 한방을 썼는데 그 이용자들을 목욕보조한 사람은 여성재활교사였다. 소년을 빼고 모두 성인남성이었다. 그는 부당함을 성토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소년은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신고를 했다.

그는 일기를 근거로 총 12개 항목을 신고했고, 앞서 두 가지 사례를 포함 총 네 개를 인정받았다. 그중에는 시설 실무자가 소년의 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속칭 ‘생일빵’이라며 ‘헤드록’을 걸고 뺨을 때렸던 사실도 포함됐다. 소년은 그렇게 작년 6월 그 문제들을 인권위에 신고했고, 8월 우연히 실태조사를 나와 탈시설 의향을 묻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 활동가를 만났다. 인권위의 결론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탈시설을 미루던 그는 10월 위기거주홈에 입소했고, 뒤미처 해당 시설이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인권침해를 했다고 인정은 받았는데 경고 정도로 끝났어요. 그래서 다시 인권위에 전화를 해 처벌수위가 낮은 거 아니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지자체랑 얘기를 하래요. 그럼 뭐하러 인권위가 존재하냐고 했죠. 아마 발바닥 못 만났으면 탈시설은 꿈도 못 꿨을 거예요. 그간 다른 기관들은 실태조사 오면 원장실에서 커피 마시고 돌아가기 바빴으니까요.”

 

“요즘 여기저기 팔려 다니고 있네요.”

주원을 만난 곳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위기거주홈이었다. 주원은 실무진 사무실과 공유되는 남성쉼터가 아닌 공실 상태인 여성쉼터에서 현재 자립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장애 정도를 감안해 바닥에는 밥솥과 식기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주방에는 여행 후라 빨랫감이 제법 쌓여 있었다.

“혼자 있는 거 좋아해서 여기서 지내는 거편해요. 다만 거기(남성 쉼터)에서는 아저씨(다른 입소자)들이니 간사분들이니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활동보조 오기 전까지 제가다 해야 하니까요. 화장실 가고, 움직이는 것도 좀 힘들지만 제가 알아서 세탁기 돌리고 먹을 것도 없으면 사러가고 시켜먹기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위기거주홈 실무자들은 한목소리로 설사 도와주겠다고 해도 자기가 스스로 해보겠다고 하는 게 주원이의 성격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런 면은 6월 초면 입주할 자립지원주택 생활에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본인만의 집을 얻어 자립하게 되기까지 그는 그곳에서 2년마다 계약 연장 심사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열아홉 살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생인 그는 한때 퍽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기도 했다. 위기거주홈 운영은 올해 말에 종료되는 터였고 고향도, 탈시설 한 곳도 연고가 모두 강원도였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자립지원주택을 얻을 길은 요원했다. 그러던 차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탈시설 지역과 무관하게 운영 중인 자립지원주택을 신청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 돼서 여기저기 팔려(?) 다니고 있네요.” 주원의 한숨 섞인 푸념에 기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날 적지 않은 시간 대화를 나눈 주원이는 섬세하면서도 재치 있고 그 또래의 시니컬한 면도 있었다. 주원은 탈시설을 도왔던 발바닥의 요청으로 탈시설 관련 토론회에 그의 다소 과격한 표현처럼 사례당사자로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그날 그의 발언을 들어보자면 신세 갚는 셈 치고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순이 있어 보인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사장, 원장, 소장 등등 이렇게 (직함에) ‘장’자 들어가는 높으신 분들 안좋아하는데 그 토론회서 마침 복지부 과장님을뵌 거죠. 그래서 제가 서울시에서 받아주지 않아 오도 가도 못했던 처지에 대해 따져 물었고, 마침그 자리에 인권위 담당자도 있어서 (인권침해 시설에 대해) 처벌수위 높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죠, 뭐.”

주원의 이를테면 일격이 있은 후 관계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주원이 입장에서는 속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토론회는 그에게 또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위기거주홈에서 토론회가 열린 여의도 이룸센터까지 활동보조 없이 혼자서 지하철을 이용해 감행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두 번의 외출

탈시설 후 주원이 입소하며 만나게 된 위기거주홈 황상연 실장은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원이에게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처음에 타인, 특히 아빠 또래의 중년 남자에 대한 경계심으로 위축돼 있었는데 동일인이 맞나 싶게 정말 밝아졌어요. 또 외출과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특수학교로 전학하고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곳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데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고, 활동보조가 생기면서 염려가 덜해졌던 것 같아요.”

외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전환점이 된 것은 지난 겨울의 강릉행이었다. 경강선 고속철도가 개통되고 얼마 후 주원은 활동보조인 정수 씨(1편. 중국집 학대 피해장애인)와 강릉으로 떠났다. 정수 씨는 한글을 모르고 강릉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난관이었기 때문에 위기거주홈 담당간사가 둘을 뒤따라가 합류하긴 했다. 하지만 애초 주원이 나서서 승차권을 예매할 만큼 의욕을 보였는데 그렇게 강릉에서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학교 은사였다.

“저는 담임선생님 운이 좋았어요.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제가 인권위에 신고했을 때본인 입장 때문에 시설에 말했을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담임선생님께서도 인권위에 신고하는 문제를 두고 한 달 생각해 본 뒤에 결정하라고 하셨지만 제가 (신고)하고 난 뒤에는 성격이 급하다고 (꾸지람)하시고는 도와주셨어요. 조사를 나온 인권위 관계자들을 만난 곳도 학교였으니까요.”

 

“트와이스를 좋아해요.”

“보치아는 초등학교 때 몇 개월 하다가 접었어요. 지금은 재밌지도 그렇다고 재미없지도 않고, 사실 미래를 위해 하는 이유도 있어요. 주변에 워낙 잘하는 애들이 많고, 그 친구들은 적어도 (운동 기간이) 2~3년은 됐는데 그에 비하면 실력도 운동량도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죠.”

몇 달 전부터 보치아를 시작한 주원은 선수가 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국대회가 열리는 해남에 다녀왔다. 첫판에 14대 1로 패했지만 상대는 국가대표였고 그런 면에서 그가 얻은 1점은 값진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주원은 해남까지 19명의 장애인 선수들이 무려 7시간이나 비좁은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며 소변을 참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고 투덜댔다. 두 번 다시 그 대회에 안 갈 사람처럼 학을 뗐지만 해남대회에 출전해야만 랭킹이 나온다느니, 시간에 쫓겨 해남 관광을 못했다느니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애증의 기울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보치아에 비해 좋아한다고 확실히 단언하는 쪽은 따로 있었다.

“음악 듣는 거 좋아해요. 발라드. 아이돌 중에서는 트와이스. 그중에는 지효가 좋아요.” 주원은 기계치인 기자에게 최신 스마트폰 사양에 대해 일러주고, 걸그룹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10대이기도 했다. 주원은 내내 벼르고 있던 오디오 플레이어를 최근에 구입했다. 쉼터에서는 자립을 위한 훈련의 일환으로 주원이 인근 마트나 복합쇼핑몰 등을 다니도록 권했는데 이제는 되레 혼자 찾는 빈도가 높아져 쇼핑횟수도 부쩍 늘었다. 잠시 노파심이 생겼지만 생각해 보면 주원의 흥미는 또래 청소년들의 공통된 일면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지출에서만 그치지 않고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영수증까지 꼼꼼히 정리해야만 하는 단계까지 주어진 것이다. “이번 달은 (통장 재정이) 괜찮아요. 수급비도 들어오고 주민센터에서 장학금도 받게 됐고, 토론회 참석비도 받게 돼 있어요.”

자립지원센터로 입주할 날을 앞두고 주원은 담당간사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인수인계를 받고 있다. 공과금 구별이나, 소비와 지출의 적정선 등에 대해서다. 그 밖에 주원은 이음장애인자립센터 등과 연계돼 자조모임, 새내기 인권활동가 모임을 비롯한 서너 개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부쩍 다른 장애 유형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도 하고, 인권활동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이지만, 주원은 기자가 앞으로의 소망을 부러 묻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주원의 강릉행 등을 지원하고 동행했던 위기거주홈 박선호 간사의 심중과 맥이 닿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주원이가 학업 성취도가 우수해 특수과정이 아닌 일반과정으로 학업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어요. 현재로선 당사자가 공부에 그리 관심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요. 어쨌든 결정은 결국 주원이의 몫이고 스스로가 내렸으면 좋겠어요. 대학이든 보치아든 인권활동가든 그무엇이든 한계는 없고, 주원이는 잘 해 낼 수 있는 친구니까요.”

   
 

“새삼 고맙다고 느꼈어요.”

“저 친구에게 고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밥(충전시켜) 주고 쓰다듬어 줬죠. 저 친구가 제 다리인데… 늘 함께하던 게 없고 나니 느껴지더라고요. 이제 물건을 소중히 다뤄야겠어요.”

열심히 돈을 모아 훗날 성능 좋은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겠다면서도 주원은 평소 낡았다고 불평만 했던 전동휠체어의 빈자리를 최근에서야 느꼈다고 한다. 정부에서 지원받아 4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전동휠체어다. 몸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보치아 훈련에서도 적잖이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그를 만난 화창한 5월의 토요일은 위기거주홈 식구들과 다녀온 3박 4일간의 제주도 여행의 여독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작은 방에 놓인 전동휠체어 옆으로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캐리어 하나가 나란했다. “제주도에 장애를 가진 관광객도,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온다고 들었는데 전동휠체어 대여가 그렇게 힘들어서 어쩌겠어요.” 주원의 볼멘소리를 듣자니 조만간 그가 일기장을 펼치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돌리지는 않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보치아 훈련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기자는 내내 한 가지 질문에 사로잡혔다. 과연 나였다면 시설 사무실에 가서 그 부당함에 맞설 용기가 있었을까. 모르겠다. 다만 주원에게서 5월의 푸른 신록보다 더 짙은 청량함을 느꼈다는 사실만을 전한다. 그의 빛나는 스무 살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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